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862화 (862/1,021)

#862.

마크 프랭클린 소령은 카스 프리먼 차관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기준으로 보면 그야말로 돈의 노예나 마찬가지다.

다만 이제 와서 항명할 수는 없었다.

“전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그 사실을 제대로 보고해야 할 것 아냐? 추락할 뻔한 무인 항공기의 인공지능이 어떻게 멀쩡하게 동작한다는 거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마크 소령은 이지수 박사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꼈기에 충고를 해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 전에 일이 터질지는 몰랐다.

‘설마 의도한 것일까?’

어째 일이 순순히 잘 풀린다 싶었는데, 세상일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마크 소령은 때문에 배 째라 식으로 나왔다. 실상 그도 내막을 잘 몰랐다. 다만 뒤늦게야 이지수 박사의 과거를 기억했다. 당시 이지수 박사는 외압에 대해서 명확한 보복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카스 프리먼 차관 옆에 동행한 이들의 험악한 시선을 받으면서도 개의치 않았다.

그 자신은 이력이 있어서 이따위 자리를 당장 내일이라도 그만둘 수가 있었다.

‘아니, 그건 곤란하지.’

이제 메이런 프로젝트가 다시 순항을 시작했다. 이지수 박사의 분위기를 봐서는 이전과는 좀 다른 것 같았다. 뭔가 있었다.

옆에 붙어 있으면 그 기술의 내막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카스 프리먼 차관은 앞뒤가 꽉 막힌 마크 소령의 행동에 치를 떨었다. 그는 살기가 가득한 시선으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마크 소령은 그의 협박 따위에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불행히도 카스 프리먼 차관은 마크 소령에게 그 어떤 협박도 할 수가 없었다. 국방성 내에서 젊은 소장파로 명성이 자자한 그였기 때문이다.

이지수 박사와는 차원이 많이 달랐다.

‘이 빌어먹을 새끼가 일을 또 복잡하게 만드네.’

미국 하원 존 스미스 의원이 최민혁 실장을 과녁으로 노린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 일의 시작에 데릭 모건이 있다면, 그 중간에서 이익을 보려고 한 이가 다름 아닌 카스 프리먼 차관이었다.

최민혁 실장 견제는 그냥 우연히 나온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마크 소령 때문에 자칫하면 일이 엉망이 될 수가 있었다.

그는 이지수 박사가 메이런 프로젝트에 얼마나 애착을 뒀는지 잘 알았다.

그걸 노렸기에 이번 일을 빠르게 진행한 것이니까.

물론 그 일 자체가 호의로 진행된 일은 결코 아니었다.

어느 정도 결과가 나와야 그 기술을 가로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기술 수준은 기대 이하였다.

카스 프리먼 차관은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다가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좋아, 자네 말을 인정하지. 이지수 박사의 능력을 인정해.”

“아뇨. 차관님은 이지수 박사의 능력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계십니다. 메이런 프로젝트는 이지수 박사님이 주도적으로 만든 겁니다. 핵심 코드 역시 그녀가 만든 것입니다. 그러니 저 같은 경우에 내막을 제대로 알지는 못합니다.”

그는 결국 다시 분노했다.

“마크 소령,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정 안 되면 이지수 박사 자료를 뒤져보면 될 것 아냐. 그것도 못 해?!!!”

마크 프랭클린 소령은 쓰게 웃고 말았다. 그는 사실 이지수 박사에게 나름 인간적인 동정을 하고 있었다. 뭐, 그건 자신이 이혼해서일 수도 있다. 아무래도 양심이 찔려서 이지수 박사에게 들이대지는 못했다.

“정 그렇게 이지수 박사가 탐이 나면 최민혁 실장이 원하는 대로 해 주면 될 것 아닙니까? 방산업체 라이센스가 어려운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걸 왜 질질 끕니까. KMBOOK 부속 건물에 장비, 인력, 물자를 다 배치했으면서도 말이죠. 아니면 최민혁 실장이 관심을 둘 만한 방산업체를 제안해야겠죠. 망해 가는 업체에 관심을 둘 리가 만무합니다.”

망설이던 끝에 한마디를 더 부언했다.

“그리고 이런 말 하기는 그런데 이지수 박사의 기술을 빼 올 생각 따위는 하지도 마세요. 그건 어려울 겁니다. 핵심 코드 자체가 암호화되어 있어서 말이죠.”

카스 프리먼 차관은 화들짝 놀랐다.

“…그게 정말인가? 자, 잠깐만. 암호화되었다면 해독하면 되잖아?”

“그게 불가능합니다. 테일러 박사가 실패한 원인을 생각해 보세요. 그 배후에 있는 밀리아머가 인력이 없어서 이 일에서 손을 뗀 것 같습니까? 미끼를 던져 놓고 지켜보는 것도 다 이지수 박사 때문입니다.”

이지수 박사가 만든 암호화 코드는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국방부 내에서 세 손가락으로 꼽히는 마크 소령이 이지수 박사의 암호화 코드를 들여다보지 않을 리가 없었다. 다만 그도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실상 그만 이 일에서 손을 뗀 것은 아니었다.

밀리아머 역시 막대한 자금을 퍼부어서 연구를 계속해 왔다.

밀리아머가 굳이 테일러 박사를 내버려 둔 것도 다 대안을 강구한 것이었다.

이들은 눈에 띄지 않게 이지수 박사를 철저하게 관리를 해온 셈이었다.

최민혁 실장이 건드린 사람이 이런 이지수 박사였으니.

그 역시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흠.”

카스 프리먼 차관은 눈살을 찌푸렸다. 새삼 이지수 박사의 소문을 떠올렸다. 그가 전혀 생각도 못 한 일이었다. 그도 이지수 박사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것이었다.

테일러 박사, 밀리아머, 마크 프랭클린 소령이 다 멍청해서 메이런 프로젝트를 실패한 것이 아니었다. 이지수 박사가 겉보기와는 달리 이런 부분에서는 치밀했다. 자신이 먹지 못할 바에는 남들도 먹지 못하게 했으니 말이다.

‘…이거 골치 아프네. 데릭 모건 이사가 좋아할 일이 아니야.’

카스 프리먼 차관은 힐끗 이 자리에 참석한 다른 이들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몇 사람은 이 내막을 아는 것 같았다.

다들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마크 소령에게 이야기를 듣고서야 지난 일을 다시 떠올린 것이었다.

카스 프리먼 차관은 우려를 떨칠 수가 없었다. 그가 아는 데릭 모건 이사는 단순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라면 괜한 일을 벌여서 국방성을 자극할 수도 있다.

‘일단 괜히 나에게 화를 내기 전에 데릭 모건 이사에게 이야기는 해줘야겠어. 그런데 괜찮을지 모르겠네. 이 친구도 그냥 넘어가지 않으려고 할 텐데…….’

* * *

미국 국방성은 요즘 와서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시끄러웠다.

오가는 말이 많아서 다들 의아한 눈으로 국방성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이 일에는 잊을 만하면 최민혁 실장 이름이 계속 오르내렸다.

조시 로버트 아태 차관보 역시 최민혁 실장의 이름을 들었다.

그런데 단순히 듣는 정도에서 그칠 수가 없었다.

그의 직장 생활 역시 변화가 있었다.

[조시 아태 차관보님, 좋은 아침입니다.]

[…그래, 애니도 좋은 아침이야.]

그는 힐끗 국무부 건물 입구에 설치된 신분증 검사기가 아니라 곳곳에 설치된 CCTV를 쳐다보았다.

KM 전자에서 최근 보급한 KM DVR이었다.

KM 전자와 연방 정부 간의 KM DVR 이전에 확인 차원에서 설치된 장비였다.

파르빈 라미네즈는 습관적으로 신분증을 내밀려다가 그냥 집어넣었다. KM DVR 카메라가 자신을 서칭하면서 인사를 해왔다.

[파르빈 국장님의 안색을 봐서는 여유가 많이 필요합니다.]

[…내가 인공지능에게 그런 말을 들을 정도로 힘들지는 않아.]

[업무로 말미암은 과도한 스트레스는 정신질환의 일종입니다. 그리고 이건 보통 사람이라면 늘 생길 수 있는 일입니다.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추천해 줄 수도 있습니다.]

[…아니.]

파르빈 라미네즈는 소름이 오싹 돋아서 제대로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 애니가 하는 말은 단순히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의도적으로 말하게 해서 음성 패턴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CCTV는 단순히 얼굴만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신체 외형, 입고 있는 옷을 비롯한 생활 방식 이미지를 토대로 해 자기 생활상을 스캔하는 것이다.

이전과는 달리 참으로 편했다.

경비원조차 자신을 지켜보지 않으니 말이다.

신분 확인은 모두 KM DVR 애니가 관리하는 중이었다.

놀라운 것은 이 국무부 입구만을 감시하는 것이 아니었다.

국무부가 있는 건물 20㎞ 주변에 설치된 KM DVR이 병행해서 정보를 스캐닝 중이었다.

그렇게 취합된 데이터는 국무부 내에 보안 설비에서 검토 중이고 말이다.

당연히 이 솔루션을 공급한 것은 KM 전자가 아니라 KMBOOK이었다. 두 회사가 합작으로 진행한 프로젝트였다.

국무부 입구의 애니 인사는 어떻게 보면 요식 행위였다.

조시 로버트 아태 차관보는 그 누구보다 이런 진실을 잘 아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수고해.]

[즐거운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파르빈 라미네즈는 자기 사무실을 걸으면서 힐끗 통로에 설치된 CCTV를 쳐다보았다. 그 CCTV는 놀랍게도 자신의 동선을 따라서 동작 중이었다.

마치 감시라도 하는 것처럼.

“…저거 정말 괜찮은 겁니까?”

“어쩔 수 없잖아. 국방성에서 밀어붙이는 일이니, 들어줄 수밖에 없어.”

“아니, 전 그 사실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조시 로버트 차관보 역시 지금 상황을 좋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냉전시대 이후에 방위 산업 기술에도 변화가 생겨났어. 록웰사만 해도 급격하게 예산이 줄어들자 컴퓨터, 정보 기술을 기반으로 한 분야 쪽에만 집중했으니까.”

B1 폭격기, 군사 위성으로 유명한 록웰사는 덕분에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이 회사의 작년 매출은 무려 130억 달러를 돌파했다.

“…설마 미국 국방성이 록웰사 성공을 보고, 최민혁 실장 쪽을 밀어준다는 겁니까?”

“KM 센서와 KMBOOK의 대주주는 최민혁 실장이잖아. 메이런 프로젝트 주인공은 이지수 박사고. 그쪽을 밀어주는 뉘앙스를 보여준다면, 최민혁 실장도 마냥 눈치를 볼 수밖에 없잖아.”

“아니, 그러면 메이런 프로젝트를 최민혁 실장 입에 들이민 것도 그런 연장선이란 말입니까?!”

“글쎄.”

조시 로버트 아태 차관보 역시 고개를 흔들고 말았다. 그 역시 미국 국방성 내에서 계속 말이 나오는 ‘최민혁 실장’의 이름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요즘은 백악관 내부 국무회의에서도 2~3일꼴로 최민혁 실장 이름이 나왔다.

더 큰 문제는 인수합병 이슈였다.

영국 방산업체와 미국 방산업체 사이에 미묘한 인수합병 이야기가 나왔다.

국무부 처지에서는 실로 큰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최민혁 실장의 최측근 이지수 박사의 무인 항공기 이름이 끊이지 않고 나왔다.

그도 최민혁 실장을 이제는 무시할 수가 없었다.

“…우린 그저 흐름을 따라가기만 될 거야. 어차피 국방성이 주도적으로 알아서 한 일이니까.”

“진심으로 하시는 말입니까? 우리 국무부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연히 관련이 있었다.

조시 로버트 아태 차관보는 자신의 사무실 입구에서 잠깐 멈추었다. 그 역시 최민혁 실장과 친밀한 관계라는 이미지 덕분에 이곳저곳에 꽤 불려 다녔다. 덕분에 많은 정보도 얻고 말이다.

최민혁 실장도 은근히 연락이 오고 말이다.

분위기도 때문에 반 정도는 거절했다.

이런 상황이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대안이 있었다면, 이미 밀리아머가 손을 썼을 거야. 우린 그냥 흐름을 지켜보면서 제어만 잘하면 될 거야. 괜히 일을 만들어서 사태를 악화시키지 말게.”

“…하, 이게 무슨 상황인지.”

조시 로버트 아태 차관보 역시 마냥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미국 국방성이나 국방부가 한 사람 눈치를 계속 봐야 하기 때문이었다.

‘설마 이런 사태를 의도한 것일까? 샐로먼 브러더스 쪽하고도 관련이 있던 눈치인데, 일이 커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가 걱정하는 것은 최근 샐로먼 브러더스가 투자한 한 나라였다.

바로 중국이다.

그 일 역시 끊이지 않고 계속 말이 나오는 중이었다.

‘요즘은 CDMA 관련해서도 말이 나오던데, 중국 시장을 선점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하긴 지금 분위기를 봐서는 중국이 우리 제안을 거절할 것 같지는 않아.’

아이러니한 일은 미국 정부도 중국을 이용한 전략적인 포지션 때문에 난감한 상황이었다.

“…혹시 모르니, 샐로먼 브러더스, 국방성,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 잘 살펴봐. 아니,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이렇게 하자고, 최민혁 실장과 약속을 좀 잡아. 이왕이면 아주 조용한 곳으로.”

“…알겠습니다.”

* * *

최민혁은 갑작스러운 조시 로버트 부국장의 만남 요청을 받고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 역시 자신이 한 일을 잘 아니까.

‘내가 이렇게 되도록 상황을 끊임없이 유도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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