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836화 (833/1,021)

#836.

이환채 차관은 짜증스러웠지만 일단 김우석 국제경제 심의관의 이야기를 들었다. 심지어 가끔 끼어든 조동석 과장의 의견 역시 말이다.

“지금은 최민혁 실장과 대립할 시기가 아닙니다. 차라리 최민혁 실장을 초청해서 자문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는 굳이 대꾸하지 않았다. 다만 잠깐 째려봐 줬다. 눈치껏 알아서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김우석 심의관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최민혁 실장의 능력은 이미 지난 국세청 내사에서 증명되었습니다. 그의 자산 형성에는 그 어떤 편법도 없었습니다.”

이환채 차관은 피식 웃었다.

“글쎄, 내가 조사한 것과는 좀 다르네. 콜린스의 경우에는 KM 전자 엔지니어가 주도적으로 개발한 것으로 알아. 최민혁 실장은 그걸 이용했지. 그 타이밍이 좀 미묘하거든.”

“하지만 그건 추정에 불과합니다. 최민혁 실장이 그런 편법을 쓸 이유가 없습니다!”

“자네가 최민혁 실장에 대한 환상이 있다는 것은 알겠어. 하지만 증거가 없다고 해서 넘어갈 일은 아니야. 콜린스 개발 완료 시기와 최민혁 실장이 실장 직무를 맡을 때는 거의 일치하니까. 그 일에는 최민혁 실장이 이바지한 바가 없어.”

“서, 설마 그 일을 빌미로 최민혁 실장에 대한 수사라도 착수할 생각입니까?”

“글세.”

이환채 차관은 차갑게 웃었다. 그도 바보는 아니었다. 불행히도 콜린스와 관련해서 최민혁 실장이 내부 정보를 이용했다는 증거는 없었다.

‘무려 20명이나 투입해서 내사했는데도 증거가 없었어.’

그럴 수밖에 없다. 당시 최민혁 실장이 혹시라도 검찰에서 수사할 것을 대비해서 철저하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는 솔직히 다른 사람이 최민혁 실장을 우상화하는 사실 따위는 믿지 않았다.

하지만 콜린스와 관련해서 최민혁 실장이 한 완벽한 일 처리에는 내심 감탄했다.

그래서 미국에 가 있는 최민혁 실장의 행보도 쉽게 추론할 수 있었다.

‘설마 글로벌 X 리포트 때문에 미국에서 일을 벌이고 있는 건가? 그것 때문에 미국 재무부 고위 관료를 만났다고? 에이, 말도 안 되잖아. 가만, 그러면 샐로먼 브러더스는 또 뭐지?’

이리저리 고민하던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글로벌 X 리포트였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두 사람의 시선을 무시한 채 보고서를 천천히 살폈다. 물론 김우석 심의관은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

‘이…….’

그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명확한 설명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해관계 당사자의 반응을 조합해 보고서야 서로 연관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결국 두 사람에게 한 가지 지시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샐로먼 브러더스, 모건 스탠리, 미국 재무부, 최민혁 실장과 관련된 일을 처음부터 다시 한번 조사해 봐. 필요하다면 따로 팀을 만들어. 그것도 힘들면 외주를 줘서라도 이 사안을 확인해 봐!!”

“저기 차관님…….”

“자네들은 아직 재정경제원 내부 분위기를 전혀 모르고 있어. 지금 자네들이 할 일은 지시에 따르는 거야. 싫으면 때려쳐!”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뜻밖의 이환채 차관의 태도에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이미 윗선은 어느 정도 결정을 낸 것이다.

최민혁 실장을 조사하는 것으로 말이다.

‘제정신이 아니야.’

다만 두 사람도 이환채 차관이 왜 미국 정부 움직임에 관심을 두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설마 최민혁 실장이 미국 백악관에도 손을 썼다는 말인가? 에이, 그건 말이 안 되잖아.’

김우석 심의관이 넌지시 질문했다.

“그런데 굳이 미국 일까지 감안해서 최민혁 실장을 따로 조사할 필요가 있습니까? 미국 쪽은 저희도 잘 모릅니다. 지금 당장 인력 배치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요.”

이환채 차관은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그는 어차피 최민혁 실장과 관련된 일이라는 점을 염두에 뒀다. 그렇다면 도와줄 사람이 있다.

“필요하다면 샐로먼 브러더스 측에 도움을 청해봐. 그쪽에서 도와줄 테니까.”

“네?”

“다 알면서 그런 표정 짓지 마. 투자 자유화와 관련해서 외국계 투자 은행과 손을 잡은 것은 잘 알잖아. 그때 우리를 도와준 세력 중의 하나가 샐로먼 브러더스야. 연합 SB와 같은 합작 증권사가 나온 것도 그 때문이니까.”

“…알겠습니다.”

김우석 심의관은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조동석 과장의 눈짓 때문에 한 걸음 물러나고 말았다. 다만 그는 뒤늦게야 재정경제원 내부에 돌기 시작한 소문을 떠올렸다.

‘샐로먼 브러더스가 작년부터 투자를 많이 하기는 했지. 설마 그쪽하고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일까? 아니, 어쩌면 로비를 받았을 수도 있겠어. 설마 그래서 최민혁 실장을 공격하는 건가? 하, 진짜 미쳤다.’

* * *

김우석 심의관은 무난한 성격 탓에 재정경제원에 도는 어두운 면을 잘 몰랐다. 다만 가끔 안 좋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그는 그런 사안을 믿지 않았다. 그런 얘기들은 의도적으로 피했다.

하지만 조동석 과장은 좀 달랐다. 그는 재정경제원 내부에 아는 지인이 꽤 있다. 심지어 그들과 내기 포커까지 쳤다.

[이환채 차관이 샐로먼 브러더스와 같은 미국 투자 은행 쪽과 잘 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딱 이거면 충분했다.

재정경제원이 굳이 최민혁 실장을 건드려서 이익을 볼 이는 소수였다.

하지만 샐로먼 브러더스와 관련된 고위 공무원은 최민혁 실장을 흔들어서 이익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안 그래도 최민혁 실장에게 미안했다.

때문에 이 정보를 슬쩍 최민혁 실장에게 흘렸다.

[이환채 차관이 샐로먼 브러더스의 로비를 받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그만 해당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이환채 차관 라인은 다 비슷한 것 같습니다.]

최민혁은 전혀 예상도 못 한 보고에 깜짝 놀랐다. 그도 샐로먼 브러더스가 부지런히 움직일 것으로 생각했다. 다만 그 범위는 역시 에플 공매도 쪽이었다.

‘설마 샐로먼 브러더스가 이미 한국 재정경제원 쪽에도 손을 쓴 건가?’

실로 기가 막힐 일이었다.

최민혁은 금융 시장 개방과 동시에 밀려 들어온 외국 자금을 떠올렸다. 수십억 달러가 넘을 정도로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

그리고 이 돈은 목표한 기업에 수혈될 것이다.

차입금이라는 명목으로 말이다.

원래라면 KM 그룹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조 단위가 수혈되니까 말이다.

그 중간 다리 역할을 할 사람이 다름 아닌 최문경 부회장이었다.

최민혁은 그제야 전생에 KM 그룹이 어떤 식으로 돌아갔는지 깨달았다. 그는 자세한 정보는 조성돈 팀장을 통해서 알아봤다.

그 과정에서 나온 인물이 바로 데릭 모건 이사였다.

데릭 모건 이사가 재정경제원을 비롯한 행정부 내부의 고위 관료를 계속 만났다.

그러니 데릭 모건의 흔적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이 있었구나.’

KM 그룹은 내부 알력 싸움 때문에 타격을 받았고, 외부 영향도 크게 받았다.

두 가지의 충격파가 KM 그룹을 공중 분해해 버린 것이었다.

‘최문경 부회장이 미국에 이미 만들어놓은 자본금을 이용해서 회사를 다시 설립하고, 거꾸로 KM 산업을 인수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인가?’

그러면 당시 일어난 모든 일이 설명된다.

최민혁은 더욱이 이지수 박사와 관련된 테일러 박사가 당시 왜 자신을 그렇게 노렸는지도 알 것 같았다.

그는 어차피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해서 고민은 그다지 하지 않았다. 그저 당혹스러울 뿐이다. 그는 에플 공매도와 무인 드론에 집중하려고 했는데, 상황이 그렇지가 못했다.

‘대응하기는 해야 하는데…….’

그도 사실 최문경 부회장처럼 샐로먼 브러더스를 건드릴 방법이 없었다면 일단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이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KD 통신이 있지.’

바로 IP 시티폰.

그는 시티폰과 관련된 전생의 정보를 한번 다시 떠올렸다.

시티폰 서비스는 사업성이 없다는 것이 몇 년 후에나 밝혀진다.

가입자 숫자는 백만, 천만이라고 외친 것과는 달리 고작 18만 명 수준에 불과했다.

4년 동안 투자한 금액은 무려 2천억이 넘었다.

그런데 이 기간에 벌어들인 매출액은 고작 900억이 채 안 되었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올해 한 해 상반기에만 손실이 무려 2천억이 넘게 나왔다.

하지만 IP 시티폰 손실은 이 정도가 아니었다.

예상 손실은 무려 3천억이 넘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그런데 중국 쪽 상황은 한국과는 좀 많이 달랐다.

샐로먼 브러더스가 무리수를 던진 덕분에 중국 10여 개 성까지 IP 시티폰 서비스를 확장했다.

가입자 숫자도 무려 500만 명이 넘었다.

그 탓에 순손실마저 무려 7천억이 넘었다.

그나마 순손실이 적게 나오는 이유는 적당한 선에서 구조조정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샐로먼 브러더스는 이 IP 시티폰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중국 공산당이 은근히 도와준 덕분에 호텔을 비롯한 대형 건물 쪽에 IP 시티폰을 밀어 넣을 수는 있었던 것이었다.

실상 IP 시티폰이 가지는 강점은 중국 쪽하고도 잘 맞았다.

그러니 중국 공산당 역시 샐로먼 브러더스 측에서 자금 지원을 받은 터라 이 IP 시티폰을 정략적으로 밀어준 것이었다.

최민혁은 이번 기회에 샐로먼 브러더스에 단단히 한 방 먹일 각오로 IP 시티폰 관련 사업 현황을 확인하고는 혀를 내둘렀다.

‘손실이 어마어마하구나.’

자신도 그렇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시티폰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서 미래가 확정되지 않았다.

놀라운 사실은 그럼에도 한국 시티폰의 몰락과 비슷한 일이 중국에서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지금 중국 시티폰 사업이 입은 손실은 CDMA 서비스가 진행된 이후와는 덩치 자체를 비교하기 힘들 정도였다. 더욱이 이 CDMA 사업은 미국 정부가 자신을 대신해서 열 일을 하는 중이었다.

그 자신은 이제 굳이 CDMA 쪽에 손을 내밀 이유가 없었다.

‘이게 좋겠어.’

* * *

최민혁 실장은 일단 이지수 박사의 연구 현황을 한 번 살폈다. 역시 이지수 박사라고 해서 모든 면에서 완벽하지 않았다.

인공지능 모바일 드론의 한계를 극복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그는 혹시 하는 마음에 미국 국방성 산하 무인 드론 프로젝트 기술을 이용하면 가능하냐고 질문했다.

이지수 박사는 애매한 반응을 보였다.

[그건 잘 모르겠어요.]

[가능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로 들리네요. 일이 복잡해질 수 있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 관점에서 한번 검토해 보세요.]

[…알겠어요.]

이지수 박사는 별다른 의문은 가지지 않았다. 그녀는 무인 드론 기술에 흠뻑 빠져 있었다.

최민혁 실장은 시간이 참 빡빡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가지 일을 끝내고 나서 들어가면 좋은데, 상황이 그렇지가 못했다.

‘휴우, 데릭 모건 이사가 이미 내가 하려는 일을 알았다면 가능하겠지. 역시 샐로먼 브러더스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

그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다시 살핀 것은 역시 KD 통신 관련 사업 보고서였다. 아니, 자신이 먼저 다 살피고 나서 조성돈 팀장 의견을 물었다.

“어때요?”

“이건… 정말 믿을 수가 없습니다.”

“손실 말인가요? 어차피 통신 사업은 초창기에 자금이 많이 들어갑니다. 제가 이전에 말한 주장은 이걸 다 감안한 거죠.”

“하지만 샐로먼 브러더스가 지금 퍼붓는 자금 규모는 너무 큽니다. 당장 드러난 수치만 봐도 벌써 10억 달러는 가볍게 넘었습니다.”

최민혁 실장은 쓰게 웃고 말았다. 그가 주기적으로 샐로먼 브러더스를 괴롭히고, 협박한 기억을 떠올린 것이었다.

워낙에 교묘하게 일을 진행해서 샐로먼 브러더스는 아직도 그 배후가 자신이라는 것을 몰랐다.

심지어 가짜 뉴스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헤아리기도 힘들었다.

덕분에 샐로먼 브러더스는 미친놈처럼 이 시티폰 사업에 집착했다.

“뭐, 탐욕 때문이죠.”

“하지만 누가 이렇게 만들지 않고서야…….”

최민혁은 경이에 가득한 조성돈 팀장의 시선을 슬쩍 피하고 말았다. 그는 굳이 이 자리에서 자기 자랑을 하고 싶지 않았다.

실상 조성돈 팀장 역시 바보는 아니었다. 그 역시 IP 시티폰 관련 보고서를 세세하게 살폈다. 내심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는 당시 최민혁 실장이 왜 IP 시티폰을 KD 통신에 넘겼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이에 대해 수십 차례나 재검토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때마다 최민혁 실장이 한 이야기는 일관적이었다.

[IP 시티폰 사업은 망합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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