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844화 (841/1,021)

#844.

‘역시 이걸로는 힘든가. 좋아, 내가 고안한 기술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면 되겠지. 뭐, 이런 일에는 그럴듯하게 결과만 나오면 되지. 설마 내가 원천기술 가지고 장난칠 거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최민혁은 결국 핵심인 무선랜 기술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바로 이 기술에 관해서 연구하는 단체였다.

‘내가 간혹 민간 연구소를 자주 찾고는 했지. 장승일 실장의 보고서를 보면 내가 방문한 연구소는 무조건 대박 난다고 생각하니까.’

그렇다면 답은 간단했다.

자신이 적당한 미끼를 선택하면 될 일이었다. 이번에는 김현탁 사장이나 최문경 부회장이 자기 욕망을 쉽게 떨치지 못하게끔만 하면 되니까.

그는 조성돈 팀장을 호출해서 한 사람과 약속을 잡으라고 지시했다.

“ETRI의 오현종 팀장과 약속을 잡아주세요.”

“…알겠습니다.”

* * *

오현종 팀장은 최민혁 실장의 조언을 받아서 ETRI 내에서도 독보적인 실적을 남겼다. 심지어 그는 최민혁 실장의 CDMA 조언을 그냥 듣지 않았다.

그는 이 CDMA 연구를 위해서 기존에 하던 연구를 다 접었다.

이런 그의 노력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

그 덕에 정부가 밀어주는 CDMA 연구에서 한 축을 책임진 실무자가 될 수 있었다.

더욱이 CDMA 사업 최종 보스라 할 수 있는 최민혁 실장이 자본, 기술을 밀어준 덕분에 순탄하게 이 연구를 풀어갔다.

완성도는 더 말할 것이 없었다.

심지어 최민혁 실장의 제안을 받아서 미국에 가서 퀄컴 본사 일까지 도와주었다.

오현종 팀장의 영향력은 이제 독보적이라는 말로도 부족했다.

정부 고위 인사조차 오현종 팀장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이 모든 성과는 다 최민혁 실장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는 언제 한번 시간을 내서라도 최민혁 실장에게 크게 한턱 쏘고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최민혁 실장이 전화 한 통화로 자기 위치를 확인한 후에 자신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오 박사님, 오랜만입니다.”

“맙소사, 최 실장님!”

오현종 팀장은 돌아가신 아버지라도 다시 만난 사람처럼 최민혁 실장을 살갑게 대했다. 늘 소심하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최민혁은 두 손으로 그를 밀어냈다. 상대가 질척대서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상대는 자신이 베푼 은혜를 잊지 않은 것 같았다. 이러면 일이 더 쉬워질 터였다.

‘이래서 인맥이 좋다니까.’

솔직히 그가 만약 오현종 팀장과 모르는 사이였다면 이렇게 만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CDMA 정부 사업의 상업성이 가시화된 이후에 어지간한 대기업도 그와의 약속을 잡기가 어려웠다.

최민혁은 자신이 만든 인맥 때문에 특별대우를 받은 셈이었다.

“한 가지 부탁할 일이 있습니다.”

“말씀만 하십시오. 지시하시면 무엇이라도 다 도와드리겠습니다!”

“으음, 무선랜을 비롯한 근거리 통신망 쪽의 전문가를 찾습니다. 다만 이분은 성질이 좀 고약하고, 남의 연구 성과를 도둑질하는 타입이면 좋겠습니다. 쉽게 말해서 뒤통수를 쳐도 욕 안 들을 정도면 됩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냥 연구 빌런을 찾는다는 말입니다. 오 팀장님은 누구보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 순간 오현종 팀장이 떠올린 사람은 알력 싸움에서 쫓겨난 박재호 실장이었다.

그야말로 최악의 빌런이었다.

그가 최민혁을 살갑게 대하는 이유도 근본적으로 박재호 실장을 쫓아내는 데 최민혁 실장의 도움을 얻었기 때문이다.

“의도를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박재호 실장 같은 연구원을 이용 좀 해먹을 생각입니다.”

“그건…….”

최민혁 실장의 방문 소식을 들은 김승구 팀장 역시 오현종 박사의 연구실로 찾아왔다가 최민혁이 하는 말을 듣고는 눈만 도르르 굴렸다.

두 사람 다 최민혁 실장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최민혁 실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난감한 일이 있습니다. 아, 뭐 범죄는 아닙니다. 다만 두 분이 굳이 자세한 내막을 알 필요는 없습니다. 알면 오히려 문제가 됩니다. 계획은 마음에 안 드는 인간에게 한 방 먹일 목적이라고 할까요?”

“흠.”

오현종 박사가 만약 다른 사람이라면 욕설을 했을 테지만 감히 최민혁 실장을 앞에 두고 그러지는 못했다. 그는 또한 박재호 실장 일도 있고 해서 자세한 것을 묻지 않았다. 만약 알아야 할 일이라면 최민혁 실장이 미리 말했을 것이다.

다만 그 역시 ETRI 내에서 밑바닥을 구르고 구른 인물이다. 성격 엿 같은 개새끼 한 마리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신기섭 실장.”

“신기섭 실장?”

뒤따라 이름을 말한 김승구 팀장은 피식 웃고 말았다.

두 사람이 신기섭 실장을 싫어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신기섭 실장은 남 험담하기를 좋아하고, 남의 성과를 깔아뭉개기가 취미다. 그런데 단순히 말로만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필요하다면 실제로 문제점을 파악해서 크게 키우기도 했다.

이런 신기섭 실장의 성향에 잘못 대응하는 경우에는 오히려 마녀 사냥을 당하기 일쑤다.

잘못은 설사 신기섭 실장이 했다고 해도 다른 점을 공격하고 부풀려서 상대가 스스로 물러나게 했다.

실제로 그렇게 해서 ETRI 내에서 그만둔 박사 숫자가 무려 30명이 넘었다.

이들 대다수는 연구진 중에서 최상위 실력이었다.

ETRI로서는 뼈아픈 손실이었다.

최민혁은 굳이 신기섭 실장에 대해 자세한 것은 묻지 않았다. 그는 어지간해서는 감정 변화를 보이지 않는 오현종 팀장의 표정을 보고서야 신기섭 실장을 이용해도 후환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좋네요. 혹시 이분의 프로필을 볼 수 없을까요? 이왕이면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것을 포함해서요. 무슨 말인지 아시죠?”

“…알겠습니다.”

오현종 팀장은 다음 날에 신기섭 실장에 대한 프로필을 가져왔다.

그 안에는 신기섭 실장 자신이 한 성과도 일부 있었지만 주로 남의 것을 도둑질한 것이 태반이었다.

오현종 실장은 놀랍게도 그런 사소한 것을 일일이 다 기록했다.

최민혁 실장은 그 내용을 보면서 피식 웃고 말았다.

‘미끼로 딱이군. 우리 부회장님과 성향이 딱 맞는 인간이야.’

* * *

신기섭 실장은 한때는 ETRI 내에서도 독보적으로 잘나갔다.

그가 연구하는 근거리 통신망에 많은 기업이 관심을 뒀고, 실제로 투자도 많이 했다.

오성 전자, LH 전자를 비롯한 한국 대기업은 죄다 투자했다.

그는 특히 지금은 오현종 팀장에게 밀려난 박재호 실장과 손발이 잘 맞았다.

두 사람 다 성격이 비슷해서 온갖 갑질을 다 한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박재호 실장에 대한 안 좋은 루머가 돌았다.

그런가 싶더니, 갑자기 박재호 실장이 지금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신기섭 실장은 기가 막혔다. 그렇게 잘나가던 박재호 실장이 순둥이 같은 오현종 팀장에게 뒤통수를 맞을지는 상상도 못 했다.

그는 꼰대 기질이 다분했지만, 눈치는 빨랐다.

납작 엎드린 채 몸을 사렸다.

다행이라면 오현종 팀장, 김승구 팀장이 크게 주목을 받은 덕분에 그를 공격하는 이는 없었다.

있기는 있어도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봤다.

일테면 괜찮은 연구 성과를 주든지, 아니면 투자를 몰아주든지 말이다.

신기섭 실장은 뒤늦게 오현종 팀장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 알았다.

“최민혁 실장이라…….”

그의 가장 측근인 정기섭 박사는 이를 진지하게 걱정했다.

“아무래도 최민혁 실장의 영향력이 심상치 않습니다.”

“알겠네. 지금은 조용히 지내지.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흐름이 바뀔 거야.”

그는 온갖 갑질을 일삼지만 눈치 하나만큼은 귀신이었다.

때문에 당분간은 침묵하기로 했다.

다행히 그의 행보는 나쁘지 않았다.

오현종 팀장을 둘러싼 이슈가 너무 커서 그에 관한 관심조차 사라졌다.

신기섭 실장도 처음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를 갈았다. 오현종 팀장이 CDMA까지 먹었기 때문이다.

‘젠장 통신망은 내 영역인데.’

정확히는 근거리 통신망 쪽이라서 CDMA 쪽은 아니었다.

다만 둘 다 한 카테고리인 무선 통신으로 묶으면 억지로 묶을 수는 있다.

게다가 이런 방식은 그의 전매특허였다.

신기섭 실장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딱히 나서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오현종 연구 팀이 진행하는 CDMA를 참조해서 슬쩍 근거리 통신망과 CDMA 통신망을 엮는 연구를 진행했다.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면 대기업은 오히려 이 성과를 더 좋아했다는 것이다.

특히 최민혁 실장과 소통하지 못한 연구 영역에 관심을 보였다.

여기엔 오성 전자와 LH 전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대기업 연구소가 해당하였다.

신기섭 실장으로서는 오히려 대박을 친 것이었다. 그는 일단 그럴듯한 성과만 있다면 오현종 팀장을 누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특히 IP 시티폰 사업에 관심을 가졌고, 이쪽도 따로 연구 팀을 배당했다.

한 사람이 그를 찾아온 것은 딱 이 시기였다.

“박사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바쁘다고 그래.”

실제로 신기섭 실장은 매우 바빴다. 투자자 중의 한 곳인 KD 통신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들은 당장 투자를 줄이겠다고 협박을 해왔다.

정확히는 KD 통신 적자폭이 확대되어서 연구 성과가 없는 연구소 투자를 대폭 줄인 결과였다.

“…그게, 최민혁 실장입니다.”

신기섭 실장은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을 뿐, 화들짝 놀랐다. 최민혁 실장에 대한 생각은 늘 일상적으로 했다. 다만 이제까지 마땅한 기회를 찾지 못했을 뿐이다.

그런데 떡이 자기 스스로 찾아왔다니.

흥분을 감추기가 쉽지 않았다.

“개소리 마. 지금 우리 사정을 알면서… 뭐? 최민혁 실장이라고? KM 전자의 그 최민혁 실장? 이번에 KM 센서를 설립한 그 최민혁 실장을 말하는 건가?”

“네!”

“당장 데려와, 아니, 내가 가지.”

* * *

신기섭 실장은 마치 영업 사원이라도 된 것처럼 최민혁 실장을 환대했다. 그는 심지어 미모의 연구원을 호출해서 접대까지 시켰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저도 반갑습니다.”

최민혁 실장은 당혹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도 이런 접대는 처음 받아봤다. 심지어 미모의 연구원을 두 명이나 호출해서 접대까지 시키다니.

‘제정신인가?’

연구원 두 사람의 미모 수준은 미스코리아 최상위는 아니어도 상위권은 가능했다.

다행한 일이라면 언짢은 표정을 한 미모의 연구원 두 사람은 의외로 최민혁 실장에게 반감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들은 ETRI 연구원이었기에 누구보다 최민혁 실장의 능력을 잘 알았다.

가히 레전드리 그 자체가 바로 최민혁 실장이었으니까.

최민혁은 두 사람의 태도에 당황했다. 강압 때문에 이 자리에 온 것인지, 아니면 자발적으로 나타난 것인지 알 수가 없어서 피식 웃고 말았다. 그는 일이 생각보다는 더 쉽게 흘러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굳이 일을 더 길게 끌 필요가 없었다.

“신 박사님이 한국에서 무선랜 관련 최고 권위자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무선랜의 단점에 대해서는 잘 아실 겁니다. CDMA처럼 광범위한 영역을 가지지 못하니까요.”

부정적인 이야기에 신기섭 실장과 그의 부하인 정기섭 박사는 묵묵히 듣기만 했다. 전부 다 맞는 이야기였다. 정확히는 그들도 늘 고민하는 문제였다. 관련 대기업은 계속해서 대안을 요구하고 말이다.

다만 성과는 그다지 좋지가 않았다. 두 사람이 최민혁 방문에 환호하는 것도 혹시 실마리를 얻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최민혁은 그제야 자신이 삼 일을 꼬박 새워서 만든 성과물을 내밀었다.

“물론 이 아이디어는 이미 특허를 내기는 했습니다만 특별하지는 않습니다. 5.7GHZ와 같은 새로운 주파수를 활용하는 것이니까요.”

정확히는 기존의 무선랜이 가진 느린 속도, 주파수 혼선, 사용자 숫자가 늘어날 때 속도가 떨어지는 점에 대한 대안이었다.

그 예로 든 것이 바로 핸드오프였다.

정확히는 제한적인 핸드오프였다.

자동으로 통신 채널을 전화해 주는 핸드오프 이야기가 나왔다.

기술적으로도 꽤 그럴듯했다.

최민혁 실장은 그 아이디어를 정리한 보고서를 하나씩 설명해 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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