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841화 (838/1,021)

#841.

최민혁 실장을 만나고 난 후에 장승일 실장이 제일 먼저 한 것은 최용욱 회장의 서재를 지속적으로 방문하는 일이었다.

그것도 공개적으로.

이게 그냥 하는 일이 아니었다.

부회장 비서실에서 보란 듯이 진행한 일이니까.

아니, 심지어 구길모 차장에게 은밀하게 지시해서 정보까지 흘렸다.

[전 모르는 일입니다.]

[하, 구 차장님, 정말 이럴 겁니까? 제가 오늘 한턱 크게 쏘겠습니다.]

[그건 곤란합니다. 지금은 일이 바빠서. 어어, 진짜 안 됩니다.]

구길모 차장은 비서실 민상수 부장의 성접대 로비까지 받았다.

의심을 피하고자 한 일이었다.

민상수 부장은 곧바로 이 안건을 권재홍 비서실장에게 보고했다.

최종적으로 보고받은 최문경 부회장은 역시나 최용욱 회장을 직접 찾아가야 하나 몇 번이나 망설였다.

권재홍 비서실장이 그럴 때마다 최문경 부회장의 앞을 가로막았다. 흥분해서 자기 감정을 주체 못 하는 최문경 부회장의 모습 때문이다.

“지금 회장님을 만나 흥분하시면 자칫하다가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아직 회장님이 은퇴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KD 통신, KD LCD는 내 피와 땀이 서린 회사야. 최소한 지분을 넘기려면 내 허락을 받아야지. 아버지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저러는 거야?!!”

“압니다. 이건 회장님이 실수하신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회장님을 상대로 욕설을 하시면 안 됩니다. 지금 부회장님 모습이 딱 그렇습니다!”

하지만 최문경 부회장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권재홍 비서실장은 결국 비서실 직원까지 동원해서 일단 최문경 부회장을 잡았다.

그제야 최문경 부회장은 흥분을 가라앉혔다.

권재홍 비서실장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최용욱 회장이 건강을 회복한 이후에 모든 사태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지금의 최용욱 회장은 전성기 시절 못지않은 영향력을 떨쳤다.

이게 모두 최민혁 실장 때문이었다.

투자 문제는 별개로 하더라도 최용욱 회장의 치적으로 꼽히는 일이 바로 KM 센서였다.

이미 미국 연방 정부 쪽에 샘플 공급을 대폭 늘렸기 때문이다.

이전과는 달리 어느 정도 상업적인 완성도를 갖춘 KM DVR의 인기는 장난 아니었다.

특히 보안을 요구하는 정부 기관이 오히려 적극적이었다.

그리고 이런 사업 행보는 클린턴 정부에게도 나쁘지 않았다.

고속 인터넷망과 KM DVR의 시너지효과가 아주 좋았기 때문이다.

인권 침해 문제가 나오기는 했지만 납치 이슈 때문에 쑥 들어가고 말았다.

물론 이 사업의 대다수를 주도한 이는 최민혁 실장이었다.

하지만 아직 최민혁 실장은 KM 그룹 내에서 직접적으로 손을 쓰지 않았다.

그렇다고 최영란 본부장이 이 일을 주도했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녀가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미국 연방 정부에 손을 썼다고는 믿지 않았다.

솔직히 최영란 본부장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뛰어난 면모를 보이는 것조차 믿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으니 말이다.

이 정도 사업은 최용욱 회장의 손을 거쳐야 할 일이었다.

정확히는 최문경 부회장이 해야 할 일이지만 불행히도 그는 미국 사업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KM 그룹의 경영 구도는 묘하게 변했다.

이전에 그저 소문만 가득했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KM 그룹 임직원들에게도 영향을 줄 정도였다.

최문경 부회장은 결국 최민혁 실장, 최영란 본부장에 이어서 아버지 최용욱 회장의 눈치를 봐야 할 처지에 놓여 버렸다.

이렇게 되자 KD 통신, KD LCD에 대한 기대치도 달라졌다.

이 두 계열사는 다 최민혁 실장의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시작되었다.

이미 이와 유사한 IPS LCD 사업은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었다.

오성 전자와 LH 전자가 이 원천기술을 확보해서 상업화 막바지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물론 대형 LCD와 같은 쪽에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미 소형 LCD와 중형 LCD 쪽에는 이미 발을 걸친 상황이었다.

그 말은 곧 KD LCD의 미래 가치 역시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오성 전자 수준이면 된다는 소리다.

즉, 지금 당면한 KD LCD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

최민혁이 튀어나온 시기가 딱 이 시점이었다.

최문경 부회장은 또 최민혁에게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겨우 이성을 차렸다.

“민혁이 그놈에게 우리가 직면한 문제에 대한 대안이 있다는 말이겠지?”

권재홍 비서실장도 이번에는 별다른 생각이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봐야 합니다. 최민혁 실장 역시 처음에는 법인을 설립하는 것이 불편했을 겁니다. 공장이나 생산 인력을 확보하는 일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런 생산 기반이 확보되기만을 기다렸을 겁니다.”

최문경 부회장은 오히려 한숨을 내쉬었다. 실상 권재홍 비서실장이 지적한 시행착오를 경험한 것이 자신이었다.

그 역시 새로운 사업이 어렵다는 것을 알았지만, KD 통신이나 KD LCD은 좀 달랐다. 완전히 맨땅에 삽질하는 사업이었다.

내심 조카 최민혁에게 치를 떨었다.

‘민혁 이놈의 새끼.’

“그리고 헐값에 그걸 먹는다?”

“네. 지금이 어떻게 보면 KD 통신과 KD LCD 지분을 헐값에 매입할 기회입니다. 최민혁 실장이 왜 그 당시에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지 몰랐는데, 이제야 알게 된 셈입니다.”

그리고.

권재홍 비서실장은 진심으로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 됐어. 지금 그런 소리를 들으려고 하는 것이 아냐. 대안이 필요해!”

최문경 부회장은 최근 끊은 담배를 문 채 치밀어 오르는 스트레스를 삼켰다. 권재홍 비서실장의 얘기는 어차피 다 아는 내용이었다.

다만 지금도 스스로 말하면서 본능적으로 뭔가 찜찜하다는 것을 느꼈다.

‘뭔가 더 있는 것 같아. 근데 그게 뭔지 알 수가 없으니.’

최문경 부회장은 자신의 성격상 도저히 할 수 없는 말을 던졌다.

“…차라리 그냥 두는 건 어때? 솔직히 민혁이 그놈이 지분을 챙기면, 두 회사도 본궤도에 오르지 않을까? 이익을 적게 보는 대신에 얻는 것도 있잖아.”

권재홍 비서실장은 흠칫 놀랐다. 그는 최문경 부회장이 이런 약한 소리를 할 줄은 몰랐다.

“진심이십니까?”

“진심 아냐. 배가 아파서 미칠 것 같으니까. 사실 가장 큰 문제는 만약 그놈이 지분을 인수한 이후에 두 회사가 정상화되면, 내 경영 능력이 민혁이 그놈보다 못하다는 것을 스스로 자인하는 꼴이잖아!!!”

버럭 목소리를 올리는 최문경 부회장.

불행히도 KM 그룹 임직원들은 다들 최문경 부회장의 경영 능력을 의심했다.

정확히는 최민혁 실장과 비교해서 말이다.

권재홍 비서실장도 고개를 흔들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건 안 될 말입니다.”

최문경 부회장도 허탈하게 웃었다. 그는 잠깐 자신이 한 말을 다시 생각해 봤다. 정말이지 제대로 미친 말을 한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코앞에 닥친 현실이다.

지금 당장 이 문제를 어떻게 해서라도 해결해야 했다.

최용욱 회장의 지분을 최민혁에게 넘기는 것은 일단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그것도 합리적으로 말이다.

다만 최문경 부회장은 문득 지난 기억을 떠올렸다. 최민혁 실장에게 늘 호구처럼 당해본 경험 말이다. 악몽 같은 시간이었다.

‘가만, 왜 이런 기억이 자꾸 떠오르지?’

그제야 위화감을 느꼈다. 다름 아닌 최민혁 실장의 행보 말이다. 최민혁이 만약 두 회사가 가치가 있다면 굳이 일을 이렇게 만들까 하는 점이다.

자연스럽게 최민혁 실장이 자신을 상대로 한 흉계를 하나씩 떠올렸다.

“…설마 이 일 말이야. 혹시 민혁 그놈이 날 노리고 덫을 친 것은 아니겠지?”

권재홍 비서실장이 반박했다.

“그건 너무 과합니다. 회장님이 보유한 두 회사의 지분 가치는 8억 달러가 넘습니다. 그 막대한 자금을 미끼로 내놓을 사람은…….”

하지만 그 역시 말을 하다가 침묵하고 말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이야기가 좀 달랐다.

권재홍 비서실장은 곧바로 최민수가 한 이야기와 따로 비서실을 통해서 보고받은 자료를 머리에서 떠올려서 정리해 봤다.

“…다시 확인해 보겠습니다.”

“철저하게 다시 파봐. 제발 이번에는 그냥 손을 떼도 좋아. 확실히 한 다음에 뭘 해도 하자. 솔직히 민혁이 이놈이 미국에서 일을 진행하다가 갑자기 한국으로 온 것부터가 이상해!”

“…네.”

권재홍 비서실장은 착잡한 얼굴을 한 채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그 역시 지쳐 있는 최문경 부회장 모습에서 다시 한번 긴장했다.

* * *

권재홍 비서실장은 딴에 나름 비밀리에 일을 진행한다고 해도 그 연결 고리는 장승일 실장이 될 수밖에 없다. 그는 싫든 좋든 기획 조정실 정보를 얻어야 했다.

장승일 실장은 당연히 이 정보를 얻기가 무섭게 최민혁 실장에게 보고했다.

[하, 그렇습니까? 완전히 바보는 아니군요.]

[일이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겠죠. 우리 첫째 큰아버지도 머리는 있으니까.]

[혹시 제가 할 일이 있습니까?]

[생각을 좀 해봐야죠. 일은 마무리가 중요하니까. 필요한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좋습니다. 아 그거 아시죠? 제가 장승일 실장님을 믿는 거 말이죠?]

[…감사합니다.]

최민혁의 입장에서는 신기한 일이었다. 최문경 부회장의 행보는 확실히 기대한 것과는 달랐다. 하지만 그는 두 사람의 의혹을 딱히 신기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일은 기대한 대로만 풀려가는 것은 아니었다.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도 그랬다.

에플의 CF 광고에 대한 의혹이 찌라시를 통해서 돌기 시작했다.

이건 그가 원한 바가 아니었다.

스티븐조차 모르고 있었다.

에플 CF 광고와 관련된 이들 중에 누군가 정보를 흘린 것이었다.

다행이라면 가짜 CF 광고 쪽이었다.

[괜찮습니다. 차라리 잘된 것일 수도 있어요.]

이 일이 동기가 되었다.

급속히 줄기 시작하던 에플 공매도가 주춤하더니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

실제로 에플 공매도 물량이 풀리는 데에 점점 속도가 붙었다.

이유는 CF 때문만이 아니라 아이컴에 사용된 인공지능 기술의 불완전함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일부는 솔직히 사실이었다.

기술적으로 여전히 어려움이 존재했다.

다만 최민혁은 그 부분은 당장 이지수 박사가 해결했다는 것을 잘 안다.

‘무인 드론은 좀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그는 그래서 이 일을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제삼자가 봤을 때는 어려움에 부닥친 것처럼 말이다.

최민혁은 이보다 최용욱 회장이 보유한 KD 통신, KD LCD 지분을 정리할 방법에 골몰했다.

그는 이미 이런 사건을 몇 번이나 경험했다. 본질은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 시기를 놓치면 곤란해. 가장 적기에 매각할 타이밍이니까. 방법도 어렵지가 않아. 이 두 회사 가치가 올라가면 되니까.’

그렇다면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면 된다.

일을 어렵게 풀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단순하게 일을 풀어가는 것이 훨씬 좋을 수가 있다.

‘민수 형이 딱 좋지. 가만, 방법이 없을까?’

최문경 부회장이나 권재홍 비서실장은 자신을 잘 알아서 냉정하게 반응한다고 하지만 주변 인물은 꼭 아닐 수가 있다.

그는 김명준 과장에게 따로 지시를 내렸다.

“민수 형 동선을 좀 조사해 주세요. DL 그룹 쪽 인물과 만나는 시점을 노리면 됩니다. 딱 그 시점에 우연을 가장해서 찾아갈 테니까.”

“…알겠습니다.”

* * *

최민수는 갑자기 일어난 일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그도 어머니 김여정을 믿기는 했지만, 그녀의 태도 때문에 다시 갈등했다.

그가 이번에 얻는 지분 가치에 따라서 자신의 미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첫째 큰아버지라면 할아버지에게 잘 이야기해서 계열사 지분을 확보할 수 있어. 더욱이 민혁이 그놈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내가 필요할 수밖에 없어!’

그가 원하는 지분 역시 KM 센서 쪽이었다.

다만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결국 갈등하다가 최근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김기범에게 연락해서 만났다.

김용만의 장남인 김기범은 평소와는 다른 최민수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

“야, 민수야, 왜 그래? 무슨 일이라도 있어?”

“아, 아니에요.”

“야, 너 평소와 좀 다르다. 내가 감방에 있었다고 이제 무시하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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