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7.
“이거 말로만 듣던 최민혁 실장님을 만나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너무 과한 인사입니다.”
최민혁으로서도 화들짝 놀랐다.
한 주의 재무장관이라는 위치는 결코 가볍지가 않았다.
그런 이가 이렇게 저 자세라니.
그의 전생에서는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사실 그도 재무부 관료의 냉랭한 반응 때문에 기분이 좀 상하기는 했다.
그런데 주 재무장관 덕분에 그런 감정을 털어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매트 퐁 주 재무장관은 여전히 저자세를 보였다.
“천만에요. 제가 최민혁 실장님에게 반해서 한국 투자를 진행하려고 했습니다.”
“…정말입니까?”
최민혁도 화들짝 놀랐다. 그는 인생 1회 차 지식을 이용해서 매트 퐁 재무장관이 한국 증시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 때문에 한국 증시에 투자하려고 했다는 사실에 움찔했다.
‘역시 나쁜 선택은 아니었어.’
“물론입니다. KM 전자 같은 회사가 탄생하는 곳이 한국 증시 아닙니까. 찾아보면 KM 전자 못지않은 회사가 있다고 자신합니다.”
이 믿음하에서 1차적으로 투자하려는 금액 규모가 무려 10억 달러를 훌쩍 넘었다. 하지만 이건 투자 성과에 따라서 다음 2차, 3차 투자가 있었다.
최민혁은 순간 이걸 말려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아는 전생 기억으로 IMF 동안에 미국 자본이 막대한 손실을 당했다는 기억을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지. 그렇다면 결국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인가?’
답은 쉽게 나왔다.
누군가 매트 퐁 캘리포니아 재무장관에게는 충고했을 것이 분명했다.
최민혁은 고민했다. 그는 이미 이곳에 오기 전에 재무부 쪽과 관련된 투자자를 확인했다. 그들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몰랐다. 다만 자금 흐름은 샐로먼 브러더스 측과 관련되어 있었다. 에플 공매도에 판돈을 건 것이었다.
‘결국 에플 공매도 때문이라는 이야기야. 설마 하원 쪽과 연결되어 있을지는 몰랐어.’
그로서도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다만 상대가 미국 정부가 아니었다.
최민혁은 결국 혼자서 그들을 상대해서는 곤란했다.
그는 물론 샐로먼 브러더스의 분위기가 이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 자신이 최문경 부회장과 샐로먼 브러더스와의 갈등을 부추겼기 때문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제3의 다른 물주가 끼지 않았다는 점이다.
‘연기금이 딱 좋지.’
최민혁은 결국 고심을 한 끝에 자신이 상대를 설득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만약 투자 때문에 고민이 많다면 제가 괜찮은 것을 추천해 줄 수 있습니다.”
“저, 정말입니까?”
“당연합니다. 사실 저는 요즘 이런저런 일 때문에 한계를 경험해서 고민이 많습니다. 이왕이면 제 손을 잡아주는 분이 있었으면 합니다.”
“아, 혹시 그 재무부 미팅 때문입니까?”
“오, 아십니까?”
“당연히 모를 수가 없습니다. 재무부가 개인을 호출해서 미팅한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다만 미국 의원에서도 굳이 그 일을 키우지 않는 이유가…….”
“미국 안보 블랙리스트 말입니까?”
“…아시는군요. 저도 미국인이지만 창피합니다. 그래도 미국 공익이라는 측면에서 그들을 탓할 수만은 없습니다. 미국 언론이 굳이 안 움직이는 이유도 그것 때문일 겁니다. 그나마 워싱턴 포스트를 비롯한 몇몇 언론이 나섰기에 도움이 된 겁니다.”
최민혁은 굳이 워싱턴 포스트를 이용한 것이 그나마 최고의 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굳이 자신의 의도를 숨길 필요가 없었다.
그는 그래서 더 고민하지 않았다.
어차피 매트 주 재무장관이 알아서 바꿀 일이지만 조언 삼아서 슬쩍 한 가지 사실을 말해주었다.
“한국 증시는 규제가 많아서 당장은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기 힘들 겁니다. 차라리 다우존스가 훨씬 나은 곳입니다.”
“하지만 다우존스 주가가 너무 많이 올랐습니다.”
“물론 다우존스 주가가 과열된 점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미 가치가 오른 종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당장은 괜찮다는 말씀이군요.”
매트 주 재무장관도 딱히 최민혁의 말에 반박하지는 않았다. 최민혁 실장의 안목에 대한 평가는 예언자 수준이니까.
다만 너무 갑작스러운 충고에 크게 당황한 것이었다.
최민혁은 기회가 왔다고 판단하자 김명준 과장에게 손짓했다. 김명준 과장이 슬쩍 나서서 007 가방 하나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자연스럽게 서류 가방을 열었다.
그 안에는 날개가 접혀 있는 동그란 물체 하나가 있었다.
“……?”
매트 퐁 재무장관은 의아한 눈으로 서류 가방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는 곧 화들짝 놀라서 뒤로 후다닥 물러나고 말았다.
동그란 물체가 자동적으로 동작하기 시작하더니, 서류 가방 위로 떠올랐다. 그 물체는 빙글빙글 돌면서 사무실 안을 확인했다.
그다음에는 최민혁 실장을 향해서 후다닥 날아가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최민혁 실장님, 안녕하세요.]
최민혁은 여전히 이 모바일 애니가 익숙하지 않았다.
[어, 애, 애니도 안녕하지?]
[후, 전 요즘 너무 힘듭니다. 이지수 박사님이 절 왕따 취급하는데, 계속 잔소리만 합니다. 아니, 제가 배터리 먹는 하마라고 계속 구박하는데, 아주 정신병에 걸릴 지경입니다.]
[…그래?]
최민혁은 아직도 애니 드론에 적응할 수가 없었다. 그는 전생의 미래에서 이 드론이라는 물건이 상업적으로 팔린다는 것을 안다.
다만 그가 미래에서 본 드론조차 이렇게 자유자재로 말하고, 듣는 수준은 아니었다.
설사 애니 드론이 무선랜을 통해서 서버와 실시간으로 통신하고, 이를 바탕으로 동작한다고 해도 말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 인공지능 드론 기술은 무려 반세기를 앞서간 기술이었다.
‘회귀자인 내가 봐도 신기하네. 가만, 우리 재무장관은…….’
“……!!!”
매트 퐁 재무장관은 마치 얼어붙은 사람처럼 입을 딱 벌리고 있었다.
심지어 차를 들고 안으로 들어온 보좌관 역시 유령을 본 사람처럼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들은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이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배터리가 워낙에 순식간에 닳아서 빨리 가능한 여러 가지 기능을 보여줘야 했다.
이런저런 사소한 대화를 시작으로.
허공을 멋지게 나는 묘기까지.
거기에 원격 카메라로 찍은 걸 무선랜으로 전송해서 노트북 화면에 띄워주는 기능까지 보여주었다.
최민혁은 애니 드론이 비틀거리자 즉시 서류 가방에 손짓했다.
애니 드론은 서류 가방 안에 무사히 착지한 후에 배터리 충전을 즐겼다.
아니, 이내 애니 드론은 골골 잠에 빠졌다.
그는 그제야 애니 드론의 수많은 문제점을 바로 떠올렸다.
당장 멀티 IP를 사용한 덕분에 배터리 소모가 너무 과하다는 것을 말이다.
‘이건 도저히 팔 물건은 아니야.’
하지만 KM 전자가 가진 기술력을 보여주는 것으로는 더할 나위가 없었다.
“어떻습니까?”
“…이, 이게 뭐, 뭡니까?”
“드론입니다. 군사용 드론 이야기는 많이 들었을 테니, 그 크기를 줄인 겁니다.”
드론 대중화는 지금 이 시점에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당장 배터리 하나만 놓고 봐도 답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것을 다 떠나서 하드웨어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그 두뇌를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바로 인공지능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예 손을 댈 수가 없는 기술이었다.
아무리 매트 퐁 재무장관이라도 최민혁 실장의 설명을 듣고는 긍정할 수가 없었다.
“…맙소사 이게 가능한 기술이었습니까?!”
“물론 아직 넘어야 할 장벽은 좀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기본 시제품이 나온 이상 완성은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그 시간문제가 길면, 6~7년은 족히 걸릴 수 있다는 말까지 하지는 않았다.
불행히도 매트 퐁 재무장관이나 그의 보좌관은 최민혁 실장 말의 맹점을 잘 몰랐다.
“대, 대단합니다. 세상에 이런 기술이 가능하다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최민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은 그 어떤 기업도 우리와 기술을 견주기 어렵습니다. 어떻습니까. 이런 회사의 미래 가치 말입니다.”
“어떤 회사입니까? 우리 연기금, 아니, 필요하다면 오하이오, 코네티컷 연기금까지 설득해서 같이 투자할 수 있습니다!!!”
예상한 반응이었다.
최민혁은 순간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그는 굳이 남의 돈을 불려주고 싶지는 않았다. 이번 일은 어디까지나 어쩔 수 없어서 하는 것이니까.
선을 분명히 그어야 했다.
“에플은 어떻습니까?”
“네? 에플 말입니까? 그곳은…….”
“에플 제품에 이 기술이 적용될 겁니다. 뭐 이게 단순한 드론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아실 겁니다. 인공지능 기술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사실 이 부분부터가 황당한 일이었다.
최민혁은 매트 퐁 재무장관이 입을 여는 것보다 더 빨리 소리쳤다.
“물론 에플 주가가 최근 많이 올랐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애니 드론에 사용된 기술이 실제로 에플 제품에도 부분적으로 적용될 겁니다.”
“마, 맙소사 정말입니까?!!!”
“네, 진심입니다. 솔직히 저는 이 정보를 알리고 싶지 않습니다. 굳이 이러는 이유는 다시 말씀드리지만 미국 내에 적이 너무 많아서입니다. 저로서는 아군을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최민혁은 굳이 숨기지 않았다. 이들 연기금은 헤지펀드와는 성격이 좀 달랐다. 당장은 이들을 아군으로 끌어들이면 재무부 관료와 그 배후 애들에게 더 큰 타격을 줄 수가 있었다.
‘샐로먼 브러더스는 덤이고.’
“조, 좋습니다. 바로 투자를 하겠습니다. 아, 몇 가지 검토는 필요합니다.”
“물론입니다. 아, 보안이라는 점은 아시죠?”
“당연한 말씀입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매트 퐁 재무장관 말을 믿지 않았다. KM 미니 드론에 관한 이야기는 아마 퍼질 대로 퍼질 것이다.
‘그게 여길 찾은 목적 중의 하나니까. 과연 그 말을 믿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솔직히 나도 지금은 못 믿겠다.’
KM 미니 드론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 아주 충격을 받는 이들이 많은 것이다. 그들의 내적 갈등은 격화될 것이고 말이다.
‘재무부나 그 배후 투자자들의 반응을 직접 볼 수가 없어서 아쉬워.’
최민혁은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내심은 달랐다.
‘모건 스탠리도 알아서 손을 뺀 상황이니, 잘만 하면 샐로먼 브러더스는 물론이고 나를 노리는 재무부 놈들의 자금줄을 박살 낼 수 있겠어.’
* * *
캘리포니아 재무장관은 꽤 리더십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캘리포니아 주 내의 인물들을 설득하는 것에서 끝내지 않았다.
그가 최민혁 실장에게 약속한 오하이오, 코네티컷 재무장관을 직접 만나서 설득했다.
이번에 아이컴에 적용될 기술이 무엇인지 직접 설명해 주었다.
그들로서는 꽤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다만 그들도 바보는 아니었다.
“아니, 최민혁 실장이 굳이 자신이 손해를 봐가면서까지 우리 연기금을 끌어들이려는 이유를 모르겠어?”
“당신들은 모릅니까. 최민혁 실장님이 재무부와 갈등한다는 것을?”
“설마 그 일이 심각한 겁니까?”
“정확히는 하원에서 최민혁 실장을 블랙리스트로 올린 것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그러니 최민혁 실장도 아군을 더 모으고 싶죠. 자신이 손해를 보는 한이 있어도 말입니다.”
“흠.”
두 사람도 그제야 최민혁 실장의 상황을 알자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그들 역시 정치적인 관록이 있는 덕분에 최민혁 실장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것이었다.
‘그게 이 일이었구나.’
“설마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겁니까?”
“좋습니다!”
두 사람은 순순히 수긍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 미니 드론 이야기는 최민혁 실장의 예측처럼 이곳저곳으로 퍼져 나갔다.
* * *
스티븐은 오늘도 CES 전시회 준비를 위해서 이런저런 연습을 해야 했다. 단순히 강연을 위한 준비만이 아니었다.
그가 해야 할 일은 강연장에서 보여줄 여러 가지 것들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송도연과 호흡을 맞추는 것도 필요했다.
단순히 공연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과 송도연, 그 사이를 이어주는 기술 때문이었다.
아이컴, KMP-02와 관련된 광고가 마치 CF 광고와 비슷한 수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