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
최민혁은 당연히 최문경 부회장의 동선에 대해서는 따로 감시할 사람을 배치했다.
김명준 과장은 역시 최문경 부회장이 샐로먼 브러더스 한국지사로 움직인 것을 확인했다. 물론 이게 다가 아니었다.
한국 지사에 따로 협조 인물을 구해서 정보를 얻었다.
“싸웠다고요?”
그도 이전과는 달리 이번 일에 꽤 흥미를 느껴서 자세하게 말했다.
“…최문경 부회장이 열받아서 고함을 내질렀다고 합니다. 사무실 밖에서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소리였답니다.”
최민혁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꾸준히 한 일이 이제 결과를 거뒀으니 말이다.
“결국 그렇게 되는군요.”
“네?”
“둘 사이는 신뢰로 이루어진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죠. 그래서 사소한 틈만으로도 서로 격하게 대립할 수도 있어요.”
“지금까지는 잘 지냈지 않습니까.”
“겉으로는 그래 보였죠. 제가 지금까지 한 일을 잊은 겁니까?”
“아.”
김명준 과장은 그제야 감탄하고 말았다. 그도 이전에 최민혁 실장이 최문경 부회장을 상대로 한 짓을 잘 알았다.
그 일 하나하나가 최문경 부회장의 심사를 괴롭히는 일이었다.
샐로먼 브러더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은 한국에서 진행하려고 한 일 중에 태반을 접어야 했다. 그게 모두 최민혁 실장이 저지른 일이었다.
그런 일이 하나둘씩 쌓이기만 했지 이제까지 문제가 터지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일이 효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둘 사이의 감정 대립은 점점 격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게 쌓여서 이번에 폭발한 것이었다.
“하지만 최문경 부회장이 샐로먼 브러더스와는 오랫동안 거래를 해왔다고 압니다만.”
최민혁은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았다. 인생 1회 차 때의 내막을 깊숙이 아는 것은 아니지만 흔하게 도는 이야기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그거야 우리 선친이 중간에 중재를 해줬기 때문이죠.”
다만 최민혁도 최병문이 한 일에 대해서는 자세한 것을 몰랐다.
최병문 사후에 그가 해왔던 자산은 다 조각조각 났기 때문이다.
일부는 최문경 부회장 손으로 넘어갔지만, 다른 일부는 최용욱 회장에게 넘어갔다.
최동영 상무 역시 제법 챙겼고 말이다.
“우리 선친은 완전히 호구였죠.”
최민혁의 탄식이 이어졌다.
의도는 있다.
가족이니까.
가족의 행복을 챙겨준 것이었다.
그런데 혜택을 받은 최문경 부회장의 생각은 좀 달랐다. 그는 최병문을 마치 밑의 직원처럼 생각해서 악착같이 부려 먹었다.
최훈열 전무는 심지어 최민혁에게 상속될 예정인 KM 전자까지 먹으려고 했다.
최병문 상무가 자기 자신을 우선적으로 챙겼으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딱 최용욱 회장이 가장 원한 이상적인 경영자 스타일이었다.
최민혁이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전생 1회 차 기억이었다.
‘돌아버리겠다니까.’
“…….”
김명준 과장은 의외로 침묵했다. 그는 형식적인 보고를 하다가 최민혁 실장의 표정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최민혁은 그런 김명준 과장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이제 둘 사이의 틈도 벌어졌으니, 제대로 흔드는 것이 중요해요. 부자가 돈이 다 떨어지면 그다음에 할 행동은 뻔하니까.”
최문경 부회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샐로먼 브러더스 역시 해당하는 사안이었다.
‘어차피 샐로먼 브러더스는 미국 정부가 노리는 상대야. 이번 기회에 재무부 측과 관계 개선을 한 후에 샐로먼 브러더스를 흔들어서 우리 첫째 큰아버지와의 갈등을 더 부추겨야 해.’
최민혁이 굳이 재무부와 타협한 이유였다. 애초에 그는 자신이 확보한 원천기술로 돈에 집착하지는 않았다. 그 부 자체가 복수의 한 수단이니 말이다. 더욱이 상대가 누구인지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돈은 많을수록 좋았던 것이다.
‘여기에 미국 정부가 아군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지.’
“둘의 동선을 잘 살펴보세요. 필요하다면 샐로먼 브러더스 한국지사 쪽에 박아 놓은 이들에게 더 자금 지원을 해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 * *
제임스 러너 이사는 우선 샐로먼 브러더스 본사 측에 연락해 봤다. 하지만 역시 반응은 애매했다. 이 정보를 제대로 모르는 것 같았다.
‘이상하네.’
샐로먼 브러더스는 무능한 단체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최민혁 실장의 이번 일을 모른다는 것은 누군가 정보를 통제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할 사람은, 정확히 조직은 딱 한 곳으로 바로 미국 정부였다.
‘설마 모건 스탠리 그 작자들은 아니겠지?’
그는 그제야 이 사안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짝 긴장했다.
자칫하면 입을 수 있는 손실이 너무 컸다.
제임스 러너 이사는 냉철한 눈으로 일단 최문경 부회장이 준 보고서를 가지고 열심히 분석했다.
물론 자료만으로는 곤란했다.
그는 전화로 하려다가 이번 일은 그렇게 할 수가 없어서 바로 태국행 비행기를 탔다.
태국으로 쫓겨난 데니스 샐로먼 이사를 만난 것이었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갑자기 나타난 제임스 러너 이사를 보고는 피식 웃었다.
“…그렇게 말을 했는데도 아직 이해를 못 하더니, 결국 당했나 보군요.”
조용한 질책.
하지만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의외로 상황을 어느 정도 짐작하는 눈치였다.
“솔직히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선글라스를 벗으면서 툴툴거렸다.
그는 과일주 한 잔을 음미하면서 제임스 러너 이사를 쳐다보았다.
딱 자신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 자신도 저렇게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 확신하지 못한 시기가 있었다.
‘어쩌면 늦지 않았을지도.’
그 당시는 최민혁 실장의 능력을 몰랐다. 지금은 최민혁 실장이 어떤 인간인지 잘 안다. 따라서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솔직히 생각 같아서는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었지만 말이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제가 그렇게 말을 할 때는 그냥 무시만 하던데, 지금은 아주 다르군요.”
“제가 사과라면 천 번이라도 하겠습니다.”
그간 샐로먼 브러더스 내에서 직진파였던 제임스 러너 이사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그의 안색은 초췌하기만 했다. 그만큼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었다.
그는 새삼 최민혁 실장의 능력에 휘파람을 불었다.
‘진짜 대단한 인간이다. 아니, 무서운 인간이라고 해야 하나.’
“…어떻게 생각합니까?”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피식 웃었다. 그 자신이 신이 아닌 이상 이 내막을 자세히 알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저도 모릅니다.”
“네?”
데니스 샐로먼 이사가 이죽거렸다.
“제가 최민혁 실장을 조심하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이제 와서 이런 소리를 하다니, 창피스럽지 않습니까?”
그 자존심 강한 제임스 러너 이사가 다시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미안합니다.”
그가 저자세를 보인 것은 이번 일이 왠지 심상치 않아서였다.
가장 의심하는 것은 역시 최민혁 실장의 태도다. 이제까지 몰래 일을 진행하다가 갑자기 최문경 부회장에게 정보를 흘렸기 때문이다.
그것도 대놓고 말이다.
그게 더 무서웠다.
이미 함정 준비가 끝났다는 뜻이다.
그런데 자신은 최민혁 실장의 제안을 무시하기 힘들었다.
더욱이 이 계획과 관련된 주인공이 다름 아닌 미국 재무부였다.
최민혁 실장이 도대체 재무부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반드시 알아야 했다.
“미국 재무부와 관련이 있는 일입니다. 이건 자칫하면 우리에게도 불똥이 튈 수 있습니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도 ‘미국 재무부’란 말에 태도를 바꾸었다.
“…농담이죠?”
“이미 확인한 사실입니다. 다음 주에 재무부 미팅이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원래 일정보다 연기가 된 일인데, 최민혁 실장이 그 후에 갑자기 한국으로 와서 최문경 부회장을 자극했습니다.”
“…계속해 보세요.”
제임스 러너 이사는 최문경 부회장에게 들은 이야기를 자세하게 해주었다. 심지어 그가 최문경 부회장과 대립한 이야기도 말이다.
“최민혁 실장이 설마 의도한 것이 두 사람의 대립 아닙니까?”
“그건 아닐 겁니다.”
“어떻게 장담하세요?”
“하, 최문경 부회장과는 이미 이전부터 사이가 안 좋았습니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아는 최민혁 실장은 결코 아무런 이유 없이 일을 만들지는 않았다.
“좋습니다. 그렇다고 합시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이 정말 대단합니다. 설마 미국 재무부를 상대로 수작을 부리고 있을 줄이야.”
“…이미 알고 계셨습니까?”
“모르죠. 제가 신이 아닌 이상 모든 사실을 다 알 수는 없어요. 다만 이번 일은 굳이 복잡하게 팔 필요 없이 모건 스탠리 쪽 정보를 우선 확인하는 것이 중요해요.”
“ARN 지분 20%를 사들인 소유주 말입니까?”
“…네.”
제임스 러너 이사는 내심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이번 일이 절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건 스탠리가 그 정보를 알려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이거 진짜 심각하구나.’
“더 심각한 것은 모건 스탠리가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았다는 거죠. 그거 정보를 통제한 것 같은데, 모건 스탠리를 믿지 마세요.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정확히는 둘 다 똑같았다. 서로 등에 비수를 꽂는 일이 비일비재하니까. 그래서 그런 점을 계약서에 명시하기는 한다.
하지만 계약서상에 없는 행위는 상관이 없었다.
모건 스탠리가 정보를 통제한다는 이야기는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이야기다. 샐로먼 브러더스의 이해관계와 연관될 테니 말이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가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했다.
“다시 말하지만 모건 스탠리 그 인간들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애초에 최민혁 실장과 거래를 한 것부터가 수상한 일입니다.”
“…그렇겠죠.”
“일단 모건 스탠리에 우선 집중하죠.”
“…알겠습니다.”
* * *
샐로먼 브러더스란 투자 회사는 작은 곳이 아니었다.
내부 정보기관도 따로 둘 정도니까.
다만 이들이 모건 스탠리에 관해서 조사를 비밀리에 할 수는 없었다.
알게 모르게 모건 스탠리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조심해도 효과는 별로 없었다.
모건 스탠리의 스탠리 로버트 이사 역시 이 사안을 들었다. 하지만 그는 딱히 놀라지 않았다. 최근 자신이 아는 일만 해도 샐로먼 브러더스와는 사이가 좋아질 수가 없었다.
‘나중에 어쩌려는 걸까?’
둘이 만든 계약서의 틈새를 지금까지는 잘 피해 갔다.
골치 아픈 일은 마이크 라이언 이사가 알아서 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만 해도 되었다.
대안은 역시 간단했다.
최민혁 실장에게 관련 정보를 흘리는 일이었다.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아뇨. 전 다른 것을 떠나서 모건 스탠리가 제 편을 들어준 것으로 만족합니다. 우리 앞으로 같이 오래오래갑시다!]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ARN 지분과 관련되어 있고, 미국 재무부도 조사하는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혹시라도 샐로먼 브러더스가 미국 재무부에 손을 쓸 수 있습니다.]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샐로먼 브러더스를 가장 싫어하는 곳이 미국 정부이니까. 아마 기회만 생기면 그자들을 없애 버리려고 할 겁니다.]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화들짝 놀라서 말을 더듬고 말았다.
[네? 그, 그게 무슨…….]
최민혁은 모건 스탠리와의 관계를 위해서 미래를 살짝 각색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지금이야 샐로먼 브러더스는 잘나가죠. 워렌 버핏 같은 걸출한 인물이 있으니까. 거기에 데릭 모건 이사 같은 거물도 빼놓기 어렵군요. 하지만 미국 정부에 너무 많이 찍혔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 이미지를 바꾸지는 못할 겁니다. 애초에 미국 정부도 샐로먼 브러더스를 믿지 않을 테니까.]
[…하면 투자 실패로 큰 손실을 본다면 미국 정부가 뒤통수를 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역시 제가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아시는군요. 모건 스탠리도 그런 점을 고려해서 위기관리를 하기 바랍니다. 제 별명 잘 아시죠? 투자의 신이라고 불리는 게 바로 접니다. 그러니 이번 정보는 거의 확실하다고 보면 될 겁니다!]
아예 대놓고 예언하는 최민혁.
아마 보통 사람이 이런 얘기를 했다면 아예 먹히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