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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환수 보좌관은 기겁했다. 그가 우려하는 바가 이것이었다. 그래서 최민혁 실장을 상대로 무리한 수를 두지 않았다.
“…아무래도 재검토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최민혁 실장이 보복 차원에서 벌인 거라면 이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겁니다.”
“…문제가 있다는 소리지? 하긴 최 실장, 이 인간이 연루된 일인데, 그냥 넘어갈 리가 없지. 알았어. 내가 책임질 테니, 가용한 모든 자원을 뽑아서 원점에서 재조사해 봐!”
“…알겠습니다.”
성환수 보좌관은 의외로 쾌재를 불렀다. 그 역시 이번 일은 찜찜한 구석이 너무 많았다. 단순히 최민혁 실장 때문이 아니었다.
고작 15억 달러에 외환 시장이 패닉에 빠졌다는 것이 문제였다.
‘설마 다른 문제라도 있는 걸까?’
하지만 그는 잠깐 재정 경제원 내부 분위기를 떠올리면서 한 가지 사실을 말해야 하나 망설였다. 재정 경제원 공무원 전체가 최민혁 실장에게 반감을 품은 건 아니었다.
아니, 실상 최민혁 실장을 옹호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다만 이들이 대놓고 최민혁 실장 편을 들지는 않았다.
‘에이, 그냥 입 다물자.’
* * *
최민혁 역시 재정 경제원 분위기를 살피면서 고민에 빠졌다.
그는 IMF 과정에는 일절 손을 대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래 왔는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겨났다.
15억 달러 남짓한 최용욱 회장 지분 대금이 국내, 중국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사이에 일어난 단기 외환 시장 혼란 상태 말이다.
그는 애초에 IMF에 관심이 없는 터라 한국 경제를 아예 쳐다보지 않았다.
그런데 외환 시장 혼란과 관련해서 재정 경제원이 움직이다 당황했다.
‘이게 다 뭐지? 설마 한국 외환 시장이 이렇게 취약했어?’
IMF 이전에는 이미 경제 불황에 대한 말이 많았다.
다만 그 상태를 구체적으로 아는 이는 없었다.
한국 정부가 그렇게 할 리가 없다.
심지어 헤지펀드 역시 그런 일을 벌여서 자금과 시간을 낭비할 생각이 없었다.
최민혁 실장은 덕분에 자신이 한 일이 영향을 줘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기는 하면서도 오히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조성돈 팀장이 그 재정 경제원 내부에서 도는 문건을 가져와서 내밀었다.
“…설마 재정 경제원에서 제가 이 일을 계획했다고 하지는 않겠죠?”
“그건 아닙니다. 이 보고서를 보시죠.”
조성돈 팀장이 내놓은 재정 경제원 보고서는 다름 아닌 멕시코 위기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경제 위기 전의 상태, 경제 위기가 진행되면서 일어난 일,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서 멕시코 경제 사안이었다.
멕시코 경제 위기는 결코 한국과도 무관한 일이 아니었다.
이 위기는 OECD 신규 가입과도 관련이 있었다.
살리나스 멕시코 대통령이 정치적인 입지를 위해서 무리하게 OECD 가입을 진행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OECD 가입 전에 별여놨던 멕시코 정부의 지나친 환율 안정 정책입니다. OECD 가입 후에 자본 시장이 개방되면서 쌓여 왔던 종기가 터져 버렸습니다.”
멕시코 정부는 OECD 가입 이전에 4년 동안 준비를 해왔다.
하지만 이런 활동 자체가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페소화의 평가 절하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진행한 자본 시장 개방이 무리수가 된 셈이다.
이 과정에서 일어난 정치적인 불안정은 더 상황을 어렵게 만들었다.
최민혁은 전생의 기억을 통해서 이 멕시코 사태가 한국의 IMF 흐름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잘 알았다. 다만 그가 아는 이환채 차관이라면 이 일을 제대로 들여다볼 리가 없었다.
“…신기하군요. 재정 경제원이 다시 멕시코 경제 위기 사태를 들여다보다니.”
“아무래도 최민혁 실장님을 신경을 쓰는 눈치입니다.”
“그건 더 이상해요. 제가 국익에 해가 될 일은 할 리가 있습니까?”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님은 반대 파벌에 대해서 뿌리까지 박멸해 왔습니다.”
“제 이미지가 그래요? 최문경 부회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행동인데, 그걸 모른다는 말입니까?!”
“…제삼자가 볼 때는 그런 구별이 안 됩니다. 한편으로 나쁘지는 않습니다. 사내 기강이 제대로 섰기 때문입니다.”
“쯧.”
최민혁은 혀를 차고 말았다. 그 역시 KM 전자 사내 분위기가 지나치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성돈 팀장은 최민혁 실장의 눈치를 봤다. 그 역시 재정 경제원 실무진들을 통해서 들은 바가 있긴 했다. 다만 들은 그대로 말을 해야 할지 망설였다.
하지만 그는 최민혁 실장의 성정을 잘 알았다.
“아무래도 이번 단기 외환 시장 혼란이 최민혁 실장님과 전혀 무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비슷한 사례를 찾다 보니, 멕시코 위기를 살펴보는 것 같습니다.”
“…설마 이걸 진지하게 살펴보는 겁니까?”
“네. 외환 시장에 대해서 다시 인원을 더 늘려 재검토하는 중입니다. 재정 경제원만이 아니라 정부 관련 부처에서도 인원을 늘렸습니다.”
“그건 추가 조사를 해보세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좀 있어서요.”
“…알겠습니다.”
* * *
조성돈 팀장 역시 최민혁 실장의 지시를 받아서 재정 경제원을 다시 들여다봤다. 그는 재정 경제원의 실무진들을 따로 만났다.
그 과정에 미국까지 최민혁 실장을 직접 찾아온 건 다름 아닌 조동석 과장이었다.
“아, 그 부분 말입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재정 경제원이 시작하기는 했지만, 정부 여러 부처에서 최민혁 실장, KM 전자, 벨린 투자를 다 들여다보는 중입니다.”
“사찰 목적인 겁니까?”
“단순히 사찰 목적만은 아닙니다. KM 전자, 벨린 투자의 성장 자체에서 배울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일반 대기업보다 월등하고, 정부 기관은 아예 비교조차 안 됩니다.”
“그건 놀랍군요.”
조동석 과장은 역시 이런 변화를 놀라워했다.
“정부 공무원 역시 일반 기업인과는 다르지 않습니다. 최민혁 실장님의 행보는 다른 대기업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모습입니다.”
더욱이 미국 재무부를 상대로 최민혁 실장이 보여준 행동은 한국 정부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다만 제일 윗선 권력자와는 달리 정부 각 부처 실무진들의 생각은 달랐다.
“이환채 차장은 좀 다른 것 같더군요.”
“…이환채 차장은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모든 공무원이 다 최민혁 실장님을 시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부 부처 역시 최민혁 실장에 대한 반응은 여러 가지로 달랐다.
반대파, 옹호파, 중도파로 크게 달렸다.
심지어 각 파벌 내에서도 또 다른 부류가 있었다.
국세청 내에 최민혁 실장 파벌이 특혜받는 것을 본 까닭이다.
이건 검찰청을 비롯한 사법부 역시 다르지 않았다.
“…….”
조성돈 팀장은 생각보다 복잡한 정부 조직 분위기에 혀를 찼다.
하지만 조동석 과장이 경고는 했다.
“너무 긍정적으로 봐서는 곤란합니다. 만약 최민혁 실장에 관한 조사 과정에서 문제가 발견되면 손을 쓰게 될 겁니다.”
물론 이걸 더 바라기는 했다. 다만 이미 국세청에서 한 번 삽질하다가 제대로 당한 터라 무리수를 두지는 않았다.
“…생각보다는 복잡하군요.”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도 최선을 다해서 돕겠습니다.”
“…네.”
* * *
최민혁 실장은 조성돈 팀장이 파악한 추가 정보에 피식 웃었다.
“무섭네요.”
“…하지만 최민혁 실장님을 상대로 보복하거나 하지 않을 겁니다. 추가 조사에서 이미 최민혁 실장님은 관련이 없다고 나왔습니다.”
“혹시 이번 케이블 TV 사업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겠지요?”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그보다 멕시코 사태에서 뭔가 느낀 것 같습니다. 아직 한국 외화 보유액은 3개월 수입대금을 웃돌아서 멕시코 경제와는 비교하기 힘들긴 합니다만.”
듣기만 하던 최민혁 실장이 피식 웃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네?”
그는 깜짝 놀란 조성돈 팀장의 얼굴을 보면서 고민에 빠졌다.
확실히 재정 경제원의 분위기는 자신이 아는 전생과는 많이 달랐다.
이유는 자신 때문이다.
재정 경제원은 혹시나 최민혁 실장이 보복할까 불안했다.
그는 잠깐 고민했다. 재정 경제원을 직접 돕기는 그렇고, 정보를 흘리는 식으로 더 줄 수는 있었다.
김우석 국제경제 심의관이나 조동석 과장과 같은 지지층을 밀어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원칙대로라면 이 기회를 이용해서 보복해도 시원치 않지. 필요하다면 IMF 사태를 더 악화시킬 대안을 만들어야 하고.’
그건 좀 너무 나간 것 같았다.
그는 결국 차선책으로 이번 일은 모른 척하기로 했다.
외부에서 일어난 일보다는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집중할 때였다.
“아, 혹시나 해서 하는 질문인데, CES 준비는 잘되어가죠?”
조성돈 팀장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는 순조로운 것으로 압니다. 다만 일정 문제가 좀 있는데…….”
“그 일정 부분을 한번 알아보세요. 필요하다면 그쪽 일을 더 보는 것이 나을 테니까. 재정 경제원 시선을 의식해서 하는 지시란 것 알아두시고요.”
“…알겠습니다.”
* * *
CES 전시회와는 달리 기조연설 장소는 원래는 힐튼 호텔의 컨벤션 센터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다만 스티븐이 마이클 블룸버그를 대신해서 기조 연설자로 나서면서 상황이 좀 달라졌다.
스티븐은 자신의 기조 연설에 대한 홍보 활동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미국 유명 언론사와 인터뷰하면서 기조연설 장소를 공개했다.
덕분에 스티븐의 기조연설에 대한 열기는 생각보다 뜨거웠다.
결국 기조연설장은 힐튼 호텔 컨벤션 센터가 아니라 힐튼 호텔 인근의 다른 장소로 바뀌었다.
스티븐은 상황이 이렇게 변하자 기조연설에 앞서서 준비를 철저히 했다.
그는 심지어 기조연설장을 찾아서 리허설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이건 단순히 기조연설 때문만은 아니었다.
기조연설 과정에서 행해지는 특수한 활동 때문이었다.
놀라운 것은 이 기조연설 무대를 맡은 이가 다름 아닌 제임스 감독이란 점이다. 그는 CF 광고에 이어서 이 기조연설 무대 감독도 맡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번 기조연설에 들어가는 여러 가지 특수 효과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기조연설은 영화가 아니었다.
따라서 특수 효과는 어느 정도 제약될 수밖에 없었다.
제임스 감독은 덕분에 그 누구보다 빨리 인공지능 미니 드론을 접할 수 있었다.
그는 이 드론을 보고는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가 이제까지 SF 영화를 만들면서 고안한 특수 효과가 현실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지수 박사에게 스토커처럼 달라붙어서 미니 드론 내부를 들여다봐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미니 드론은 그의 인지 범위를 아득히 벗어났기 때문이었다.
스티븐은 때문에 리허설 무대 작업을 진행하다 넋을 잃은 제임스 감독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근 오십 명의 스태프에게 지시를 하는 제임스 감독에게 슬쩍 다가갔다.
“무대 준비는 잘되어 갑니까?”
“…….”
제임스 감독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무대 스태프에게 지시하면서도 주변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심지어 송도연조차 노래 연습을 하다가 망부석이 된 제임스 감독의 모습에 고개를 흔들고 말았다.
스티븐은 물론 집요했다.
“감독님!”
“…이게 정말 현실일까?”
홀로 현실에서 도피한 제임스 감독은 아직도 머릿속에서 박혀 있는 미니 드론의 모습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이 영화 속에 빙의가 된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무대 스태프들은 그 모습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자기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현실과 영상을 결합하기 위한 작업은 쉽게 진행되지 않았다.
여러 가지를 다 고려해서 복합적으로 손을 봐야만 했다.
이 넓은 관람석에 앉는 이들을 철저하게 고려해야 했다.
심지어 이 기조연설을 촬영하는 카메라도 말이다.
그건 영화 제작 전문가에게도 꽤 도전적인 과제였다.
그들은 특히 인공지능 미니 드론과 송도연 사이에 존재하는 씬을 예측해야 했다.
단 한순간의 실수가 이질감을 보이게 할 테니까.
스티븐은 결국 소리를 내질렀다.
“제임스 감독님!!!”
제임스 감독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는 흥분한 스티븐을 보자 움찔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사전 촬영을 구상한다고 좀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