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5.
인공지능 이야기가 나오자 침묵이 감돌았다.
데릭 모건 이사는 머리가 아파서 인공지능 이야기를 더 할 수가 없었다.
킬리언 시몬스 이사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는 지금 최민혁 실장을 조사하면서 갈팡질팡했다. 특히 데릭 모건 이사가 압박하는 바람에 감도 잃었다.
그래도 두 사람은 잠깐 인공지능 이야기를 해보았다.
하지만 당연히 결론이 나지 않았다.
데릭 모건 이사는 협의가 산으로 가자 잠깐 멈칫했다. 그는 이대로 소모성 이야기를 할 수만은 없었다. 결국, 당면한 가장 큰 문제를 걸고넘어졌다.
“에플 공매도 말이야. 이번 인공지능 일도 있고 해서 그냥 간접적으로 지켜볼 수만은 없어. 그 일은 어떻게 되어가는 건가? 지금 이 일과 관련해서 뭔가 일이 터질 것 같은데, 문제가 생기면 처리할 수 있나?”
킬리언 시몬스 이사는 데릭 모건 이사의 말에 움찔했다.
“그 일은 잘 아시겠지만, 미국 정부의 시선을 피하려고 모건 스탠리 쪽에 주도권을 넘겼습니다.”
데릭 모건 이사는 평소와는 달리 주먹으로 사무실 책상을 쾅쾅 쳤다.
“그놈의 미국 정부, 정말 지겹네. 아니, 그러면 손 놓고 지켜보고만 있다는 소리잖아?!!”
킬리언 시몬스 이사는 오히려 목소리를 올렸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사회에서도 이미 결정이 난 사안입니다.”
데릭 모건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 역시 잘 안다. 샐로먼 브러더스 이사회에서 직접 들었고, 본인 역시 찬성표를 던졌다. 킬리언 시몬스의 말이 맞았다.
에플 공매도의 주도권을 잡은 세력은 모건 스탠리였다.
‘개좆같네.’
미국 하원의 존 스미스를 떠올렸다. 로봇 같은 인간으로, 대화 자체가 안 되는 타입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최민혁 실장이라는 먹음직한 고기를 던졌다.
혹시라도 최민혁 실장을 잡으면 좋고, 효과가 없어도 자신은 시선을 피해 갈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사이를 참지 못해서 최민혁 실장을 내버려 둬 버렸다.
따지고 보면 이번 일도 미국 정부의 시선을 의식해서 모건 스탠리를 대리인으로 내세워서 끼어든 것이었다.
그 때문에 에플 공매도에 대한 자세한 내막은 잘 몰랐다.
그렇다고 섣불리 적극적인 행동을 했다가는 FBI, IRS의 타깃이 될 수도 있었다. 괜히 긁어서 부스럼을 냈다가 최민혁 실장처럼 미국 재무부의 타깃이 될 수도 있었다.
그가 굳이 최민혁 실장을 직접 공격하지 못한 이유였다.
물론 최민혁 실장의 뒤끝이 무섭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런 차에 들은 소식이 바로 인공지능 무선 드론이었다.
정확히는 그 안에 들어가 있는 혁신적인 기술이 문제였다.
에플 공매도 재조사는 당연한 순서였다.
이런 상황에서 에플 공매도를 미국 정부가 무섭다고 소극적으로 나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눈치를 안 볼 수도 없었다.
킬리언 시몬스 이사 역시 가슴이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안 그래도 에플 공매도 플랜에 대해서 말하려고 했습니다. 지금도 손실이 큽니다. 차라리 이 정도에서 에플 공매도에서 손을 떼는 건 어떻겠습니까?”
“킬리언 이사 당신은 지금 에플 공매도에 들어간 자금 규모가 얼마인지나 알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그게 전부 우리 돈이기는 하고? 그 작자들이 가만히 있을 거로 생각하나?!”
“…그건.”
킬리언 시몬스 이사도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는 솔직히 겉으로 드러난 에플 공매도 일부만을 알 뿐이었다. 정작 그 복잡한 속살은 알지 못했다.
“좋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제대로 파악해서 뭔가 조처를 해야 합니다.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에플 공매도를 밀어붙였다가 감당하기 힘든 손실을 볼 수도 있습니다!”
데릭 모건 이사 역시 평소와는 달리 잔뜩 긴장했다.
“제대로 할 수 있겠어? 이번 일은 진짜 심각한 상황이야!”
“이번 일은 반드시 진실을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능하겠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번 일은 자칫하면 회사에 큰 타격을 줄 수도 있는 일이야. 그러니 자네 목숨을 걸어!”
“…알겠습니다.”
킬리언 시몬스 이사는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데릭 모건 이사는 샐로먼 브러더스 내의 다른 경영진과는 위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젠장맞을.’
다만 두 사람은 최민혁 실장 때문에 이 인공지능 미니 드론 기술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일에 과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다른 이들과는 달리 기술적인 안목이 있기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에플 공매도 상황이 심상치 않았는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최민혁 실장이 뭔가 수작을 부린 것이 분명해!’
* * *
킬리언 시몬스 이사는 데니스 샐로먼 이사 덕분에 최민혁 실장에 관한 이야기를 꽤 오래전부터 들었다. 그는 더욱이 데니스 샐로먼 이사가 최민혁 실장 때문에 태국으로 좌천된 것까지 잘 안다.
원래 낙천적인 킬리언 시몬스 이사는 굳이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 알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샐로먼 브러더스 내에서 최민혁 실장을 상대할 인물은 많으니까.
그런데 데릭 모건 이사가 딱 찍어서 자신에게 최민혁 실장에 대한 일을 맡겼다.
킬리언 시몬스 이사가 다른 이사와는 달리 공학 박사 학위가 있고, 전문적인 지식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는 실제로 인공지능 미니 드론에 대해서 우선적으로 검토해 봤다.
역시나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인공지능은 고사하고, 미니 드론 이것 자체가 상업적으로 힘들었다.
상업적인 드론은 단가가 전혀 관계가 없는 군사용 드론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가 많았다.
앞에 붙은 ‘인공지능’은 초고성능 데스크탑 컴퓨터에서 사용해도 한계가 존재했다.
그러니 모바일 드론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이게 진짜 가능한가? 혹시 사기일까?’
두 가지 다 이해가 되지 않는 가정이었다.
최민혁 실장이 도대체 뭘 노리는지 알 수가 없었다.
킬리언 시몬스 이사는 최민혁 실장이 보여준 드론의 정체에 대해서 의문을 가졌다. 불행히도 그 물건을 구할 수는 없었다.
최민혁 실장이 보안이라는 명분을 내세워서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 번 보여주고, 그 장면을 사진 찍은 것이 다였다.
킬리언 시몬스 이사는 이 일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에플 공매도와도 관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에플에서 이 인공지능 미니 드론과 관련이 있는 기술을 보여 준다면, 에플 주가는 난리가 날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에플 공매도는 결딴이 난다는 이야기인데, 생각하는 것만으로 소름이 끼치는군. 이거 설마 최민혁 실장이 에플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서 사전 작업을 하는 것일까?’
킬리언 시몬스 이사는 그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대응과 결과이니까.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모건 스탠리 쪽 지인을 만나서 문의를 해봤다.
“폴 고슬링이 알아서 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나도 잘 몰라.”
“전혀 몰라?”
“그쪽 프로젝트 팀은 이상해. 아예 사무실 내에 따로 폐쇄 구역을 만들어서 이제 담당자가 아니면 아예 들어가지도 못해.”
“아니, 내 말은 그들 중에 정보를 아는 사람이 있을 것 아냐. 그 정보만 알아도 제법 이익이 짭짤하게 나지 않을까?”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요즘 분위기가 좀 험하더라. 자칫 걸렸다가 회사에서 아웃이걸랑.”
“그게 말이 되냐? 평소 모건 스탠리 분위기와는 완전히 다르잖아.”
“마이크 라이언 이사가 사령탑이라는 소리가 있어서 아무도 터치를 못 해. 모건 스탠리 이사회조차 다들 쉬쉬할 정도이니까.”
“…….”
‘뭔가 이상하구나.’
* * *
킬리언 시몬스 이사도 이상한 점을 느끼자 몇 가지 조사를 더 해봤다. 그는 그 과정에서 모건 스탠리와의 계약서를 확인했다.
계약 문제가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바로 위약금 조항 말이다.
모건 스탠리는 괜히 문제가 사전에 생겨서 수십억 달러 소송에서 지고 싶지 않았다. 최소한 내부 정보가 샐로먼 브러더스에 흘러가지만 않는다면 어떻게 넘어갈 수도 있으니까.
킬리언 시몬스 이사는 계약 문제라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더 깊이 팠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이렇게 어수룩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뭔가 있어. 설마 인공지능 미니 드론이 가짜가 아닐까? 그쪽으로 눈을 돌려놓고 정작 다른 계획을 진행 중인 건가.’
그의 의혹은 점점 커졌다. 불행히도 그 의문은 최민혁 실장이 의도한 것이었다. 사실 아예 가짜 뉴스였다면 킬리언 시몬스 이사도 속지 않았을 것이다.
불행히도 진짜 뉴스에 가짜 뉴스를 섞어서 휘저어놓았기에 진실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것이었다.
‘어떻게 하나?’
* * *
미국 기업의 1분기 순이익 규모는 예상치보다 훨씬 높았다. 미국 제조업조차 이익 규모 자체가 커졌을 정도였다.
당연히 인텔과 같은 기업 순이익 규모는 20% 가까이 늘어났고, 크라이슬러 자동차 회사는 무려 2배 가까운 이익을 기록했다.
이런 미국 경기 흐름에 기름을 퍼부은 것은 다름 아닌 KM DVR이었다.
이 아이템은 기존에 없던, 세계 최초로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더욱이 일차로 설치된 것이 샌프란시스코를 시작해서 주변 지역이었다.
단순히 이 아이템 자체가 늘어난 것이 아니라 고성능 케이블 산업 역시 덩달아서 같이 규모 자체를 키웠다.
이 일은 미국 정부가 밀어붙이는 인터넷 초고속망 정책과도 연결된다.
그러니 이들 초고속망 관련 회사 주가는 다우지수 폭등에 영향을 받아서 주가가 껑충 뛰어올랐다.
이런 다우지수 열기는 에플에도 영향을 주었다. 주춤한 에플 공매도에도 에플 주가는 결국 55달러를 돌파해서 60달러에 안착한 것이었다.
사실 에플 주가가 이렇게 된 이유에는 겉으로 드러난 에플 공매도 현황 말고, 물밑에서 에플 주식을 매집하는 세력들의 영향이 컸다.
최민혁은 이 일이 미국 연기금이 들어와서 생긴 일이라는 것을 눈치를 챘다. 그는 에플 주가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혼탁한 모습에 피식 웃었다.
‘매트 퐁 재무장관 솜씨가 정말 대단하구나. 정말 좋은 기회야.’
그는 이번 일이 샐로먼 브러더스에게 치명타를 입힐 기회라고 생각해서 정보 파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물론 모건 스탠리 내부 동향도 빼놓지 않고 살폈다.
그런 중에 킬리언 시몬스 이사가 모건 스탠리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곧바로 만만한 스탠리 로버트 이사를 따로 호출해서 두 세력이 은밀히 만나는 증거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걸 어디서 구한 겁니까?”
최민혁은 화들짝 놀란 스탠리 로버트 이사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
“정말 모르셨습니까?”
“그게 좀…….”
난감한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안 그래도 모건 스탠리는 ARN 지분 20% 매입 계약서 잉크가 마르지도 않았다.
그런데 모건 스탠리가 뻔히 최민혁 실장과 앙숙인 샐로먼 브러더스의 임직원을 만나다니.
최민혁이 항의하는 것이 당연했다.
다만 평소라면 문제가 될 일은 아니었다.
모건 스탠리는 세계적인 투자 회사로 샐로먼 브러더스와도 거래를 한다. 따라서 임직원이 샐로먼 직원을 만나는 것이 불법은 아니었다.
스탠리 로버트 이사도 마이크 라이언이 저지른 일 때문에 상황이 예민하다는 것을 잘 알았다.
“일단 알아보고.…….”
최민혁은 굳이 시간을 더 끌고 싶지 않았다.
“샐로먼 브러더스의 킬리언 시몬스 이사가 직접 사람을 동원해서 모건 스탠리 내부를 알아본 겁니다. 인공지능 모바일 드론 때문이죠.”
“…인공지능 모바일 드론이 정말 사실이었습니까?”
“어? 그쪽도 아시는군요?”
“아, 그게…….”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다소 당황했다. 그 역시 알고 싶어서 안 것이 아니라 지난주 사교 파티에서 우연히 정보를 들었다.
어쨌든 그도 최민혁 실장에게 연락해서 확인하려고 했던 내용이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 역시 스탠리 로버트 이사를 타박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 자신이 미국 모임 이쪽저쪽에 정보를 다 흘렸으니 말이다.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네? 뭘 말입니까?”
최민혁은 일단 한번 상대를 찔러봤다.
“샐로먼 브러더스가 인공지능 모바일 기술의 가치를 안다면 에플 공매도를 포기할 것 아닙니까.”
역시나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아직 최민혁의 의도를 잘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