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4.
“후후후, 따라오세요. 아마 깜짝 놀랄 겁니다.”
최민혁은 자신만만한 이지수 박사 뒤를 따르면서 ‘결국 그걸 보여줄 생각이구나’라고 툴툴거리는 헬렌의 눈치를 봤다.
‘도대체 무슨 소리지?’
* * *
미래 산업에서 주목받는 분야 중의 하나가 바로 드론이다.
미국이 최초로 드론 개발에 착수했다.
이후 이스라엘은 드론 중에서도 소형 정찰기 개발을 중심으로 했고 말이다.
후일 미래 전쟁에서 드론은 주역으로 떠오른다.
미국 국방성이 이러한 드론의 군사 전용 가치를 모를 수가 없다.
특히 무인 드론은 말이다.
이들은 여러 종류의 드론 기술 개발을 착수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가 않았다.
첨단 드론을 개발하는 데는 여러 가지 기술적인 한계가 존재했다.
이지수 박사는 이런 무인 군사용 드론의 기술적인 어려움 덕분에 인공지능형 드론 개발과 관련된 자원 지원을 국방성에서 받았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터미네이터에서 나오는 스카이 넷을 말하는 것이다.
다만 스카이 넷 기술 수준과는 비교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이지수 박사는 다른 연구 팀에 비해서 성과가 나쁘지 않았다.
미국 국방성은 오히려 이지수 박사의 연구 성과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
과연 인공지능 탑재형 드론이 괜찮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아니, 정말 성공할 수는 있을까. 이지수 박사가 외적으로 성공하기는 했지만, 하드웨어 인프라는 좀 다른 문제였다.
그런데 이 시기에 끼어든 것이 바로 테일러 박사였다. 정확히는 테일러 가문에서 이지수 박사의 인공지능 드론 기술을 점유하려고 했다.
하지만 상황이 테일러 박사의 뜻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이지수 박사도 바보가 아닌데, 자신이 연구 개발한 인공지능 드론 기술을 다 넘기지 않았다.
실제로 통신, 영상 분석, 자율 비행, 보안성과 같은 영역에서 문제가 너무 많았다.
이지수 박사가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그녀 자신의 범주를 넘어설 부분까지 연구할 수는 없었다. 당장 인공지능 애니 그거 하나만을 키우는 것만으로 버거울 정도였다.
그녀는 결국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제대로 된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그 과정에서 이곳저곳에서 압력을 받았기에 하던 연구를 하나씩 접어야 했다.
아니, 실은 그녀 스스로 접었다.
테일러 박사 같은 인간에게 연구 성과를 빼앗길 바에는 연구를 포기하려 했다.
그런데 심지어 이건 그나마 국방성에서 자본이 빵빵한 군사용 드론의 경우였다.
그렇지 않은 영역.
단적인 예로 소형 드론 같은 경우에는 아예 깊이 파고들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좀 달랐다.
이지수 박사 주변에 그녀를 도와줄 수 있는 전문가가 넘쳐났다.
단적인 예가 바로 조창호 차장이었다. 그는 설계 전문가답게 모르는 것이 없었다. ARN 코어를 이용한 응용 설계도 간단히 할 수 있었다.
MPEG-2와 같은 코드 초안이 있는 상황이니, 변경은 더 쉬웠다.
무선랜 역시 마찬가지다.
K투스 통신 기술 칩 설계는 이미 에플이 어느 정도 증명해 줬다.
KM DVR에도 이미 적용되었고 말이다.
조창호 차장은 이 모든 기술을 하나의 칩에 묶고, 다시 이 칩을 병렬 처리 해서 재설계했다.
이지수 박사도 깜짝 놀랄 만한 성과였다.
심지어 조창호 차장은 지금도 이번 연구에 폭 빠져 있었다.
“아, 이 박사님, 오셨군요. 안 그래도 한 가지 보고할 일이…….”
다만 조창호 차장은 최민혁 실장을 보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최민혁 실장은 어이가 없었다.
“조 차장님?!”
경악한 조창호 차장은 창백한 안색을 한 채 수직으로 최민혁 실장에게 허리를 숙였다.
“시, 실장님을 뵙습니다.”
“…그렇군요.”
그는 힐끗 조창호 차장과 주변에 붙어 있는 연구원을 힐끗 쳐다보았다.
조창호 차장 외에 이주옥 과장이나 석문원 대리도 자리했다.
심지어 신입 몇 사람도 말이다.
그들은 최민혁 실장 얼굴을 보고는 아직도 입을 딱 벌린 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조창호 차장은 눈치를 보다가 결국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전 그런 사과를 듣자는 게 아니에요. 상황을 알고 싶은 것뿐입니다.”
“그, 그게…….”
조창호 차장은 여전히 최민혁 실장이 두려워서 말을 더듬었다.
그들에게 최민혁 실장은 단순히 실장이 아니라 KM 그룹 회장이니까 말이다.
그 주변은 더했다.
넓게 펼쳐진 연구실은 꼭 미래 사무실을 보는 것 같았다.
최민혁은 아직도 잘 이해가 되지 않은 얼굴이었다.
“제가 알기로 지금 조 차장님은 한국에서도 꽤 바쁠 텐데, 여기 미국까지 와서 남의 연구를 도와줄 시간이 있습니까?”
당장 그가 해야 할 일 중에 하나가 바로 KM DVR 튜닝이었다.
기본적인 뼈대가 나와 있어도 손을 봐야 할 곳은 생각보다 많았다.
거기에 몇 가지 유사 아이템은 아직도 갈팡질팡하는 중이었다.
조창호 차장은 어느 사이엔가 KM 계열사 사령관 역할을 하는 중이라서 그 일도 봐줘야 했다. 반면 이곳 KMBOOK에서 하는 일은 그것들에 비해 중요성이 떨어졌다.
“그, 그게…….”
이지수 박사도 영문을 몰랐지만 뒤늦게 최민혁 실장이 하는 말을 듣자 슬쩍 끼어들었다.
“제가 부탁했습니다. 이번 일을 외부에 맡기기는 힘들고, 새로 사람을 뽑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가장 큰 부분은 대화가 되는 사람 중에 제가 원하는 수준의 기술을 가진 분이 없었습니다.”
“흠.”
최민혁도 순순히 그런 점은 인정했다. 그는 조창호 차장을 강박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가 이곳에 와 있는 상황이 신기했다.
“…더 큰 문제는 여기에서 사용된 기술이 국방성 과제와 연결이 돼 있어요.”
보안 문제였다.
최민혁은 그제야 건물 입구에 들어올 때 거쳐야 했던 보안 설비를 떠올렸다.
설비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혹시 KM 시큐리티 측에 확인했습니까?”
“그건 아직…….”
그는 조용히 침묵한 김명준 과장을 쳐다보았다.
“보안 확인이 가능하죠?”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제대로 검증을 해서 이곳 보안 설비 효율을 올리는 방향으로 확인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는 급한 문제를 끝낸 후에 눈치만 보는 조창호 차장을 다시 쳐다보았다.
에플 프로젝트 때문에 에플뿐만 아니라 미국에 자주 오기는 왔다.
하지만 KMBOOK은 이야기가 좀 달랐다.
수익성과는 거리가 먼 것 같았다.
최민혁은 이지수 박사의 표정에서 대충 감을 잡았지만, 굳이 그걸 타박하지는 않았다.
“조 차장님, 본인이 원해서 이곳에 지원한 겁니까?”
“…네.”
“아니, 왜…….”
그는 조창호 차장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힐끗 확인했다. 다름 아닌 헬렌이었다. 그녀는 물론 조창호 차장의 시선 따위는 보지도 않았다.
‘쯧, 여자 문제였어. 하필이면 그 상대가 헬렌이야. 아마도 에플 본사에서 안 것 같은데,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이 자리에서 조창호 차장에게 헬렌은 레즈비언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최민혁도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알자 조창호 차장을 타박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가 이곳에서 한 일을 확인해야 했다.
그는 이지수 박사를 다시 쳐다보았다.
“갑자기 이 박사님이 보여주려는 것이 정말 궁금합니다.”
“아, 따라오세요.”
* * *
이지수 박사는 군사용 대형 드론은 개인적으로 손을 대기가 어렵지만 대신 소형 드론에 대한 흥미를 느껴서 이런저런 연구를 시작했다.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었다.
소형 드론 개발을 위한 기술이 하나둘씩 자신의 앞에 놓였기 때문이다.
그녀가 실상 국방성의 압력이 없는 상태에서 연구한다고 해도 배터리 용량 부분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접을 수밖에 없었던 연구도 이제는 할 수 있었다.
미래 기술 배터리가 용량과 효율을 대폭 올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영상 인식, 음성 인식 처리 칩, 고속 처리 할 수 있는 고속 ARN 칩을 통합할 수 있는 전문가(?)가 자청해서 그녀를 도왔다.
이런 모든 것을 다 하나로 합치면, 당장 군사용 드론에 적용할 수는 없어도 소형 아이템에는 얼마든지 적용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게 바로 KM 미니 드론이었다.
“…….”
최민혁은 자신의 주변을 뽈뽈 날아다니는 성인 얼굴 크기의 드론 여덟 대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허공에서 마치 사열을 하는 듯한 드론의 모습은 단순히 놀랍다고 하고 넘어가기 힘들었다.
드론 중에 한 대는 최민혁 실장의 눈앞에 멈춘 채 이야기까지 건네왔다.
[최민혁 실장님, 오랜만입니다. 저 애니입니다. 설마 잊으신 거 아니죠?]
[…그, 그래.]
최민혁 실장이 애니를 모를 수가 없다. 인공지능 애니 최고 관리자 중에 한 사람이 최민혁 그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애니는 최민혁 실장과 관련된 모든 데이터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심호흡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밝은 음악을 틀어줄까요?]
[…그래.]
피아노 협주곡이 곧 나왔다. 애니의 선곡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최민혁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맙소사.’
소형 드론은 자신의 얼굴을 인식했다.
이지수 박사가 슬그머니 말해주었다.
“이미 음성 인식을 사용했으니, 서버에 실장님과 관련된 정보가 저장되어 있어요. 그것을 토대로 반응하는 겁니다.”
“하, 하지만 기술적으로 넘어야 할 장벽이 많을 텐데요?”
“조 차장님이 도와주셨습니다. 그분의 도움이 없었다면 드론 애니는 불가능했을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하드웨어 뼈대에 대한 힌트를 준 것은 다름 아닌 KM DVR입니다. 비록 모바일과는 관련이 없지만, 그 부분 부분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설마 제가 그걸 응용하지 못할 거로 생각했습니까?”
“…충분히 가능하겠군요.”
“뭐, KM DVR만이 아닙니다. 다른 기술도 응용했습니다. 조 차장님이 어떻게 퍼즐을 풀어야 할지에 대해 실제적인 도움을 주셨고요.”
조창호 차장은 썩은 미소를 한 채 최민혁 실장의 눈치만 봤다.
“…….”
최민혁은 그저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결국 음성 인식 기능을 응용한 덕분에 언어 소통은 어렵지 않았다. 아직은 영어라는 한계는 있지만 말이다.
“소, 손바닥 위로 와봐!”
드론은 총알 같은 속도로 최민혁 손바닥 위 공간으로 움직였다.
다른 드론 일곱 대는 질투가 나는지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가락으로 드론을 향해서 손짓했다.
일곱 대의 드론은 마치 사열한 군인처럼 정교하게 움직였다.
최민혁 실장이 팔을 빙글빙글 돌리자 드론 역시 군무를 췄다.
줄을 기가 막히게 맞추어서 말이다.
뭐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는 것이니, 이상할 것은 없었다.
다만 드론에 인공지능 기술이 적용되었다는 점이다.
이지수 박사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KM DVR를 비롯해서 기존에 적용된 기술을 전부 다 합쳤습니다. 굳이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아도 최 실장님이라면 이해가 되시죠?”
최민혁은 당연히 안다. 다만 그가 아는 것을 실제로 구현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는 굳이 이 미니 드론을 뜯어보지 않아도 여러 개의 복잡한 CPU가 결합되어서 동작한다는 것을 짐작했다.
‘구조는 단순할 거야.’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실제로 조창호 차장이 내놓은 설계도에는 그런 개념이 담겨 있었다.
“설마 ARN 측에서도 압니까?”
“아, 그쪽은 잘 모를 겁니다.”
최민혁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조창호 차장을 쳐다보았다.
“정말 믿을 수가 없군요!”
그로서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다만 추론은 가능했다.
이지수 박사가 가진 원천기술 기반이라면 조창호 차장에게도 돌파구를 마련해 줬을 것이다. 단순히 헬렌 때문에 이 일을 진행했다고 하기는 힘들었다.
이지수 박사는 어깨에 힘을 팍팍 줬다.
“최민혁 실장님 덕분에 과거에 진행하다가 멈춘 드론 시제품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다만 상업적으로는 좀 무리일 겁니다. 부품 단가 때문에 다른 대체품을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투자자를 설득할 목적이라면 이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건 단순히 그런 얘기로 평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