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870화 (870/1,021)

#870.

"우리 할아버지 아직 안 죽었습니다. 그리고 KM 그룹도 작은 회사가 아니에요. 만약 우리 첫째 큰아버지가 경영권 승계를 받으면 상황이 복잡해져요."

실상 다른 사실이 있었다.

정보 팀에서 최용욱 회장의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고했다.

사소한 행동이기는 한데, 가족에 대한 대응 자체가 달랐다.

물론 자신이 최민수에게 지분을 증여한 것이 동기가 되었다.

다만 그 일 때문만으로 보기에는 힘든 구석이 좀 있었다.

가족에 대한 연민

최용욱 회장이라고 해서 언제나 마음이 한결같다고 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그랬지 않나.

자신 역시 최용욱 회장의 단순한 동정심 때문에 KM 전자 기획실장이 되었다.

물론 최훈열 전무를 비롯한 큰아버지가 다른 의도가 있다고 해도 말이다.

최민혁도 처음에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마이클 블룸버그의 행동을 보자 아차 싶었다. 그 내용을 무시할 수 없었다. 사람 마음은 바뀌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조성돈 팀장은 이런 점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역시 미국에서 최민혁 실장을 도우면서 돈 가치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했다.

그가 한국에 있을 때는 100억도 큰돈이었지만 미국에서는 5억 달러도 큰 부담이 되지 않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최 실장님이 경영권을 승계받는 것으로 결정……."

"아직 결정이 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네?"

최민혁은 힐끗 조성돈 팀장을 쳐다보았다. 조성돈 팀장은 그제야 흠칫 놀랐다. 최민혁 실장의 시선에는 질책의 의미가 가득했다.

"조 팀장님도 미국 생활을 하면서 많은 점이 바뀐 것 같습니다."

"그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바뀐 것처럼 조성돈 팀장 역시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음을 느꼈다.

"아뇨. 바뀌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우선 우리 KM 전자는 불과 작년만 해도 한 해 매출이 3,000억 남짓했고, 순이익 100억도 아주 많은 돈이었습니다."

"네? 그거야……."

조성돈 팀장은 입맛을 다시면서 말꼬리를 흐리고 말았다. 그 역시 최민혁실장의 지시에 따라서 1,000억, 2,000억막 쓰다 보니, 현실적인 금전 감각을 잃어 버렸다.

사실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최민혁은 그런 점을 경고했다.

"천만 원도 일반 서민에게는 큰돈입니다. 돈이 아무리 많다고 해서 돈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너무 위만 봐서도 곤란합니다."

"…죄송합니다."

조성돈 팀장은 신중하고 경험이 많은 사람이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말한 의도를 금방 깨달았다. 그로서는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조차 천문학적인 자금을 다루면서 집착하고 말았다.

그제야 사과하고 말았다. 그 자신이 원래 최민혁 실장을 위해서 해야 할 조언이었다. 그런데 그걸 거꾸로 듣고 있으니.

'최 실장님 나이가 이제 이십 대초반인데…….'

조성돈 팀장은 심적으로 자괴감마저 느꼈다.

최민혁은 씩 웃었다.

"그리고 경영권 승계는 결정이 안 났습니다. 그리고 사람 마음은 아무도 모릅니다. 할아버지 마음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까. 막말로 동정심을 느껴서 생각을 바꿀 수 있습니다."

"네?"

최민혁은 이미 기다리고 있는 차량뒷좌석에 타면서 말했다.

"저도 CES와 인공지능에 집착해서 미처 간과했습니다. 돈의 가치에 대해서 말이죠. 마이클 블룸버그와 협상하면서 느꼈습니다. 마이클 블룸버그는 만만히 볼 인물이 아닙니다. 그런 그도 막힌 장벽을 뚫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어요. 창피를 무릎쓰고, 의사 결정을 바꾼 셈이죠. 할아버지라고 해서 다를 수가 없어요."

"하긴……."

조성돈 팀장도 그제야 마이클 블룸버그와의 협상을 떠올렸다. 그가 무슨 고민을 하는지 말이다. 최민혁 실장이 내놓은 보고서를 보고는 충격을 받은 일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했다.

그는 차량을 출발시킨 최민혁 실장에게 질문할까 하다가 관뒀다.

그냥 갑자기 생각났다고 할 것이 뻔했다.

'그게 하루가 아니라 몇 개월을 노력해도 만들 수가 없다는 거지. 마이클 블룸버그가 패닉에 빠질 만한 일이었어.'

오랜만에 최민혁 실장의 능력에 대해서 의심했다.

물론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KM 그룹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봤다. 지금 KM 그룹은 불과 일 년 전과는 차원이 다른 발전을 거듭해서 성장했다.

부실한 계열사를 다 정리했고, 구조조정을 거친 계열사 매출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선택과 집중을 한 덕분에 시너지는 말도 못 할 정도였다.

대표적인 곳이 다름 아닌 KM 센서였다. KM DVR 수출도 수출이지만 KM 건설 쪽에도 막대한 주문이 쏟아진 것이었다.

이 새로운 시스템을 설치한 덕분에 KM 건설 매출 역시 작년 대비 무려 100% 이상 늘어났다. 심지어 매출 성장세가 가속이 붙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금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이야 KM 전자와 그 계열사가 미친 듯이 발전한다고 해도 결국 장벽에 부딪힐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리스크를 사전에 대비하는 것이 좋았다.

자금이 많다고 해서 펑펑 써서는 안될 일이었다.

더욱이 진짜 위기는 이제부터였다.

'확실히 그런 부분은 놓치고 있었구나. X 리포트대로 흘러간다면, 올 중 순, 하반기를 거치면서 국내 경기도 요동칠 거야.'

최민혁은 심각한 얼굴의 조성돈 팀장을 보면서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역시 믿을 만한 사람이야. 이 정도면 경고로 충분하겠지. 그나저나 골치네. 할아버지 마음에 변화라도 생긴 걸까? 민수 형에게 지분을 준 것 때문에 마음이 변한 것일까?'

원인이 어쨌든 최용욱 회장의 마음에 변화가 생기면 곤란했다.

최문경 부회장이 최용욱 회장 지분을 받아도 문제고, 아니면 다른 가족이 최용욱 회장 자산을 받아도 일이 꼬일수 있었다.

'역시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살펴봐야겠어. 어차피 데릭 모건 이사도 최문경 부회장 쪽을 무시하지 않을 테니까.'

최민혁은 최문경 부회장과 데릭 모건 이사를 엮어서 복수할 대안을 고민했다.

다만 조성돈 팀장은 한 가지 만큼은 넘어갈 수가 없었다.

"하면 블룸버그 쪽과 손을 잡아서 하시려는 일이……"

"CES 전시회 방영이죠. 이왕이면 국내 쪽에 바로 알릴 수 있는 게 좋을 겁니다. 방송 내용을 보면 분위기가 많이 바뀔 테니까. 심지어 우리 할아버지도 딴생각하기 힘들 겁니다."

최민혁의 주장에는 그룹 승계를 마무리하겠다는 의도가 가득했다.

"…확실히 그렇겠군요."

조성돈 팀장 역시 그제야 감탄하고 말았다. 한국은 누가 뭐래도 최민혁실장의 앞마당이다. 최소한 그 시장을 지키는 것이 중요했다.

***

개정된 X 리포트 내용은 꽤 구체적인 사실을 많이 지적했다.

하지만 이 보고서에도 등록되지 않은 사실이 몇 가지가 있다.

그중에 하나가 세계 경기 호황에 따른 흐름이다.

세계 무역은 지속적인 경기 호조 덕분에 신장세가 유지 중이었다.

선진국 무역 증가율은 무려 4.8%로 낮아지기는 했지만, 세계 경장 성장률은 오히려 8%를 넘어섰다.

미국만 해도 소비재와 자본재 수익이 대폭 하락했다.

일본은 엔화 안정세 덕분에 그나마 상황이 좀 나은 편이었다.

그나마 세계 경제의 버팀목이 되어준 것은 개발도상국이었다.

대략 13~15%에 달한 것이었다.

이들이 사회 간접 자본 투자를 늘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최용욱 회장으로서는 이런 지표가 개정 X 리포트의 흐름과는 좀 달랐다.

그는 장승일 실장에게서 보고를 받으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장승일 실장 역시 이 흐름에 딱히 어떤 의견도 내밀지 못했다.

거기에 페소화 위기가 서서히 해결된 것도 좋았다.

중남미 경제가 어느 정도 다시 상처를 입고 부활의 날개를 편 것이었다.

이런 흐름만 본다면 정말 개정된 X 리포트대로 될까에 대해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던 바트화 사태에 헤지펀드가 자금을 더 늘렸다. 바트화 사태가 악화하면서 개정 X 리포트와 얼추 맞아들어갔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개정된 X 리포트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다.

'모르겠어.'

최용욱 회장도 묵시록에 가까운 개정 X 리포트를 성경 보듯이 살피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민혁이 녀석 말을 믿고 싶어도 가끔은 의심할 만한 사태가 계속 생겨."

오늘 최용욱 회장 초대를 받아서 최용욱 회장 저택을 찾은 최두진 사장은 피식 웃었다.

"민혁 그 녀석 조언대로 하지 않으려고?"

"그런 말이 아니잖아."

"이전의 X 리포트 결과를 보면 예측대로 세계 경제가 잘 돌아갔어. 그 덕분에 난 재미를 단단히 봤고, KM 그룹에 대한 투자도 대박쳤지."

KM 그룹 주가는 KM 전자 수혜주로 꼽힌 덕분에 꾸준한 상승을 거듭했다.

KM 그룹 주가는 가끔 조정 국면을 거치기도 했지만 그건 잠깐뿐이었다.

특히 최근 KM 센서에 대한 기대치가 KM 그룹 주가에도 영향을 줬다.

KM 센서는 당장 KM 건설과, KM 산업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특히 KM 건설은 아예 테마주로 취급받아서 작년 주가 기준 무려 100% 가까이 급등했다.

최용욱 회장은 오직 결과만 보는 최두진 사장의 말에 쓰게 웃고 말았다.

그는 문득 얼마 전의 일을 떠올렸다.

그가 최민혁 실장의 조언을 들어준 것은 나름 이유가 있었다.

그는 조금씩 자신의 재산을 증여할 생각이었다.

이 과정에서 아들이나 손자도 정신을 차라기를 바랐다.

그들이 제대로 일하기를 원했다.

이에 따른 보상으로 증여할 생각이니까.

실제로 효과는 있었다.

다만 안 좋은 부작용도 존재했다.

일주일에 2~3번꼴로 자신에게 거머리처럼 달라붙기 때문이었다.

최용욱 회장의 입장에서 나름 나쁜 일은 아니었지만 이게 또 다른 꿍꿍이가 있는 자식 얼굴을 보는 것은 고역이었다.

그중에 가장 심한 경우는 역시 KD 통신, KD LCD 지분 일부를 받은 최민수의 모친 김여정이었다.

김여정은 놀랍게도 자신이 직접 나서서 최용욱 회장 저택을 청소했다.

심지어 식사도 직접 했고 말이다.

맛은 더럽게 없었다.

최용욱 회장은 혹시 독이라도 탓을까 의심했다. 그는 설마 그렇게까지 할까 싶지만, 세상일은 또 모르기 때문이다.

"아버님, 이거 한번 드셔 보세요. 농약을 쓰지 않은 청정 과일로 구하기가 정말 어렵다고 합니다. 건강에 그렇게 좋다고 하네요."

그녀가 내놓은 것은 사과였다.

농약 대신에 치명적인 독이 들어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

하지만 최용욱 회장은 선뜻 손을 댈수가 없었다. 그가 아는 둘째 며느리 김여정은 절대로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사용인조차 김여정의 눈치를 보면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둘째야."

"네, 아버님, 저 앞으로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난 일은 제가 다시 사과드립니다. 그때는 제가 철이 없어서 그랬습니다."

"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

"아버님이 우리 민수에게 해준 일은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저 지난주부터 요리도 배우고 있습니다. 아버님 입맛에 맞는 요리를 저녁상에 꼭 올리겠습니다."

"으음."

최용욱 회장도 겉으로 봐서는 진심이 가득한 김여정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실제로 김여정은 누가 보면 시아버지에게 충실한 참 애틋한 며느리처럼 보였다.

하지만 김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용인들은 패닉에 빠졌다.

명절에 김여정이 와서 보여주는 야차가 울고 갈 정도로 지독한 모습 때문이었다.

그녀들은 두려운 눈으로 김여정을 쳐다보기만 했다.

최용욱 회장은 막상 자신이 기대한 일이지만 경험해 보니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따스한 가족애.

그건 진심이 가득할 때 이야기다.

그 자신이 원하는 가족은 지금처럼 머릿속으로 계산하는 가족애와는 거리가 멀었다.

"KD 통신 지분 증여한 것은……"

"굳이 그 말씀은 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는 더 욕심을 부리지 않겠습니다."

"아니, 내 말 좀 들어 봐."

"아버님 말씀은 잘 압니다. 저는 돈보다는 아버님 진심을 느낍니다. 그러니 어떤 말씀을 하셔도 제 마음을 바꾸지 못합니다."

"……."

최용욱 회장은 갑자기 착한 며느리 코스프레를 하는 김여정이 정말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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