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6.
결국 그는 이 CCTV 프로젝트에 집중했다. 가용할 수 있는 나머지 팀 역시 최태훈 차장에게 붙였다.
이기수 부장은 겉으로는 봐서는 조용한 성격이기는 하지만 추진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김희수 연구소장이 부정적인 의견을 할 때마다 무시했다.
“이번 일은 저만 믿어보세요.”
“이봐 이 부장, 지금 중요한 일은 모바일 CMOS야. 자네 능력이라면 도움이 될 거야. 이런 소모성 일에 매달리지 마!”
“제가 질투해서 이런다고 생각합니까?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사람 일은 모르는 법입니다. 혹시 압니까. 제가 하는 프로젝트가 미운 백조가 될지 말입니다!”
그가 이런 주장을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최민혁 실장이 KM 그룹 분위기를 바꾸어놓았기 때문이다.
이전의 상명하복과 같은 분위기의 KM 그룹은 없었다.
오로지 실적만이 중요했다.
“허, 그 친구도 참.”
이기수 부장은 최태훈 차장을 비롯한 실무진을 밀어붙였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ARN 연구 팀 역시 이 일에 꽤 흥미를 보였다.
모바일 설계 개념이 어려우니, 이왕이면 그 복잡한 부분이 빠진 이 CCTV를 슬그머니 도와주었다.
다행히 모바일 CMOS 컨트롤러 개발에서 발생한 문제는 나오지 않았다.
그들이 그토록 원하던 결과였다.
이러한 결과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디지털 CCTV 개발에 성공한 것이었다.
하드디스크 타입의 이 새로운 디지털 CCTV는 무려 최민혁 실장 전생 때보다 5년을 앞당긴 결과물이었다.
“서, 성공이다!”
만든 이들조차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들도 막상 만들어놓고 보니, 꽤 괜찮은 아이템이었다.
* * *
최민혁 실장은 KM 센서 연구실에 막 도착해서 CCTV 개발에 들떠 있는 이들을 발견했다.
“…….”
미국에서 막 도착해서 시차 때문에 몰려오는 수마를 떨쳐낸 최민혁은 물끄러미 디지털 CCTV 시제품을 보면서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 역시 가끔 충고를 해주기는 했지만, 이걸 만들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핸드폰 CMOS라는 영역을 딱 정해줬기에 사고의 전환이 없다고 생각했다.
실상 이 프로젝트로 결과를 도출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저 혁신적인 기술이라는 측면에서 최영란 본부장을 부각시켜서 최문경 부회장을 압박할 카드로 쓸 생각이었다.
‘실패해도 나쁘지 않고, 운이 좋아서 되면 대박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이건…….’
최민혁은 자신의 눈치를 보는 이기수 부장을 비롯한 검증 팀을 힐끗 쳐다보았다.
이기수 부장 역시 이미 환호하기는 했지만, 최민혁 실장에게 칭찬을 바라는 애완용 강아지처럼 그를 쳐다보았다.
최민혁은 쓰게 웃고 말았다.
“제가 기대한 것 이상의 성과물입니다. 고생했습니다.”
“와와와!”
이기수 부장을 비롯한 최태훈 차장은 서로 끌어안은 채 열광했다.
그들 역시 최민혁 실장의 명성을 잘 알았다. MP3의 아버지 소리를 듣는 최민혁 실장은 이미 KM 그룹 내에서 영웅시 되는 인물이다.
최용욱 회장조차 넘어섰다는 평가가 나오는 인물이 바로 최민혁이다.
그런 그에게서 격찬을 들었다.
이건 아주 드문 경우였다.
최민혁 실장이 이제까지 누군가를 칭찬한 적은 콜린스 프로젝트가 유일했다.
나머지는 대다수가 최민혁 실장이 주도한 성과물이었다.
그런데 디지털 CCTV는 좀 달랐다. 전 AD 설계 직원이 이끌어낸 성과였으니까.
그건 최민혁 실장의 방문을 알고 뒤늦게 연구소를 허겁지겁 찾아온 최영란 본부장 역시 다르지 않았다.
“야, 민혁아, 너 정말 너무한 것 아냐. 내가 그렇게 급한 일이어서 방문하라고 경고할 때는 꿈쩍도 하지 않던 애가 겨우 이것 때문에 찾아온 거야?!!”
최영란 본부장이 딱히 CCTV 성과물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었다.
최민혁이 원한 것이 바로 CMOS 이미지 컨트롤러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쪽에서는 다급하게 CMOS 이미지 센서 컨트롤러 시제품이 놓여 있었다.
물론 동작은 한다. 다만 상업적인 용도로 아직 쓸 수는 없었다. 모바일 상태로 들어가기만 해도 제멋대로 동작해서다.
간혹 정상 동작을 할 때도 있지만 아직 실제로 써먹기에는 어려웠다.
시간이 더 필요했다.
사실 누구나 예상한 일이었는데, 역시나 예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원천기술과 상업화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걸 잘 아는 담당 엔지니어들은 다들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들은 갑자기 사단장 방문을 당한 병사들처럼 패닉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최민혁은 그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자기 꽁무니를 졸졸 따라붙는 최영란 본부장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보다 이 CCTV 프로젝트를 담당한 이기수 부장과 연구원을 힐끗 쳐다보았다.
흥분을 숨긴 이기수 부장은 별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평소에도 입이 무거운 사람이었다. 때문에 김희수 연구소장이 눈치를 줘도 아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최태훈 차장은 다소 눈치를 보기는 했지만 다른 연구원들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콜린스 연구 팀의 최구만 과장 스타일인가?’
최영란 본부장은 최민혁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인지 빽 소리쳤다.
“야, 최 실장, 너 날 무시하는 거야? 왜 내 말을 씹는 거야?!!”
최민혁은 계속 칭얼거리는 최영란 본부장의 행동에 혀를 찼다.
하지만 그도 최영란 본부장의 능력 하나만큼은 인정해야 했다.
“영란 누나가 인재 보는 눈이 있다는 것은 아니까. 진정 좀 해.”
자존심이 상한 최영란 본부장이 다시 빽 소리치려다가 흠칫 놀랐다.
“너, 정말 날…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최민혁은 이기수 부장 연구 팀을 힐끗 살피면서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저들 능력을 알아본 사람은 최영란 본부장이었다. 그녀는 AD 설계 때부터 저들 잠재력을 알아봤다.
그리고 이기수 부장을 비롯한 이들 역시 최영란 본부장을 꽤 믿는 눈치다. 그러지 않았다면 저렇게 입을 다물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뛰어난 용병술이다.
재벌 3세, 그것도 여자 몸으로는 쉽지가 않은 일이었다.
“기다려 봐!”
최민혁은 직접 컴퓨터 앞에 앉아서 마우스로 KM CCTV를 동작시켰다. 카메라 렌즈 초점이 맞지 않아서 문제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CCTV 동영상은 실시간으로 컴퓨터 하드에 저장되었다.
MPEG-2 압축 코덱에 따라서 말이다.
물론 이 작업은 칩에 의해서 자동으로 처리가 된다.
따라서 시스템 부하는 크지 않았다.
윈도우 동영상과는 크기 차이부터가 상대가 되질 않았다.
더 놀라운 것은 4채널이 기본적으로 된다는 점이다.
전생을 경험한 최민혁 실장의 처지에서는 딱히 놀라운 기술이 아니었다.
하지만 최영란 본부장은 좀 달랐다. 그녀로서는 놀라서 뒤로 넘어가야 할 수준의 물건이었다. 물론 그녀는 아직 그 의미까지는 모르는 눈치였다.
아날로그 CCTV를 이용하는 처지에서 의미 차이를 파악하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지. 지금 이 시점에 디지털 CCTV, 아니, DVR(Digital Video Recording)를 개발했으니.’
“누나, 아직도 모르겠어? 이거 디지털 방식으로 저장된 거야. 기존 아날로그 CCTV와는 성능이 비교조차 되지 않아.”
당장 눈으로 보이는 차이는 아주 간단했다.
동영상 파일을 마우스를 잡고, 이리저리 움직이기만 하면 되니까.
60분 동영상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기존에 아날로그 CCTV로는 할 수가 없는 기능이었다.
최민혁은 몇 가지 시범을 더 보여주었다.
최영란 본부장은 그제야 최민혁에 관한 관심을 떨쳐 버린 채 그의 옆에서 DVR 시제품을 멍하니 지켜보기만 했다.
그녀는 경영자답게 이 아이템을 응용할 분야를 떠올렸다.
‘가만, 이거 경찰서를 비롯한 관공서에 납품할 수도 있잖아.’
심지어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응용 분야가 너무 많아서 다 헤아리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최민혁은 그런 최영란 본부장의 모습에 피식 웃으면서 고민을 거듭했다.
아니, 중간에 이기수 부장과 차태훈 차장이 하는 말을 듣긴 했다. 그제야 다들 침묵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최영란 본부장 역시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듣기만 했다.
최민혁은 고민했다. 그는 이 CCTV를 이용하면 꽤 재미를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생각보다 아주 간단했다.
‘이익이 많이 남아. 정말 많이 남지.’
바로 DVR의 강점이다.
다른 제조에 비해서 순이익이 어마어마하게 남는 제품이었다.
더욱이 KM CCTV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결합한 제품이다. 당장은 그 어떤 경쟁자도 없다.
시장을 독식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미국 재무부를 이용하면 초단기간에 덩치를 키울 수도 있어. 거기에 다른 용도로 써먹을 수도 있어. 이러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는데…….’
애초에 KM 센서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최민혁은 기존에 했던 KM 센서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다.
‘아무래도 지분 조정이 필요할 것 같아. 그건 어려운 문제가 아닐 거고. 중요한 것은 시간이 너무 없어. 당장 이 제품의 가치를 보일 필요가 있어.’
최민혁은 고민을 거듭했다. 미국 재무부와의 만남 이전에 이번 일을 터뜨려야 했다. 결국, 재무부 미팅 일정은 조율해야 했다.
‘2~3주 정도는 일정을 연기해도 괜찮겠지. 그렇다면…….’
그는 뇌가 활활 타오를 정도로 머리를 돌리고, 또 돌렸다.
이 DVR를 최대한 이용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 말이다.
그가 고려한 건 단순히 매출이나 이익만이 아니었다.
미국 재무부를 압박할 이벤트를 고민했다.
그러다가 문득 한 가지 사건을 기억해 냈다.
‘아, 그 사건이 좋겠어.’
최민혁은 어느 사이엔가 침묵한 채 멍하니 자신의 입만 뚫어지게 쳐다보는 최영란 본부장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누나, 혹시 경찰청 내에 아는 인맥이 있어?”
“그게 무슨 소리야?”
“이 KM CCTV, 한번 실전에 적용해 보자.”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야.”
하지만 최민혁은 그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잠깐 고민했다.
당장 떠오른 것은 재무부 미팅.
미국 재무부가 원하는 것은 CDMA와 MPEG-2 지분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가능한 가격을 할인하려고 할 것이다.
당장 결과가 없으니, 그들의 주장을 무시하기도 어렵다.
특히 MPEG-2는 말이다.
‘MP3 특허료 때문에 욕심을 가졌겠지만 그런 말은 하지 않겠지.’
그렇다면 최민혁 자신이 할 일은 분명했다.
그 전에 증거를 보여주면 된다.
MPEG-2 특허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말이다.
“내일 당장 10대만 설치하자. 그 정도는 충분히 된다고 했잖아.”
“야,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그녀는 한국의 보수적인 시스템에 잔소리를 가감 없이 늘어놓았다.
그런데 그녀의 지적이 맞았다.
최민혁 자신은 국내에 별다른 정치적인 자산이 없었다.
있다면 최용욱 회장에게 부탁해야 하는데, 요즘 상황이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니었다.
CDMA 사업 때문에 정부와 사이가 냉랭해진 것 때문이었다.
최민혁은 여전히 최영란 본부장 말을 씹었다.
“누나가 힘들면, 내가 해보지. 이기수 부장님, 들었죠? 일단 급한 대로 10대 시제품, 아니, 초도 물량 1,000대를 준비해 주세요. 설치해야 할 장소는 한국이 아니라 미국입니다!”
“하, 하지만…….”
“하면 다 됩니다. 최선을 다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다들 최민혁 실장이 왜 저렇게 호들갑을 떠는지 이유를 잘 몰랐다.
* * *
이기수 부장은 최민혁 실장의 지시를 받고는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특히 미국에 수출할 물량 1,000대를 만든다는 말에 말이다.
다만 전혀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어차피 협력 업체와 같이 이번 연구를 진행했다.
자잘한 문제는 그쪽에서도 어느 정도 처리한 경험이 있었다.
더욱이 협력 업체 역시 KM 그룹의 명성에 대해서 잘 알았다.
덕분에 그들은 이번 일에 적극적이었다.
최태훈 차장은 갑자기 들이닥친 1,000대 물량 생산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
“아직 제대로 동작도 하지 않는데, 미국 어디에 수출한다는 이야기인지 모르겠습니다. 이거 너무 급하게 일을 처리한 것 아닙니까?”
이기수 부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알아서 일정을 조율하란 뜻일 거야. 일단 지금은 시제품 테스트를 먼저 하려는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