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878화 (878/1,021)

#878.

그는 결국 자기 사무실에 들어가면서 조성돈 팀장에게 보고 지시를 내렸다.

"콜린스 사업부 매각과 관련한 내용을 짧게 정리해서 올리세요."

"……알겠습니다."

***

KM 전자의 오디오 사업부를 책임진 문형섭 부사장도 최민혁이 미국으로 가기 전만 해도 크게 부담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도 KM 센서가 설립된 후에 빠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자 머릿속이 복잡했다.

더욱이 KM 센서는 KM 그룹 계열사의 하나로 남았다.

다만 지분 태반은 최민혁 실장과 KM 그룹이 나누어 가졌고 말이다.

원래라면 KM 전자 밑으로 KM 센서가 있어야 하지 않나 싶었다.

아무래도 KM 전자 자체가 상장 회사인 터라 그러지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최민혁 실장은 그 이후로 이런저런 많은 실적을 남겼다.

최근에 와서는 AC9701 칩이라는 독특한 물건도 고안했고 말이다.

그는 벌써 소식을 듣고 고심에 빠진 오영근 사장 눈치를 봤다.

"사장님, 괜찮습니까?"

오영근 사장은 푸념했다.

"딱히 내가 이제 와서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잖은가."

"아니, 콜린스 사업부 매각 말입니다. 이제는 진짜로 진행될 일 같아서요."

"…그건 이미 최민혁 실장이 꾸준하게 제기했던 거야. 지금은 다른 소리 하기도 힘들어."

오영근 사장답지 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역시 최근 최민혁 실장의 미묘한 행동 변화를 느꼈다. 오해일 수도 있었다.

다만 그렇게 보기에는 힘들었다.

정부가 오성 건설 부도 이후에 일어난 금융시장 충격을 수습한 것 같았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통화 공급 확대와 같은 미봉책을 썼다는 점이다.

한은은 부랴부랴 통화 수위를 낮추는 임시 대책을 다시 진행했다.

연초라서 은행 역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연초 통화 관리에 대해 우려한 이들은 많았다.

그리고 그들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안정세에 놓인 금리가 상승세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KM 전자는 당연히 이런 흐름과는 좀 무관했다.

문제는 회사채 발행을 하는 업체들이다.

KM 전자 임직원 역시 채권 시장 수급이 나쁘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들은 정부의 장밋빛 청사진을 믿지 않았다.

다른 회사와는 달리 KM 전자는 늘 긴급 대기 상태였으니까.

문형섭 부사장 역시 안색이 좋지 않았다.

"최 실장에게 가서 한번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어떨까요?"

"…그러지."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감히 최민혁 실장을 호출하지 못했다. 서로 눈치를 보면서 쓰게 웃고 말았다.

최근 최민혁 실장의 영향력이 증대되면서 자연스럽게 일어난 일이었다.

***

"어? 오 사장님, 아니, 문 부사장님, 어쩐 일입니까?"

문형섭 부사장이 최민혁 실장의 눈치를 보면서 툴툴거렸다.

"회사에서 잘리지 않으려면, 오너에게 잘 보여야 하지 않겠나?"

"별소리를 다 하십니다."

최민혁은 안 그래도 KM 전자 분위기가 바뀐 것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아, 미국 관련 보고는 오늘 오후에 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자리에 앉으면서 막 마실 것을 내온 오혜정 비서를 쳐다보았다.

오혜정 비서의 안색이 좋지는 않았다. 갑툭튀로 튀어나온 이지수 박사때문이다. 물론 그녀를 안 것은 뉴스를 통해서다.

문형섭 부사장은 혀를 찼다. 그는 새삼 놀란 눈으로 최민혁 실장을 쳐다보았다. 확실히 최민혁 실장은 미국으로 가기 전과 비교해서 차이가 컸다.

품격 자체가 달랐다.

"사실 지금 금리 인상과 같은 정부 정책을 이야기해 봐야 먹히지 않을 것 같아. 다만 우성 부도 이후에 금융권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어. 다른 회사와는 달리 우리 임직원은 그런 점에 민감해. 거기에 콜린스 사업부 매각문제도 있으니."

정확히는 문형섭 부사장 자신 역시 어떻게 될지 몰랐다. 그 역시 KM 전자 오디오 사업부에 평생을 다 바쳐왔지만 지금 변화는 이전과는 달랐다.

AC9701은 단순히 최병연 소장 선에서 끝나지 않았다.

오디오 사업부에도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문형섭 부사장은 AC9701 과 관련된 몇 가지 프로젝트를 설명했다.

"…솔직히 이젠 나도 따라가기 힘들어."

최민혁 실장은 화들짝 놀랐다. 그는 문형섭 부사장 같은 인물이 많이 필요했다. 솔직히 다른 것을 다 떠나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그를 놓칠 수는 없었다.

"하하하, 왜 자꾸 절 불안하게 하십니까. 콜린스 사업부 구조조정이라고 해봐야 딱 이 사업에 국한된 것입니다."

"글쎄, 내 생각은 좀 달라."

오디오 사업부의 신규 프로젝트는 디지털 시스템과 아날로그 시스템을 합친 것이었다. 그 덕분에 기존에는 하지 못했던 성능을 보여줄 수 있다.

이 기반을 만든 사람은 최병연 소장 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 배후에는 최민혁 실장이 있었다.

최민혁 실장은 프로젝트 내역을 확인 하면서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 역시 KM 전자가 최병연 소장 덕분에 밑바닥부터 하나씩 쌓여간다는 것을 느꼈다. 다만 그게 이런 변화를 이끌어낼지는 몰랐다.

그는 잠깐 고민했다.

오영근 사장 역시 썩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콜린스 사업부 매각설이 두 사람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친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지.'

고민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두 사람에게 줄 당근을 떠올렸다.

"참, KM 센서에 취임한 박재현 사장이 횡령으로 물러난 것은 들었습니까?"

큰일은 아니었다.

최문경 부회장이 KM 센서 지분을 얻지 못하자 최용욱 회장을 압박해서 구조조정 과정에서 그만둔 자신의 최측근 중의 한 명인 박재현 사장을 KM 센서에 임명한 것이었다.

최영란 본부장은 크게 반대하기는 했지만, 최용욱 회장의 결정을 막지는 못했다.

최용욱 회장 역시 최민혁 실장의 일방적인 제안을 들어준 이상 최문경 부회장의 건의를 무시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더욱이 KM 산업의 눈부신 매출 실적도 한몫했다.

하지만 박재현 사장 천하는 불과 일주일을 채 넘기지 못했다.

그를 싫어하는 임직원 한 사람이 내부 고발을 해버린 것이었다.

결국 박재현 사장은 서울 중앙 지검의 수사 대상에 올랐고 말이다.

최민혁은 이 사안을 박두영 부장검사를 통해서 사전에 정보를 얻었다. 그는 당연히 이 일에 간섭하지 않았다.

오영근 사장조차 흠칫 놀랐다. 최민혁 실장이 갑자기 그 일에 대해 말하는 이유를 몰랐다.

"혹시 KM 센서 사장 자리에 관심이 있습니까?"

"글쎄……."

오영근 사장은 크게 당황했다. 얼핏봐서는 KM 전자 사장이 우위에 있는 것 같아도 실속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많이 달랐다.

이미 KM 센서는 미국 연방 정부와 계약을 끝낸 상황이다.

여기에 더 나아가서 바이어가 미친듯이 KM 센서를 괴롭혔다.

KM 센서는 지금 당장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다르게 보면 외형적으로 볼 때 매출만 놓고 보면, KM 센서는 KM 전자를 금방 따라잡을 회사였다.

가장 큰 것은 역시 수출 기업이다.

내수 시장에 집착하는 KM 전자와는 격이 좀 달랐다.

최민혁 실장은 솔직하게 한 가지 사실을 토로했다.

"이왕이면 KM 그룹 내에서 우리 할아버지를 교통 정리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최문경 부회장을 견제하면서 말이죠."

"아."

오영근 사장이 최민혁 실장 말의 의미를 모를 수가 없었다.

최용욱 회장은 정이 많은 사람이다.

가족의 사탕발림에도 쉽게 넘어갈 타입이었다. 실제로도 그러했고 말이다.

최민혁은 그제야 문형섭 부사장을 쳐다보았다.

"문 부사장님도 이제 사장 한번 해보셔야죠. 어떻습니까?"

"어, 그, 그게……."

문형섭 부사장은 크게 당황했다. 그는 딱히 사장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영근 사장 역시 아직 갈피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최민혁의 생각은 좀 달랐다.

"두 분이 좀 더 그룹 일에 간섭하기를 바랍니다. 콜린스 사업부 매각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도 잘 정리 좀 해주시고요. 경영진은 딱히 두분 설득에 반발하지는 않을 겁니다."

"……."

둘 다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들은 최민혁 실장의 의도를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의 진지한 눈빛을 보자 감탄하고 말았다.

최민혁 실장이 정말 두 사람을 믿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으니 말이다.

오영근 사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솔직히 난 나이가 있어서……."

최민혁 실장이 손을 들어서 오영근사장 입을 막았다.

"저에게는 믿을 만한 사람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리고 저도 제 성격을 잘 압니다. 콜린스 사업부 매각과 관련해서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것도 그 연장선입니다. 그 일을 중간에서 중재해 줄 분이 필요합니다. 저를 좀 더 도와주시지 않겠습니까?"

"…알겠네."

두 사람은 잠깐 망설였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의 진정성을 느끼자 결국 수긍하고 말았다.

오영근 사장은 KM 센서의 매출 현황을 떠올리면서 혀를 찼다. 그는 과연 자신이 KM 센서 일을 잘할 수 있을지 머리가 아팠다.

문형섭 부사장은 그 나름 KM 전자 내부 변화를 떠올리면서 머리를 내젓고 말았다. 콜린스 사업부 매각과 KM 전자 내 신사업 아이템의 부정적인면을 떠올렸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 이것 참.'

***

오영근 사장과 문형섭 부사장은 승진을 약속받자 사내 핵심 인사를 만나면서 가볍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저 흔한 작은 회식 자리였지만 그 결과는 의외로 큰 영향을 미쳤다.

KM 전자 내에 경직된 분위기가 빠르게 완화된 것이었다.

최민혁 자신은 결코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다만 살얼음 같은 KM 전자 사내 분위기가 완 벽하게 해결이 된 것은 아니었다.

오성 그룹에 콜린스 사업부가 매각되면, 오성 그룹으로 옮길 이들은 기존인원의 대 략 66% 가까이 될 예정이다. 이들은 업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오성 전자로 갈아타기로 한 것이다.

36% 임직원은 자기 직무를 바꾸는 한이 있어도 KM 전자에 남는 선택을 할 예정이었다.

이들에게는 MP3 사업부나 아니면 다른 보직으로 이동할 수 있는 선택의 기회가 주어졌고 말이다.

분위기가 이렇게 바뀐 것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었다.

정부가 수습했다고 생각한 우성 건설사태가 더 나빠졌기 때문이다.

우성 건설이 파산할 때는 정부가 나서서 자금 경색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이 또 달라졌다.

우성 건설 부도로 묶인 자금 7천억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우성 건설이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면서 생긴 경영난이 꼭 우성 건설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었다.

당장 재계 랭킹 27위인 우성 그룹의 다른 계열사 몇 곳이 흔들렸다.

우성 타이어, 우성관광, 우성산업개발, 우성 공영이 그 대상이었다.

문제는 이들 계열사만이 아니었다.

우성 그룹처럼 경기 활황기를 타고 무리하게 확장한 중견 그룹 역시 이상이 생겨났다.

바로 연쇄 도산이었다.

KM 그룹은 딱 이 우성 그룹과 비슷한 규모였다.

그 탓에 KM 전자뿐만 아니라 KM 그룹 임직원들도 다들 불안한 것이었다.

특히 KM 전자는 시중에 나도는 X 리포트와도 관련이 있었다.

KM 전자 임직원들은 다른 회사와는 달리 X 리포트를 유심히 살폈고 말이다.

이런 시기에 획기적인 또 다른 아이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 데다가 오성그룹에 콜린스 사업부 매각 이야기까지 수면 위로 올랐으니 말이다.

그제야 KM 전자 임직원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오해한 것이었다.

조성돈 팀장은 바로 이 점을 걸고넘어졌다.

"지금 우리가 진행할 것이라고 소문이 도는 콜린스 사업부 매각은 이런 위기 때문에 고육지책으로 진행하는 일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설마 우리 회사가 앞으로 어려워진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아, 그런 뜻이 아닙니다. KM 그룹구조조정에서 볼 수 있듯이 돈이 안되는 사업을 정리하는 거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콜린스 사업부가 이번 정리 대상이다.

그렇다면 오디오 사업부 역시 그 대상이 안 된다고 하기 힘들었다.

"…최 실장님은 아무래도 돈이 안 되는 사업은 다 정리한다고 선입견을 품고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그 참."

최민혁은 그제야 서광수 과장의 일을 떠올리고는 혀를 찼다.

그는 자신이 블룸버그와 케이블 TV 합작 법인을 설립하면서 결정한 일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이것도 문제라면 문제였다.

'난감하군.'

하지만 콜린스 사업부 매각은 단기간에 진행할 일은 아니었다.

규모도 규모지만 한 가지 다른 문제가 있었다.

바로 콜린스 사업부 매각 이후에 KM 전자의 다음 먹거리였다.

그 자신이야 드론 산업을 생각하고는 있지만, 회사 임직원들은 아직 아무것도 몰랐다.

자신 역시 드론 사업과 관련해서 어떤 제품을 팔지 정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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