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767화 (846/1,021)

#767.

“하면 1,000대 이후 물량은 제품 인증을 다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기능 오류도 잡아야지.”

“아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최태훈 차장은 버럭 화를 내질렀다. 차라리 인정받지 못한 시절이 더 좋았다. 무슨 붕어빵을 찍어 내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기수 부장 생각은 달랐다.

“3교대로 해서 야간에도 돌리면 되지 않을까. 필요하다면 협력 업체 쪽에 도움을 청하는 것도 한 방법이야. 그쪽은 아날로그 CCTV 인증을 받을 경험이 있잖아. 내가 듣기로 동남아나 일본 쪽에 수출도 했다면서?”

“아니, 협력 업체라고 무시하는 겁니까. 그 업체도 나름 10년 동안 이 분야에 짬밥이 있는 업체입니다!”

실제로 협력 업체인 동인 시스템은 광학이나 케이블 쪽 분야에 경험이 많은 업체였다.

그들도 처음에는 이기수 부장의 지시에 황당한 얼굴이었지만 반대하지는 않았다. KM 센서 측에서 충분한 자금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만약 이번 일만 잘 성공한다면 KM 센서 도움을 얻어서 사내 규모를 키울 수가 있었다.

더욱이 이번 일을 주도한 사람이 그 유명한 최민혁 실장이란 말에 그나마 하던 고민도 떨쳐 버렸다.

“하겠습니다. 우리 회사 사활을 걸고 이번 일을 돕겠습니다!”

“자칫하다가는 손해만 볼 수 있습니다. 초기 1,000대 물량은 영업용으로 사용하는 터라 손실로 잡힐 수가 있습니다.”

“최소한 원재료와 인건비 보상을 해 줄 것 아닙니까?”

“그거야 그렇지만 그래도 다른 납품처에 영향을 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인생의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더욱이 최민혁 실장님이 지시한 일입니다.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 네.”

이번에는 최태훈 차장도 진짜 놀랐다. 동인 시스템은 KM 그룹 계열사가 아니었다. 주거래 업체도 아니었다. 이번 일 때문에 서로 같이 협력하는 업체일 뿐이었다.

최악의 경우 개발만 하고 손을 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동인 시스템 사장의 생각은 좀 다른 것 같았다.

결국 최태훈 차장은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죽었다.’

* * *

CCTV 시제품 테스트 준비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KM 센서와 동인 시스템 인력이 야간 3교대로 일에 매달렸다.

생산하면서 불량을 잡아냈다.

불량을 잡아내면서 다시 추가 생산했다.

다행이라면 이 제품을 팔 물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능을 보여주기만 하면 되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동인 시스템은 이 일에 진지하게 매달렸다.

그들이 이제까지 쌓아온 역량은 나쁘지 않았다.

그건 KM 센서 역시 마찬가지다. 이 내부 인력 태반은 AD 설계 출신들로, 다들 경험이 많았다. 덕분에 그들 역시 최민혁 실장의 의도대로 빨리빨리 움직였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상업적인 판매 목적으로는 노이즈 문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서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이 문제는 시간만 지나면 해결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제품 인증이나 불량을 비롯한 나머지 문제는 뒤로 미루었다.

‘문제의 소지가 제법 있지만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자신이 노리는 목적은 따로 있다.

이 제품을 당장 판매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가 기대한 일정대로 상황이 흘러가자 곧바로 다음 계획으로 넘어갔다.

* * *

최영란 본부장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서 KM DVR 생산을 밀어붙이는 최민혁 실장 때문에 정신없이 그의 뒤를 쫓아다녔다.

최민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공장에 생산되어 나오는 시제품만을 조용히 살폈다.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2주만으로는 부족하겠어. 뭐, 그러면 일정을 좀 더 연기하면 되겠지.’

최민혁이 도착한 곳은 뜻밖에도 최용욱 회장의 자택이었다.

최용욱 회장은 산책하다가 갑자기 나타난 손자 최민혁 때문에 어리둥절했다.

“네 녀석이 갑자기 웬일이야? 그렇게 연락해도 미국에서 음풍농월하던 녀석이 말이다.”

초호화 펜트하우스에서 미모의 마사지사에게서 케어를 받는 생활을 즐긴 손자 최민혁을 비꼰 말이었다.

정확히는 주말 가족 모임에 번번이 빠진 것을 탓했다.

하지만 최민혁은 정말 그동안 정신없이 바빴다.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허, 좀 뜬금없구나.”

최용욱 회장은 정원 한쪽에 놓인 의자에 풀썩 앉은 채 최민혁의 말을 기다렸다. 그는 갑자기 나타난 손자 최민혁의 의도가 궁금한 것이었다.

최민혁도 딱히 말을 돌리지 않았다.

“KM 센서 말입니다. 제 지분을 모두 51%에 맞춰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시면 1억 달러를 투자하겠습니다.”

“글쎄다.”

최용욱 회장은 이전이라면 1억 달러 투자에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그런데 KM 그룹도 이제는 여유가 넘쳤다.

그는 이전과는 달리 최민혁 실장의 제안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 역시 KM 센서의 가치를 어느 정도 깨달았다. 미래 가치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아직은 핸드폰용 이미지 센서 상용화가 끝난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역시 중간마다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최근에 뭔가 서두른다고 보고를 받기는 했는데…….’

다만 자세히 알아보지는 않았다.

KM 센서가 설립이 된 지 이제 불과 몇 달이 채 되지 않았다.

이 짧은 기간 안에 실적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용욱 회장은 KM 센서의 가치를 절대로 낮게 평가하지 않았다.

“KM 센서는 엄밀히 말해서 다른 녀석을 위해 지분을 나눌 생각이다. 영란이 몫은 스스로 챙겼지만, 지연이나, 정수는 달라. 민수 역시 마찬가지다. 아직 적응도 못 하는 녀석이라서…….”

오랜 만에 듣는 사촌들 이야기에 최민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할아버지 지분으로 처리해 줬으면 합니다. 제가 그것까지 막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만약 제 제안을 거절하면 제가 KM 센서와 분야가 겹치는 계열사를 설립하겠습니다.”

KM 센서 설립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와 경쟁사를 만들겠다니.

최용욱 회장은 황당해서 최민혁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너, 지금 이 할아비를 협박하는 거냐?”

최민혁은 고개를 내저었다.

“뭐, 그렇게 받아들여도 됩니다. 다만 이번 일은 지금 꼭 필요해서 말입니다.”

최용욱 회장은 도깨비 같은 손자 최민혁의 행동에 화가 나기보다는 오히려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그게 무슨 일이야?”

“그건 지금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허허허, 이해할 수가 없구나. 네 녀석이 가진 자산은 나보다 더 많아. 아니, 우리 KM 그룹을 전부 합친 것보다 더 커. 그런데도 KM 센서에 욕심을 부린다는 말이야?”

“미국 재무부 미팅 이야기는 아실 거고, 재무부 측에서 절 압박하려는 분위기 정도는 들어보셨을 겁니다. 거기에 대한 대응 수단으로 KM 센서가 필요해서입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최민혁은 최용욱 회장의 처지를 생각해서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사실 아무리 자금이 많아도 미국 정부와 싸워서 이길 수는 없습니다. 더욱이 저처럼 투자 전문가는 더합니다. 미국 정부 처지에서는 상대하기 편한 상대입니다. 그들이 절 대단하게 여기는 것과는 별개로 저에 대해서 부정적인 세력도 제법 있습니다!”

최용욱 회장도 처음에는 손자 최민혁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대한민국 10대 대기업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용이나 뭐 이런 것을 말하는 거냐?”

“네. 한국 정부가 늘 하는 일이지요. 기업의 사회적인 기여를 말하는 겁니다. 물론 제가 호의로 이런 일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최소한 방패는 필요합니다.”

“흠.”

최용욱 회장은 신음성을 터뜨렸다. 그 역시 손자 최민혁이 하는 말의 의미를 모르지 않았다. 실상 그가 한국에서 사업할 때면 늘 경험하던 일이다.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서 사업한다면 여기보다 더한 차별 대우를 받아야 할 것이고, 그에 대한 대응책을 강구해야 했다.

“…KM 센서를 이용해서 미국 정부를 견제할 대안을 만들 수 있다는 소리야?”

최민혁은 씩 웃었다.

“KM 센서만으로는 힘듭니다. 하지만 그것도 이용하기 나름입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KM 센서 가치는 달라질 겁니다. 그러니 제가 호구가 아닌 마당에 KM 센서 지분이 필요합니다. 51%라고 한 것도 할아버지를 배려해서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냥 계열사를 새로 설립하는 것이 편합니다.”

정확히는 거짓말이었다.

이를 다 새로 준비하려면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소요된다.

심지어 상업적으로 팔릴 만한 CCTV를 개발하려면 또한 시간이 추가로 필요했다.

그랬던 것이 AD 설계 쪽의 전문 인력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었다.

최민혁 입장에서 새로 법인을 설립할 수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기수 부장을 비롯한 이들의 성과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에 대해 보상을 해줄 생각이니까.

그가 굳이 최용욱 회장을 찾아서 설득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들 때문이었다.

최용욱 회장은 그제야 이상한 점을 느꼈고,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 역시 손자 최민혁의 능력을 잘 알았다. 당장 미래 기술이 그 증거였다.

미래 기술 기업 가치가 폭증한 것은 아직도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방법이 뭔지는 몰라도 KM 센서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을 터였다.

KM 센서 가치가 미래 기술처럼 폭등한다면 최민혁은 정말 KM 그룹에 남 좋은 일을 해주는 호구가 되는 셈이다.

최민혁이 거기에 따른 지분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면 지분이 작아져도 그 가치는 몇 배나 더 오른다고 받아들여도 되는 거냐?”

“맞습니다. 아마 몇 배 이상의 가치가 될 겁니다. 다만 그래서 하는 말인데, 조건이 있습니다. 최문경 부회장님이나 그쪽 측근에게는 KM 센서 지분을 넘겨서는 곤란합니다. 그것만 지켜 주십시오.”

최용욱 회장은 안타까운 눈으로 최민혁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

“할아버지가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둘째 큰아버지 최훈열 전무 일은 잊은 겁니까. 상황을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번 일도 결론만 얘길 하면 최문경 부회장님과의 대립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그래. 알겠다.”

최용욱 회장은 한숨을 내쉬었지만, 손자 최민혁의 말을 거절하지 못했다. 애초에 두 사람의 갈등을 부추긴 것은 자신이었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명분으로 말이다.

실제로 그 결과는 그의 예상대로 잘 흘러갔다.

KM 그룹은 무서울 정도로 성장했다.

아니, 앞으로도 더 빨리 성장할 것이다.

최전선에 있는 손자 최민혁 실장 때문이다.

대신 KM 가문의 가족 관계는 불구대천 원수지간으로 격화되었다.

‘하.’

탄식이 나왔지만, 그가 설득한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니었다.

* * *

KM 센서 지분 매각은 불과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서 전광석화처럼 진행되었다.

애초에 KM 센서 계열사가 분리된 후에 지분 처리가 진행 중이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다만 여러 가지 후속 조치는 시간이 제법 걸렸다.

장승일 실장이 이 뜬금없는 일을 맡았는데, 이 일을 진행하면서도 황당하기만 했다.

그는 가능하면 이 일이 최문경 부회장의 귀에 들어가지 않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최문경 부회장이 이번 일을 모를 확률은 아주 희박했다.

결국 그는 기획 조정실 문이 부서질 정도로 큰 소리를 듣고야 말았다.

최문경 부회장이 문을 걷어차고 들어온 것이었다.

“야, 장 실장!!!”

“…….”

구길모 차장을 비롯한 기획 조정실 직원들은 다들 납작 엎드렸다.

그들 역시 최민혁 실장이 갑자기 한국으로 와서 진행하는 뜬금없는 일 처리에 황당했다.

이번에는 최문경 부회장이 미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실 최민혁 실장이 정말 무리하게 일을 진행한 것이었다.

또한 그들 역시 영문을 모르기는 매한가지였다.

미국에 있던 최민혁 실장이 갑자기 나타나서 한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KM 센서와 동인 시스템을 둘러싸고 일어난 일 말이다.

그들은 최민혁 실장이 이렇게 미친놈처럼 일하는 것을 처음 본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난리가 났다.

장승일 실장은 최문경 부회장의 양손에 멱살이 잡힌 채로 한쪽으로 쏠린 안경을 위로 치켜올렸다.

“…또 무슨 일입니까?”

“KM 센서 지분 말이다. 민혁이 그 새끼가 지분 51%까지 먹었다면서? 너,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이대로 그냥 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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