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887화 (887/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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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경제원이 고민하는 것은 외환 시장만이 아니었다.

실상 최근 오르기 시작한 금리가 더 큰 문제였다.

우성 건설 파산 이후에 늘어난 회사채 발행 양이 상한선을 넘어섰다.

금리 상승세를 막지 못한 게 이유였다.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내수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었다.

단기 외환 파동은 이 금리에 극약처방을 한 셈이었다.

이 갑작스러운 침체에 외환 시장은 크게 요동쳤고 말이다.

결국 이 문제에 대한 원인을 찾다 보니, 나온 것 중의 하나가 X 리포트였다.

특히 최근 증권 시장을 중심으로 돌기 시작한 개정 X 리포트가 더 큰 문제였다.

이환채 차관의 원래 성격대로라면 이런 사태를 다 무시하는 꼰대 기질을 보였을 것이다.

그런 그도 최민혁 실장이 엮여 있다는 사실에 차마 그러지 못했다.

대충 넘기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지금 정보만 가지고 판단하기도 어려웠다.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야 했다.

그는 도저히 자신이 없어서 결국 재정 경제원 장관이자 부총리인 김웅배 장관을 직접 찾아가서 이 사안을 보고했다.

물론 앞부분은 짧게.

‘최민혁 실장’과 관련이 있는 부분은 장황하게 말이다.

“아무래도 이번 외환 시장 쇼크 부분은 좀 더 추가 조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최민혁 실장이 이 일을 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가 내놓은 보고서는 꽤 상세했다.

정보 출처는 당연히 최문경 부회장이었다.

최문경 부회장, 샐로먼 브러더스가 눈을 부릅뜬 채로 최민혁 실장을 지켜봤기에 나온 보고서였다. 다만 이게 다 정황 증거였다.

심지어 과거 최민혁 실장이 한 짓이 적나라하게 잘 나와 있었다.

최훈열 전무와 관련된 일은 마치 당사자인 양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초꼰대 김웅배 장관은 이환채 차관을 타박하지 않았다.

그 역시 이전의 국세청 사태를 잘 알기에 최민혁 실장이라면 이보다 더한 짓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직 최민혁 실장이 했다는 증거까지 나오지는 않았고?”

“네. 그것까지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실무진 선에서는 최민혁 실장이 어떤 형태로든지 관련이 있다고, 잠정적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이환채 차관은 사실 최민혁 실장을 범인으로 몰고 싶었다.

그는 사실 정치 공작으로 최민혁 실장에게 이번 일을 완벽히 뒤집어씌울까 고민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는 채 10분이 지나지 않아서 느슨한 형태로 결론을 내려 버렸다.

되면 좋고,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그냥 놔두는 편이 보험으로 나빠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최민혁 실장 일에는 손대기가 좀 그랬습니다. 이건 제 다른 정보 채널을 통해서 확인한 정보인데, 최문경 부회장이 위장 자살극을 벌였다가 오히려 뒤통수를 맞았다고 합니다.”

“위장 자살극?”

최문경 부회장은 서광수 과장 사건을 최용욱 회장에게 재떨이로 맞고 나서 알았다. 그는 기겁했고, 이 사태를 그냥 둘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이 아는 검찰, 경찰, 공무원 측과 접촉해서 만약의 사태를 대비했다.

그 과정에서 이 정보가 이환채 차관에게도 보고가 올라갔다.

김웅배 장관은 오히려 안타까운 눈빛을 한 채 혀를 찼다.

“최 부회장이라면, 일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잖아. 어쩌다가 그런 실수를 한 거야.”

“…아무래도 너무 서두르는 과정에서 문제가 터진 것 같습니다.”

“그런가? 최민혁 실장 이 친구는 온갖 문제를 다 만드는 것 같아. 비록 아직 확인되지는 않다고 해도 외환 시장 혼란과 관련이 있잖아.”

“…….”

이환채 차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이보다 김웅배 장관의 눈치를 봤다. 솔직히 지금까지는 자신이 주도해서 일을 처리했다.

그런데 외환 시장 단기 쇼크 문제를 경험하자 조금 걱정이 되었다.

부실한 외환 흐름.

이와 관련된 기관이 제법 더 있는 것 같았다.

다만 그는 감이 좋아서 굳이 이 문제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뭔가 더 있는 것 같아. 최민혁 실장이 우리 국내 시장의 취약점을 몰랐다면 이런 일을 만들 수가 없어.’

“…최민혁 실장을 이대로 두실 겁니까? 차라리 검찰을 동원해서라도…….”

“허허허, 그 친구 참 큰일이 날 소리를 하네. 아니, 죄도 없는 사람을 향해서 검찰을 동원하다니. 자네 미쳤나?!!!”

“아, 죄송합니다.”

이환채 차관은 크게 당황했다. 그는 김웅배 장관의 속내를 떠보기 위해서 한 말에 상대가 이렇게 극단적인 반응을 보일지는 몰랐다.

김웅배 장관은 단호했다.

“최민혁 실장 일은 명확한 증거가 없다면 정부가 나설 일은 아닐세. 구체적인 증거가 필요해. 그다음에 뭔가 해도 할 테니까. 공정위나 국세청을 아무런 이유도 없이 보낼 수는 없어. 더욱이 자네도 알지 않아. KM 전자나 벨린 투자가 회계 관리를 얼마나 철저하게 하는지.”

이환채 차관은 그제야 미국 재무부 일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최민혁 실장 혼자 단독으로 미국 재무부 일을 처리한 것 말이다.

최민혁 실장이 딱히 한 일은 아닐 것이다.

미국 재무부 요청을 기업가가 거절할 수는 없으니까.

다만 정부가 그 행위 자체를 곱게 보기는 힘들었다.

더욱이 최민혁 실장이 과거 정부를 상대로 한 고까운 행위도 있었다.

괘씸죄였다.

“아, 저도 압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아무런 증거도 없이 KM 전자에 공정위 같은 기관을 동원한다고 생각해 봐. 자칫하면 정치적인 역풍을 맞을 수도 있어!”

“…네.”

“다시 경고하는데, 어설픈 수작을 부리지 마. 여권에서도 최민혁 실장 일에 대해서는 다들 보수적으로 나가니까.”

“…알겠습니다.”

이환채 차관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그 탐욕적인 국회의원조차 최민혁 실장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느낌이 안 좋아. 일단 대응을 해봐야겠어.’

* * *

이환채 차관도 재정 경제원이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자 평소와는 달리 바짝 긴장했다. 최민혁 실장의 악명은 굳이 다른 곳에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국세청 쪽 지인에게 물어보기만 해도 알 수가 있었다.

최민혁 실장이 얼마나 지독한지, 또한 아군에게 얼마나 잘해주는지 말이다.

최민혁 실장과 대응하기 위해서는 재정 경제원 내에 첩자부터 가려야 할 처지였다.

다행이라면 성환수 보좌관이 최민혁 실장과 자리를 같이할 기회를 찾았다.

정확히는 KM 산업 쪽이었다.

“최용욱 회장이라면 저희 쪽의 이야기를 무시하지 않을 겁니다.”

“한번 알아봐.”

성환수 보좌관은 최용욱 회장에게 바로 연락해서 이번 천안에 조성한 반도체 장비 제3공단 참석 자리 이야기를 꺼냈다.

[…뭐, 재정 경제원에서 참석하는 것은 그다지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충남 천안 지역에 조성되는 반도체 제2공단에 이어서 건립되는 3공단은 원래 20만 평 규모였다. 그런데 최용욱 회장이 끼어들면서 그 규모가 확 늘어나서 무려 40만 평으로 바뀌었다.

KM 산업은 무려 20만 평 규모를 지정받았고 말이다.

미래 산업, 동일 교육과 같은 업체가 합쳐서 고작 5만 평 규모였으니.

KM 산업 단일 규모로는 사상 최고였다.

이들 반도체 업체는 KM 산업의 갑작스러운 투자 확대에 질색했다.

그들은 증설을 요구했고 말이다.

때문에 이 과정에서 특혜 시비로 말들이 많았다.

하지만 제2공단 내에 추가로 15만 평 부지를 확보한 오성 전자는 오히려 KM 산업 쪽의 편을 들어주었다.

[LCD에 반드시 사용될 핵심 부품인 컬러 필터만 해도 자본이 많이 들어갑니다. KM 산업이 투자를 늘린 것이 오히려 중견 업체에 도움이 됩니다.]

이런저런 말은 계속 나왔다.

다행히 3공단 건립 관련한 축하 행사에서는 그나마 이런 혼란이 줄어들었다.

최용욱 회장은 원래 최문경 부회장을 보내야 할 자리에 자신이 나섰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재정 경제원 전화를 받았고 말이다.

그는 통화 중에 ‘최민혁 실장’의 이름이 거론되자 혀를 차고 말았다.

‘또 민혁이 이 녀석 일인가?’

딱히 놀라지 않았다.

이제 손자 최민혁의 일은 자기 손을 떠났다는 것을 알았다.

최용욱 회장은 다만 좀 당황했다. 손자 최민혁을 만나기 위해서 자신을 브로커로 쓰다니. 어이가 없어서 한편으로 웃고 말았다.

장승일 기획 조정실 실장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최민혁 실장님의 입지가 있으니, 이제는 익숙해져야 할 겁니다. 안건민 회장님도 최민혁 실장과의 연결 고리를 만들기 위해서 회장님에게 그렇게 연락하지 않습니까?”

“흠.”

최용욱 회장은 어깨에 힘을 가득 넣었다. 안건민 회장만이 아니었다. 최민혁 실장을 부담스러워하는 한국 10대 대기업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는 결국 최민혁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번 행사에 초대했다.

“저 많이 바쁩니다.”

“너 설마 이 할아비의 부탁을 거절하는 거냐? 따지고 보면 지금 네 위치에 올라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준 사람이 나야!”

“네.”

최민혁은 지금 자신에게 산적한 일 때문에 고민이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도 이환채 차관의 참석 소식에 피식 웃고 말았다.

* * *

제3공단 행사 장소는 딱히 특별한 곳이 없었다.

무려 40만 평의 넓은 부지 위에 공장만 쭉 늘어서 있을 뿐이다.

다만 행사를 빛내기 위한 이런저런 활동이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현대식 감각이 들어간 건물은 시선을 끌기는 했다.

아무래도 반도체에 대한 희망을 담은 것 같았다.

최민혁은 이 행사 자리에서도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놀라운 것은 오성 전자의 권태성 실장이 이 자리에 참석했다는 사실이다.

“호, 오랜만입니다.”

권태성 기획실장은 반가운 얼굴이 아니었다. 그는 최민혁 실장의 얼굴을 보자 골치가 아파서 진통제를 먹고 말았다.

“…흠, 제가 언짢은가 봅니다.”

“…아닙니다.”

“이번 KM 블룸버그 회사 설립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것 같고요.”

실제로 권태성 기획실장은 최근 KM 그룹의 행보에 대해서 좋게 평가했다. 이런 그의 행보는 특이한 경우였다.

오성 그룹 윗선에서 결정하지 않으면 생길 수 없는 일이었다.

“이번 3공단 대지 확보에 도움을 준 것은 잊지 않겠습니다.”

원래는 최용욱 회장이 해야 할 말이었다.

하지만 이제 KM 그룹 경영에 직접 간섭해야 할 최민혁 실장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한 말이다.

권태성 실장은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이곳 공단에 대규모 반도체 조립 공장을 추가로 건립할 예정입니다. 낸드 생산 설비입니다. 다 KM 전자에 제안한 오더 때문입니다.”

“그렇습니까?”

“우리 오성 전자만큼 최민혁 실장님이 원하는 반도체 부품을 공급할 곳은 전 세계를 통틀어서 몇 없습니다. 그건 일본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겠죠.”

최민혁은 순순히 권태성 기획실장의 주장을 인정했다. 그는 노골적인 권태성 기획실장 주장이 콜린스 사업부 매각 건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그래서 콜린스 사업부 일에 대해서는 아예 말하지 않았다.

‘아직 시간은 있으니까.’

하지만 오성 전자의 입장은 달랐다. 콜린스 사업부 매각 인수와 함께 늘어나는 매출 때문이다. 애가 탈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이환채 차관도 있고 말이다.

실제로 이환채 차관은 권태성 기획실장 때문에 눈치만 봤다. 그도 오성 전자에서 잘나가는 권태성 실장을 함부로 할 수는 없었다.

아니, 실상 최민혁 실장보다 더 조심해야 했다.

오성 그룹 장학생은 재정 경제원에 꽤 많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최민혁 실장이 기회를 만들어주자 냉큼 끼어들었다.

“최 실장님, 또 뵙습니다.”

“아, 재정 경제원 이환채 차관님이시군요. 정말 반갑습니다.”

시작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대화도 크게 문제는 없었다.

이환채 차관이 비록 욕심이 많다고 해도 무능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심지어 최민혁 실장을 면전에서 자극할 생각은 없었다.

성환수 보좌관 역시 입가에서 미소를 계속 보여 주었다.

최민혁은 당연히 두 사람을 믿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잠정 외환 투기범으로 결정한 두 사람을 상대로 웃을 수는 없었다.

그는 오히려 의아했다.

‘왜 날 만나려고 한 것일까?’

이환채 차관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최 실장님이 이제 조 단위의 자본을 굴리는 것을 압니다. 주식에도 많이 투자하는 것으로 압니다. 채권에도 관심을 가질 것 같은데, 혹시 외환 시장에 투자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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