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이 미니 드론에 적용된 부품의 대다수는 고가의 제품으로 상용화 자체는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단가를 낮추면 아예 다 새로 만들어야 했다.
만약 그렇게 수정한다면 역시 한계는 명확하게 존재한다.
당장 기능도 문제였다.
완전히 사람처럼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음성 인식에도 오류가 있었고, 영상 인식 능력 역시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겉보기에는 잘 동작하는 것 같아도 실상 안을 들여다보면, 오류가 넘쳐날 것이다.
‘KM DVR이 그랬으니까.’
더 큰 문제는 배터리 소모 속도였다.
드론이 사람과 소통하면 할수록 배터리 게이지가 너무 빨리 뚝 떨어졌다.
내부 두뇌 칩과 모터에 사용되는 파워 소모가 너무 심했다.
고작 10분 정도 날다가 밑으로 추락하는 것이다.
지금 드론에 사용된 배터리는 미래 기술이 따로 처리해서 만든 무려 5천만 원짜리 용량임에도 그렇다는 말이다.
이지수 박사는 떨어진 드론 하나를 주운 채로 입맛을 다셨다.
“하, 이게 문제예요. 전용 칩으로 최대한 배터리 효율을 올렸지만 역시 배터리 소모가 너무 심해요.”
푸념하는 그녀는 실상 미래 기술 측에 대용량 배터리를 요구했다.
모바일에 맞는 배터리 말이다.
하지만 미래 기술에 무리한 요구를 한 셈이다.
미래 기술은 지금 배터리에 집중하는 것 자체가 한계였다.
이건 배터리 기술 자체의 한계라서 단기에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지수 박사가 그걸 모를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설계 패턴 자체를 바꾸어야 할 것 같아요.”
드론 내부 패턴 설계를 바꾸는 일은 단순한 의미가 아니었다.
OS, 칩, CPU, 배터리 관련 부분을 다시 재배정한다는 의미이니까.
이건 한두 달 해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최민혁은 전생을 기억하기에 굳이 그런 점까지 말해주지 않았다.
‘지금도 너무 앞선 기술이야. 당장 인프라가 따라오지 못할 테니까. 차라리 이용하려면 딱 이 정도가 좋을 것 같아.’
“…뭐 이왕 이렇게 된 김에 한번 제대로 연구를 해보세요.”
이지수 박사는 긍정적인 최민혁 실장의 반응에 미소를 짓고 말았다.
“역시 최 실장님은 이래서 제가 좋아한다니까요!”
이지수 박사 얼굴에는 의외로 흔히 보기 힘든 미소가 화사하게 떠올랐다.
“…….”
최민혁은 가슴이 두근거려서 도저히 그녀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아니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지금 하는 일이 더 중요하지. 일단 재무부 애들 배후 투자자 성향부터 확인해서 일의 규모를 정해야겠어.’
이런저런 고민이 많이 떠올랐다.
이 기술을 어디까지 공개해야 할지.
그런데 굳이 그런 고민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샐로먼 브러더스를 흔들 필요가 있어. 그렇다면 투자자를 더 끌어들이는 것도 한 방법이니까.’
다만 그 일을 하기 전에 한 가지는 확인해야 했다. 최민혁은 드론 중에 부서져서 내부가 드러난 것을 들었다.
“조 차장님, 저 좀 보시죠.”
“…네.”
조창호 차장은 이지수 박사에게 구원의 눈빛을 보냈지만, 그녀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조창호 차장은 KM 전자 소속이기 때문이다.
‘미리 말해놓을 것을 그랬나.’
다만 그녀는 최민혁 실장의 표정을 보고서 그렇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이보다는 자신의 염원이 담긴 미니 드론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 * *
KMBOOK 본사는 신생 법인답게 본사 건물 자체가 미래 지향적이었다.
내부 구조부터가 한국의 흔한 일반적인 사무실 구조와는 많이 달랐다.
투명 유리로 훤하게 트인 공간도 있었고, 아예 밀폐해서 외부에서 알 수 없도록 한 공간도 있었다.
조창호 차장 사무실이 바로 그런 곳 중의 하나였다.
이지수 박사가 조창호 차장을 위해서 아예 연구실을 마련해 둔 것이었다.
최민혁은 휘파람까지 불면서 조창호 차장의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그는 초고가의 계측 기기를 하나씩 살피면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디지털 미터나 오실로스코프의 생김새부터가 KM 전자에 있는 것과는 많이 달랐다.
거기다 가격까지 확인하고는 혀를 내둘렀다.
“우리 이 박사님이 조창호 차장님의 능력에 완전히 반했나 보네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습니까. 아니라고 하니, 그렇게 알겠습니다. 혹시 KMBOOK으로 이직하기로 한 겁니까?”
“…….”
조창호 차장은 놀랍게도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정말 KMBOOK를 진지하게 생각했다.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에게 헬렌은 이상형이었다.
에플 파견 이후에 미국을 이리저리 오가는 중에 헬렌을 봤다.
조창호 차장이 그때 받은 충격은 말로 형언하기 힘든 것이었다.
최민혁은 조창호 차장의 눈이 상당히 높아서 아직 싱글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혀를 내둘렀다. 한국인 여자 중에도 미인이 많으니까.
“여자 문제 때문입니까?”
그는 이제 좀 편한 얼굴을 한 조창호 차장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제가 비서실 직원을 소개해 줄 수 있습니다.”
“네?”
조창호 차장은 이번에 화들짝 놀랐다. KM 전자 비서실 여직원들은 전설적이었다. 다만 최민혁 실장 때문에 감히 건드리는 이는 없었다.
실상 비서실 여직원을 건드렸다가 탈탈 털린 이들이 있었다.
덕분에 최민혁 실장이 할렘을 꿈꾼다는 소문이 돌기는 돌았다.
그런데 KM 전자 직원이라면 이 소문을 진실이라고 믿었다.
최민혁 역시 그걸 모르지 않았다. 그는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비서실 여직원도 남자를 만나야죠. 제가 그걸 반대할 리가 있겠습니까?”
“…네.”
조창호 차장은 심각하게 고민했다. KM 전자 비서실 여직원이면, 나쁘지 않았다. 다만 그의 마음을 가로막은 이는 헬렌이었다.
“아, 아닙니다!”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까?”
“네.”
최민혁은 조창호 차장의 마음을 알자 피식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좋아요. 다시 말하지만 제가 지금 조창호 차장님을 탓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조창호 차장님의 행동은 딱히 우리 회사 철학에 어긋나는 것이 아닙니다. 필요하다면 KM 그룹 계열사 쪽에 얼마든지 연락해서 적극적으로 나서도 됩니다.”
“저, 정말입니까?!”
“하, 정말 답답한 분이군요. 전 사내 일에 대해서 그 어떤 터치를 한 적이 없습니다. 대부분은 본인 자율에 따릅니다.”
“아!”
조창호 차장은 화들짝 놀랐다. 그는 최병연 이사를 따라서 KM 전자로 자리를 옮긴 후에 얻게 된 KM 전자 생활이 꽤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KM 전자는 오성 전자와는 사내 분위기 자체가 아주 달랐다.
팀장의 허락만 얻는다면 얼마든지 개인적인 연구도 가능했다.
엔지니어 처지에서는 KM 전자의 업무 분위기는 천국이었다.
오죽하면 KM 전자에 입사하기 위해서 KM 전자 임직원과 길을 놔주는 브로커까지 있겠는가.
최민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았다.
“제가 질문한 요지는 왜 조창호 차장님이 이곳에 있느냐 하는 단순한 의문입니다. 이미 이지수 박사의 요청에 따랐다고 들었으니, 그 부분은 더 질문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셔야 할 일이 있어요.”
“소형 드론 기술과 관련된 것이라면…….”
“아뇨. 그 이야기에 앞서서 헬렌 말입니다. 헬렌에게 관심이 있는 거 맞죠?”
조창호 차장은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그는 헬렌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최민혁은 혀를 내둘렀다.
‘아주 푹 빠졌군.’
이대로 조창호 차장을 놔둘 수는 없었다. 자신 역시 그랬다. 그래서 더 조창호 차장의 심리를 아주 잘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레즈비언입니다.”
“네? 레… 뭐라고 하셨습니까?”
최민혁은 쓰게 웃었다. 그는 자신이 이런 이야기까지 말해야 싶었지만, 헬렌에게 푹 빠진 조창호 차장을 위해서라도 결단을 내렸다.
“여자끼리 사랑하는 레즈비언 말입니다. 헬렌은 레즈비언입니다.”
“마, 말도 안 됩니다! 아무리 최 실장님이라도 그런 말을 하지 마십시오!!”
격렬한 반응이었다.
조창호 차장은 놀랍게도 최민혁 실장을 한 대 치려는 것처럼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헬렌을 그만큼 좋아한 것이었다.
최민혁은 조창호 차장에게 화내지 않았다. 그는 전생에서 이미 동병상련의 경험을 해봤기에 안쓰러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정말 충격이었지.’
“어차피 조 차장님이 확인해 보면 알 일입니다. 제가 거짓말할 이유가 없습니다.”
“혹시 제가 미국에서 시간 낭비하는 것을 보다 못해서 한 말이 아닙니까?!!”
이 정도면 중증이었다.
최민혁은 손으로 이마를 잡았다. 그도 그냥 넘기고 싶었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다. 미니 드론을 봐버렸으니, 어떻게 해서라도 팀 하나를 새로 만들어야 했다.
드론 프로젝트 팀장까지 조창호 차장에게 넘기지는 못해도 그는 상담사로서 가이드를 해줘야 했다.
그는 고민한 끝에 헬렌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헬렌, 접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혹시 레즈비언 맞으시죠?]
대놓고 들이대는 최민혁 실장의 돌직구에 헬렌은 화들짝 놀랐다.
[아, 최 실장님, 절 찾으신… 네? 레, 레즈비언이라고요?]
[솔직히 말해주십시오. 괜한 감정적인 대립을 하기 싫으니까.]
헬렌은 이 순간에 최민혁이 이 질문을 하는 이유가 자신에게 반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이지수 박사가 있어서 좀 의아하기는 했지만 그건 무시했다.
그리고 그녀가 레즈비언이라는 것을 굳이 숨길 생각은 없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맞아요. 저 레즈비언이에요. 설마 이걸 빌미로 저에게 징계라도 할 생각인가요?]
[그럴 리가요. KMBOOK이란 회사는 제가 오너이기는 해도 경영권은 이지수 박사가 가지고 있습니다. 헬렌 역시 대주주 중의 한 사람입니다. 따라서 제가 그걸로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괜한 오해를 피하고자 확인하고 싶었던 뿐입니다.]
[…알겠습니다.]
“…….”
최민혁은 전화를 끊고 나서는 입을 딱 벌린 채 대리석이 된 조창호 차장을 힐끗 쳐다보았다.
조창호 차장은 마치 세상의 멸망이라도 본 것 같았다.
그는 잠깐 조창호 차장에게 이야기를 해봤지만 먹히지 않았다.
“으음, 정신 차리면 다시 이야기하죠.”
“…….”
그때까지도 조창호 차장은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 * *
최민혁은 원래 일정을 모두 정리한 후에 KMBOOK 본사에 머물렀다. 그는 조창호 차장이 정신을 차리기만을 기다렸다.
다만 최민혁 자신의 전화 때문인지 헬렌이 직접 찾아왔다.
“도대체 왜 그런 전화를 하신 거죠?!”
헬렌도 갑작스러운 최민혁 전화에 대답하기는 했다. 다만 그녀도 정신을 차리자 대놓고 자신이 레즈비언이냐고 물어본 것 때문에 감정이 상해 있었다.
최민혁은 헬렌 반응을 보면서 매우 놀라지 않았다.
‘아마 전생이라면 좀 달라겠지만.’
“조창호 차장님 아시죠?”
“당연히 알죠. 그것과 이것이…….”
“그분이 헬렌을 좋아합니다.”
“네?!”
헬렌은 화들짝 놀랐다. 진짜 놀란 것이었다. 조창호 차장은 같은 회사 동료였다. 딱 그 수준으로 생각했을 뿐이다.
최민혁은 혀를 찼다.
“조창호 차장님의 눈이 높습니다. 헬렌을 딱 이상형으로 생각하니까. 그래서 사전에 미리 말해둘 필요가 있었어요. 헬렌이 남자랑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 안 그래도 질문하려고 한 건데, 그건 어떻게 아신 거죠? 설마 절 감시라도 한 거예요?!”
“그냥 추측한 겁니다. 이지수 박사 호위 무사 역할을 그렇게 열심히 하니까.”
“그것만으로…….”
“제가 촉이 좋다고 합시다.”
헬렌은 성질 같아서는 최민혁의 얼굴을 한 대 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도 이제는 최민혁 실장을 함부로 할 수는 없었다.
최민혁은 헬렌의 태도 변화에 혀를 내둘렀다.
‘이게 문제야.’
헬렌도 자신이 미인이라는 것을 알아서 남자의 시선을 은근히 즐겼다. 다만 상대가 자신에게 빠져서 허우덕대는 일까지는 잘 모르고 관심도 없다.
최민혁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다만 그는 전생에서 이미 경험을 해봤다. 심지어 죽음의 강을 건너서 과거로 회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