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843화 (840/1,021)

#843.

김기범은 질투심에 미쳐서 하루 종일 최민수를 갈구었다.

그는 솔직히 최민혁 실장이 왜 그 자리에 나타났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최민혁 실장에 대한 복수심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저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최민수가 어째서 증여를 받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결국 자신의 감정을 쉽게 추스르지 못해서 김현탁 사장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미친 듯이 최민수가 한 이야기를 과장해서 폭로했다.

“…….”

하지만 김현탁 사장은 김기범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도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도 사실 두 회사의 지분 매각과 관련된 정보를 얻기는 했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도저히 판단할 수가 없었다.

그는 부랴부랴 가용 직원을 총동원해서 사건을 알아봤다.

그런데 이 사건은 시작과 끝이 맞지가 않았다.

미국에서 조용히 있던 최민혁이 갑자기 한국에 온 것부터가 이상했던 것이다.

최민혁의 행보가 너무 오락가락해서 오히려 혼란만 느꼈다.

그런데 그 출처가 최민혁 실장일지는 몰랐다.

심지어 최민수의 지분 증여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다.

“형, 이게 말이 돼요? 아니, 민수 그 새끼 나이가 몇인데, 벌써 증여를 받습니까. 하필이면 KD 통신, KD LCD 지분을 증여받아요. 이 두 회사가 우리 그룹에 얼마나 중요한지는 사장인 형이 더 잘 알잖아?!”

김현탁 사장도 김기범의 탐욕에 혼란해서 버럭 소리쳤다.

“야, 정신 좀 차려!”

“아니, 지금 제가 정신 차리게 생겼습니까? 이건 아니라고요. 반드시 이 일을 막아야 합니다.”

“알았으니, 그만 좀 해.”

“아뇨. 형이 아직 이 상황을 잘 이해 못 한 것 같아요. 아니, 생각을 해보세요. 민수 그놈이 두 회사 지분을 증여받아서 이사회에 참석할 것 아니에요? 그거 문제 아닌가요? 그놈이 경영이 뭔지나 압니까. 이거 정말 심각한 문제예요!”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최용욱 회장 역시 두 회사를 지켜보기는 하지만 다소 보수적이었다.

오히려 최문경 부회장이 두 회사의 경영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자꾸 두 번 말하게 할래?!!!”

김현탁 사장도 평소였다면 즉시 김희찬 부사장에게 보고했을 테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아무리 번민한다고 해서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김기범은 좀 달랐다. 그는 마치 조현병에 걸린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했다. 더욱이 이번 일도 그냥 한 것이 아니었다.

“현탁 형, 나 확실히 믿어준 거지? 이 정보가 형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아. 아니, 그냥 이 자리에 있으면 안 돼. 빨리 움직여서 해결해야 해!!!”

“…그래. 알았다.”

다만 그도 한 가지를 확인해야 했다.

“그런데 민혁이 그놈을 한국대에서 만났다고 했잖아. 어떻게 딱 그 시점에 만나. 약속을 잡지 않으면 만나기 어렵잖아. 너희는 한국대 구석 벤치에서 이야기했다면서? 민혁이 그놈이 그 위치를 어떻게 알아? 더욱이 민혁 그놈은 꽤 바빠. 정말 그냥 운으로 만난 거야?”

그제야 김기범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학 본관에 일이 있어서 왔다고 했어. 민수 그놈하고 전화 통화도 했으니, 사전에 이야기가 오고 갔겠지.”

“대학에? 민혁이 그놈은 지금 할 일이 많아. KM 센서 영업 처리만으로 골치가 아플 거야. CES도 이제 얼마 안 남았고, 미국 증시에서 에플 공매도가 다시 늘어나서 말이 많아. 다른 대주주와는 달리 민혁이 그놈은 에플에도 직접 기술 지원을 한다는 소리가 파다해. 그런데 고작 대학 일을 처리하려고 왔다고?!”

김기범은 탐욕과 질투심에 미쳐서 최민혁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아, 나도 잘 몰라! 난 그 자리에서 민수랑 이야기하다 우연히 만난 거야!”

“도대체 민수 그 자식은 왜 만난 거야?”

“상의할 일이 있다고 했잖아. 민수 그놈은 평소에도 중요한 일은 나에게 자문했어. 조금 전에 다 말한 그대로야. 그게 KM 그룹 지분 증여 문제였다니까. 아니, 내가 분명히 말을 했는데, 못 믿는 거야?!!!”

“…아니다.”

김현탁 사장은 ‘우연한 만남’에 대해서 잠깐 생각하다가 곧 머리를 털고 말았다. 의도적으로 정보를 흘렸다고 하기에는 김기범의 능력이 너무 떨어졌다. 최민수 역시 마찬가지고.

‘설마 아니겠지. 최민혁 그놈이 기범이 이놈을 노렸을 리가 없어. 그보다는 지금 이 일이 더 큰 문제야. 설마 민혁이 그 새끼가 최용욱 회장의 지분을 노리다니.’

김현탁 사장 본인은 못 느끼고 있지만 김기범이 호들갑을 떠는 것에 영향을 받았다. 이미 개인적인 감정이 흔들린 후라 최민혁 실장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 능력을 잃고 말았다.

* * *

김현탁 사장은 결국 김기범이 가져온 정보를 김희찬 부사장에게 보고했다.

당연히 DL 그룹 본사는 발칵 뒤집혔다.

KD 통신, KD LCD는 DL 그룹의 지분이 가장 컸기 때문이었다.

KD 통신 초기 자본금은 한부 그룹, 샐로먼 브러더스, 오성 전자, 최용욱 회장, 최문경 부회장, DL 그룹이 공평하게 나누었다.

그런데 중국에 대한 본격적인 투자를 진행한 후에 상황이 달라졌다.

샐로먼 브러더스가 자본금을 늘렸다.

그다음 순서가 바로 DL 그룹이었다.

그 뒤를 따라 최문경 부회장과 최용욱 회장 역시 조금씩 투자금을 늘렸다.

하지만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2강 체제가 되었다.

샐로먼 브러더스와 DL 그룹이 주도권을 잡은 것이었다.

KD 통신의 중국 투자금은 중국 인구와 영토 때문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샐로먼 브러더스는 투자 은행이라 인력을 늘리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걸 중재한 세력이 다름 아닌 DL 그룹이었다.

결국 DL 그룹은 KD 통신 사업이라는 늪에 빠져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했다.

물론 지금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KD 통신 적자가 늘어나면서 상황이 복잡해진 것이었다.

김현탁 사장이 비록 이사회에 밀리는 바지사장이라도 내부적으로 악화하고 있는 회사 재정 상황을 잘 알았다. 하지만 그 역시 통신 사업 특성상 초기 투자금이 많이 들어간다고 해도 지금 상황이 불안해서 DL 윗선에 계속 리스크 관리를 요구했다.

김상구 회장은 당연히 김현탁 사장의 경고를 무시했다.

그런데 최용욱 회장 지분에 변화가 생기는 일이니, 가볍게 넘길 수는 없었다.

더욱이 김현탁 사장은 이미 김기범에게 휩쓸려서 격한 발언을 내놓았다.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면 절대로 안 됩니다. 최용욱 회장의 의도를 반드시 파악해야 합니다. 증여라니, 도대체 이게 말이 됩니까?!!”

결국 김상구 회장은 김희찬 부사장과 같이 최용욱 회장을 만났다.

“…어떻게 된 겁니까?”

최용욱 회장은 갑자기 나타난 김상구 회장의 말에 혀를 찼다.

그도 어쩔 수 없어서 최민혁 장단에 맞추기는 했지만, 김상구 회장이 단단히 분노한 채 나타날지는 몰랐던 것이다.

“집안일입니다.”

“최 회장님, 저 지금 농담하자는 것 아닙니다. 오늘 일정 다 취소하고 지금 이 자리에 나온 겁니다. 최소한 사정을 설명해 주십시오.”

“정말 이런 요구를 들을 줄은 몰랐습니다. 좋습니다. KD 통신과 관련된 이야기이니, 말씀드리죠. 민혁이 그 녀석에 대한 KM 그룹 임원진의 반응이 아주 좋습니다. 그래서 다른 녀석들에게 기회를 줄 수밖에 없습니다.”

“KD 통신의 회장님 지분을 다 넘겨서 말입니까? 혹시 KD 통신을 포기하려는 겁니까?!”

“그럴 리가 있습니까. 전 KD 통신의 미래를 잘 압니다.”

“그러면 그건 뭡니까? 민혁이가 회장님 지분을 원한다는 소리가 파다해요. 민수 그 녀석에게 지분을 넘기면서 민혁 그 녀석이 회장님이 가진 지분을 다 매각한다는 소리가 있어요.”

“아, 그건… 민혁이가 제 지분을 요구한 것은 사실입니다. 현 시점 가치에서 프리미엄 10%까지 붙여 줄 테니 넘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민혁이 그 녀석의 이야기를 제가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최용욱 회장은 최민혁이 넌지시 KM 그룹 경영권 승계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간접적으로나마 표현하고 말았다.

이를 들은 김상구 회장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김희찬 부사장과 김현탁 사장을 교대로 쳐다보았다.

김현탁 사장은 여전히 머리가 아픈지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는 욕심에 대한 집착 때문에 이성과 욕망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김상구 회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말을 해서 좀 그런데, 우리 DL 그룹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서 최용욱 회장님에게 당장 지분을 사들일 수가 없습니다.”

“시간을 달라는 말입니까? 그런데 그 제안을 들어줄 수가 없습니다. 이제 경영권 승계 문제를 매듭 짓기 위한 작업을 해야 합니다. 민수를 비롯한 아이들에게도 기회를 줄 수밖에 없습니다.”

최용욱 회장은 이미 최민혁과 손을 잡았기에 김상구 회장의 제안을 들어줄 수가 없었다. 아니, 그는 손자 최민혁 의견 때문만이 아니라 이미 추가 조사를 통해서 두 계열사의 미래에 대해서 불안감을 느꼈다.

그는 계속해서 ‘증여’ 문제를 걸고넘어졌다.

“김 회장님 마음은 이해하지만 제 나이와 건강이 문제입니다. 이제는 상속 문제를 사전에 정리할 생각입니다. 특별히 다른 뜻은 없습니다.”

지분을 누구에게 넘긴다는 말은 없었다. 그저 합리적인 제안을 하는 이에게 지분을 다 넘기겠다는 태도였다.

최민수의 증여 건은 결국 명분인 셈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최민혁 실장의 제안 쪽이었다.

김상구 회장은 내심 분노했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이거 심각한 일이잖아.’

* * *

김상구 회장은 결국 최용욱 회장의 내심을 알자 곧바로 최문경 부회장을 찾아갔다.

최문경 부회장 처지에서는 김상구 회장의 방문과 그의 이야기가 당황스러웠다.

그는 조카 최민혁의 술수가 의심스러워서 아직 조사 중이었다.

이전과는 달리 이번 일은 실패해도 상관이 없다는 보수적인 생각마저 했다.

그런데 김상구 회장이 김희찬 부사장과 김현탁 사장을 데리고 나타날지는 몰랐다.

특히 김상구 회장의 이야기는 그의 마음을 계속 흔들어놓았다.

최문경 부회장은 김상구 회장이 직접 자신을 찾아와서 KD 통신, KD LCD의 최용욱 회장 지분 문제를 걸고넘어질지는 몰랐다.

이 일은 기존에 최민혁 실장이 했던 일과는 많이 달랐다.

흥미로운 사실은 김현탁 사장이 갑자기 깨달음을 얻은 무인처럼 반대표를 던졌다.

“잠깐만요, 회장님, 이번 일은 최문경 부회장님의 생각처럼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의견을 반박해서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상한 좀 있습니다.”

그가 의심한 것은 최민혁 실장의 행보였다.

김기범의 이야기가 아무래도 석연치 않았다.

“차라리 지분 매입에 대한 자금이 필요하다면 제삼자를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이 후보 기업은 여러 곳이 있습니다.”

“……?”

갑작스러운 상황에 다들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김현탁 사장은 빌미를 얻자 계속 자기 주장을 했다.

“두 계열사 지분 매입에 추가로 들어가는 자금은 못해도 8억 달러는 넘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주먹구구식으로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최문경 부회장님의 주장이 마냥 틀리지 않습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이들 대부분은 이런 유사한 일을 몇 차례 경험한 적이 있었다.

최문경 부회장이 김현탁 사장의 지적에 순순히 수긍했다.

“김 회장님, 아무래도 이번 일은 다시 재검토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알겠네.”

김상구 회장 표정이 좋지는 않았지만 결국 수긍하고 말았다.

* * *

최민혁은 자신이 박아놓은 구명진 부장에게서 김상구 회장의 방문 안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그로서는 절대로 원하는 결과가 아니었다.

“일이 생각처럼 안 풀리네요.”

조성돈 팀장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최 실장님에 대한 경계가 그만큼 높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일은 직접 끼지 말아야 했는데, 아쉽습니다. 설마 김현탁 사장이 욕망을 떨쳐낼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래도 일이 이만큼 진척되었으니, 최 실장님의 계획이 마냥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DL 그룹 사정이 좋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결국 자신이 나서서 다른 대안을 찾아야 했다.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이미 사전에 몇 가지 대안을 마련해 놓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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