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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816화 (813/1,021)

#816.

그런 경험이 있기에 헬렌에게 그다지 휘둘리지 않았던 것이다.

“헬렌이 미인이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남자라면 헬렌에게 관심을 둘 만하죠. 보통은 거리가 있어서 쉽게 다가가지 못해요. 그런데 조창호 차장은 좀 예외입니다. 같이 일하니까. 정이 들 수밖에 없어요.”

“…….”

헬렌은 그제야 최민혁 실장이 말하는 의도는 깨닫고는 입을 다물었다. 다만 그녀는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리자 바로 일축했다.

“하지만 최 실장님은 달랐지 않습니까. 저에게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으니까.”

최민혁은 어색하게 웃었다.

“제 눈이 좀 높다고 해둡시다!”

“흠.”

헬렌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최민혁 실장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최민혁은 물론 그런 모습조차 사랑스러웠지만, 피식 웃었다.

“충분히 이야기한 것 같으니, 앞으로는 그런 점을 조심해 주세요. 헬렌은 KM 그룹 계열사 전체를 관리할 분이 될 테니까. 본인의 외모가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았으니, 스스로 자제를 해야죠.”

“…알겠어요.”

헬렌은 잠깐 최민혁 실장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녀도 이런 남자는 처음이었다.

아, 물론 회사 상급자로서 이런 이야기를 할 수는 있다.

그래도 자기 면전에서 이렇게까지 자기 소신을 뚜렷하게 말하는 남자는 없었다.

그녀는 요즘 이지수 박사가 최민혁 실장을 신경 쓰는 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막으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좀 달랐다.

비록 연하이기는 했지만, 최민혁 실장은 꽤 매력적인 남자였다.

그녀의 성정체성이 흔들릴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 * *

최민혁은 헬렌과의 이야기를 통해서 충분히 설득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헬렌은 조창호 차장과는 명확하게 거리를 두었다.

그 덕분에 조창호 차장도 조금씩 정신을 차렸다.

최민혁은 조창호 차장이 정신을 차렸다는 걸 확인하자 다시 그를 불렀다.

그는 땅에 떨어져서 내부가 훤히 드러난 드론을 며칠 동안 살폈다.

그 안에는 MCU 크기의 칩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심지어 수백 개의 점퍼 선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보드 곳곳에 붙어 있는 납땜 흔적이 너무 많아서 당장 폐품 물건 같았다.

‘이게 동작하다니.’

최민혁은 혀를 내두른 채 인공 드론 부품을 꼼꼼하게 살폈다. 그도 나름 전생 기억을 하고 있었지만, 이 물건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

그의 예측대로였다.

만들기는 만들었는데, 도저히 상업용으로 만든 것 같지가 않았다.

이보다는 오히려 아마추어 대학생이 만든 것처럼 보였다.

다만 그 스케일을 고려하면 아마추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이지수 박사도 이건 어렵지. 정말 대단하다.’

비록 며칠이라는 시간을 여기서 쓰기는 했지만, 이번 일은 제대로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놀라운 눈으로 조창호 차장을 쳐다보았다. 아직도 조창호 차장은 좀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런 이의 능력이 이 정도라니.

사람의 잠재력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이거, 양산은 어렵겠죠?”

“…….”

조창호 차장은 여전히 망부석처럼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아직도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괜찮나 싶었는데, 그사이에 상태가 또 나빠진 것이었다.

“레즈비언이라니,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레즈비언일 수가 있어!!!”

혼자 중얼거리는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았다.

최민혁은 그를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어서 양손으로 조창호 차장 어깨를 잡고는 소리쳤다.

“조 차장님!!!”

다행히 조창호 차장 눈빛이 초점을 찾았다.

“아, 양산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더욱이 양산할 수 있어도 문제입니다. 여러 칩을 사용하기는 했는데, 처리 속도가 문제입니다.”

당장 문제가 되는 것 중의 하나는 모터 PID 제어 기술이다.

이 제어 신호 알고리즘 처리 속도가 딱 정해져 있었는데, 이 제어 기능 시간을 당기는 것이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이 부분 역시 전용 칩에 따로 설계해서 들어가 있다.

이런 식으로 칩이 병렬로 동작하기 때문에 배터리 소모는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들 신호를 다시 낸드 메모리에 저장하는 것도 간단하지 않았다.

최민혁은 머리가 아파 오는 것을 느꼈다. 조창호 차장 이야기를 들어 보니, 상업화는 아예 접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좀 더 생각하다가 이런 점에 피식 웃었다.

“이걸 베끼는 업체는 없겠죠?”

조창호 차장은 다른 업체 이야기에 헬렌에 대한 충격에서 살짝 벗어났다.

“베껴서 기술 개발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기본적으로 OS와 제어칩이 능동적으로 결합되어 있어서 설계가 계속 바뀌기 때문입니다.”

“…혼자 한 것이 아니겠군요.”

“당연히 이지수 박사님이 연구를 주도했습니다. 이 결과물에 대한 것을 가장 잘 아는 분이 이지수 박사입니다.”

최민혁은 굳이 더 질문하지 않았다. 기술 수준이 자신이 넘볼 만한 것이 아니었다.

“…하면 언제까지 완성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요.”

“네. 그것은 이지수 박사님이 정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저야, 이지수 박사님이 지시한 대로 움직였을 뿐입니다.”

“…애매하네요.”

최민혁은 입맛을 다셨다. 확실히 이 미니 드론은 광고용이라고 확신했다.

‘차라리 잘된 것일 수도 있어.’

보통 사람이라면 미니 드론 허풍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최민혁 자신이라면 어떨까.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성과가 있다.

따라서 미니 드론을 적당히 우려먹을 수만 있다면 강력한 영업 효과가 될 것이다.

‘다만 나중에 사기라고 고소당할 수도 있어. 그런 경우는 조심해야겠지. 이번 캘리포니아 연기금 쪽과 협상 전에 이 일을 끝내야 하는데, 시간이 좀 더 필요할까.’

다만 그도 아직 공황에 빠져 있는 조창호 차장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괜찮을지 모르겠네.’

* * *

미니 드론 연구는 KMBOOK 내에서도 제대로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이지수 박사와 헬렌이 주도한 일로 KMBOOK 철학과는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미니 드론과 메신저 소통이라고 우기면 그럴듯하게 될 뿐이다.

물론 이를 두고 시비 거는 이들은 없었다.

애초에 KMBOOK은 이지수 박사의 천재성을 바탕으로 설립되었다.

내부 임직원 대다수는 이지수 박사를 마치 여신처럼 따랐다.

일종의 종교적인 색채마저 있었다.

다만 이들도 미니 드론을 직접 개발할 때까지는 하드웨어 기술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지 몰랐다.

외주 업체처럼 지시만 하면 간단히 될 것으로 생각했다.

당연히 실패.

이에 대한 돌파구를 제시한 사람이 다름 아닌 조창호 차장이었다.

이지수 박사도 조창호 차장이 얼마나 뛰어난 인재인지 그때야 알았다. 헬렌 역시 예외는 아니다. 당장 문제가 생기면 조창호 차장을 찾았다.

“조 차장님!”

헬렌이 이처럼 황급히 뛰어온 이유는 미니 드론의 늘어진 응답 특성 때문이었다.

“이거, 반응이 갑자기 멈추었어요!”

평소와 같은 말이었다.

“…….”

하지만 조창호 차장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이제 좀 정신을 차렸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감정을 쉽게 조절할 수 없었다.

그는 멍하니 헬렌을 쳐다보기만 했다. 그녀를 사랑해서 영어도 빡빡하게 배웠다. 이제는 미국인과 편하게 소통할 수준까지 영어 실력을 올렸다.

다만 노총각에게 갑자기 찾아온 실연의 아픔은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다.

조창호 차장 두 눈에서 폭포수 같은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헬렌은 그런 조창호 차장 변화를 깨닫지는 못했다.

“이게 말이에요. 제가 몇 가지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응답 특성 속도를 더 끌어… 어머,”

화들짝 놀란 헬렌은 그나마 최민혁 실장에게 조언을 받아서 조성호 차장의 감정 변화를 알 수가 있었다.

조창호 차장은 도저히 슬픔을 참을 수가 없어서 몸을 돌렸다.

헬렌이 다급하게 조창호 차장 오른팔을 잡았다.

조창호 차장은 화들짝 놀랐다. 그는 반사적으로 헬렌에게서 물러났다.

헬렌으로서는 조창호 차장의 표정 변화가 처음이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면서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 있어요?”

“아닙니다. 집에 일이 좀 있어서요.”

“그래요?”

하지만 그녀도 충혈된 두 눈으로 자신을 힐끗 쳐다보는 조창호 차장 모습에서 다른 감정을 느꼈다. 익숙한 감정이었다. 남자에게 흔히 받아본 시선이었다.

‘최민혁 실장 말이 정말 사실이었구나.’

“혹시 절 좋아한 거예요?”

“…….”

조창호 차장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헬렌도 다른 남자였다면 같은 질문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도 조창호 차장은 그렇게 대접할 수가 없었다.

“말하기 좀 그렇지만 전…….”

“레즈비언이세요?”

헬렌도 화들짝 놀라기는 했지만 최민혁 실장이 사전에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 자신도 조창호 차장의 도움이 필요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어멋, 어, 어떻게 아셨어요?”

“그게 중요합니까. 사실이 중요하죠. 하, 이야기하니, 좀 편하네요.”

조창호 차장은 다행히 정신을 수습했다. 헬렌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슬픔을 끌어안을 수가 있었다.

‘아니, 실장님 때문인가?’

최민혁 실장이 아픈 진실의 폭탄을 던져주었다. 그런데 차라리 그게 나은 선택이었다. 짝사랑의 늪에 더 빠지기 전이었다. 먼저 안 덕분에 감정을 추스를 수가 있었다.

조창호 차장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헬렌을 힐끗 쳐다보았다.

놀랍게도 헬렌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조창호 차장을 쳐다보았다.

그만큼 조창호 차장은 그녀에게도 필요한 인물이었다.

“제가 도와줘야 할 일이 뭐죠?”

“이, 이거요.”

“줘보세요.”

그는 노트북 화면에 떠오른 몇 가지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자기 사무실로 걸어갔다.

헬렌은 조창호 차장 눈치를 보았다.

그건 사실 헬렌에게는 특이한 일이었다.

최민혁은 조창호 차장이 걱정스러워서 사무실을 가다가 두 사람의 미묘한 분위기를 발견하고는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내가 아는 헬렌 모습이 아니군. 그래도 다행이야. 저렇게 잘 끝나서. 이제는 캘리포니아 연기금과의 협상에 집중하는 것이 좋겠어.’

* * *

연기금은 공무원이 적립하는 돈이다. 흔히 이 자금을 이용해서 주식, 채권, 부동산에 투자한다. 한국 연기금과는 달리 미국 연기금은 그 덩치가 크다. 총자산이 무려 6조 달러가 넘는다.

이런 연기금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캘리포니아 공무원 연금 역시 이런 연금 종류의 하나다.

이 연금은 다른 미국 연기금처럼 흔히 주식 투자를 한다.

그런데 캘리포니아 행정부 내에서는 흥미로운 일이 생겨났다.

다름 아닌 최민혁 실장이 캘리포니아 내에서 한 일 때문이다.

최민혁 실장 때문에 벨린 투자는 꽤 괜찮은 투자 대상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벨린 투자는 외부 직접 투자를 받지 않았다.

지분 매각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결국 차선은 최민혁 실장과 관련이 있는 기업이 그 대상이었다.

당장 투자가 가능한 기업은 KM 전자였다.

캘리포니아 연기금이 결국 관심을 가진 것은 한국 금융 시장이었다.

정확히는 KM 전자 주식이었다.

캘리포니아 재무장관 매트 퐁 입장에서 스티븐의 연락은 의아한 일이었다. 다만 그가 소개해 주려는 인물이 최민혁 실장이라는 것을 알자 쾌재를 불렀다.

[당장 만나겠습니다.]

최민혁 실장은 스티븐의 연락을 받자 곧바로 캘리포니아 재무장관 매트 퐁을 만났다.

매트 퐁은 영국 출신으로 억센 발음을 구사하는 이였지만 그렇다고 성격마저 그렇지는 않았다. 그저 사람 좋은 이웃집 아저씨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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