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3.
[하아, 그렇지 않습니다. 그건 오해입니다.]
[잘못 알았다라?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뒤쪽에 있는 분이 서머스 부장관님 맞죠? 지금 저분 표정은 그렇지 않네요.]
스티븐 키렌 차관보가 힐끗 서머스 부장관을 쳐다보았다. 서머스 부장관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최민혁은 그 모습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이 늦지 않게 회의실로 들어와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들 나가 있게.]
회의실에 모인 이들은 다들 우르르 일어나서 회의실을 나가 버렸다.
* * *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은 확실히 한국과 한국 기업에 호감이 많았다. 그는 최민혁 실장을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았다.
서머스 부장관은 내심 부아가 치밀어 올랐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도 자칫 말을 잘못하면 최민혁 실장이 자신을 대놓고 들이박으리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민혁 실장이 한 협박이 그냥 말로만 하는 협박 같지가 않았다.
실제로 미국 재무부 앞에 모인 군중들은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
기자들은 서로 소통하면서 이 상황에 대해서 고개를 갸웃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미국 시민들도 점차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은 보좌관을 통해서 대중의 분위기를 듣고는 혀를 찼다.
“우리 최민혁 실장님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이번에 확실히 느꼈습니다.”
“저 보통 사람 맞습니다. 솔직히 미국 재무부의 호출은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저도 살 궁리를 열심히 했을 뿐입니다.”
“…그 대안이 KM DVR이었습니까?”
“ARN 지분 매각도 있습니다. 잘 부탁한다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흠.”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은 이 흥미로운 청년의 이모저모를 살폈다. 그 역시 최민혁 실장과 관련된 프로필을 보고서 꽤 충격을 받았다.
그는 몇 번이나 최민혁 실장과 관련된 자료를 다시 확인했다.
‘이게 가능한가?’
하지만 최민혁 실장의 최근 행보는 특히 기민하다는 말로 부족했다.
단순히 KM DVR 아이템을 만든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 자체가 하나의 수단이니까.
KM DVR의 홍보가 제대로 성공한 덕분에 미국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그건 최민혁 실장의 이전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더욱이 지금 자신 앞에 있는 최민혁 실장의 나이는 어려도 너무 어렸다.
미국에도 수많은 천재가 있지만, 저 나이에 이런 관록을 보여준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ARN 지분 매각 대금이 너무 비싸서 불만이 많습니다. 다들 너무 비싼 가격에 사들였다고 하소연까지 합니다.”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제가 얼마 전에 에플 지분 8%를 2조 6천억에 매각했습니다. 지금 에플 주가가 얼마인지 아시죠? ARN 지분은 그 이상일 겁니다.”
로버트 루빈 장관도 눈살을 찌푸렸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입니다. 그건 너무 과장된 의견 아닙니까?”
최민혁은 로버트 루빈 장관의 존대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까? 제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DEC의 고성능 ARN 반도체 사업부를 인수했다고 생각합니까? 그게 그렇게 근시안적인 행동일 것 같습니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정말 실망입니다. 미국 재무부 수장으로서 안목이 없는 것이니까.”
“…음.”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은 냉소적인 최민혁 실장의 말에도 딱히 그에게 반박하지 못했다. 최민혁 실장이 이제까지 실패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최민혁은 ARN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해주었다.
“정 믿을 수 없으면 투자자에게 이야기해서 지금이라도 매입한 ARN 지분을 저에게 주십시오. 동일한 가격으로 다시 사들일 테니까.”
“…….”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은 딱히 최민혁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그는 대신 최민혁 실장 얼굴만 째려봤다. 그 역시 최민혁의 행동을 좋아하지 않았다. 실상 지금 최민혁의 행동 때문에 굉장히 골치가 아팠다.
이 자리에서 계획대로 최민혁 실장을 무리하게 다를 수가 없었다.
지금 최민혁 실장의 입은 잘못 열리는 순간 온갖 이상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았다.
원래 이 자리는 최민혁 실장을 압박할 목적으로 준비한 것이었다.
미국 하원에서 이미 이슈를 띄웠고, 그걸 미국 행정부가 받았을 뿐이다.
미국 IRS를 통한 최민혁 실장의 자금 흐름을 다 조사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다만 결과는 그다지 좋지가 않았다.
특히 조세 회피처를 통한 수단이 문제였다.
그런데 그 말도 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그가 한 이야기는 아주 간단했다.
강한 달러 정책이 일본 경제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는지 장황하게 설명했다.
달러 경제와 미국 수출 시장의 상관관계도 있고 말이다.
“최민혁 실장님처럼 천문학적인 계열사 수익을 달러로 그냥 들고 있는 것은 문제가 됩니다.”
KM 전자가 보유한 에플 대금 2조 6천억, ARN 지분을 매각한 15억 달러, 심지어 KM 전자가 벌어들인 달러까지 말이다.
이 막대한 자금이 최민혁 실장이 소유한 미국 법인에 모여 있었다.
미국의 그 어떤 기업도 보이지 않는 황당한 모습이었다.
“미국 정부의 달러 강세와 같은 정책은 통화 흐름에 영향을 줍니다. 일본 경제나 한국 경제 역시 영향을 받습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님처럼 막대한 달러를 그냥 들고 있으면 문제가 됩니다.”
“…그게 불법입니까?”
“하, 그런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통화는 흘러야 합니다. 차라리 한국 쪽으로 들어가는 것이 훨씬 낫다는 이야기입니다.”
최민혁은 미국 경제 규모를 떠올리면서 이 말도 안 되는 수작에 피식 웃었다. 다만 굳이 계속 로버트 루빈 재무 장관을 자극하지 않았다.
“한번 생각은 해보겠습니다.”
“…….”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은 어이가 없는 눈으로 최민혁 실장을 쳐다보았다.
서머스 부장관이나 스티븐 키렌 차관보는 다들 그냥 입을 다물었다.
최민혁 실장의 행동을 봐서는 무슨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세 사람은 결국 최민혁 실장의 의도를 확인하지 못했다.
굳이 묻지 않아도 답은 나와 있었다.
재무부 앞에 모여 있는 시민들 때문이었다.
‘하, 정말 말릴 수 없네.’
그리고 그들은 뒤늦게야 최민혁이 왜 이럴 수 있는지 깨달았다.
바로 ARN 지분 매각. 일단 그들의 정치적인 배후와 손을 잡은 이상 그가 자신들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다.
서머스 부장관은 이를 악물었다.
‘그자들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두고 보자!’
결국 미팅은 내내 이야기가 겉돌기만 했다.
재무부는 원래 하려고 했던 말의 태반을 최민혁 실장에게 할 수가 없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는 말처럼 미팅은 흐지부지 끝났다.
하지만 최민혁이 만약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쉽게 일이 끝났을 리가 없었다.
‘미리미리 대비해야겠어.’
* * *
조성돈 팀장은 최민혁 실장 옆에 착 달라붙어서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미국 재무부가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는 때문에 최민혁이 재무부를 나와서 둘 사이에 있었던 일은 그저 오해에 불과하다는 말을 할 때에도 그를 물끄러미 보기만 했다.
최민혁은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얻은 수익금에 대해서 재무부가 몇 가지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을 바로잡았다고 말했다.
자세한 내용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얼핏 봐서는 여전히 문제가 있어 보였으니까.
하지만 최민혁이라고 해서 마음이 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다행이라면 그를 대신해서 워싱턴 포스트가 최민혁 실장과 재무부의 만남에 대해서 의혹을 드러냈다.
[개인 투자자를 굳이 미국 재무부가 만날 필요가 있나? 여기에 어떤 외압이 있는 건가?]
확실히 드러나지 않는 일이라서 의혹만 드러냈다.
재무부는 당연히 성명을 냈다.
[우리 재무부는 최민혁 실장에게 그 어떤 외압이나 압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세금과 관련해서 몇 가지 조사했을 뿐이고, 행정 처리상 몇 가지 실수가 있었을 뿐이다!]
조금 의아한 내용이었다.
이 일과 관련해서 다른 미국 언론사들 역시 의문점을 드러냈다.
다행이라면 최민혁이 여기에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로서는 이번 일을 여기서 끝내서는 곤란했다.
‘재무부에 한 방 먹일 필요가 있어.’
지금 이대로 이 일을 끝내면 재무부의 다음 행동이 지금과 다를 것이 분명했다.
때문에 최민혁은 곰곰이 고민해 봤다.
당장 새로운 아이템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 건드릴 수 있는게 있다고 한다면 역시 에플 주가였다.
에플 공매도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고 말이다.
‘차라리 판을 키울까?’
그는 고민 끝에 전생 1회 차 기억을 쭉 떠올려 보았다.
주로 샌프란시스코 주를 중심으로 해서 일어난 일을 말이다.
다행히 한 가지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곧바로 스티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서 한 가지를 부탁했다.
[제가 듣기로 샌프란시스코 재무장관이 연기금 투자를 확대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투자를 에플 쪽으로 돌릴 수 있겠습니까?]
[…그런 사실은 어떻게 아신 겁니까?]
[재무부 측 미팅에 앞서서 이런저런 정보를 모으다가 우연히 알게 된 일입니다.]
[…우연히라, 뭐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쪽에 손을 대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주 정부에서 진행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명확한 증거가 필요하다는 말이군요. 그 정도는 제가 어떻게 해보겠습니다. 시간이 부족하니, 저에게 줄을 좀 놔주십시오. 설명은 제가 직접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스티븐은 약간 고민하나 싶었지만, 최민혁의 제안을 거절하지는 않았다.
* * *
최민혁은 일단 당장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 수는 없어서 뭔가 새로운 것을 찾지는 않았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재무장관을 그냥 말로 설득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필요하다면 또 연줄을 얻을 수 있으니까.’
KM DVR 역시 나름 괜찮은 아이템이기는 하지만 이미 어느 정도 성과는 나왔다. 당장은 판매 물량을 확확 늘릴 수는 없었다.
일단 미국 연방 정부에 공급한 다음에 다시 미래 가치를 이야기해야 했다.
결국 당장 조정이 가능한 것은 에플 주가였다.
이 주가를 끌어올리면 될 일이다.
아니면 에플 주가가 폭등하리라는 것을 증명해 주면 된다.
에플이 가진 기술력을 증명해 보이면 간단한 일이다.
그는 고민하다가 문득 이런 일의 적임자 한 사람을 떠올렸다.
‘아, 이지수 박사가 있구나.’
이지수 박사는 단순히 전문성만 뛰어난 공학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다양한 분야를 연구해 왔다.
최민혁은 물론 이지수 박사에게 공짜로 부탁할 생각은 없었다.
아쉬운 점은 그녀가 원하는 것이 돈이 아니라는 점이다.
차라리 그녀에게 있어선 DEC에서 만든 StrongARN가 더 매력적인 소재였다.
심지어 KM 센서에서 개발한 이미지 센서 역시 무시하기 어려웠다.
여기에 아이컴 덕분에 애니 수정 작업을 할 수가 있었다.
이 작업은 에플 엔지니어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 에플 엔지니어는 나름 천재적인 인재였다. 그들이 그녀가 미처 간과한 부분을 채워준 것이었다.
특히 음성 인식 부분이 그랬다.
영상 인식 부분은 KM DVR 통해서 취약점을 메꿀 수가 있었다.
MPEG-2 코덱은 특히 서버 수준에서 가능한 로드를 감당했다.
최민혁은 문득 이지수 박사가 과연 이런 기술을 파악하고도 그냥 놔뒀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이지수 박사를 바로 찾아갔다.
“이런 기술을 잘만 응용한다면 흥미로운 성과물도 실험했을 것 같은데, 혹시 투자자의 시선을 끌 만한 아이템이 있습니까? 이 박사님이라면 따로 연구하는 것도 있을 것 같아서 하는 질문입니다.”
혹시나 하는 기대.
만약 없다면 다른 대안을 찾아야 했다.
이지수 박사는 갑자기 찾아온 최민혁 실장의 요구에 눈빛을 반짝였다. 그녀 역시 지금까지 최민혁 실장에게 도움만 받았다.
뭔가 도와주고 싶었다.
그녀는 KMBOOK에서 진행하는 일 외에 개인적으로 연구 팀을 꾸려서 진행하는 프로젝트 하나하나를 떠올려 보았다.
그러다 최민혁 실장이 원하는 것과 일치하는 아이템 하나를 떠올렸다.
‘아, 그게 있었구나.’
“으음, 따라오세요.”
“네? 먼저 설명해 주면 안 됩니까?”
이지수 박사는 어깨를 으쓱했다.
“전 최 실장님이 놀라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