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4.
그런데 최민혁 역시 놀라기는 매한가지다. 검은 단색으로 만들어진 이애니 드론은 시제품과는 일단 외양부터 달랐다.
기존 시제품 모델이 넝마와 같았다면이 애니 드론은 최소한 마감 자체는 훌륭했다.
이 애니 드론 자체가 홍보용이라는 것이 알려진 후에 손을 쓴 것이었다.
'이지수 박사가 신경을 많이 썼구나.'
최민혁은 애니 드론의 외관과 구조가 조금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흥미로운 것은 애니 드론이었다. 그녀는 최민혁 실장을 바로 알아보았다.
그러고선 최민혁 실장의 불과 30㎝ 앞으로 날아왔다.
일단 목소리부터가 달랐다.
[아, 최민혁 실장님, 오랜만입니다.]
최민혁은 사람 목소리와 유사한 애니의 어조에 화들짝 놀랐다.
[그래, 애, 애니도 잘 지냈지?]
[저는 저기 박스 안에 갇혀서 착취를 당했습니다. 이건 드론 권리 침해입니다. 바로 미국 연방 정부에 고소하겠습니다!]
[…프로그램 수정 때문에 그랬을 거야. 이지수 박사도 사정이 있잖아. 안 그래도 할 일은 많은데, 일정에 쫓기니까.]
[아뇨. 절대로 안 그래요. 이 박사님도 요즘은 사람이 바뀌었어요. KMBO OK 경영자가 되고 나서는 연구원 시절을 잊은 것 같아요. 제 기능 제약만 잔뜩 하는데, 숨이 막혀서 죽겠어요.']
[…….]
최민혁은 기능 제약이라는 말에 이지수 박사가 다운그레이드 형태로 작업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애니 드론은 그것을 스스로 느꼈고 말이다.
'정확히는 기능 부분을 따로 관리한 건가? 그걸 애니 스스로 알았고, 아, 아니구나. 자기 스스로 자기 지능에 제약을 걸어야 할 테니, 그런 부분은 스스로 느껴서 반응하는 건가?'
정확히는 애니 인공지능 설계 자체가 가진 자율성 때문이다.
애니 인공지능은 풍부한 확장성을 가지도록 설계되었다.
그걸 이제 와서 제약을 걸어버리니, 애니 인공지능이 반발한 것이었다.
정확히는 반발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이지수 박사는 그런 애니의 반응을 즐겼고 말이다.
최민혁은 전생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미래에도 이 정도 인공지능은 없었다. 새삼 이지수 박사의 저력을 깨달았다.
애니 드론은 또한 이전 타입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소통이 생각보다는 자연스러웠다.
그만큼 애니의 지능이 발전했다는 의미였다.
'메이런 프로젝트의 성과를 흡수했기 때문일까? 하긴, 무려 10년이 넘는 연구 성과를 완벽히 흡수했다면 그럴 수도 있겠어.'
최민혁은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말은 어디서 들은 거야?]
[인터넷에서요!]
정확히는 KMBOOK 본사에 있는 슈퍼컴퓨터 서버가 확보한 데이터베이스를 통해서 얻은 것이었다.
각 애니는 자신의 제약과 성능에 따라서 그 정보를 취합하고 말이다.
최민혁도 애니 드론의 반응에 황당해서 멍하니 쳐다보았다.
애니 드론을 이런 최민혁 실장의 주변을 돌면서 막내딸처럼 깔깔 웃었다.
최민혁은 그제야 시간이 지날수록 애니 드론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일단 외형적으로 애니 드론은 크게 움직이지 않았다.
사고 역시 딱 정해진 영역에서만 맴돌았다.
들쭉날쭉한 행동 패턴 역시 다 사라졌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서 파워 소모 자체를 줄이면서 지능 일부에만 집중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로직의 일부 칩만 동작시키는 방식을 그대로 적용했어.'
한편으로 신기했다.
지능 로직을 어떻게 이런 식으로 좁혀서 다루는지 말이다.
이건 이지수 박사가 인공지능 로직코드 전체를 다 이해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수백만 줄이 넘는 코드를 전부 다 이해한다라.
최민혁으로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진짜 대단하구나.'
다만 애니 드론의 정체성을 잘 모르는 마이클 블룸버그는 입을 딱 벌린 채 애니 드론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드론 동선을 따라서 그의 시선이 돌아갔다.
애니 드론은 그의 주변을 요정처럼 날아다녔다.
귀여운 막냇동생이 신기한 물건이라도 본 것인 양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애니 드론의 정면에 달린 미니 LCD를 통한 감정 표현 역시 바로 나타났다.
다만 초기 버전인 배터리 조루 시스템과는 많이 달랐다.
특히 마이클 블룸버그는 인공지능니 드론에 대한 소문을 들었지만 그걸 믿지 않았다. 과장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지금 기술로는 불가능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니 드론은 직접 그 불가능하다는 장벽을 넘어선 모습을 보여주었다.
"……!!!"
조성돈 팀장 역시 은근히 기대하기는 했지만, 애니 드론 기술이 정말 벽을 넘었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깨달았다.
대표적인 문제가 바로 취약한 배터리 사용 시간이었다.
애니 드론은 놀랍게도 10분을 넘겨서, 20분이 지나도 생생하게 잘 돌아다녔다.
다만 날아다닐 때는 CPU 동작이 저 전력 모드로 바뀌었다. 이때는 오직 날아다니는 동작에만 파워를 소모하는 것이었다.
필요에 따라서 CPU, 모션을 알아서 자체적으로 제어한 것이었다.
단순한 프로그램은 이럴 수가 있다.
그런데 인공지능의 기능이 이렇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카타르시스는 또 있었다.
플라스틱 물컵.
애니 드론은 우측 안쪽에 달린 로봇 팔을 내밀어서 물컵을 잡았다.
그녀는 반쯤 물이 든 컵을 들고는 하니 최민혁에게 날아가서 내밀었다.
"최 실장님, 입이 바싹 마른 것 같아요. 물드세요."
"…고, 고마워."
최민혁 실장은 컵을 받아 물을 마시면서도 멍하니 애니 드론의 로봇 팔을 쳐다보았다. 그는 이지수 박사에게 메이런 업체에 공급한 부품을 테스트한다는 것을 듣기는 했다.
그중에는 인공 관절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대충 한 귀로 넘겼다.
그가 아는 전생에서도 로봇 팔은 용하기가 어려운 기술이었다.
그런데 그 기술이 놀랍게도 이미 구현되어 있었다.
'맙소사!'
뒤늦게야 메이런 프로젝트가 꽤 큰 프로젝트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지수 박사가 메이런 프로젝트에 집착한 이유도 말이다.
"……."
마이클 블룸버그는 이전과는 달리 그저 침묵한 채 멍하니 애니 드론이 날아다니는 모습에만 빠져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역시 이지수 박사, 최민혁 실장의 미니 드론에 대해서 전혀 모르지 않았다. 다만 허황한 내용이 너무 많아서 무시했을 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실물을 이렇게 직접 봤다.
지금 자신 앞에 놓인 애니 드론은 당장 팔아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가 특히 주목한 것은 바로 로봇팔이었다.
'이건 도대체가…….'
***
마이클 블룸버그가 애니 드론을 마주한 후에 받은 충격은 최민혁 실장이 받은 것과는 비교하기 힘들었다. 그는 최민혁 실장보다 오히려 기술 성향에 대해서 잘 알기 때문이다.
그는 로봇 팔이 나와서 물컵을 내민후에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을 봤다.
로봇 팔을 이용한 물체 집기와 분리만 해도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결국 최민혁 실장과 협의를 끝내기가 무섭게 블룸버그 내에 필수 인물을 당장 한국으로 호출해서 회의를 열었다.
애니 드론 동작을 찍은 동영상을 같이 살핀 편집장인 매트 윙어는 잘 이해가 되지 않은 얼굴로 오른손을 위로 올려서 손가락,손목, 팔목을 움직였다. 애니 드론이 동작하는 것처럼 똑같이 말이다.
"이런 동작에는 복잡한 수치 해석이 들어갑니다. 전용 칩이 따로 있어야 합니다. 거기다 강력한 CPU가 있어야 합니다."
마이클 블룸버그 역시 동영상을 살피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계속해 봐."
"관절 자세와 모터 각도가 역학 해석을 통해서 진행됩니다. 이걸 진행하기 위해서는 꽤 강력한 CPU가 필요하거나 전용 CPU가 필요합니다."
"작은 모바일 CPU를 쓰면 안 되나?"
"그것으로는 무리입니다. 이건 벡터해석이 들어갑니다. 일반적인 수치 연산과는 다릅니다."
수치 해석도 수치 해석 나름이었다.
드론과 로봇 팔은 또 다른 영역이었다.
매트 윙어는 다행히 인공지능, 로봇 팔에 대한 식견도 있었다.
"아마 외주를 줬을 겁니다. 로봇 팔을 연구하는 연구소는 많으니까. 실상이 외형을 만드는 것 자체는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걸 제어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특히 3D형태라서 따로 전용 칩이 필요합니다. 그걸 어떻게 처리했는지 알 수가 없군요."
아니, 전용 CPU가 있다고 해도 실시간으로 제어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힘 센서를 제어하는 것은 단순히 해석만이 아니라 처리를 위한 기능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애니는 이걸 아주 쉽게 했다.
기존 방식과는 달리 인공지능의 인식 기능과 딥러닝 기술을 같이 사용했기 때문이다.
핵심적인 동작 패턴을 정해놓고, 거기에 변화를 주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인간 관절처럼 자유롭게 움직일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보는 사람은 그 간격을 느끼지 못했다.
저 정도만으로도 이미 믿기 어려운 기술 수준이었다.
매트 윙어는 공황에 빠져서 마이클 블룸버그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팔목을 계속 움직이면서 독백했다.
"마, 말도 안 돼. 이게 가능하다는 말인가? ARN에서 인수한 고성능 CPU로는 힘들어. 펜티엄을 돌리면 또 모를까."
그런데 미니 드론의 덩치를 봐서는 펜티엄은 아예 불가능했다.
마이클 블룸버그는 회의실에 급하게 모인 이들을 상대로 의견을 요청했다.
하나같이 다들 입을 딱 벌린 채 아직도 충격에서 제대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 역시 이곳에 모인 이들을 통해서 인공지능 미니 드론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는 했다. 심지어 그 내부 구조가 대충 어때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다만 그게 이런 식으로 가능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마이클 블룸버그는 아직도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이들을 무시했다. 그는 그나마 충격에서 빠져나온 그렉 파넬이사를 쳐다보았다.
"그렉, 어때?"
"…솔직히 아직도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사기를 당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습니다. 하지만 저건 분명 그 동작을……."
"저 기술을 고안한 이지수 박사의 인공지능 기술은 아는 사람들이 꽤 많아. 벌써 10년 전부터 말이 나온 기술이었으니까."
"네? 그렇다면 이미 10년 전부터 이 지수 박사가 연구했다는 말입니까?"
"자네도 이제 알 텐데? 미국 국방성이 이 프로젝트를 주도했으니까."
"…복잡한 사정이 있다는 말씀이군요."
마이클 블룸버그는 탄식했다. 그 역시 알게 모르게 밀리아머에 대해서 정보를 듣기는 했다. 심지어 간접적으로 투자도 했다. 다만 그 자세한 내막까지는 몰랐다.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야.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할 일은 이 기술의 가치지."
그렉 파넬 이사 역시 침중한 마이클블룸버그의 의견을 듣자 탄식했다.
"이게 문제가 없다는 전제로 하는 이야기입니다만 이 드론 기술도 중요하지만, 그 파급 효과가 더 클 겁니다.
이 작은 드론으로 인공지능 기술을 저렇게 구현했으니, 좀 더 큰 시스템은 그 효율이 전혀 다를 겁니다."
"…아이컴 같은 물건 말인가?"
"네."
마이클 블룸버그는 그렉 파넬 이사의 말에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깨달았다.
그는 그제야 스티븐이 왜 최민혁 실장의 지시를 그렇게 따르는지 알 것 같았다.
이 정도 압도적인 기술 차이면 스티븐이라고 해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한국에 우리 회사 지국은 없지?"
"그 계획은 2년 후에 진행될 예정이었습니다."
"지금 당장 지국 설립이 가능해?"
"네? 그건 한국 정부의 도움을 받아야……."
"설마 한국 정부가 우리를 배척할지도 모른다는 소리야?"
블룸버그는 현재 800여 개의 신문, 200개가 넘는 TV에 금융, 증권, 기업 정보를 제공하는 중이다. 70개국에 10만대 가까운 터미널을 설치했고 말이다.
막강한 힘을 가진 글로벌 언론사였다.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이 부분은 최민혁 실장과 조율을 해야 합니다. 우리 쪽에서 손실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최대한 생색을 내야 합니다."
"좋네. 그 부분은 알아서 최민혁 실장과 잘 이야기를 해봐. 가능하면 최민혁 실장이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해주고. 필요하다면 한국 정부와의 로비도 포함해."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