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6.
“하지만 인공지능 모바일 기술과 에플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지 않습니까? 서, 설마 관련이 있는 겁니까?”
스탠리 로버트 이사도 말해놓고서야 내심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에플 배후에 있는 사람이 최민혁 실장이라는 것을 새삼 안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보편적인 상식을 가진 인물로 인공지능 모바일 드론은 믿지 않았다.
‘다행이라면 에플 주식을 추가로 꽤 확보했다는 것인데…….’
솔직히 모건 스탠리는 에플 공매도로 손해를 좀 볼 뿐이지, 치명적인 타격을 입지는 않을 것이다.
심지어 모건 스탠리 세력들은 적당하게 알아서 수익을 나누었다.
아주 약간 손해를 볼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다른 세력은 좀 달랐다.
특히 샐로먼 브러더스의 경우가 좋은 예다. 모건 스탠리는 이번 에플 공매도를 진행하면서 샐로먼 브러더스 측에는 정보를 제대로 흘리지 않았다.
보안 측면을 내세운 것이었다.
‘다만 나중에는 문제가 될 거야.’
아마 천문학적인 소송이 걸릴 것이다. 그것을 대비해서 일을 지금 하는 중이고 말이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모건 스탠리의 손실을 줄이기 위함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모건 스탠리가 입는 손실은 상상을 초월할 터였다.
지금 일어나는 사태는 딱 공매도 뱅크런 사태와 같기 때문이다.
지금 모건 스탠리가 생각한 기본 계획은 자신들도 손해를 봤다라고 우길 작정이다. 물론 차명으로 사들인 에플 주식으로 그 손실을 메꿀 생각이고 말이다.
그러니 모건 스탠리의 입장에서 인공지능 모바일 드론도 딱히 절박한 문제는 아니었다.
스탠리 로버트 이사가 아무리 착한 투자자라도 해도 주판을 굴릴 수밖에 없다.
최민혁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스탠리 로버트 이사가 머리통에 연기가 나도록 주판을 굴리는 모습을 째려봤다. 그는 모건 스탠리가 샐로먼 브러더스와 완전히 입장이 다르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에플 공매도와 관련된 미묘한 사실까지 제가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이 꼬이면, 당신들도 재미를 보기 힘들 겁니다.”
“네?”
“ARN 지분 관련된 협상 내용까지 샐로먼 브러더스 측에 폭로할 테니까. 아마 그 일 이후에 투자를 재조정한 것은 문제가 될 겁니다.”
정확히는 소송 문제다.
모건 스탠리의 과실도 포함하면 천문학적인 배상을 해야 했다.
“…….”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입을 쿡 다물고 말았다. 설마설마하면서 우려하던 일이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이 설마 그렇게까지 할까 싶었는데, 역시 그 얘길 꺼냈다.
최민혁은 그제야 싱긋 웃었다.
“그런데 꼭 그 일만이 문제가 아니에요. 미국 재무부 문제 말입니다. 그들이라면 언제라도 이 일을 알게 될 겁니다.”
“…설마 그 사실을 폭로라도 하겠다는 말입니까?”
“그럴 생각은 없죠. 애초에 당신들이 만든 문제 아닙니까. 언제 당신들이 제 뒤통수를 칠 줄 몰라서 말입니다.”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짜증이 나서 소리쳤다.
“아니, 에플 공매도와 그 문제가 무슨 관계가 있다고……. 하, 좋습니다. 도대체 원하는 게 뭡니까?!”
“제 말은 당신네 모건 스탠리와 샐로먼 브러더스 관계에 대한 보험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설마 저희보고 샐로먼 브러더스의 뒤통수를 치란 말입니까?”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그는 가소로운 표정이었다. 모건 스탠리가 지금 하는 일이 작정하고 샐로먼 브러더스의 뒤통수를 치는 것이었다.
‘새끼들, 진짜 믿을 수가 없다니까.’
하지만 그도 속마음을 말해서 분위기를 망칠 생각이 없었다. 좋은 게 좋은 거다. 서로 웃으면서 악수를 하는 게 좋았다.
애초에 이런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 모건 스탠리에게 접근한 것이니까.
“꼭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대신 에플 공매도는 원래 계획대로 진행 중이라고 명확한 사인을 샐로먼 브러더스 측에 줬으면 합니다.”
“그건…….”
“당신네야 알아서 손실을 줄이겠죠. 제가 그것까지 뭐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
그는 계속 눈치를 봤다.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어차피 이제 와서 그 계획을 당신네가 포기할 리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번 기회에 샐로먼 브러더스 측을 만나서 확실한 시그널을 보내세요. 우린 계획대로 밀어붙인다고, 인공지능 미니 드론? 그건 말도 안 되는 기술이라고, 최민혁 실장이 의도적으로 에플 주가를 반등시킬 수단으로 준비한 거라고 명확하게 의견 표명을 하세요. 그게 실상 사실입니다. 그게 제가 원하는 겁니다. 당신들이 이정표를 잡아주는 것!”
“하지만…….”
그는 피식 웃었다.
“대신이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에플 주가는 우상향을 그릴 겁니다. 그것으로 이번에 입을 손실을 다 메꿀 테니까. 더욱이 ARN 지분도 있고, 잘 생각해서 결정하기 바랍니다.”
“…휴우, 알겠습니다.”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최민혁 실장과 샐로먼 브러더스 관계 문제 때문에 양심이 찔렸지만 차마 반박하지 못했다.
그가 지금 진행하는 일도 따지고 보면, 최민혁 실장이 한 말 그대로였다.
그리고 최민혁 실장이 굳이 자신을 찾은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모건 스탠리가 또 중간에 마음을 바꿀 것을 염려한 까닭이다.
‘하지만 그건 좀 어렵지. 다만…….’
그가 떠올린 사람은 마이크 라이언 이사.
최민혁 실장이 이런 압박을 하지 않았다면 다른 수작을 부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최민혁은 그걸 원하지 않았다.
그는 그 때문에 한 가지만큼 확인하고 싶었다.
“인공지능 모바일 드론 말입니다. 그거 정말 가능한 기술입니까?”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조금만 조사해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지금 당장은 불가능합니다!”
‘뭐, 인공지능 군용 드론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요’란 말까지 하지는 않았다.
“…….”
스탠리 로버트 이사 역시 이성적으로 공감하지만, 최민혁 실장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보자 확신할 수는 없었다.
‘설마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걸까?’
* * *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스탠리 로버트 이사를 통해서 들은 최민혁 실장의 협박에 마냥 웃지만은 못했다. 그 역시 인공지능 모바일 드론에 대한 정보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솔직히 최민혁 실장의 의도를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한 가지를 확신했다.
“최민혁 실장이 노리는 목표가 샐로먼 브러더스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우리 쪽은 알아서 잘 피해 가라? 그게 만남의 목적입니까?”
“…네.”
마이크 라이언 이사도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잘하면 이번 기회를 이용해서 최대한 이익을 뽑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뭐, 최민혁의 뒤통수를 치는 것이지만 말이다.
“만약 샐로먼 브러더스 측과 손을 잡아서 최민혁 실장의 뒤통수를 친다면 가만히 있지 않겠지요?”
“…저도 확신할 수는 없지만 당장 에플 주가로 장난을 칠지도 모릅니다. 솔직히 에플 기술이 정말 언론에서 평가한 대로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으음.”
마이크 라이언 이사 역시 최민혁 실장과 이미 손을 잡기는 했지만 얼마든지 기회가 있다면 그의 뒤통수를 칠 수도 있었다.
‘지금은 좀 그래. 일단 최민혁 실장이 들고 있는 카드를 보고 나서 판단해야 할 것 같아.’
그런데 그도 최민혁 실장과 샐로먼 브러더스의 관계를 다시 떠올리자 곧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둘이 사이가 안 좋다고 하던데, 다른 이유라도 있는 겁니까?”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는 제법 잘 알았다.
“최민혁 실장의 첫째 큰아버지 최문경 부회장이 샐로먼 브러더스와 긴밀한 관계입니다. 아마 그 때문에 샐로먼 브러더스를 흔들려는 것 같습니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황당했다.
“둘 사이의 관계가 그렇게 친밀합니까?”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 꽤 긴밀한 관계인 것 같습니다.”
“설마 최민혁 실장이 바트화를 가지고 우리를 공격한 것도 샐로먼 브러더스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겁니까?”
“그렇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고서야 말이 안 됩니다.”
“하하하, 정말 어이가 없군요. 설마 우리가 최민혁 실장 때문에 샐로먼 브러더스와 손을 잡을 거로 생각한 겁니까?”
마이크 라이언 이사 입장에서는 지난 일을 떠올리면서 자조의 웃음을 터뜨렸다.
최민혁 실장의 행동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최민혁 실장의 행동도 충분히 이해가 갈 일이다.
만약 최민혁 실장과 대립하지 않았다면, 모건 스탠리는 어쩌면 샐로먼 브러더스나 최문경 부회장 편을 들어주었을 테니 말이다.
‘만약 그런 일이 생겼다면…….’
지금 최민혁 실장 때문에 입은 손실은 손실이 아닐 수도 있었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굳이 지난 일을 가지고 최민혁 실장에 대해 원한을 가지지는 않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돈이었으니까.
하지만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진지했다. 그는 모건 스탠리의 다른 사람과는 달리 최민혁 실장에 대한 일을 꾸준하게 확인했기 때문이다.
커다란 일 같아도 그 동기는 사소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안 그래도 최민혁 실장에게 당한 것을 떠올리면서 다시 반문했다.
“…그럴듯하기는 한데, 그래도 잘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최민혁 실장의 투자 능력을 본다면 굳이 최문경 부회장을 걱정할 필요가 없을 텐데?”
“샐로먼 브러더스가 있지 않습니까. 제가 확인한 바로 최문경 부회장과 샐로먼 브러더스의 관계가 정말 심상치 않습니다.”
“그건 더 이상합니다.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말을 하다가 문득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는 뒤늦게야 샐로먼 브러더스라는 단어에서 태국 바트화 사태를 떠올렸다. 그런데 이 일이 단순히 태국 선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만약 상황이 커진다면, 동남아 쪽은 전부 영향을 받을 거야. 그런데 설마 대만, 홍콩 쪽에도 영향을 줄까. 혹시 한국까지 노리는 건가? 그게 가능하나?’
이전이라면 불가능했다.
그런데 지금 한국 정부는 OECD 문제와 관련해서 투자 개방화를 진행 중이었다.
어떻게 보면 금융 전쟁에 대한 경험도 없이 무장해제를 하는 거다.
‘설마 동남아, 대만, 홍콩에 이어서 한국 경제를 흔들어서 경제 전쟁이라도 일으키겠다는 건가? 에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잖아.’
그는 최근 자신이 들은 정보를 돌려서 고민을 해보았다.
그런데 머리로는 도저히 확신할 수가 없었다.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아, 아닙니다. 계속해 봐요.”
“그렇게 생각하면 최민혁 실장의 행동이 다 합리적으로 설명됩니다. 그리고 지금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만약 최민혁 실장과 샐로먼 브러더스가 일방적으로 치고받고 싸운다면, 이사님은 어느 쪽 편을 들 겁니까?”
“그거야…….”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샐로먼 브러더스를 밀어줄 생각이었다. 최민혁 실장 편을 든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가 당장 떠올린 것은 ARN 지분이다. ARN 지분 헐값 인수를 위해서라면 샐로먼 브러더스에게 상당한 몫을 양보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었다.
자신과 최민혁 실장은 이미 반쯤 한배를 탄 상황이었다.
에플 공매도가 좀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건 적당한 선에서 끝낼 것이다.
‘물론 샐로먼 브러더스는 큰 타격을 입겠지. 가, 가만 그러면 설마 인공지능 모바일 드론이 샐로먼 브러더스를 노리고 준비한 거야?’
그는 그제야 이 상황을 이해했다. 최민혁 실장이 왜 굳이 스탠리 로버트 이사를 만나서 협박까지 한 것인지 말이다.
“…최민혁 실장이 원하는 게 뭡니까?”
“그건…….”
“아, 그러면 이렇게 합시다. 태국 바트화 사태를 다시 한번 확인해 봐요.”
“네?”
“이번 일의 시작도 최민혁 실장이 태국화 바트 사태를 걸고넘어져서 진행된 일 아닙니까. 왠지 그 일에 뭔가 있는 것 같으니까. 다만 굳이 최민혁 실장을 자극할 행동은 하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 * *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비록 최민혁 실장에게 당해서 어리벙벙한 태도를 취했지만, 그래도 그는 금융 전문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