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890화 (890/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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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데니스 샐로먼 이사의 눈치만 봤다.

“하, 데니스 이사의 충고를 진지하게 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멋지게 수긍해 줬다. 그는 이보다 두 사람의 태도가 이전과는 180도 바뀐 것에 혀를 내둘렀다.

‘역시 최민혁 실장인가? 데릭 모건 이사도 만만한 사람이 아닌데, 어떻게 저렇게 변했지. 다시 봐도 믿을 수가 없네.’

데릭 모건 이사는 다른 일반적인 이사와는 격이 많이 달랐다.

샐로먼 브러더스 가장 상층부에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고, 다음 샐로먼 브러더스 총수로 내정된 사람이었다.

실제로 그를 지지하는 사람은 많았고 말이다.

실적도 대단했다.

어지간한 중소국 GNP만 한 자금을 운용하는 샐로먼 브러더스의 다음 총수 예정자였다.

그런 그도 최민혁 실장을 만나서 제대로 맥을 추지 못했다.

그는 제임스 러너 이사의 설명과 넘겨준 자료를 보면서 혀를 찼다.

‘나 때랑 다르구나.’

이번에는 최민혁 실장이 직접 공격하지 않았다. 돌리고 돌려서 간접적으로 공격했다. 모략 자체가 티가 나지 않았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최민혁 실장의 수법을 잘 알기에 그나마 짐작할 뿐이다. 그가 이런데 두 사람이 최민혁 실장의 의도를 알 리가 없었다.

‘시작은 역시 KM 블룸버그 설립 때문일 거야. 그걸 덮기 위해서 지분 쇼를 벌였군. 이건 CES 기조연설 홍보 활동 때문일 거야. 이번 에플 차세대 제품 홍보일 테니까.’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일이다.

스티븐이 다시 에플로 귀환한 후에 보여주는 첫 번째 외부 행사이니까.

그리고 그 수단인 KD 통신 지분.

솔직히 샐로먼 브러더스 입장에서는 포기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이것 자체를 좋게 보지 않았다.

‘IP 시티폰이 잘될까? 무엇보다 최민혁 실장이 이 사업을 포기한 것이 문제야. 돈이 된다면 이렇게 순순히 포기할 리가 없잖아? 외부 외압이 아니라 스스로 외압을 만든 것처럼 보이니까.’

그렇게 보면 KD 통신은 참으로 위험했다.

다만 그 원인인 뭔지는 도저히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의 안색이 좋을 리가 없었다.

점진적으로 진행된 일은 설사 안다고 해서 다시 돌이키기가 어려웠다.

이보다는 오히려 빨리 사업을 궤도에 올린 후에 손실을 보고서라도 정리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중국 공산당 정부라면 매각 제안을 받지 않을까?’

데릭 모건 이사는 잔뜩 굳은 데니스 샐로먼 이사 눈치를 봤다.

“…혹시 뭔가 알겠습니까? 다른 문제라도 생긴 겁니까?”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 단순 추론이라도 좋으니까 뭔가 있다면 지금 말해봐. 답답해서 미칠 것 같으니까.”

“글쎄요.”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과거와는 달리 한결 낮아진 데릭 모건 이사의 어조에 내심 피식 웃으면서 굳이 대답해 주지 않았다. 당당하게 반말로 자신을 깔아뭉개던 그 모습은 없었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었다. 더욱이 지금 문제를 안다고 대안이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이미 지금 투자한 금액을 다시 돌려받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만약 이 사실을 데릭 모건 이사가 알면 이 일을 자신에게 맡길 것이 분명했다.

문제는 데니스 샐로먼 이사가 보기에는 이제 수습하기는 힘들어 보인다는 점이다.

싫든 좋든 끝까지 가야 했다.

‘잘되면 초대박이기는 한데, 실패하면 손실이 어느 정도일까? 결국, 그 책임은 내가 뒤집어쓰겠지. 그럴 수는 없지. 차라리 문제가 생긴 후에 뒷정리에 나서는 것이 훨씬 인정받기 좋아.’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문득 고민하다가 최악의 사태를 가정하고는 소름을 느꼈다. 그 대단한 샐로먼 브러더스가 휘청할 수준이었다.

그는 보고서를 쓱쓱 넘겨봤는데, 합리적인 대안이라면 그냥 다른 투자 은행에 넘기는 거다.

‘…그건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 에이, 아닐 거야. 그건 정말 너무 나간 생각이야. 최민혁 실장이 이렇게까지 할 리는… 가만, 투자한 것은 우리 회사잖아.’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결국 보고서 보는 것을 중단하고 말았다. 그 자신이 최민혁 실장의 위험성을 그렇게 경고했는데, 두 사람은 아예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와는 상황이 또 달랐다.

이제는 들어도 안 된다.

그들은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 알고 싶어 했다.

하지만 데니스 샐로먼 이사도 이제는 최민혁 실장의 과거 정보만 알았다. 그는 최근 최민혁 실장의 행보를 알지 못했다.

“이 보고서를 살펴본 후에 다시 이야기 드리겠습니다. 시간을 좀 주십시오.”

“…알겠네.”

* * *

최민혁 실장은 방송에 나가서 외환 위기설을 터뜨렸다.

다만 그는 구체적으로 뭔가 지적하기보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만 했다.

그 과정에서 CES 전시회, 스티븐의 초청 강연 광고도 좀 하고 말이다.

송도연 임신설을 대리한 것이었다.

KM 전자 기획실은 꽤 실망한 얼굴이었다.

최민혁은 물론 모른 척했다.

“…정말 이대로 계속 가실 생각입니까?”

“그게 좋을 거예요. 최소한 케이블 TV 인허가로 장난치지는 않을 테니까. 아니, 다른 수작을 부리게 놔두는 것보다 훨씬 나아요.”

“그렇기는 하지만…….”

“어차피 지금 타이밍에 한 번 정도는 하려고 했던 일입니다.”

조성돈 팀장은 그제야 개정판 X 리포트를 떠올렸다. 그도 최민혁 실장을 믿기는 하지만 예측한 사태가 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뭔가가 온다고 해도 그 위기의 규모가 크지 않다고 봤다.

“…서, 설마 한국에 정말 외환 위기가 온다는 말씀입니까?!”

최민혁 실장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는 조성돈 팀장이 왜 저런 표정을 짓는지 알았다. 문건으로 보는 것과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제가 예언가가 아닌데, 미래를 예상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좋은 일은 아닐 겁니다.”

“하면 지금 방송에 나가서 하는 일이 에플 CES 전시회 홍보 때문만은 아니라는 말씀이군요.”

“일단 그게 우선이죠. 다만 환경적인 요인이 있어서 그 점을 고려한 것뿐입니다. 외부에서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몰라요. 우리 적에 대해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다들 저력이 있는 집단이니까.”

조성돈 팀장은 그제야 한 가지 사실을 더 보고했다.

“하면 데니스 샐로먼 이사가 한국에 다시 온 것도 이 일하고 관련이 있습니까?”

“어? 그래요?”

조성돈 팀장이 바로 내놓은 보고서에는 샐로먼 브러더스 한국 지사를 감시한 사진이 들어 있었다.

그는 데니스 샐로먼 이사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사진과 보고서 내용을 살폈다. 심지어 공항, 호텔 내부 사진도 있었다.

데릭 모건 이사와 만나는 장면도 있고 말이다.

최민혁 실장은 데니스 샐로먼 이사의 과거 행적을 떠올리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샐로먼 브러더스 직원 중에 제일 껄끄러운 인물이었다.

‘장 실장과 비슷한 성향이니.’

“이건… 곤란한데요.”

“네? 데니스 샐로먼 이사가 신경 쓰이십니까?”

“아니라고 말 못 하겠네요. 이 작자라면 제 의도를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의도라 하시면…….”

최민혁은 씩 웃었다.

“조 팀장님도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제가 한 일은 단편적인 의도가 아니에요. 겉으로 봐서는 KM 블룸버그 합작 회사가 목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다가 아닙니다. 그렇게 보이도록 했을 뿐이니까.”

“…네.”

조성돈 팀장은 그제야 머리를 맹렬하게 굴려봤다. 하지만 그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최민혁 실장의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최민혁 실장은 피식 웃었다.

“그래도 모르는 일이니까. 데니스 샐로먼 이사, 샐로먼 브러더스 한국지사, 최문경 부회장의 움직임을 잘 살펴보세요. 결국에는 상황 파악을 위해서 움직일 겁니다. 나머지 일은 굳이 집착하지 마세요. 어차피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알아서 잘 진행할 겁니다. 이지수 박사의 경우에는 우리가 나서는 것이 오히려 업무를 방해하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도 순순히 수긍했다. 최민혁 실장은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하는 사람이었다. 큰 그림을 만들고 나서는 거의 간섭을 하지 않았다.

실상 그게 옳은 일이었다.

최민혁 실장도 따지고 보면, 인공지능이라는 분야 하나만 놓고 봤을 때는 이지수 박사와 비교해서 많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이 더 대단하지. 보통 경영자라면 사사건건 다 간섭할 테니까.’

조성돈 팀장은 새삼 정중하게 최민혁에게 허리를 숙인 채 조용히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 * *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데릭 모건 이사도 완전히 믿지 않았고, 그건 제임스 러너 이사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과거 제임스 러너 이사에게 당한 기억을 잊어버리지 않았다.

그가 대안으로 선택한 사람은 한국 공무원이었다.

바로 재정경제원 이환채 차관의 성환수 보좌관이었다.

그와는 만약을 위해서 삼성역에서 만났다.

삼성역 뒤편에 있는 카페 중의 하나를 골라서 들어갔다.

그곳은 평일 점심이 지난 무렵이라서 손님은 거의 없었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혀를 찼다. 이곳은 이미 몇 번이나 와 봤던 곳이었다. 그곳에서 새삼 역동적으로 변해 가는 삼성역 주변을 살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서울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곧 나타난 성환수 보좌관의 모습은 좀 달랐다. 영화 속의 좀비를 떠올리게 할 정도의 모습이었다. 극한의 업무 강도 때문에 고생한 것이었다.

“…오랜만입니다.”

“근 1년 만이죠?”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슬쩍 손을 내밀어서 악수를 청했다.

맞은편에 앉은 성환수 보좌관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자본 시장 개방과 더불어서 조언을 해주는 과정에서 서로 알게 되었다.

서로 알게 된 지 불과 몇 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성환수 보좌관은 데니스 샐로먼 이사의 깊은 금융 지식에 반해서 지금까지 계속 연락을 해왔다.

다만 최근은 아니었다.

이유는 있었다.

가벼운 주문과 함께 켜진 카페 벽면에 붙어 있는 TV가 그 증거였다.

재정경제원 김웅배 장관이 나와서 기자회견을 진행 중이었다.

[우성 건설 부도 문제와 관련해서 말이 많은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기본 원칙은 기업 규모가 크다고 해서 부도를 인위적으로 막지 않는 겁니다.]

[하지만 우성 건설 부도 이후에 생긴 문제들이 현재 오히려 더 격화된 상황입니다.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해야 하지 않습니까?]

[기업 문제는 기업과 금융 기관이 알아서 할 일입니다. 금융 기관이 그 기업의 재정 상황을 잘 알기에 자율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가만, 그러면 대그룹 위기 상황에서도 정부는 나서지 않을 생각입니까?]

[물론입니다. 대마불사는 이제 없습니다. 기업과 금융 기관이 알아서 잘 조율해 위기 상황을 극복해야 합니다.]

[하지만 당장 우성 건설 부도로 멈춘 아파트 공사 현장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선의의 피해자가 현장에서 아직도 시위 중입니다. 그들을 무시하실 겁니까?!]

김웅배 장관 표정이 좋지가 않았다. 그도 기자들이 이렇게 집요하게 나올지는 몰랐다. 이 모든 사태가 최민혁 실장 때문이었다.

최민혁 실장이 방송에 나가서 국가 부도설을 퍼뜨렸기 때문이다.

위기감을 느낀 피해자들은 절박해질 수밖에 없었고, 정부 기관을 상대로 계속 시위까지 벌이는 중이었다.

김웅배 재정경제원 장관겸 부총리는 차가운 눈으로 이환채 차관을 쳐다보았다.

이환채 차관은 차마 얼굴을 들지 못했다. 그는 다급하게 주변 눈치를 살폈다. 성환수 보좌관을 찾는 중인 것 같았다.

성환수 보좌관은 역시 ‘재정경제원 장관 인터뷰’ 화면에 당황해서 핸드폰 전원을 꺼버렸다.

“휴우.”

“…….”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 그는 오히려 메뉴를 추가로 주문해서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그러곤 인내를 가진 채 기다렸다.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

하지만 성환수 보좌관이 이 자리에 그냥 나온 건 아니었다.

“뭐 대충 상황을 아셨을 테니, 굳이 숨기지 않겠습니다. 지금 우리 재정경제원 분위기가 좋지 않습니다. 딱히 최민혁 실장 때문은 아닙니다. 정확히는 단기 외환 쇼크 때문입니다.”

“네? 그게 무슨…….”

“샐로먼 브러더스 측과도 관련이 있는 일인데, 설마 모르시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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