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8.
특히 KMP-02는 KMP-02B를 수정하기는 했지만 몇 가지가 바뀌었다.
스티븐 자신이 나서서 디자인을 대폭 바꾸어서 KM 전자에 개발한 KMP-02A와는 달라진 것이었다.
스티븐 처지에서는 이 KMP-02를 최대한 아이컴과 시너지가 나도록 해야 했다.
그는 때문에 가상의 환경까지 고려해서 연기해야 했다.
특수 효과를 줘서 강연장에서 보이는 것과 실제로 하는 강연은 달랐던 것이었다.
송도연 역시 그게 꽤 힘든 것 같았다. 그녀는 노래만 부르면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상황이 꼭 그렇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나마 시간을 두고 준비를 한 터라 가까스로 타이밍을 맞추었다.
최민혁 실장이 스티븐에게 연락도 없이 찾아온 것은 이 무렵이었다.
그는 두 사람의 리허설을 보면서 격렬하게 박수를 쳐주었다.
“와, 멋집니다.”
“감독이 시키는 대로만 한 겁니다.”
툴툴거리는 스티븐은 지금까지 자신이 한 고생을 떠올리면서 혀를 찼다. 투 마이크 시스템으로 아이컴을 변경한 덕분에 고생을 톡톡히 했다.
지금까지 리허설은 영화의 한 단면 같은 모습이었다.
스티븐 자신이 강단을 이리저리 움직일 때면 카메라가 이 따랐기 때문이다.
송도연 역시 스티븐의 움직임에 맞추어서 같이 움직여야 했다.
이런 행보는 단순히 그냥 보여주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서로 손발을 맞추어야 했다.
더욱이 이 강연은 단순히 말로만 끝나지 않았다.
환경 자체가 바뀐다.
가상으로 만들어진 미래 아파트.
그 시작이 얼굴 인식이었다.
집 안의 전자기기들은 KM DVR를 통해서 사용자의 활동 자체를 인식할 수 있다.
그리고 입주민의 식사, 휴식, 취침과 같은 공간적인 활동을 반영한다.
일테면 좋아하는 물의 온도 말이다.
냉장고 앞에는 개인이 먹는 음식 영양소와 관련된 정보 역시 나온다.
이 부분은 음성 처리가 되어서 아쉬운 점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현재 기술로는 이게 한계였다.
다행이라면 아이컴 화면이 그런 상황을 구체적으로 나타내 주고, 설명해 준다.
그 생활 양상은 정말 미래 아파트의 한 단면 같았다.
최민혁은 내심 감탄하면서 리허설을 위해서 만들어놓은 공간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각각의 이벤트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임에도 꽤 공을 많이 들였다.
송도연은 한창 연습에 빠져 있다가 최민혁 실장을 발견하고는 오도독 뛰어가서 그의 품에 안겼다.
“…시, 실장 오빠, 보, 보고 싶었어요.”
이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그만큼 연습이 고되고, 마음고생이 심했다.
목소리는 물론 작았다.
최민혁은 상기된 송도연의 얼굴을 보자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러곤 한창 진행하던 예행 연습을 잠깐 멈추었다.
다들 최민혁 실장을 발견하자 한 사람씩 와서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 중에는 CF 감독 일을 맡아준 제임스 역시 포함되었다.
“정말 너무합니다. 회사 오너가 이렇게 자기 회사에 무심한 분은 처음입니다.”
“제임스 감독님을 믿으니까요.”
“그렇습니까?”
제임스 감독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는 최민혁 실장의 제안을 받아서 CF 감독뿐만 아니라 CES 전시회 감독도 맡아주었다.
그로서도 이번 CES 전시회에 꽤 호기심을 가졌던 것이다.
‘기술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까.’
그 역시 내심 주판을 튕겼다.
그가 특히 관심이 있는 것은 애니 인공지능이었다.
최민혁은 높은 관심을 받으면서 스티븐에게 넌지시 입을 열었다.
“잠깐 이야기 좀 하시죠.”
“…알겠습니다.”
송도연은 최민혁 실장이 진지한 눈으로 스티븐을 쳐다보자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자기를 걱정해서 이 자리에 온 것이 아니었다.
“실장 오빠, 나빠요.”
“…좀 급한 일이 있다. 이해를 좀 해주라.”
“하지만 저 정말 고생 많이 했다구요. 설마 이런 일인지는 몰랐어요!”
그녀의 말 대로였다.
그녀를 돌봐준 곳은 모타운 레코드였다.
모타운 레코드의 능력은 다들 알아주니까.
다만 한국 기획사와는 성향이 많이 다르다.
송도연은 이 먼 타향에 혼자 와서 이들의 지도를 받아야 했다.
마음고생은 굳이 말할 더 필요가 없다.
다만 그녀가 지금까지 참을 수 있었던 것은 돈 때문이었다.
거기에 최민혁 실장에 대한 믿음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은 모타운 레코드에 그녀를 맡긴 후에 배 째라였다.
최민혁은 송도연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도 이제는 송도연이 어느 정도 환경에 적응한 것을 봤다. 이전처럼 그녀를 대할 수는 없었다.
“도연아, 너도 잘 알겠지만 난 음악 기획사 사장이 아니야. 그쪽은 내 전문 분야가 아냐. 오히려 모타운 레코드 쪽이 진짜야. 너는 앞으로는 계속 그들과 같이 일해야 할 거야. 그러니 지금은 내가 아니라 그들과 익숙해지는 것이 좋아.”
“하지만…….”
“물론 힘들지. 하지만 앞으로는 더 힘들 거야. 설사 이번 일이 잘되어도 마찬가지야.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혼자 일어서서 극복할 수밖에 없어.”
“…….”
송도연은 큰 충격을 받아서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최민혁 실장은 확실히 그녀가 아는 다른 사람과는 많이 달랐다.
그녀도 눈치는 있으니까.
이번 일만 잘 성공하면 자신이 뜰 수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느꼈다.
그녀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윌리엄 고디 실장이 직접 한 평가이니까.
그런 점을 고려하면 최민혁 실장의 행동은 그 어떤 사람과도 달랐다.
그녀를 이용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를 착취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녀를 이용하면 얼마든지 명성을 떨칠 수도 있다.
하지만 최민혁은 전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송도연은 내심 속상하기는 했지만 새삼스러운 눈으로 최민혁 실장을 쳐다보았다.
냉정한 최민혁 실장에게 한편으로 크게 실망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있다면 그게 최민혁 실장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아, 알았어요.”
최민혁 실장은 송도연 눈물을 살짝 닦아주면서도 냉정했다.
“앞으로는 홀로 서기를 해야 해. 나나 KM 전자는 송도연 씨와는 결국 이별을 하게 될 것이니까. 그러니 이번 일에 혼신을 다해. 이것이 네 마지막 연기라고 생각해야 해!”
“…네.”
최민혁은 송도연에 대해 딱히 걱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여동생의 백혈병 치료 때문에 조성우 실장에게 놀아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기회를 잡았다.
쉽게 그 기회를 포기할 사람은 아니었다.
최민혁은 또한 송도연에게 더 신경을 쓸 생각이 없었다. 그는 송도연이 독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리허설 문제는 걱정 안 해도 되겠어.’
* * *
최민혁은 에플이 사전 연습을 위해서 만든 건물 안의 한 사무실에서 스티븐과 다시 다과를 같이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송도연 씨가 비록 미성년자라고 해도 최민혁 실장님과는 나이 차이가 안 나는 것으로 압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겁니까?”
“도연 씨에게 관심이 있지 않습니까? 한국 언론에서도 그걸 문제 삼았습니다. 최근 한국 언론사 기자들이 부쩍 이곳을 찾았습니다.”
“가짜 뉴스이니 신경을 쓰지 마세요.”
하지만 스티븐은 진지했다.
“아니, 송도연 씨에게 꽤 단호한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 정도 미인이고, 잠재력 역시 놀라웠습니다. 이대로 성장만 한다면 세계적인 뮤지션이 될 수도 있습니다.”
최민혁은 스티븐이 하는 말뜻을 알았다. 굳이 틈을 보일 생각은 없었다. 스티븐이 괜히 송도연에게 쓸데없는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네? 저, 정말입니까?”
스티븐은 꽤 놀랐다. 미인 보기를 돌 취급하는 최민혁 실장이 좋아할 만한 여자를 바로 떠올리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떠올린 사람은 다름 아닌 이지수 박사와 헬렌이었다.
‘설마…….’
최민혁은 스티븐의 마음을 읽었다.
“본론으로 들어가죠.”
하지만 스티븐은 꽤 불만이 많은 얼굴이었다.
“본론, 참 좋습니다. 안 그래도 제가 직접 최민혁 실장님을 찾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는 최근 자신이 들은 이야기 한 가지를 슬쩍 꺼냈다.
“인공지능 드론을 개발했다는 소리가 파다합니다. 근데 저는 전혀 모르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제가 다른 사람 입을 통해서 들어야 합니까. 이 정도 기술은 우리 에플도 알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스티븐이 타박하는 것은 드론 기술에 인공지능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기술 애니가 들어간 이상 아이컴과 따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다.
최소한 스티븐은 어느 정도 정보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역시 기술에 대한 안목을 가진 경영자답게 상황을 제대로 파악했다.
“말하기 곤란한 부분이 좀 있습니다. 그리고 에플에서 굳이 알 정도의 기술은 아니었습니다.”
“아니,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스티븐은 자신이 최민혁 실장과 긴밀한 관계에 있다고 생각했다.
최민혁이 아는 스티븐의 성격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라서 다소 당황했다.
“아, 스티븐이 그렇게 생각하는 줄 몰랐습니다. 그 부분은 사과하죠.”
“앞으로는 신경을 좀 써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에플의 실질적인 오너는 최민혁 실장입니다. 그걸 잊지 말아주십시오.”
“전 32% 지분 소유자일 뿐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나머지 에플 주주 대부분은 최민혁 실장님을 따릅니다.”
실제로 그랬다. 최근 지분 8%를 매각한 것 때문에 말이 나오기는 했지만 에플 주주 대다수는 최민혁 실장을 밀고 있었다.
이건 최민혁 실장 본인도 전혀 생각을 못 한 문제였다. 하지만 그는 곧 그런 내심을 숨겼다. 솔직히 스티븐의 자존심을 생각해서 굳이 사소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뿐이다. 설마 스티븐이 그 일을 가지고 예민하게 반응할지는 몰랐다.
“굳이 변명하자면 인공지능 미니 드론은 제가 자금을 댄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스티븐은 크게 당황했다.
“네? 말도 안 됩니다. 그런 기술 개발에는 막대한 자금 투자가…….”
“이지수 박사님이 알아서 한 겁니다.”
“아, 이 박사님이라면… 그럴 수 있군요.”
스티븐은 그제야 이지수 박사와 관련해서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조차도 이지수 박사 경력을 다 알지는 못했다.
국방성 산하 프로젝트는 특히 보안 때문에 더 파기도 힘들었다.
“가만, 그러면 인공지능 미니 드론 역시 국방성 과제와 관련이 있는 것 아닙니까?”
“군사적인 부분만 해당합니다. 그렇지 않은 부분은 상관이 없습니다. 인공 지능 전체를 국방성 보안 문제로 엮을 수는 없습니다. 그건 우리 KM 전자 법무 팀에서 미국 국방성과 검토한 겁니다.”
“아, 그러면 좀 다르겠군요.”
스티븐은 그제야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국방성 과제였다고 해서 상업적으로 가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음성 인식이나 영상 인식 이 분야만 놓고 보면 딱히 국방성 과제로 묶을 수는 없었다.
실제로 아이컴이 그런 경우였다. 그 역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국방성과 컨택해서 이야기를 해봤고,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최민혁 역시 그런 점을 모르지 않았다.
“이번 CES 전시회에 한 가지를 수정해 볼까 합니다. 다만 일정이 워낙에 없어서 확신할 수가 없어서 스티븐을 찾았습니다.”
“…수정이라면 정확히 어떤 것을 말합니까?”
“송도연이 가상 현실에 있다가 현실로 튀어나오는 부분을 영상 처리 하잖아요. 그 부분을 실제로 대역을 써볼까 해서요.”
“혹시 스턴트맨을 사용할 생각입니까? 그건 너무 무리한 계획입니다.”
“아뇨. 그건 어렵겠죠. 하지만 미니 드론을 살짝 변화시키면 어떨까요?”
“…미니 드론에 뭘 수정해서 어떻게 하겠다는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스티븐은 황당한 눈으로 최민혁 실장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가 들은 내용은 좀 달랐기 때문이다.
“혹시 인공지능 미니 드론을 사용하려는 겁니까?”
최민혁은 자신의 의도대로 인공지능 미니 드론 이야기가 돈다는 것을 깨닫고는 피식 웃었다.
물론 미니 드론과 인공지능에 대한 뉴스가 미국 전역에 언론 통해서 다 퍼진 것은 아니었다.
소위 말하면 로열 계층을 타고 입소문이 주로 돌았다고 봐야 한다.
스티븐 역시 그런 특수 계층 중의 한 사람이라서 정보를 안 것이다.
최민혁은 넌지시 한 가지를 질문했다.
“그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스티븐은 믿는 겁니까?”
“미니 인공지능 드론 말입니까? 전…….”
스티븐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너무 허황된 이야기라서 솔직히 믿지 않았다. 그나마 소문의 출처가 최민혁 실장이라서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질 뿐이다.
“대답해 보세요. 정말 궁금하니까.”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최민혁 실장님이 관련되지 않았다면 안 믿었을 겁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님이 엮여 있다면 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