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0.
특허권 문제를 피하려고 메이런 프로젝트와의 연결 고리는 다 끊어놓았고 말이다.
이 위에 최민혁 실장이 고안한 기술을 그대로 접목했다.
이 일을 도와준 사람이 다름 아닌 조창호 차장이었다.
이지수 박사조차 메이런 프로젝트 현황을 확인하고는 어이가 없었다.
그녀 자신이 해놓은 기반을 그대로 사용해서 계속 개발을 해왔으니 말이다.
심지어 인터페이스는 아예 바뀌지도 않았다.
수정된 작업은 완성도와 관련이 있었다.
기존 무인 항공기 개발 중에 나왔던 버그 해결 중심으로 일이 진행된 것이었다.
결국 그녀가 KMBOOK에 와서 했던 연구 결과를 기존 결과와 그대로 연결만 해도 사용에 전혀 무리가 없었던 것이었다.
딱 그녀가 원한 결과였다.
인공지능 미니 드론은 하드웨어 사양이 너무 낮아서 자신이 한 성과가 제대로 동작하는지 확인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지수 박사도 작업하면서 계속 피식피식 웃고 말았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덕분에 작업은 정말 쉽게 진행되었다.
이곳에 건설과 장비가 올라가는 중에도 이 일을 먼저 진행했으니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놀랍게도 드론 애니가 정신을 차린 것이었다.
드론 애니는 메이런 프로젝트의 성과물을 토대로 동작했다.
먼저 테스트를 간단하게 진행하기 위해 멀티미디어 인공지능을 블록시켰다.
이지수 박사는 그제야 테일러 박사의 강압에 대한 마음의 상처를 극복했다.
사실 테일러 박사가 한 일은 이지수 박사가 메이런 프로젝트를 통해서 그녀가 인공지능에 대한 감을 잡지 못하게끔 하는 데 있었다.
그는 이지수 박사를 이용해서 인공지능에 대한 아이디어를 착취하려고 한 것이었다.
실제로 효과는 있었다.
테일러 박사는 이지수 박사의 인공지능에 대한 애정을 갈취해 왔으니까.
과거 일을 떠올린 그녀로서는 지금 일이 기분 좋은 시작이었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되기까지 무려 10년이 넘게 걸렸으니.
그녀도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마크 프랭클린 소령이 환호하는 것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는 어떻게 해서라도 이 프로젝트를 성공하게 하고 싶었다.
메이런 프로젝트의 연구원들 역시 눈시울을 붉혔다. 그들은 오직 이 프로젝트의 완성만을 위해서 지금까지 붙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지수 박사가 원하는 것은 이게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메이런 프로젝트를 통한 드론의 기능을 점검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 과정에서 곧바로 멀티미디어 기능을 추가해 보았다.
이 부분은 바로 동작하지 않았다.
하지만 연구 토대는 같았다.
무인 항공기 AI와 멀티미디어 AI를 합치는 작업은 결국 성공했다.
이들을 합친 결과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드론 애니는 마치 로봇처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센서를 이용해서 주변 정보를 파악했다.
그녀는 심지어 영상 인식과 음성 인식 센서를 통해서 주변을 완벽히 인식했다.
거기에 미니드론이 가지고 있는 인공지능 능력까지 발휘한 것이었다.
두 가지 지능 모듈이 결합하자 그 성과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무인 항공기는 마치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연구 설비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심지어 날개도 이리저리 움직여 보고 말이다.
마치 흥분한 말처럼 움직였다.
“……!”
스티븐은 입을 딱 벌린 채 세계 최초의 인공지능 무인 드론의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마크 프랭클린 소령과 이번 일에 합류한 미군들은 다들 멍하니 드론 애니가 동작하는 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들은 아무런 조작도 하지 않았는데도, 무인 항공기 애니가 알아서 움직이려고 했다.
무인 항공기를 고정한 쇠사슬이 움직이자 난리가 났다.
심지어 드론 애니는 마치 5살 꼬마처럼 자신의 몸에 달린 기관총과 미사일 발사 장치를 동작시켰다.
[박사님, 무장 창이 텅텅 비었어요!]
이지수 박사는 물론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헬렌과 같이 드론 애니의 동작 상태를 살핀다고 여념이 없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드론 애니가 갑자기 하늘을 날아서 폭격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 자신이 만든 미니 드론의 인공지능이 제대로 동작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무인 항공기에 설치된 여러 가지 기능을 일일이 다 확인했다.
일단 이렇게 한 번 동작시키고서야 자신의 인공지능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하나씩 발견한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머리로만 고민했는데, 사정이 달라졌다.
인공지능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동작하는지 모니터링하자 감을 확실히 잡았다.
이지수 박사는 그제야 깨달음을 얻었다. 그녀가 지금까지 메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의도적으로 내버려 두거나 놓친 실수를 하나씩 바로 잡아가기 시작한 결과로 말이다.
‘아, 이게 이렇게 동작하는구나.’
테일러 박사와 밀리아머 때문에 어쩔 수 없어서 한 실수.
그 결과는 결국 이지수 박사의 연구 성과 자체를 가로막았던 것이었다.
그녀는 그 과정에서 메이런 프로젝트와 인공지능 미니 드론 사이에 존재하는 인공지능 모듈의 차이를 체감했다.
KM 전자의 기획실에서 보낸 아이디어와 같이 교차하면서 앞으로는 애니 지능 문제에 대해서도 감을 잡아 나갔다.
각 지능 블록이 어떤 식으로 동작하는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꼈다.
그녀는 지금 상황이 잘 믿기지 않았다.
일이 이렇게 쉽게 풀려갈지 상상도 못 했으니 말이다.
그저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간격이 이렇게 큰 결과로 돌아올 줄은 몰랐다.
카타르시스.
지금까지 그녀의 두뇌를 막아둔 거대한 철벽 하나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다음은 이렇게 쉬웠나 싶었다.
각 지능 블록을 막고 있는 버그를 수정하는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짧게는 몇 달, 길면 일 년을 잡아먹는 오류 문제도 쉽게 해결이 되었다.
“와, 그게 그렇게 해결되는 거야?”
“어.”
이지수 박사는 그제야 뒤를 돌아보았다.
최민혁 실장은 팔짱을 한 채 물끄러미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두 눈에 습기가 가득했다.
다만 그녀가 그 순간 본 것은 크게 당황한 최민혁 실장의 양손을 교차하는 몸짓이었다. 그 역시 이지수 박사가 이렇게 빨리 일을 진행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개발 상황을 다 드러내지 마세요. 문제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세요!
-네?
의아한 반응이었다.
최민혁이 턱짓으로 마크 프랭클린 소령과 그 연구원을 가리켰다.
그녀는 마크 프랭클린 소령과 메이런 프로젝트 연구원들의 분위기를 보고는 아차 싶었다. 그들은 미친 듯이 환호하는 중이었다.
이지수 박사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신앙마저 담겨 있었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몇몇 연구원은 다급하게 보고 중이었다.
다만 크게 문제가 될 일은 아니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진행한 메이런 프로젝트의 가치를 그들이 다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무인 항공기의 반응이 갑자기 이상이 생겼다.
막 호들갑을 떨기 시작한 애니 드론이 이상한 동작을 한 것이었다.
[어? 자, 잠깐만요.]
그제야 다시 난리가 났다.
“…….”
최민혁 실장은 혀를 내둘렀다. 설마 이지수 박사가 애니의 작동 논리를 바로 조작할 수 있을지는 몰랐기 때문이다. 다만 그도 이지수 박사와 평소와는 달리 상기된 표정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이지수 박사의 요청을 들어주면서 고개를 갸웃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과학자인 이지수 박사와 경영자인 최민혁 실장 자신의 관점 차이였다.
‘하긴 지금까지 행동에 다 이유가 있었겠지.’
* * *
이지수 박사가 굳이 마크 프랭클린 소령을 신경을 쓰지 않은 이유는 운이 좋아서 인터페이스를 쉽게 연결할 수 있어도 아직 메이런 프로젝트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을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이다.
지금 한 일은 이제 겨우 그녀 스스로 인공지능 로직에 감을 잡은 것에 불과했다.
적당한 실수 정도는 쉽게 연기할 수 있었다.
[아, 나는 누구죠?]
[이지수 박사님은 그동안 잘 지냈습니까?]
[어, 지금 보고 있는 사물은 뭐죠?]
[내가 스카이넷이다!]
[내가 지구를 정복한다!]
추가로 들어온 정보에 애니는 오락가락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애니 지능은 PC를 통해서 다시 발전되었다.
그 지능 이식이 이루어진 것은 아이컴이었다.
그런데 이 두 지능은 PC와 맥이라는 토대 위에서 작업된 것이었다.
이 지능이 다시 드론을 통해서 모바일 형태로 발전되었다.
이런 애니 지능의 토대가 된 것은 메이런 프로젝트였다.
모두 다섯 가지 애니 지능 로직이 존재했다.
동일한 것 같아도 그렇지가 않았다.
각각 애니 지능이 다루는 정보 자체가 달랐고,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이지수 박사 역시 뒤늦게야 애니가 지닌 지능의 차이를 하나씩 깨달았다.
그녀는 각 애니 지능 블록을 다시 로직별로 정리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개념적이다.
실제로 외부에서 본 사람은 애니 지능이 같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니 지금 진행하는 메이런 프로젝트의 애니 성격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었다.
이지수 박사도 메이런 프로젝트를 디버깅하면서 이런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각 지능별로 하나씩 개념을 나누고, 이걸 다시 인간의 두뇌와 매칭시켜서 관리했다.
일테면 다섯 가지 애니 지능이 있는 것으로 말이다.
이지수 박사는 이 일을 진행하면서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헬렌 역시 뒤늦게야 애니가 보내는 데이터를 확인하고는 혀를 내둘렀다.
다만 두 사람 역시 최민혁 실장의 분위기를 살피면서 입을 다물었다.
최민혁은 물론 흥분한 이들이 다들 애니에 집착하는 것을 보자 두 사람만 데리고 조용히 회의실으로 불렀다.
“상황을 좀 듣고 싶습니다.”
이지수 박사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래도 제가 잘못 생각한 것 같아요.”
“기존에 개발하던 인공지능에 문제가 생긴 겁니까?”
“아니, 그건 아니에요. 다만 환경이 바뀌면서 인공지능 상태가 좀 달라졌어요. 들어오는 정보 자체가 달랐으니까요.”
“PC와 드론에서 올라오는 정보 차이 말입니까?”
“네.”
이지수 박사의 차분한 설명이 이어졌다. 대부분 인공지능, CPU, 저장 장치, 각 장치가 올리는 환경 차이였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기획실의 아이디어가 큰 도움이 되었어요. 아니, 처음부터 이런 프로필을 토대로 진행해야 했어요. 그냥 막연하게 무인 항공기부터 시작한 것이 문제예요.”
물리적인 환경의 제약을 말하는 것이다.
무인 항공기 인공지능은 다른 멀티미디어 환경에 맞지 않았다.
멀티미디어 인공지능은 그것대로 역시 제약이 있었고 말이다.
게다가 이 토대인 메이런 프로젝트가 제대로 된 것이 아니었다.
비록 이지수 박사가 미니 드론을 토대로 해서 자료를 갖췄지만 말이다.
거기에 최민혁 실장이 무리하게 프로젝트를 밀어붙인 것도 문제였다.
헬렌이 슬쩍 끼어들었다.
“정확히는 로봇 기반이잖아.”
“아, 그건 말하지 않았네요.”
이지수 박사가 애니의 초기 모델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가 굳이 메이런 프로젝트를 할 수밖에 없었던 동기였다.
그녀도 명성이 없을 때는 다른 이의 자금이 필요했다.
그 당시에 그녀를 도와줄 기업은 거의 없었다.
관심을 보인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밀리아머 정도였다.
어려운 내용 같아도 간단했다.
지금까지는 인공지능의 구현에 집착했다.
심지어 그 연구가 군용 무인 항공기 하나를 향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이 끼어들면서 상황이 또 달라졌다.
최민혁 실장이 지시한 것은 멀티미디어형 인공지능이었다.
쉽게 말해서 상업용 인공지능과 군용인공 지능은 같은 것 같아도 전혀 다른 것이었다.
상업적인 인공지능에 집중하면서 또 변화가 생겨났고 말이다.
아이러니한 일은 이 과정에서 선택과 집중을 한 이지수 박사는 그제야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 것이었다.
“…그랬군요.”
최민혁은 그제야 이지수 박사가 아주 복잡한 삽질을 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늘 천재의 면모를 보이는 이지수 박사도 사람은 사람이었다. 그는 전생에서도 이지수 박사의 지난 실적에 대해서는 잘 몰랐기 때문이다.
“하면 지금 진행하는 일은 어떻게 됩니까? 더 어려워진 겁니까?”
이지수 박사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아니, 그 반대에요. 당장 CES 전시회에 필요한 애니 역시 더 완성도를 올릴 수가 있어요. 다만 애니 지능이 발전한 것이 아닙니다. 필요한 지능 모듈에 집중해서 배터리 소모를 줄이고, 완성도 자체를 더 올릴 수가 있어요. 지금부터는 그 작업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기존에 진행한 손발 대용 모듈도 추가할 수 있고요.”
확신에 가득한 이지수 말은 이전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이제는 시간만 있다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좋네요.”
최민혁은 그제야 걱정을 떨쳐 버렸다. 그도 이 일을 진행하면서 걱정하기는 했다. 이지수 박사가 이 일을 해야 한다고 해서 내버려 두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지수 박사는 그제야 최민혁 실장을 뜨거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고마워요.”
“네? 뭐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