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2.
하지만 그건 이전 일이다.
지금은 상황이 좀 달랐다.
그 역시 KM 시큐리티를 신설해서 무력을 충분히 갖추었다.
어지간한 협박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더욱이 그 자신은 지금 미국 국방성과 은밀한 협상 중이었다.
그런 자신을 건드린다라.
‘그건 좀 어렵지.’
지금 그쪽에서 고작 할 수 있는 거라곤 이런 식의 조사뿐이니까.
하지만 방심할 일은 아니었다.
“테일러 박사 말입니다. 그 친구는 요즘 뭐 하고 지냅니까?”
“아, 소송 중입니다.”
“소송? 설마 이전 일 때문입니까?”
조성돈 팀장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것도 있지만 이지수 박사가 이전에 당했던 일까지 다 합쳐서 고소를 제대로 했습니다. 대다수는 증거 사진과 영상이 있습니다. 그 소송 때문에 테일러 박사는 지금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겁니다.”
정확히는 KM 전자의 법무 팀이 그 소송을 거들었다.
직접 하는 것도 있고, 아니면 로펌과 계약해서 밀어붙이는 중이다.
알다시피 KM 전자는 돈이 아주 많은 회사였다.
그 돈이 꽤 힘이 있었다.
전담 로펌에서 테일러 박사를 아주 벼랑 끝으로 미는 중이었다.
최민혁 실장은 새삼 자신이 KM 전자 오너라는 것을 깨달았다. 정확히는 벨린 투자를 비롯한 벨린 그룹 오너였다.
“좋네요. 한번 끝까지 가봅시다. 테일러 박사의 반응이 궁금하니까.”
“…알겠습니다.”
* * *
테일러 박사는 요즘 미칠 것만 같았다. 이지수 박사에 대한 일이 완전히 망가졌다. 그는 어떻게 해서라도 이지수 박사를 손에 넣으려고 했는데, 모두 실패하고 만 것이었다.
심지어 최근에는 고소까지 당해서 소송을 진행 중이었다.
더욱이 이 소송이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미국에서도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초대형 로펌에서 소송을 맡았다.
더욱이 이 로펌은 고객에겐 돈이 넘쳐서 주체하지 못하는 최민혁 실장이 배후로 있다는 것을 알자 따로 전담 팀을 꾸렸다.
손해를 보고서라도 고객 만족을 위해서 전력을 다하는 중이었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밀리아머 법무 팀에서 나섰지만, 협상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테일러 박사는 때문에 본의 아니게 아버지에게 찍히고 말았다.
그런데 윌리엄 사장이 갑자기 자신을 호출하더니 자기가 들어줄 수 없는 지시를 내렸다.
“메이런 프로젝트를 포기해라.”
“아버지, 제가 몇 번이나 말했지 않습니까. 군사용 드론은 결코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고, 지금까지 들어간 돈만 해도 7,000만 달러가 넘습니다!”
아니, 이 정도가 아니었다. 미국 국방성에서 보조해 준 자금만 해도 무려 2억 달러가 넘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일은 중요했다.
테일러 박사의 부친인 윌리엄 사장은 굳은 얼굴이었다. 그도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의 경고를 듣고는 사전 조사를 했다.
근데 백악관 분위기가 영 이상했다.
그러다 추가 조사 과정에서 최민혁 실장과 재무부의 관계를 뒤늦게 파악했다.
그 사이의 미묘한 분위기도 말이다.
그도 자세한 원인까지는 몰랐지만, 최민혁 실장이 재무부와 딜을 했다는 것은 파악했다.
그 거래 대상이 메이런 프로젝트였고 말이다.
그는 바보가 아니었다.
무인 드론의 가치를 너무 잘 알았다.
때문에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머리를 굴렸다.
심지어 몇몇 상원, 하원 인사도 만나고 말이다.
다만 그들 역시 이번 일에 선뜻 나서지 않았다.
‘최민혁 실장’ 이름이 나오자 다들 쉬쉬한 것이었다.
딱히 최민혁 실장을 두려워해서가 아니었다.
결국은 돈이 엮인 문제 같았다.
윌리엄 사장은 안 그래도 이 일 때문에 머리가 복잡한데, 칭얼대는 아들 모습에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일은 그렇게 처리할 수가 없다.”
“아니, 아버지도 지금까지 한 일을 잘 알지 않습니까? 그년을 먹기 위해서 무려 10년 가까이 공을 들였다는 말입니다. 제가 어떤 모욕을 감수했는지 알면서 그런 말씀을 합니까?”
“…….”
윌리엄 사장은 내심 이를 갈았다. 그도 아들의 여자 문제에 터치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일은 제대로 다 해 놓고 했어야 했다.
“…미국 국방성 내에서 이 문제를 직접 나에게 언급했다.”
하지만 테일러 박사는 윌리엄 사장 이야기에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아, 그 국방성 이야기 나와서 하는 말이에요? 그거 심각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최민혁 그 새끼의 수작이 분명해요. 메이런 프로젝트에 지금까지 들어간 로비 자금만 얼마인지나 아십니까. 무려 3,000만 달러가 넘습니다. 그 새끼들은 절대로 이번 일에 낄 수가 없습니다!”
“…그 자금이 문제다. 자금의 일부가 합법적인 수단이 아니야.”
“네? 그게 무슨…….”
윌리엄 사장은 냉랭한 얼굴로 반박했다.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느냐? 네가 빼돌린 자금이 얼마 정도인지는 알아. 자칫하면 네가 감방에 갈 수도 있는 일이다.”
“…….”
테일러 박사는 움찔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정말 억울했다. 그 자금은 자기 개인용으로 쓴 것이 아니었다. 그저 이지수 박사를 압박할 수단으로 사용했다. 그건 윌리엄 사장이 더 잘 안다.
문제는 그걸 IRS가 아직은 소극적으로 들여다본다는 점이다.
이게 결정적인 리스크가 될 수가 있다.
그러면 밀리아머 역시 타격을 피하기 어려웠다.
윌리엄 사장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이번 일만 잘 정리하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거다. 그쪽에서 원하는 것은 냉정한 일 처리이니까. 그러니 이번 일은 포기해라. 드론 관련 특허도 전부 다 국방성에 넘겨.”
“아버지!!!”
“안다. 그런데 이번 일은 어쩔 수가 없어. 정말 감방에 갈 위험성까지 감수하고서라도 이 일을 밀어붙일 생각이냐?!”
테일러 박사는 그제야 윌리엄 사장의 모습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심각합니까?”
“그래.”
사실 테일러 가문에서 이 일을 포기하게 되면 국방성이 나머지 일은 알아서 다 처리하게 될 것이다. 아주 깔끔하게 말이다.
여기서 이 사업을 정리해서 청소해 버리면 증거는 다 사라진다.
윌리엄 사장도 차라리 그게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테일러 박사는 도저히 이 일을 쉽게 수긍하지 못했다.
표가 확 났다.
윌리엄 사장은 아들 성미를 잘 아는 터라 다시 한번 경고했다.
“FBI, IRS가 같이 이 일을 확인하는 것으로 안다. 그러니 무모한 짓을 하지 마. 나도 확인을 해봤다. 무인 항공기는 미래 전장에서 무시하기 힘든 기술이야. 하지만 핵심 기술은 우리 소유가 아니었어. 전부 이지수 박사에게 귀속되어 있더구나.”
“그래서 이지수 박사를…….”
“이미 최민혁 실장이란 놈이 이지수 박사를 보호하는 것으로 안다만…….”
“씨발!!”
테일러 박사는 ‘최민혁 실장’ 이름이 나오자 흥분해서 미친 듯이 날뛰었다. 그도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 처음에는 잘 몰랐다. 그러다 소송 중에 뒤늦게 최민혁 실장의 정체를 알았다.
생각할수록 분노를 떨치지 못했다.
그는 특히 자기 여자인 이지수 박사를 강탈당한 일 때문에 최민혁 실장을 증오했다.
윌리엄 사장의 차가운 시선을 의식하자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이번 일은 교훈으로 생각해. 네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할 테니까. 다만 여기서 사고를 치면, 그냥 넘어가기 어렵다. 이번 일은 이사회에서도 말이 나올 정도니까.”
“…알겠습니다.”
“농담이 아냐. 이 일은 어차피 꾸준히 제기된 문제였다. 국방성 내의 관료도 부담스러워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정리하는 것이 옳다.”
윌리엄 사장도 테일러 박사의 모습을 냉정하게 살폈다.
그 역시 테일러 박사가 날뛸 때는 그냥 그런가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니, 아들의 판단이 맞았다.
이지수 박사는 실로 대단한 인재였다.
그는 뒤늦게야 지난 일을 떠올렸다.
‘아쉽군. 생각해 보면, 당시 메이런 프로젝트 실무진이 날 설득하려고 했었지. 마크 소령이라고 했던가?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어. 아무래도 한번 확인은 해봐야겠어.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도 따로 조사를 해봐야 할 것 같아.’
* * *
밀리아머의 갑작스러운 행보는 비밀리에 처리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국방성과 손을 잡고 진행한 프로젝트를 중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미국 언론은 이 일을 가볍게 다루었다.
최민혁은 물론 이 사실을 미국 언론을 통해서 확인했다.
“…의외네요.”
조성돈 팀장은 이미 메이런 프로젝트, 밀리아머, 국방성과 관련된 조사를 며차례 철저하게 조사했다.
“아무래도 이전에 있었던 로비, 횡령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자금을 많이 빼돌렸나 보네요.”
“그것보다는 불법 로비가 문제일 겁니다.”
최민혁은 쓰게 웃었다. 그가 아는 한 미국은 최강의 민주주의 국가였다. 그런데 미국 내부를 막상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부패가 꽤 있다는 걸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딜 가나 비슷한가 봅니다.”
“…그렇습니다.”
“뭐, 우리가 미국을 걱정할 필요는 없겠죠. 중요한 것은 메이런 프로젝트이니까.”
조성돈 팀장은 사전에 준비해 놓은 메이런 프로젝트 보고서를 내밀었다. 이 자료는 KM 전자의 기획 팀이 따로 만든 것이었다.
“호, 박상기 차장님이 이 일까지 대리했군요.”
“능력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죠.”
그는 새삼 조성돈 팀장의 오른팔 격인 박상기 차장의 모습을 떠올렸다.
오디오 사업부를 안정화한 이였다.
이런 그의 행보 덕분에 오디오 사업부는 꾸준한 수익을 냈고 말이다.
‘IMF 시기에 그나마 KM 전자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이니까. 확실히…….’
보고서 내용은 꽤 구체적이면서 전문적이었다.
조성돈 팀장이 미국에서 있었던 정보를 다 넘겼다고 해도 말이다.
최민혁은 만족했다.
“좋네요. 이 보고서대로 메이런 프로젝트 핵심 인물에 대해서 잘 들여다보세요. 마크 프랭클린 소령 같은 사람은 다시 한번 조사해 보고요.”
“…알겠습니다.”
* * *
마크 프랭클린 소령은 군사용 드론 기술이 미래 전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고 확신했다. 이유는 조종사가 탑승하지 않아서 유인 전투기보다 장점이 많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무인 드론 자체는 조종사 없이 동작하는 덕분에 당장 많은 부분에서 비용을 절감할 수가 있다.
다만 한 가지 치명적인 문제가 존재했다.
원격으로 조종하게 될 때 자칫 무인 드론이 추락하기 쉬웠다.
조종 거리가 멀면 멀수록 그 리스크는 더 컸다.
심지어 오동작의 경우에는 어떻게 손을 쓰기도 어려웠다.
그나마 그냥 추락하면 괜찮은데, 오히려 아군을 공격해서 더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쉽게 해결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원격 조종과 인공지능 조종이라는 문제가 생겨난다.
문제는 이 판단을 결정하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슈퍼컴퓨터로 동작하지 않는 이상에는 처리 속도도 간단한 해결 대안이 없다.
마크 프랭클린 소령 역시 한동안 이 드론의 근본적인 한계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그런 차에 갑자기 나타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이지수 박사였다.
이지수 박사는 인공지능 분야에 신기원이라고 할 만한 원천기술을 고안했다. 이 기술을 바탕으로 해서 무인 드론 군사용 프로젝트 속도를 끌어올렸다.
덕분에 가능성이 없어 보이던 메이런 프로젝트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
이지수 박사가 군사용 무인 드론 기술 토대를 만들자 욕심을 낸 이가 있었다.
대표적인 이가 바로 테일러 박사였다.
정확히는 테일러 박사의 배후인 미국 내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군산복합체 중에 한 회사인 밀리아머였다.
테일러 박사의 아버지인 윌리엄이 바로 밀리아머의 사장이었다.
테일러 박사가 끼어들자 메이런 프로젝트의 상황이 꼬이기 시작했다.
이지수 박사는 여자답지 않게 고집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호구 취급당하는 것을 알자 일단 한걸음 물러났다.
이후엔 오직 프로젝트에만 집중했다.
테일러 박사는 이지수 박사를 가만두지 않았다. 그는 집요하게 이지수 박사를 스토킹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지수 박사는 참다 못해서 깔끔하게 이 프로젝트에서 손을 뗐다.
그 이후에 이 프로젝트는 완전히 산으로 가기 시작했다.
이지수 박사가 해놓은 결과물을 어떻게든 분석해서 일을 진행하려고 했는데, 가장 큰 문제가 된 것이 바로 인공지능 알고리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