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859화 (859/1,021)

#859.

최민혁도 난감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밀리아머’ 문제 때문인지 국방부 실무진도 갈팡질팡하는 눈치였다. 따지고 보면 그 자신이 문제였다. 그가 국방성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일이 이렇게 꼬이지 않을 테니 말이다.

“으음, 이렇게 하죠. 일단 가서 보시면 대충 분위기 파악이 될 겁니다.”

사실 스티븐이라고 해도 보안 때문에 원칙적으로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기는 했다.

하지만 최민혁은 그걸 알면서 무시했다.

* * *

메이런 프로젝트 관련 팀은 누가 와도 모르는 분위기였다.

최민혁 실장이 스티븐과 같이 안으로 들어와도 지켜보는 이가 없었다.

뒤늦게 연구원 한 사람이 최민혁 실장을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그의 지시를 받은 미군 한 명이 의자 몇 개를 내밀었다.

최민혁은 스티븐에게 자리를 권했다.

“보시다시피 무인용 드론입니다.”

스티븐도 눈이 있으니 그건 알고 있었다. 그는 어수선한 무인 항공기 연구 설비를 힐끗 살폈다.

“그건 알겠습니다. 근데 갑자기 최 실장님이 이 일은 왜 하시는 겁니까? 설마 정말 방산업 쪽에 진출할 생각입니까?”

최민혁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압니다. 무리한 짓을 한다는 것을. 그런데 어쩔 수가 없어요. 이지수 박사님이 이 설비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최민혁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이곳 무인 항공기 테스트 설비실에 있는 미군 역시 이지수 박사의 지시에 번개처럼 움직였다. 그들은 이지수 박사가 기라면 길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행동은 단순히 지시 때문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그들은 이지수 박사를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그들 중에 국방성 소속 연구원이 스티븐 일행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보안 문제 때문이었다.

마크 프랭클린 소령이 뒤늦게 그 말을 듣고는 최민혁 실장을 쳐다보았다.

‘의도적인가?’

* * *

마크 프랭클린 소령이 이지수 박사와 같은 아픔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꼰대 기질을 가지고 스티븐 일행을 압박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과거의 그와는 좀 달랐다.

그는 이지수 박사의 작업을 확인한 후에 기름이 잔뜩 묻은 옷을 입은 채 최민혁 실장과 스티븐에게 다가왔다.

그러곤 이지수 박사의 이야기가 나오자 슬쩍 끼어들었다.

“이지수 박사님의 능력은 메이런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이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습니다.”

마크 소령은 지난 일을 이야기하면서 힐끗 스티븐 얼굴을 보았고, 가볍게 인사했다.

“설마 에플을 부활시킨 스티븐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한 것은 없습니다. 다 여기 최민혁 실장님의 능력 덕분이니까.”

“아, 그런가요?”

그는 힐끗 최민혁 실장을 다시 쳐다보았다.

최민혁은 어깨를 으쓱한 채 입을 열었다.

“저는 자금만 댄 것뿐입니다. 실제로 일은 여기 스티븐이 다 알아서 한 거죠.”

“그렇게 말하고 끝낼 일은 아니죠.”

“아닙니다. 지금 드론 일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 기술이 에플에도 적용될 테니까.”

마크 프랭클린 소령은 흠칫 놀랐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보안을 굳이 어긴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에플 차기 제품 때문인지는 몰랐다.

“…이 드론은 군사용입니다. 상업용으로 적용하려면 문제가…….”

“아뇨. 상업용과 군사용은 아주 다른 형태로 제작될 겁니다. 그러니 스티븐이 굳이 살펴도 큰 문제는 안 될 겁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최민혁은 씩 웃었다.

“당장은 자세한 말을 밝힐 수는 없어요. 그 정도만 알면 됩니다.”

“흠.”

마크 프랭클린 소령은 일방적인 최민혁 실장의 단언에도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갑을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리고 적어도 이지수 박사가 지금 진행하는 일이 어느 정도 끝나야 했다.

그다음에 뭔가 다른 조치를 해도 할 수가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가 옆에서 일을 도와주면서 느낀 점은 그게 어렵다는 거다.

애니와 관련된 기술은 그가 봐도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이전보다 더했다.

인공지능 무인 드론 기술이 적용된 덕분에 애니 내부를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걸 다 아는 유일한 사람은 이지수 박사뿐이었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왜 저렇게 느긋한지도 알 것 같았다.

‘하긴 일을 이 모양으로 만든 것을 보면 다 이유가 있겠지.’

방산업체 인수는 계속 겉도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방산업 라이센스 역시 마찬가지다.

최민혁 실장은 이 묘한 상황 속에서 일을 밀어붙이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걸 알아도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윗선에도 보고하지 않았다.

‘그 병신들이 알아봐야 일만 복잡해지니까. 차라리 이지수 박사가 주도권을 잡는 것이 일이 더 쉬워질 수도 있어.’

최민혁 실장은 묘한 눈으로 마크 프랭클린 소령을 쳐다보았다.

그는 이미 자레드 해리스 대령과 카스 프리먼 차관을 만나봤다. 두 사람은 내색만 하지 않을 뿐이지 자신에 대해 반감이 있었다.

특히 카스 프리먼 차관은 적대적이라는 게 은연중에 꽤 티가 났다.

그는 더욱이 이지수 박사를 도와주는 연구원과 미군들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

“신기하기는 신기해요. 제가 선입견을 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인종차별 하는 모습을 볼 것 같았으니까요. 그런데 여기서는 그런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네요.”

실상 그가 걱정한 부분이었다.

마크 소령은 순순히 인정했다.

“…다 쫓겨났습니다.”

“네? 뭐가요?”

“인종차별 하는 애들 말입니다. 이지수 박사에게 시비를 거는 이들을 말하는 것이겠죠? 네, 그들은 다른 조직으로 다 쫓겨났습니다. 몇몇은 제대를 해야 했습니다. 이곳에 남은 이들은 이지수 박사님을 존경하는 이들뿐입니다.”

“그렇습니까?”

최민혁 실장은 흥미로운 이야기에 눈빛을 반짝였다.

다만 스티븐은 두 사람의 이야기에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최 실장님!”

최민혁은 불만이 가득한 스티븐 시선에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스티븐의 걱정은 잘 압니다.”

“아니, 모르는 것 같습니다. CES 전시회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십니까?”

“알아요. 그래서 지금 무리수를 둬가면서 일을 진행하는 것이니까.”

“도대체 이 일이 뭐가 중요하다는 말입니까?”

스티븐은 영문을 몰라서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최민혁은 굳이 스티븐의 의문을 풀어줄 생각이 없었다.

“여기 일은 CES 전시회와 무관할 수 있어요. 여기 일이 실패해도 스티븐은 지금까지 리허설 해온 그대로 CES 전시회를 진행하면 되니까.”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최민혁 실장은 잠깐 머뭇거렸다. 스티븐의 말이 마냥 틀리지는 않았다. 그 역시 무리를 한다는 것을 스스로도 아니까.

다만 그에게 있어서 우선순위가 달랐다.

에플 CES도 물론 중요한 일이다.

그래도 이전만큼은 아니었다.

지금은 다른 그 무엇보다 인공지능 무선 드론 기술이 당장 필요했다. 그것도 상업적인 가치가 있는 무인 드론 기술 말이다.

‘이게 제일 중요하지.’

최민혁 자신이 여기까지 온 것도 따지고 보면 최문경 부회장과 그 배후를 정리하는 일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배후가 불행히도 군산복합체와 관련이 있었다.

그도 하나씩 일을 끝내면 좋겠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메이런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지금이 아니면 기회를 잡기가 어려웠다.

‘밀리아머가 메이런 프로젝트를 먹는 것은 무조건 막아야 해.’

최민혁 실장은 이걸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 고민했다.

그런데 이지수 박사 팀에서 외침 소리가 들렸다.

“서, 성공입니다!”

무인 항공 드론 앞부분에 불이 들어왔다.

LED 불이 계속 동작했다.

물론 목소리와 함께 말이다.

무인 드론 애니가 드디어 가동을 시작한 것이었다.

[이지수 박사님, 오랜만입니다!]

[애, 애니, 너, 애니지?]

[정확히는 무인 드론 애니입니다!]

[그래, 무인 드론 애니!]

이지수 박사는 기쁨에 들뜬 얼굴을 한 채 무인 항공기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무인 드론 애니는 무려 10년이 넘게 걸린 그녀의 역작이었다.

지능 지수 역시 가장 높았고 말이다.

그래서 이 무인 항공기의 전력이 아니면 동작이 어려웠다.

아이컴 내에 있는 인공지능 애니와는 격이 다른 물건이었다.

그녀의 기쁨은 형언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지수 박사는 지금 상황이 잘 믿기지가 않았다.

그렇게 노력했는데, 이제까지 실패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의 아이디어가 돌파구를 마련해 줬다.

굳이 애니의 인공지능을 다 쓸 필요가 없다는 것 말이다.

그렇다면 필수적인 기능만 동작시키면 된다.

그건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조금만 수정하면 간단히 될 일이었다.

“저, 정말 성공했어. 세상에 진짜 되다니. 아, 내가 왜 이 간단한 것을 몰랐을까!!”

헬렌 역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도 지금 상황이 잘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

최민혁은 그 모습을 보면서 입을 쿡 다물고 말았다. 그 역시 자세한 내막은 잘 몰랐다. 저게 무슨 의미인지 말이다.

다만 그는 후다닥 뛰어간 마크 소령이 춤까지 추는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스티븐 역시 영문을 모르기는 매한가지였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최민혁은 마크 프랭클린 소령과 그 연구원이 드론 애니의 비밀을 안 것 같아서 살짝 걱정되기는 했다.

하지만 그들의 진정한 눈빛을 보자 피식 웃고 말았다.

‘저 정도라면 괜찮겠지. 어차피 내막을 잘 모르면 알 수가 없어. 지능 지수 레벨로 슬쩍 물타기 하면 알기도 어렵지. 이제 남은 것은 이를 상업적으로 활용할 방법인데, 이건 고민 좀 해봐야겠어.’

당장 가장 큰 문제는 드론을 어떻게 제조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부품 수급 역시 빼놓기 어렵다.

경제성이 있는 부품으로 교체해야 하는데, 그게 쉬울 리가 없었다.

더욱이 드론 애니 성능이 알려지면 그 파급효과도 클 것이다.

그 정보도 제어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좀 전까지는 자신에게 착한 척하더니 지금은 눈빛을 번뜩이는 마크 프랭클린 소령의 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CES 전시회가 문제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 이후가 더 심각한 문제겠어.’

* * *

증기 기관으로 말미암은 산업 혁명은 인류사에 놀라운 일이다.

전기가 기반이 된 현대 사회는 산업 혁명 이후의 시대였다.

컴퓨터, 인터넷이 그다음 혁명으로 볼 수가 있다.

다음 세대 혁명은 인공지능, 디지털 통신이 그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이런 분위기는 군 기술에도 적용된다.

바로 무인 기술이다.

모바일 무인 로봇은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하지만 항공기는 좀 다르다.

하늘 위에서는 지상과는 제약이 달라서다.

결국 군용 드론 개발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다만 이 군용 드론 기술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기술이 필요했다.

그 대표적인 기술이 바로 인공지능이었다.

무인 드론 기술은 자연스럽게 미래 군대 기술에 필수적인 덕목이될 것이다.

그리고 이 군용 기술은 파급효과가 컸다.

미국 국방성이 굳이 이 기술에 천문학적인 자본을 퍼붓는 이유였다.

다만 이게 아직까지도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이유는 이제까지 그저 돈만 퍼부었기 때문이다.

그에 다른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에 가장 앞선 기술이 바로 메이런 프로젝트였다.

밀리아머가 굳이 이지수 박사에게 압력을 넣어서 퇴출시키려 한 이유다.

단순히 테일러 박사가 이지수 박사에게 집착해서 벌인 일만은 아니었다.

이지수 박사 역시 그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녀는 아니다 싶으니, 차라리 메이런 프로젝트를 포기하는 선택을 했다.

그녀가 빠져 버리자 메이런 프로젝트는 완전히 산으로 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다.

마크 프랭클린 소령은 이 메이런 프로젝트가 결국 다시 시작될 것이라 믿었다. 그는 때문에 이지수 박사가 해놓은 프로젝트 기반을 버리지 않았다.

아니, 실상 이지수 박사가 만들어놓은 프로토콜을 그대로 사용했다.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하드웨어 역시 다르지 않았다.

이지수 박사 역시 시간이 많이 부족했다. 그녀는 새롭게 일을 하기보다는 기존 메이런 프로젝트의 기반을 그대로 가져왔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역시 뿌리는 자신이 한 프로젝트를 그대로 활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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