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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837화 (834/1,021)

#837.

IP 시티폰 서비스는 대략적으로 봐서는 그럴듯한데, 현실적으로 제약이 너무 많았다.

IP를 이용한 양방향 역시 마찬가지다.

무선랜 방식을 통하면 잘될 것 같았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이런저런 간섭을 비롯한 해결하기 힘든 요인이 너무 많았다.

이런 문제는 직접 서비스를 해보고서야 알게 된 일이었다.

다만 조성돈 팀장은 여전히 마지막 남은 집착을 쉽게 버리지 못했다.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만 있다면 이렇게 망가질 사업이 아니었습니다. 최민혁 실장님이라면…….”

최민혁은 바로 반박했다.

“저도 불가능합니다.”

“…정말입니까? 최민혁 실장님 능력이라면 이 일도 분명히 해결할 수…….”

“아, 저도 안 되는 것은 안 됩니다. 아니, 그러면 조 팀장님이 그 답을 한번 찾아보세요. 제가 1억 달러 정도는 밀어줄 테니까.”

“…정말 어렵다는 말입니까?”

“IP 시티폰이 그럴듯하기는 한데, 현실적으로 제약이 너무 많습니다. 더욱이 무선랜망 자체가 가지는 한계도 있습니다. 기술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거기에 사용자가 넘쳐날 때, 렉이 심해지면 음성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습니다.”

얼핏 봐서는 조금 불편한 정도처럼 보인다.

그런데 실제로 사용자가 직접 경험하는 수준은 완전히 달랐다.

물론 무선랜과 유선랜 기술이 더 발전한다면 대안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 이 시점에서는 KD 통신이 샐로먼 브러더스의 자금 지원을 받아서 진행하는 이 IP 시티폰 사업은 무리였다.

샐로먼 브러더스가 어리석어서 이런 판단을 내린 건 아니었다. 그들은 이 IP 시티폰 소유주가 최민혁 실장이라고 생각해서 믿었다.

최민혁 실장 본인이 그렇게 되도록 작업을 많이 했고 말이다.

그들은 최민혁 실장이 만든 함정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

조성돈 팀장은 그제야 굳은 안색을 한 채 반박했다.

“최문경 부회장이 KD 통신에 투자한 것은 그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최용욱 회장님 역시 꽤 많은 금액을 KD 통신에 투자했습니다.”

최민혁 실장 역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당시에는 최문경 부회장과 샐로먼 브러더스를 함정에 밀어 넣어야 해서 할아버지를 말릴 상황이 아니었죠. 만약 할아버지가 KD 통신에서 손을 뗀다면, 우리 첫째 큰아버지나 샐로먼 브러더스가 의심했을 겁니다.”

“그러면 KD 통신 역시 누적 적자가 어마어마한 것으로 압니다. 최용욱 회장님은 이대로 천문학적인 손해를 봐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그는 안 그래도 데릭 모건 이사가 한국에 가서 하는 뭔가 계획을 꾸미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으음, 그건 지금 생각해 보니 좀 그러네요. 안 그래도 그 문제 때문에 고민 중이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지금이 딱 적기네요. 할아버지에게 한번 연락해 보세요.”

조성돈 팀장은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쉰 채 최용욱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갑자기 최민혁이 손을 들어서 막았다. 이번 일을 잘 이용하면 데릭 모건 이사와 최문경 부회장을 상대로 제대로 엿을 먹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만, 어떻게 하지? 아,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어.’

* * *

최민혁 실장은 우선 조성돈 팀장을 통해서 최용욱 회장과 약속을 잡았다.

다만 단순한 약속은 아니었다.

[민수 형 말인데요, KM 센서에서 일하는 것을 보니, 좀 안쓰러웠습니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KD 통신 지분 일부를 민수 형에게 넘기는 것은 어떨까요?]

[진심이야?]

[그럼요.]

최용욱 회장은 꽤 큰 충격을 받아서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손자 최민혁의 장점이 비사회성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 태도 변화라면 이제 손자 최민혁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이걸 순진하게 다 믿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는 갑자기 손자 최민혁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언제 한국 오냐?]

[지금 출발할 생각입니다.]

[지금?]

[그럼요. 지분 문제인데, 직접 만나서 처리해야죠. 지금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제가 민수 형에게 너무 막 대했어요.]

최용욱 회장도 당황해서 말을 더듬고 말았다.

[그, 그래. 도착하면 바로 연락해라. 민수 그 녀석에게는 내가 약속을 잡아놓으마.]

최민혁은 일을 여기서 끝내지 않았다.

[둘째 큰어머니도 같이 부르죠. 이전에 있었던 일은 지나쳤다고 생각합니다.]

[…알겠다. 그리고 고맙구나.]

[천만에요.]

최민혁이 한 제안은 결코 좋은 의도가 아니었다.

최용욱 회장조차 아직 그 의미까지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이보다 경영권 승계 싸움에서 우위를 차지한 손자 최민혁에 대해서 생각할 뿐이다. 이제는 최용욱 회장조차 최민혁에게 함부로 할 수가 없었다. KD 통신 지분을 증여하는 것도 말이다.

이런 내막을 잘 모르는 김여정은 최용욱 회장에게 연락을 받고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드디어 최용욱 회장이 아들 최민수에게 기회를 줄 것이라는 기대에 날뛰었다.

“민수야, 절대로 할아버지 눈 밖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면 안 된다!”

“…걱정 마세요. 저도 이전의 제가 아니니까.”

* * *

최민수는 확실히 KM 센서에 들어간 이후에 많은 것을 배웠다.

그는 최민혁 실장에게 시달린 후에 더욱 몸을 사렸다.

그 과정에서 나름의 조직 생활도 배웠다.

인생의 밑바닥까지 떨어진 후에야 깨달음을 얻은 것이었다.

그는 때문에 최민혁에게 이제 그 어떤 감정도 가지지 않았다.

이보다는 지금 일에 충실했다.

지금 일도 마찬가지다.

그는 내막을 잘 모르지만, 이번 일이 간단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상해. 할아버지가 이런 적은 없었어. 뭔가 다른 의도가 있는 건가?’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가 최용욱 회장 저택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와 있는 사람이 있었다. 아니, 막 평창동 저택에는 최민혁 실장이 와 있었다.

김여정은 경악해서 소리쳤다.

“네, 네놈이 어, 어떻게…….”

최민혁은 심술이 가득한 심술꾸러기 같은 얼굴을 한 채 툴툴거렸다.

“둘째 큰어머니, 말을 좀 가리는 것이 어떨까요? 오늘 미팅은 제가 할아버지에게 부탁해서 일어난 일입니다. 저는 그 일 때문에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 했습니다.”

“어? 그, 그래.”

김여정은 순간 최민혁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얘기들이 흘러나오자 크게 당황했다. 그녀는 최민혁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을 줄은 몰랐다.

최용욱 회장이 때마침 이 층 창가에서 그들을 보면서 소리쳤다.

[서재로 오거라!]

[아, 네, 아, 아버님!]

* * *

최민혁은 물론 서재에 들어가서도 최용욱 회장에게 자신이 미국에서 진행하는 일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무인 드론과 관련된 이야기는 완전히 뺐다.

그는 이보다 KD 통신 지분과 관련된 이야기를 넌지시 꺼냈다.

“민수 형도 이제 지분을 챙겨야 하지 않을까요? KD 통신 지분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아마 한 달 전의 김여정이라면 냉큼 최민혁 제안을 받았을 것이다.

“그, 미, 민혁아, 미안한 이야기지만 KD 통신 사정이 요즘 좋지 않은 것으로 알아. 차라리 KM 센서 주식은 안 될까?”

“진심입니까? 지분을 넘긴다고 하는데, 싫다는 말씀입니까?”

“아, 그, 저, 시, 싫다는 것이 아니야. 민수는 통신 쪽은 잘 몰라서 하는 소리야.”

최민혁은 어이가 없는 눈으로 김여정을 째려봤다.

“김현탁 형 도움 덕분에 KD 통신에서도 일한 것으로 압니다만?”

“에이, 아니야. 그건 잠깐 있다가 나온 것뿐이야.”

실상 최민수는 김여정이 말한 것보다는 의외로 경험이 많았다. KD 통신에 있을 때도 김현탁 사장의 도움을 받아서 많은 기술도 접했다.

아마 그도 몇 달 전의 그였다면 이런 사실을 말했을 것이다.

“난 통신은 전혀 몰라. 낙하산으로 내려가서 눈치만 봤어.”

“그렇습니까?”

최민혁은 가소로운 표정을 지었다. 다만 그도 두 사람의 변화를 순순히 인정했다. 확실히 자기 입맛대로 행동하던 꼭두각시는 아니었다.

“KM 센서 지분은 좀 모자랍니다.”

“…하지만 민혁이 네가 가진 센서 지분은 50%가 넘는 것으로…….”

최민혁은 냉랭하게 일축했다.

“생각보다는 지분을 원하는 세력이 많습니다. 재정경제원 내에도 있습니다. 그쪽 물량을 정리하기 전까지는 지분에 손을 댈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김여정은 순간 망설였다. 그녀도 이전과는 좀 달랐다. DL 그룹이 최근 자금 압박에 시달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제는 무조건 덩치가 큰 회사보다는 알짜 회사가 좋다는 것을 알았다.

KD 통신은 여러 세력이 결합하기는 했지만 전반적인 회사 상황이 너무 안 좋았다.

그렇다고 KD 통신이 당장 망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중국 내에서 매출이 어느 정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IP 시티폰 망을 깐다고 들어가는 자금이 천문학적이었다.

망을 깔면 깔수록 적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구조였다.

샐로먼 브러더스 같은 세계적인 투자 은행이 자금을 대지 않았다면 이미 진작에 사업을 접어야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니, 중국 공산당이 그나마 샐로먼 브러더스의 자금에 집착해서 적극적으로 밀어주지 않았다면 분명 일을 접어야 했을 것이다.

그녀가 이런 내막을 아는 것은 자기 아버지 김상구 회장에게 들은 바가 있기 때문이었다.

최용욱 회장은 두 사람의 대화를 물끄러미 지켜보면서 내심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도 손자 최민혁을 믿지는 않았다.

‘아니, 지분을 넘긴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 뭔가 다른 의도가 있어.’

결국 그가 끼어들 수밖에 없었다.

“민혁아, 나랑 잠깐 이야기하자꾸나.”

“…네.”

* * *

“무슨 꿍꿍이냐?”

최용욱 회장은 냉랭한 한마디 말을 하고는 정원 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최민혁은 최용욱 회장 옆을 따르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그는 김여정이 설마 이렇게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하긴 요즘 DL 그룹 상황이 정말 최악이라고 하니까.’

김여정도 바보는 아니었다. 그녀도 자기 집안 상황을 지켜보고서야 철이 좀 들었다. 그냥 덩치만 보고 달려들면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최용욱 회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역시 손자 최민혁이 갑자기 미국에서 한국으로 온다고 할 때부터 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일단 KD 통신 지분을 최민수에게 넘기라는 것부터가 이상한 일이었다.

최민혁은 잠깐 망설였다. 그는 솔직하게 이야기할까 하다가 다시 생각을 바꾸었다. 최용욱 회장이 믿을 만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최민수와 최문경 부회장이 관련된 일이라서 함부로 결정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세한 사안보다는 현실적인 문제를 걸고넘어졌다.

“KD 통신의 중국 사업 말입니다. 적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제가 예측한 것보다 더 빠르게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이미 다 예상한 일이야.”

“아닙니다. IP 시티폰의 맹점을 너무 얕잡아 봤습니다. 더욱이 아직 중국이란 나라에 효율이 높은 망을 깔 시점이 아닙니다.”

“그거야 샐로먼 브러더스를 비롯한…….”

“네. 그나마 샐로먼 브러더스가 천문학적인 자본을 퍼부어서 지금까지 굴러갔습니다. 그런데 중국 인프라를 감당할 정도는 안 됩니다.”

“하지만…….”

그는 굳이 말보다 이미 준비해 온 보고서 하나를 내밀었다.

바로 한국 내의 IP 시티폰 관련 현황이었다.

이 보고서는 최민혁 실장 자신이 기억하는 전생의 시티폰 사업 현황을 토대로 각색한 것이었다. 그러니 현실적인 수치에 부합했다.

“…….”

최용욱 회장은 IP 시티폰의 현황과 관련된 보고서를 물끄러미 읽어 봤다. 그는 손자 최민혁의 능력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는 때문에 약간의 가정이 있는 이 보고서를 글자 하나하나까지 읽었다.

결과는 충격 그 자체였다.

“…IP 시티폰이 실패한다는 소리냐? 하지만 이 기술은 네가 고안했지 않느냐?”

“만들기만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제 의견은 부정적이었습니다.”

“아니, 네가 언제 그런 판단을 한 적이 있어?!”

최용욱 회장 목소리가 올라갔다. 그 역시 이 사업에 자본을 무지막지하게 퍼부었기 때문이다. 그의 안색은 바위처럼 굳어 있었다.

“저는 부정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잘 생각을 해보십시오. 할아버님이 너무 저를 믿고 일을 밀어붙인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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