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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892화 (892/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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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런데 멕시코 정부가 은행 부실을 없애기 위해서 노력하고는 있는데,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만약 우리도 멕시코 정부처럼 마이너스 성장을 하게 된다면 외환 쇼크 문제가 다시 터진다는 건가?”

“몇 가지 전제 조건이 더 필요하긴 하지만 네, 맞습니다.”

만약 한국이 1년 전이었다면 그냥 웃고 넘어갈 일이었다.

그런데 우성 건설 파산이 문제였다. 정부가 나서서 급하게 땜질로 메꾸기는 했는데, 여전히 남아 있는 문제가 있었다.

거기다 최민혁 실장이 방송에 나가서 국가 부도설을 이야기하면서 또 문제가 터져 나왔다.

그런데 이걸 잘 보면 최민혁 실장만을 탓하기 힘들었다.

그만큼 한국 외환 시장이 불안정하다는 뜻이었다.

김웅배 장관은 곰곰이 고민하다가 결국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자네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다른 대안이 뭐가 있어?”

“네? 그건 좀…….”

김웅배 장관은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이번 일은 최민혁 실장 길들이기가 목적이었다. 즉, 단순히 정치적인 목적 때문이 아니었다.

한국 대기업은 대부분 다 최민혁 실장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는 푸념을 털어놓는 쪽이었다.

자신들은 그렇게 정부를 위해서 노력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전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특혜를 받는 것은 최민혁 실장이었다.

이런저런 모임 뒷담에서 최민혁 실장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번도 그랬다.

최민혁 실장이 적당히 고개를 숙이면, 단순하게 끝날 일이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은 전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아예 정부를 무시했다.

그도 최민혁 실장이 20대 대기업 수준이었다면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그런 대기업과는 격이 많이 달랐다.

‘KM 전자는 두 달 정도 멈추어도 멀쩡하게 잘 돌아갈 회사이니까.’

김웅배 장관은 이 일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 했다. 아니라면 아예 여기서 손을 떼야 했다.

“…재정 경제원 주도로 경제 간담회를 한번 만들어봐. 전경련 쪽에도 구색을 갖추어서 초청하고.”

“…최민혁 실장을 포함해서 말입니까?”

“당연하잖아. 그 친구를 한번 만나봐야겠어. 이왕이면 최용욱 회장도 대상에 넣어. 최민혁 실장도 최용욱 회장을 본다면 함부로 그 자리에서 날뛰지 않겠지.”

“…알겠습니다.”

“아, 혹시 모르니, 최문경 부회장도 같이 넣어서 초청해.”

* * *

최문경 부회장은 갑작스러운 재정 경제원의 간담회 초청장에 의아했다. 그는 안 그래도 최민혁 때문에 골치가 아파서 다른 일을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못 간다고 해.”

다만 권재홍 비서실장은 이미 이 간담회 초청장 내막을 파악했다.

“이번 건은 최민혁 실장 때문입니다. 반드시 참석하셔야 합니다.”

“…아니, 그게 무슨 개소리야? 민혁이 그놈이랑 초청 간담회가 무슨 관계가 있다고 그래?”

권재홍 비서실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주에 KM 센서의 KM DVR 만 대 선적이 확정되었습니다. 대금 규모만 무려 1,000억이 넘습니다. 이런 부분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아.”

최문경 부회장은 짜증스러웠다. 그는 안 그래도 위장 자살쇼로 인해서 최용욱 회장에게 다시 찍힌 것 때문에 요즘 제대로 잠도 못 잤다.

아무리 최용욱 회장이 가족을 중요하게 여겨도 이번 자신의 행동은 너무 나간 것이었다.

‘차라리 검찰에 고소하든지.’

그러면 자신은 밑에서 무리수를 둬서 진행한 일이라고 말하면 된다.

피해자 코스프레.

최용욱 회장이 쉽게 넘어갈 일이었다.

그런데 내부적으로 사건을 해결한 덕분에 그럴 수가 없었다.

서광수 과장은 덕분에 KM 블룸버그 쪽으로 다시 복귀했고 말이다.

권재홍 비서실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최민혁 실장 문제도 문제지만 규제 문제 때문에 전경련에서도 계속 정부 쪽에 건의했습니다. 이번 정부는 계속 그 제안을 거절해서 말이 많았습니다. 이번 간담회는 그 문제를 두고 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그 일을 가능하게 한 것은 최민혁 그놈이고?”

“아, 네, 뭐.”

정확히는 좋은 명분일 뿐이었다. 그게 아니면 최민혁 실장은 배 째라 할 확률이 높았다. 물론 재정 경제원 입장에서는 그래서는 곤란했다.

권재홍 비서실장도 당황했다. 그도 최민혁 실장을 미워하지만, 이번 일은 꼭 그렇게 볼 수가 없었다.

“나 하나 빠져도 문제가 없잖아?”

“그렇지 않습니다. 재정 경제원에서 부회장님을 딱 찍은 것은 최민혁 실장 견제 목적이 큽니다. 다른 대기업과는 달리 이번 모임에 우리 KM 그룹만 부회장님을 포함해서 세 사람입니다.”

최문경 부회장은 짜증만 났지만 차마 반박하지는 못했다.

“나랑 민혁 그놈 사이를 잘 안다는 뜻이네. 다 좋아. 그런데 내가 그 자리에 가서 민혁이 그놈을 제대로 견제할 수 있을까?”

“…잘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권재홍 비서실장은 따가운 최문경 부회장의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최민혁 실장 견제가 아니었다.

‘창피만 안 당하면 될 텐데…….’

최문경 부회장 역시 바보는 아니었다. 그는 최용욱 회장에게 그렇게 당한 터라 이번에는 풀 죽은 어조로 말했다.

“말해봐.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이번 모임에 관해서 조사를 해봤는데, 오찬 간담회 형식입니다. 규제 축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력, 신사업 창출 같은 말들이 오고 갈 거고요. 이 과정에서 하셔야 할 일은…….”

최문경 부회장은 어디서 많이 들은 이야기에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그 역시 사태를 악화시키고 싶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확인은 필요했다.

“샐로먼 브러더스 측은 요즘 뭐 해? 민혁이 그놈을 제대로 견제하는 거야?”

“그게 아무래도 샐로먼 측에서 여러 가지 정보를 넘긴 것 같습니다. 그걸 검토하는 과정에서 이번 초청 간담회가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기가 막히네.”

최문경 부회장은 더 질문하지 않았다. 그는 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최민혁 실장에게 질려 버렸다. 결국, 이 모든 일의 배후에는 최민혁 실장이 있었다.

그로서는 이 상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단순히 나이를 떠나서다. 최민혁의 능력은 상리에 맞지가 않았다.

‘민혁 이놈은 도대체 어떻게 된 놈일까? 잘 이해할 수가 없네.’

* * *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절대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우선 재정 경제원의 반응을 살피면서 데릭 모건 이사에게는 계속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는 최문경 부회장 쪽도 살폈다.

자연스럽게 한 가지 사실을 알았다.

아니나 다를까 재정 경제원이 실제로 움직이기는 했다.

경제 간담회를 연 것이었다.

이 정부의 집권 초기에 신 재벌 정책이 없다고 밝힌 후에 이런 간담회 모임은 없었다.

실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이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최민혁 실장을 협박하려는 걸까? 아니면 타협하려는 걸까?’

실상 이 간담회 모임에 초청을 받은 전경련 인사는 영문을 잘 몰랐다.

이 정권은 초반부만 해도 재계에 대해서 아예 침묵했다.

기존에 있던 채널조차 다 닫아 버렸다.

둘 사이 관계는 시간이 갈수록 벌어졌다.

전경련이 모여서 정부에 아무리 하소연을 해도 벽 보고 이야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 정부가 뜬금없이 경제 간담회를 하겠다고 한다.

‘아니, 왜?’

결국 전경련은 이 뜬금없는 사태에 참석하겠다고 한 후에 재정 경제원 내부를 열심히 들여다봤다.

그 과정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이는 다름 아닌 최용욱 회장이었다.

놀라운 것은 김상구 회장이 직접 최용욱 회장을 찾았다는 것이다.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아니, 그렇지 못합니다. 아주 최 회장 때문에 죽을 맛입니다.”

“…간담회 때문입니까? 그 일은 저랑 무관한 일입니다.”

“그렇게 말하면 섭섭합니다. 당신네 KM 그룹은 세 사람이랑 초청받은 것으로 압니다. 내가 오성 그룹이라면 이해하지만, 당신은 아니지!”

최용욱 회장은 김상구 회장이 왜 반응이 안 좋은지 잘 안다. 지금 DL 그룹 상황이 너무 안 좋았다. 투자는 많이 했는데, 제대로 이익을 뽑지 못한 것 때문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KD 통신, KD LCD였다.

KD 통신은 원래 시간이 걸리니 그렇다고 하자.

하지만 KD LCD 쪽은 좀 달랐다. 최민혁 실장이 내놓은 특허를 이용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양산 단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결국 적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여기에 일본에서 급히 들여온 자금도 문제였다.

일본 쪽에서 압력을 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딱히 DL 그룹을 노려서 하는 일이 아니었다.

다른 기업 역시 비슷했다.

저렴한 일본 금리 때문에 너도 나도 일본 은행에서 돈을 빌렸다.

그러니 일본 은행도 슬슬 리스크 관리를 시작한 것이었다.

‘너무 안일했어. 하지만 그에 비해서 우리는…….’

돈이 넘쳐난다.

아니, 정말로 주체하기 힘들었다.

최민혁 실장이 이쪽저쪽을 뛰어다니면서 한 일이 KM 그룹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렸다.

신뢰도가 올라간 덕분에 KM 그룹 전체 계열사 매출이 계속 급증했다.

그 선발대 역을 맡은 계열사가 KM 센서였다.

최용욱 회장은 김상구 회장의 태도에도 그저 눈치만 봤다.

김상구 회장도 최용욱 회장이 묵묵히 두들겨 맞기만 하자 한숨을 내쉬었다.

“이봐요, 최 회장, 내 다른 소리는 안 하겠습니다. 이번 간담회가 민혁 그놈과 관련이 있다는 소리가 있어요. 혹시 아는 바가 없습니까?”

“…모르겠다면 믿겠습니까?”

“하, 그 사람이 왜 그럽니까. 좋게 좋게 끝내면 좋잖아. 내가 꼭 욕설하고 해야 합니까. 아, 지난 일은 덮자고, 민혁 그놈이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린 겁니까?!”

“…제가 확인해 보겠습니다.”

김상구 회장은 잠깐 최용욱 회장을 날카로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런데 최용욱 회장이 정말 모르는 눈치였다.

그는 이 상황을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수긍하고 말았다. 과거 최민혁 실장의 배후가 최용욱 회장이라는 설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상황을 믿지 않았다.

최민혁 실장의 행동이 너무 상리를 벗어나서였다.

“좋습니다. 내 나중에 다시 물어보겠습니다. 다만 최 회장도 잘 알 겁니다. 우리 기업이 처한 상황 말입니다. 고금리, 고임금, 고부동산 말입니다. 이런 점과 관련된 규제를 반드시 철폐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는 김상구 회장이 다시 자신을 잠깐 째려보는 모습에 어색하게 웃으면서 그가 떠나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민혁, 이 녀석이 참.’

* * *

최용욱 회장은 뒤늦게 이번 간담회가 최민혁 실장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이번 초대가 오히려 어색했다. 한국 10대 대기업 회장이라면 대상이 되겠지만 자신은 여기에 낄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물론 최문경 부회장이 참석한 것을 보자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감정이 사라지지 않았다.

최문경 부회장은 최용욱 회장의 눈치를 보면서 어색하게 인사했다.

그는 최문경 부회장을 외면한 채 간담회 주변을 살폈다.

최문경 부회장은 전경련 회장들에게 가볍게 눈인사만 했다.

그는 결국 간담회 한쪽 구석에 조용히 앉아 있는 최민혁을 발견했다. 때문에 후다닥 달려가서 손자 최민혁을 째려보았다.

최민혁은 다급하게 인사하면서도 고개를 갸웃했다.

“네 녀석이냐?!”

“네?”

최민혁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천진 만만하게 고개를 갸웃했다.

최용욱 회장은 허탈하게 웃었다.

“또 무슨 일을 꾸민 거냐?”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너도 이 정부가 어떤지 잘 알았잖아. 취임 직후에 재벌 정책에 대한 특혜를 다 없앴어. 그나마 있다고 한다면 10대 재벌 정도지.”

최민혁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렇다고 해도 제가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안 그러면 TV에 나가서 왜 그런 사고를 친 거냐? 국가 부도설이라니. 하, 보는 내가 가슴이 다 덜컥하더라.”

최민혁 실장은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한국은 표현의 자유가 있는 나라입니다.”

“표현의 자유 옆구리 터지는 소리는 집어치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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