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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릭 모건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는 분노가 가득한 눈으로 마이클 블룸버그를 쳐다보았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가 아는 마이클 블룸버그는 외부 압력에 굴할 사람은 아니었다.
결국 지금 의사 결정은 스스로 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최민혁 실장의 어떤 점이 무서워서 이러는 것일까?’
사실 그로서는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더 황당한 것은 마이클 블룸버그가 입을 다문 채 자세한 사안을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 데릭 모건 이사는 분노한 감정을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의 태도에서 이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할 말이 많았지만, 번민에 빠진 마이클 블룸버그의 얼굴을 보자 더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이 일이 외부에 알려진다면 마이클 회장님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마이클 블룸버그는 움찔 몸을 떨었다. 그 역시 약속을 중간에 어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스로 약속을 깼으니, 좋을 리가 없었다.
“데릭 이사 당신이 우리 블룸버그와 최민혁 실장과의 갈등을 부추겼습니다. 그런 점은 스스로 인정하기 바랍니다.”
“흥, 말도 안 되는 소리, 결국 당신 욕망 때문에 한 일이 아닙니까? 당신이 제가 부추긴다고 거기에 따르는 사람입니까?!”
“그렇다고 당신이 한 일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만약 최민혁 실장과 대립 때문에 손실을 봤다면, 그건 당신 책임일 테니까!”
“하, 이런 식으로 사람을 나쁜 놈으로 몰아가다니!”
“뭐, 마음대로 생각해도 좋습니다. 전 이번 일에서 빠지겠습니다!”
데릭 모건 이사는 분노가 한계를 넘어서자 이제는 화도 나지 않았다. 그는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의 태도가 오히려 의아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겁니까? 이유라도 좀 압시다!”
마이클 블룸버그는 곧바로 인공지능 미니 드론을 떠올렸다. 그는 이미 실무진과 자문가를 통해서 그 안에 담긴 기술도 추론했다.
그 기술 하나하나는 당대 기술로는 만들 수가 없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음성 입력이다.
지금의 조악한 아날로그 설계 기술로는 노이즈가 더 많았다.
아니, 애초에 음성 인식 알고리즘 그 자체를 떠나서 기반 기술 자체가 불가능했다.
당연히 이런 질문 따위는 하지 않았다.
최민혁 실장이 말할 리가 없을 테니까.
그리고 그는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추론했다.
최민혁 실장이 이제까지 한 실적도 있지만, 미국 국방성에서 10년 넘게 개발한 기술이 융합되었다고 결론 내렸다.
다만 그 기술이 구체적으로 뭔지는 잘 몰랐다.
마이클 블룸버그 역시 이 안건을 이야기하고 싶어도 구체적인 기술은 잘 몰랐다. 그는 실제로 최민혁 실장 주변을 세밀하게 살폈다.
그렇다고 이런 내용을 말할 수는 없었다.
데릭 모건 이사가 스티븐을 이용해서 최민혁 실장과 대립하게 한 것도 따지고 보면 같은 연장선에 있을 테니까.
“데릭 모건 이사 본인 스스로 잘 알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았다면 스티븐을 이용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테니까!”
데릭 모건 이사는 계속 뱅뱅 도는 이야기에 질려서 소리쳤다.
“마이클 회장, 이번 일은 반드시 후회하실 겁니다!!!”
그렇게 소리치고 떠난 데릭 모건 이사.
“…….”
마이클 블룸버그는 차마 ‘당신이 그릇된 선택한 것을 후회할 거야’란 말까지 하지는 못했다. 그는 최민혁 실장에 관한 자료에 다시 집중했다.
그는 데릭 모건 이사의 행동에서 반최민혁 이사 파벌을 떠올릴 수 있었다. 샐로먼 브러더스가 수작을 부리면 생기는 이들 말이다.
‘한국 정부 공무원도 KM 그룹에 대해서 부정적이던데, 데릭 모건 이사의 짓일까? 아니, 반드시 그렇다고 봐야겠어.’
다만 이 부분까지 굳이 나서서 최민혁 실장을 도와줄 생각은 없었다.
‘대신 정보를 흘린다면, 그건 나쁘지 않을 것 같아.’
* * *
최민혁 실장은 국내에 다시 잠시 머물면서 자신의 주변 사안을 차분히 살폈다. 굳이 지금까지 무리하게 진행한 인공지능 드론에 대한 개발에 집착하지는 않았다.
이미 가장 문제가 될 기술은 다 확보했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특히 조직, 인력, 자금과 같은 부분은 아무리 일정을 당겨도 시간이 필요했다.
CES 전시회의 스티븐 강연 역시 자신이 할 일은 다 했다.
‘아, 그 드론 개발 수정 마무리가 남아 있구나.’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지수 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지수 박사는 마침 전화를 받았다.
[하, 이거 생각보다 쉽지가 않아요.]
[문제가 생긴 겁니까?]
[아뇨, 그보다는 하드웨어에 오류가 자주 생겨서 그거 잡는다고 이틀 고생했어요.]
[하드웨어 오류가 뭐죠?]
[선 연결이 잘못되었어요. D5, D6 사이에 날린 점퍼 선이 겹쳐서 오류가 났더라고요. 아, 납땜 말이에요.]
[납땜이라면, 인두기 가지고 서로 연결하는 거 말인가요? 설마 박사님이 그런 일까지 합니까?]
[어머, 당연한 말씀을 하시네요. 그게 작은 일 같아도 남녀를 구분할 수 없는 일이에요.]
투덜거리는 이지수 박사는 자신이 하는 자잘한 일에 대한 푸념을 털어놓았다. 내용은 생각보다는 소소한 일이었다.
가전 전파사 사장이 늘 하는 일이었다.
이지수 박사의 입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 것이었다.
최민혁은 크게 당황했다.
[…그 일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하, 최 실장님은 잘 모르시는구나. 메이런 프로젝트 할 때 가장 어려운 것이 이런 일이었어요. 협력업체에 요청해도 늘 문제는 생기니까요.]
문제가 생겨도 생각보다 어마 무시하게 일어난다.
협력업체는 보안 때문에 정해진 영역의 기술만 알기 때문이다.
이지수 박사가 이들 업체와 국방부의 탄압을 다 감수해야 했다.
사실 메이런 프로젝트가 늘어진 것도 이런 이유였다.
그리고 지금 미니 드론 애니의 프로젝트가 빨라진 이유이기도 했다.
최민혁 실장이 외부 간섭을 다 막아주기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일정 안에 다 끝낼 수 있습니까?]
[어렵죠. 그래도 해봐야죠.]
[…고맙습니다.]
[천만에요 제가 더 고맙죠. 최 실장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번 일은 할 수가 없었어요.]
최민혁 실장은 이지수 박사와의 통화를 통해서 자신이 이제 해야 할 일은 인내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더 이상의 방해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닌가?’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성돈 팀장을 호출해 봤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문제가 생겨났다.
“블룸버그 측에서 데릭 모건 이사가 직접 찾아와서 압박을 넣었다고요?”
“네. 아직 우리와 마이클 블룸버그 사이의 계약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KM 블룸버그 합작 회사 설립은 이미 서류상으로 다 끝났다.
블룸버그는 한국 지국 설립과 동시에 KM 그룹에 직원 파견을 요청했고 말이다.
장승일 실장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흩어진 케이블 관련 직원을 KM 블룸버그 쪽으로 다 이동시켰다.
이 과정에서 KM 그룹이 원래 가지고 있는 케이블 자산을 이용해서 이미 선행 테스트까지 끝냈다.
이제는 당장 케이블 방송을 해도 무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최민혁은 조성돈 팀장이 내놓은 케이블 관련 진행 보고서 내용을 살피면서 혀를 내둘렀다. 그는 왜 데릭 모건 이사가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을 직접 찾아갔는지 알 것 같았다.
“정부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없나요? 재정 경제원이 반드시 움직일 것 같은데?”
“그게, 이상할 정도로 조용합니다.”
“거기 이환채 차관이 있잖아요. 그 양반은 손을 써도 썼을 것 같아서요.”
“이환채 차관의 동선을 살펴보고는 있는데, 이상할 정도로 침묵 중입니다. 재정 경제원 내에 저희 측 인사를 통해서 몇 차례 확인한 사안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는 잠깐 고민했다. 어지간해서는 재정 경제원 쪽에 손을 대기 싫었다. 그 자신의 성격상 자신에게 반하는 인물을 알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았다.
조성돈 팀장이 최민혁 실장의 눈치를 봤다.
“…재정 경제원에 손을 대실 생각입니까?”
“아뇨.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그럴 능력도 안 됩니다.”
하지만 조성돈 팀장의 생각은 좀 달랐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과거 국세청을 상대로 한 일을 떠올렸다. 자기에게 반하는 인물을 잔혹하게 도려내고, 자기 인물을 박아 넣은 일 말이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이번 일도 있고 하니, 한번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흠, 그 정도라면 좋겠습니다. 저도 어지간해서는 정부와 척을 지고 싶지 않으니까. 아, 이제 일을 더 벌여놓고 싶지 않습니다.”
“…네.”
조성돈 팀장은 잠깐 최민혁 실장의 눈치를 보다가 사무실을 나가 버리고 말았다.
‘쉽게 끝날 것 같지가 않은데…….’
* * *
조성돈 팀장의 걱정과는 달리 재정 경제원의 상황은 좋지가 않았다.
최민혁 때문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최민혁 실장이 최용욱 회장의 KD 통신, KD LCD 지분을 매각한 것 때문이었다.
자금이 국내가 아니라 외국에서 흘러들어왔다.
대략 15억 달러가 넘는 돈이었다.
1조 가까운 달러가 단기에 국내에 유입되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다시 국내의 1조 가까운 자금이 중국 쪽으로 빠져나갔다.
KD 통신 추가 투자 때문이었다.
달러 자금 15억 달러가 단기에 들락날락하면서 한국 외환 시장이 크게 출렁였다.
이 과정에서 환율 불안정이 드러났다.
안 그래도 무역 수지 적자가 심한 상황에서 임계점을 돌파한 것이었다.
재정 경제원은 관련 정부 기관을 총동원해야 했다.
이게 우성 건설 부도 사태로 말미암은 충격파와 시너지가 되면서 한국 경제를 외부, 내부에서 동시에 공격한 것이었다.
한국 경제 규모를 생각하면 정말 별것 아닌 일이었다.
그런데 타이밍이 정말 아슬아슬했다.
최민혁 실장이 딱 그 타이밍 시점을 노려서 의도적으로 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재정 경제원은 상황이 좀 달랐다. 그들은 안 그래도 최민혁 실장을 준사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사태의 흐름을 파악했다.
이환채 차관은 뒤늦게 이 사안에 대한 최종 보고서를 보고받았다.
“가만, 최민혁 실장 이 새끼 짓이었어?!”
“…….”
성환수 보좌관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슬쩍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길길이 날뛰는 이환채 차관에게 괜히 불통을 맞을까 싶었다.
그는 사실 나름 합리적인 인물이기는 하지만 꼰대 기질이 다분했다.
평소에는 뛰어난 능력을 보이다가 감정이 욱하면, 저렇게 지랄 발광을 한다.
다행이라면 이환채 차관은 기본적으로 무능한 인물이 아니었다.
“성 보좌관, 최민혁 실장 이 새끼가 의도적으로 우릴 엿 먹이려는 거 아니야?!”
“그건 아닙니다. 연초부터 경제 안정화 문제가 터졌습니다. 우성 건설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이미 우성 건설 문제는 잘 해결되었다고 했잖아?”
“당시에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기업들이 자금 조달하는 상황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일부 중소기업은 지원을 해줬지만 그러지 못한 기업이 더 많습니다.”
우성 건설 관련 하청업체와 지방 건설사가 그 대상이었다.
이 과정에서 통화 여건 역시 빡빡한 상태인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이 터져 버린 것이었다.
한은이 통화 수위 조절을 해서 문제를 사전에 막기는 했다.
그런데 무려 15억 달러 단기 자금이 국내에 다급하게 들어왔다가 나간 것이 문제였다.
“…가만, 이건 더 이상하잖아. 우리 경제가 고작 15억 달러 자금에 외환, 통화 시장이 휘청였다고?”
“…그게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다급하게 진단을 해봤습니다. 결과는 그 보고서에 나와 있는 대로입니다.”
보고서 내용은 그다지 좋지가 않았다.
단기 달러 자금 때문에 일시에 일어났다고 해도 국내 외환 시장에 관한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이환채 차관도 평소 같았다면 이 정보 보고서를 그냥 뭉개 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때마침 최민혁 실장과의 일이 벌어진 상태였다.
시기가 너무 공교로웠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최민혁 실장이 작정하고 이 사태를 만든 건 아닐까?”
“그게…….”
성환수 보좌관은 멈칫했다. 그 역시 원래라면 이번 일을 무시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상대가 최민혁 실장이란 게 문제였다.
덕분이 그는 평소와는 달리 이번 일에 가용한 자원을 다 때려 부었다.
크게 반발하던 다른 부서장조차 화들짝 놀라서 굉장히 당황하고 말았다.
이환채 차관은 목소리를 낮추었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 괜히 나중에 문제를 더 크게 비화시켜서 날 검찰에 보내지 말고, 그렇게 되면 자네 역시 무사하지 못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