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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894화 (894/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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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데릭 모건 이사의 안색은 정말 좋지가 않았다. 고민이 많아서 데니스 샐로먼 이사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은 것이다.

그 역시 최근 재정 경제원 관련 뉴스를 접했다. KM 센서에 대한 것도 말이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일어난 KM 블룸버그 설립과 동시에 스티븐의 기조연설 방송 준비까지 말이다.

이전이었다면 그냥 넘어갈 일인데, 이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따로 조사까지 맡겼다. 하지만 그 결과는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재정 경제원이 태도를 바꾼 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이환채 차관에게 한 가지 사실을 추가로 들었다.

[최민혁 실장에게는 당분간 손 떼기로 했습니다.]

[…이유가 뭡니까?]

[우리 쪽 문제라고 해두죠.]

[설마 한국 정부가 고작 기업인 하나가 무서워서 손을 떼려는 겁니까?]

[아니, 그게 아닙니다. 당장 외환 시장에 관한 추가 조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이 일 때문에 기업과 관련된 정부 활동은 일시적으로 홀딩될 예정입니다.]

그랬다.

최민혁 실장 관련 간담회 결과는 겉으로 봐서는 별것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윗선에서 좀 다르게 생각했다.

[우성 건설 부도가 원인이기는 합니다. 정부 처지에서 기업을 봐주는 것도 선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성 건설은 정도가 좀 심했습니다. 그들은 사업을 문어발처럼 확장해 은행 빚만 무려 1조 4천억이 넘습니다.]

[그래서 우성 건설을 파산하게 놔둔 거라는 말씀입니까?]

[네. 그런데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란 겁니다. 다른 대기업들 역시 상태가 안 좋습니다. 상황이 나은 10대 재벌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오성 그룹과 LC 그룹이 그나마 나은 정도이고, HY 그룹이 그다음 순입니다. 이들은 위기관리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을 안 듣는 기업이 꽤 있었다. 아니, 아주 많았다.

재정 경제원은 청와대 측에 보고를 진행하면서 뒤늦게 그런 점을 찾아냈다.

그다음에는 재정 경제원이 발칵 뒤집혔다. 인정하기 싫지만, 최민혁 실장의 국가 부도설이 전혀 근거가 없지 않았다.

이제 최민혁 실장이 문제가 아니었다.

당장 정부 발등에 떨어진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어떻게 보면 재정 경제원 같은 정부 기관이 민간인이 무서워서 항복 선언을 한 것이었다.

하지만 데릭 모건 이사의 입장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한국 정부가 이런 식으로 구조조정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불편했다.

그가 들은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

제임스 러너 이사 역시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데니스 샐로먼 이사의 행동이 석연치 않자 최근까지 살핀 정보를 취합해서 최민혁 실장 관련 보고서를 추가로 내밀었다.

무려 8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었다.

이 보고서 안에는 최민혁 실장이 아침에 밥 몇 공기를 먹는지까지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굳이 자신이 말하기도 전에 최민혁 실장과 관련해서 실상을 더 파악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주장을 순순히 받아들일 것 같았다.

‘지금 말하기는 좀 그렇군.’

“제가 이 자료를 다시 살펴보고 연락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데릭 모건 이사는 한숨을 내쉬었고, 제임스 러너 이사는 굳은 얼굴을 한 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들은 둘이 고민할 때와는 달리 데니스 샐로먼 이사와 같이 소통, 아니, 그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최민혁 실장의 노림수를 조금씩 깨달았다.

지금까지 최민혁 실장의 행보는 하나하나가 다 동떨어진 것 같아도 그렇지가 않았다. 한 걸음 한 걸음 모두 다 자신을 타깃으로 해서 움직인 것이었다.

* * *

“…….”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결국 며칠 동안 호텔에 틀어박혀서 추가 보고서를 꼼꼼히 살폈다. 그는 다시 수십 차례나 보고서를 보고 나서야 함정이 곳곳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민혁 실장이 최민수에게 지분을 증여하게 돕는다고? 이 무슨 개소리야?’

이게 가짜 정보는 아니었다.

성환수 보좌관이 준 정보와 교차 비교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결국 보고서가 너무 복잡해서 일단 확실한 부분만을 체크했다.

결국 이 일은 재정 경제원 일과도 관련이 있었다. 정확히는 재정 경제원이 최민혁 실장이 괴물인지 모르고 달려들었다가 지레 겁먹고 물러난 것이었다.

본래 최민혁 실장 성격이라면 보복을 해야 하겠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재정 경제원 일은 메인이 아니니까.’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다시 크로스 체크에서 공통분모만을 찾았다.

비켜 나는 것은 혹시라도 빠진 정보 같아서 따로 분류했다.

그다음에는 최근 언론을 통해서 얻은 최민혁 실장 관련 정보와 비교했다.

추측이지만 이게 자신이 아는 최민혁 실장의 솜씨라면 상상 그 이상일 것이 분명했다. 그저 감탄만 나올 뿐이었다.

“…대단하네.”

데니스 샐로먼 이사가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바로 인공지능 관련 기사였다. 그는 특히 ‘이지수 박사’란 인물에 집중했다.

‘이상하네.’

다른 일은 연결 고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지수 박사는 좀 뜬금없었다.

갑툭튀라고 해야 할지.

사건의 흐름이 도저히 이어지지 않았다.

결국 이지수 박사를 더 팠고, 마침내 이지수 박사의 부친 데니스 리를 찾아냈다.

놀랍게도 이 데니스 리가 최민혁 실장의 선친 최병문 상무와 관련이 있었다.

‘아, 그랬군. 가만, 사고라…….’

하지만 그는 이 부분은 그냥 넘겼다. 최민혁 실장과 이지수 박사와의 연결 고리를 토대로 이지수 박사의 실적을 살폈다.

‘하.’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잠깐 이지수 박사의 프로필에 빠졌다가 곧 데릭 모건 이사를 직접 찾아갔다. 그는 우선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미국 재무부 일이 사실입니까?”

데릭 모건 이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최 실장이 미국 정부 기관을 들이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화해를 했더군요. 정말 여기엔 감탄만 했습니다.”

그가 피식 웃은 포인트는 다름 아닌 한국 재정 경제원의 움직임이었다.

그들이 최민혁 실장을 대하는 것 말이다.

데릭 모건 이사도 그 점은 순순히 수긍했다.

“한국 정부도 생각 같아서는 최민혁 실장을 손봐주고 싶어 합니다.”

“그럴 겁니다. 최민혁 실장은 정부 기관과 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이니까.”

데니스 샐로먼 이사도 처음에는 놀라기는 했지만, 곧 수긍하고 말았다. 그가 막연하게 상상한 최민혁 실장이 성장한 모습 딱 그대로였다.

그냥 괴물이 아니라 한 단계 더 진화한 초괴물이 되어 있었다.

이제는 자신이 태국으로 떠날 때와는 달랐다.

‘과연 최민혁 실장을 상대할 수 있을까?’

그가 우려하는 부분은 인공지능 관련 부분이었다.

이 부분은 도저히 자신의 인식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바로 이지수 박사 말이다.

‘하지만 선친 인맥을 통해서 데니스 리를 알았다면 이지수 박사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지. 그렇다면 포섭은 당연한 거지.’

데릭 모건 이사 역시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인공지능 부분은 계속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보안이 너무 철저해서 파고들 방법이 없습니다. 이보다는 미국 국방성을 통한 방법이 나을 것 같아서 그쪽을 파고는 있는데, 그곳도 쉽지는 않습니다.”

그는 익숙한 대답에 놀라지 않았다.

“그렇겠죠. 아니, 그럴 겁니다. 그게 최민혁 실장이란 사람이 일하는 방식이니까.”

두 사람은 그제야 데니스 샐로먼 이사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최민혁 실장에 대응했던 그 누구와는 다른 대답이었다.

그들은 마지막 희망의 빛을 데니스 샐로먼 이사에게서 봤다.

“…혹시 괜찮은 방법이 있겠습니까? 만약 최민혁 실장에 관한 약점을 얻는다면, 한국 정부도 우리 쪽을 도울 겁니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굳은 얼굴을 한 채 잠깐 침묵했다.

그가 보기에는 이미 타이밍을 놓쳐도 한참 놓쳤다.

최민혁 실장을 상대하려면 자신이 태국을 떠나기 직전에 해야 했다.

그때도 샐로먼 브러더스의 전력을 모아서 최민혁 실장을 밟아야 했다. 그렇게 해도 최민혁 실장이 죽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위축은 됐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최민혁 실장은 전면전을 위한 전쟁 준비를 다 끝내놓았다.

여러 가지 아직 미비한 부분이 있지만 그건 전쟁에 있어 큰 변수가 아니었다.

이에 반해서 샐로먼 브러더스는 준비가 너무 안 되어 있었다.

아니, 최악이었다.

자칫하다가는 내부 붕괴부터 먼저 일어날 판이었다.

‘최민혁 실장이 이걸 모르지 않을 거야. 그라면 적을 그냥 두지 않을 텐데, 굳이 샐로먼 브러더스를 방치한 이유가 이거야.’

자연스럽게 최민혁 실장이 미국에 가서 한 일이 그냥 한 것이 아니었다.

전부 다 샐로먼 브러더스와 알게 모르게 다 연결되어 있었다.

‘실제로 모건 스탠리와의 관계도 지금 최악이잖아. 하, 이거 정말 심각하구나.’

지금은 도저히 최민혁 실장과 싸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차라리 최민혁 실장과 휴전을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네? 휴전이라…….”

데릭 모건 이사는 반발하지 않았다. 아마 다른 상대였다면 맹렬하게 항의했을 테지만 최민혁 실장은 좀 달랐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단언했다.

“솔직히 전 태국에 있던 터라 한국 상황은 전혀 모릅니다. 미국 상황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 시점에서 최민혁 실장을 상대로 섣불리 행동하기는 힘듭니다. 당장 KM 블룸버그에 해놓은 것을 봐서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걸 겁니다. 미국 언론사가 헛짓하는 것을 막을 수단이 필요했을 테니까요.”

“…좀 더 준비해서 최민혁 실장을 치자는 말입니까?”

“그건 그때 가서 봐야 할 겁니다. 다만 최민혁 실장과 대립하면 손실이 생각한 것보다 어마어마할 겁니다. 그것도 감수해야 합니다.”

“…음.”

데릭 모건 이사는 침음성을 터뜨렸다. 전쟁의 사상자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보다 가장 큰 문제는 최근에 만든 적이었다.

그 적 중에는 놀랍게도 마이클 블룸버그뿐만이 아니라 모건 스탠리도 있었다.

물론 모건 스탠리의 마이크 라이언 이사가 무리수를 뒀지만 중요한 것은 결과였다.

그리고 이 일에도 최민혁 실장이 끼어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이 일을 안다고 해서 당장 변화를 줄 수가 없었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가 자신들을 믿지 않기 때문이었다.

“…….”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한층 자기 말에 귀를 기울이는 데릭 모건 이사의 태도에 자신감을 얻었다.

“제가 한번 최민혁 실장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좋습니다.”

* * *

최민혁 실장은 간담회에서 탈주해서 당분간 몸을 사렸다.

그는 미국으로 튈까도 고민했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이제야 좀 여유를 가진 셈이다.

최문경 부회장은 이미 영향력이 줄어들다 못해 존재감마저 잘 드러나지 않았다.

그는 느긋하게 복수라는 감정을 즐겼다. 최문경 부회장을 단기에 밟아버리는 것보다는 시간을 두고 괴롭히는 것이 더 만족스러웠다.

‘자살하면 더 좋지.’

하지만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았다.

바퀴벌레가 울고 갈 정도로 질긴 생명력을 가진 사람이 최문경 부회장이니까 말이다.

그건 지금 최문경 부회장을 보면 안다. 최용욱 회장에게 찍혔다고 생각하자 부회장실 히키코모리가 되어 있었다.

다만 안 좋은 일도 있었다.

간담회 이후로 재정 경제원 쪽에서 계속 자문하러 오고 있었다.

[우리 중소기업은 기술만 개발하면, 대기업에 강탈당했습니다. 하지만 KM 전자, KM 센서, 미래 기술은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그렇게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을 최 실장님은 하셨습니다. 제발 좀 도와주십시오.]

이 무슨 개소리인지.

최민혁은 아예 폰 전원을 꺼버렸다.

하지만 재정 경제원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최민혁도 의아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더 윗선에서 압력을 넣은 것이었다. 특히 섬유 업종처럼 기술력이 떨어지는 사업에 대해서 자문을 많이 구했다.

‘아니,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로서는 정말이지 황당한 일이었다.

자신의 분야와는 전혀 다른 사업이었다.

조언하고 말고도 없었다.

다만 그도 전생 기억을 이용하면 할 수 있는 조언이 있기는 하지만 말을 아꼈다. 그 답은 구조조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재정 경제원의 스토킹은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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