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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804화 (801/1,021)

#804.

하지만 최지연의 입장은 좀 달랐다. 그녀도 최근 언니 최영란 본부장이 최민혁에게 얼마나 큰 도움을 받았는지 들었다.

KM 센서 지분도 따로 받았고 말이다.

하지만 그에 비해서 최문경 부회장은 솔직히 신뢰가 가지 않았다.

더욱이 최문경 부회장이 최영란 본부장에게 한 짓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아니, 왜 날 보고 화내고 그래요? 화내려면 여기 언니에게 말하든지!”

그녀 옆에서 조용히 물만 홀짝이던 최영란 본부장은 동생 최지연을 째려봤다. 그녀는 최문경 부회장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안 그래도 최문경 부회장의 질투심 때문에 몸조심하는 중이었다.

지금 상황 역시 자신과 무관하지 않았다.

ARN 지분 인수와 관련해서 주로 언급된 기업이 바로 KM 센서였다.

KM 센서의 차세대 제품 KM DVR에 적용된 것이 바로 ARN 관련 기술이니까.

역시나 최문경 부회장은 냉랭한 표정으로 최영란 본부장을 쳐다보았다.

“넌 이미 알고 있었냐?”

최영란 본부장은 힐끗 한숨을 내쉬면서 최문경 부회장의 눈빛에 맞섰다. 최문경 부회장의 압박에 오히려 오기가 생긴 것이었다.

“저도 자세한 것은 몰라요. 저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지도 마세요. 기분 나쁘니까. 답답하면 민혁이에게 물어보세요.”

최문경 부회장은 발끈했다. 아무리 딸자식을 키워봐야 소용이 없다고 하지만 이건 선을 벗어난 대답이라고 판단했다.

“감히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냐? 누가 뭐래도 민혁이 그놈은 우리 KM 그룹 일가야. 그런데 그놈이 하는 일을 내가 지금 언론사를 통해서 알아야 하는 거냐?!”

“그거야 우리 부회장님 능력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거잖아요.”

“야!”

“솔직히 민혁이에게 했던 행동을 생각해 보세요. 그러니까 민혁이 관련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죠. 그리고 그거 다 우리 부회장님이 무능해서죠!”

최문경 부회장은 버럭 소리쳤다.

“너 미쳤냐?!”

과거였다면 최영란 본부장은 최문경 부회장을 향해서 아예 대응조차 하지 못하고 얼굴을 숙이고 말았을 것이다.

실제로 지금도 두 손은 살짝 떨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과거의 그녀가 아니었다.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세요. 솔직히 냉정하게 말해서 우리 부회장님이 회사에서 한 결과가 뭐죠? 설비 쪽은 이미 안정화된 사업이에요. 거기에 숟가락을 얹은 것뿐이죠. KM 센서와 같은 새로운 사업에 대한 구상은 해보셨나요? 아, KD 통신이나 KD LCD에 투자한 것을 내세울 건가요? 그 두 회사는 계속 누적 적자가 끝도 없이 쌓이는 중이에요. 만약 외부 자극을 받으면, 와르르 무너지고 말 거에요!”

“너, 넌 지금 아비가 하는 사업에 재를 뿌리는 거야?!”

“전 리스크를 말해주는 겁니다!”

최문경 부회장은 분노로 참을 수가 없어서 최영란 본부장을 향해서 손바닥을 휘둘렀다.

하지만 최영란 본부장은 얄밉게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최동영 상무가 그제야 다급하게 끼어들어서 최문경 부회장을 말렸다.

그는 뒤로 물러나는 최영란 본부장을 향해서 소리쳤다.

“야, 영란아,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작은아버지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에요!”

“그래도 이건 아니지!”

“글쎄요. 우리 부회장님이 과거 저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약한 것 같은데요?”

최문경 부회장이 버럭 소리쳤다.

“야, 그건 다 네 미래를 위해서 한 일이야. 그놈이 죽은 것은 사고였어!”

“우리 부회장님이 끼어들지만 않았다면 사고는 나지 않았을 거예요!!”

버럭 소리치는 최영란 본부장의 눈빛은 어느 사이에 충혈되어 있었다.

옆에 서 있던 최지연은 혀를 내둘렀다. 그녀 역시 최영란 본부장의 사연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다지 복잡한 사연은 아니었다. 최영란 본부장이 만나던 남자가 최문경 부회장이 끼어든 것 때문에 사고로 죽은 사건이 있었다.

사실 최민혁이 최영란 본부장을 믿는 진짜 이유였다.

최영란 본부장이 가진 이 증오는 최민혁 실장 자신이 죽기 전까지도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반발하는 최영란 본부장도 정확히는 제법 정보를 듣기는 했다.

다만 ARN 지분 가치가 이렇게 대단할 줄은 몰랐다.

그녀는 ARN 지분 매각과 관련된 내막을 어느 정도는 알았다.

물론 최문경 부회장 역시 최영란 본부장은 이미 최민혁과 긴밀한 소통을 하는 중이었으니, 사전에 알았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도 최영란 본부장의 태도를 보고서야 생각한 것보다 두 사람 사이의 앙금이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자기 장녀였으니, 나중에 자기편을 들어줄 것으로 생각했다.

아니었다.

‘씨팔.’

다행이라면 최용욱 회장이 식사 자리에 나타났다. 그는 최문경 부회장과 최영란 본부장 사이에 오간 이야기를 들었는지 혀만 찼다.

“밥 먹자.”

* * *

식사 자리는 조용했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최문경 부회장은 장녀 최영란 본부장 때문에 미칠 것만 같았다.

최동영 상무는 그저 숟가락만 열심히 놀렸다.

김여정이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아버님.”

“말해라.”

“혹시 우리 그이 말인데요. 사면은 어려울까요?”

“그건 시간이 좀 걸릴 거다.”

“하지만 아버님이 나서면…….”

최용욱 회장은 밥을 먹다가 잠깐 숟가락을 멈추고는 힐끗 둘째 며느리 김여정을 쳐다보았다. 그는 새삼 DL 그룹을 떠올렸다. 그들이 최훈열 전무를 내세워서 KM 전자를 노린 것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손자 최민혁은 악어 입안에 머리를 들이민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내심 혀를 찼다. 다만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

“내가 나서면 사면이 더 빨라질 수도 있어. 하지만 훈열이 그놈은 저지른 죄에 대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니 좀 더 기다려.”

“하, 하지만…….”

“둘째야, 나 바보 아니다.”

“…….”

김여정은 그제야 최용욱 회장의 눈치를 보다가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녀는 사실 외가인 DL 그룹을 통해서 이미 여러 경로로 노력 중이었다.

하지만 DL 그룹도 상황이 좋지가 않았다. KD 통신이나 KD LCD 상황이 생각한 것보다 더 나빠졌기 때문이다.

김여정은 솔직히 김용만 DL 전자 전무에게 부탁받은 것을 떠올렸다. KM 그룹에 자금 지원 좀 해 달라고 했던 것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차마 부탁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녀가 부탁한다고 해도 최용욱 회장이 들어줄 것 같지가 않았다.

최용욱 회장은 김여정의 고민 어린 행동을 봤지만,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 그 역시 이미 DL 그룹 재정 상황이 빠르게 나빠지는 것을 들었다.

‘…설마 그것도 민혁이 그놈 짓일까?’

막상 지금 와서 느낀 것이지만 DL 그룹과 최민혁 실장은 무관하지 않은 것 같았다. KD LCD에 기술을 넘겨준 것은 최민혁 실장이었기 때문이다.

최용욱 회장 눈에는 테이블 한쪽에 놓인 최민혁 관련 기사를 보고는 쓰게 웃고 말았다.

그는 이미 미국에서 최민혁 실장과 만난 후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안건민 회장과 이야기를 하면서 대충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오성 그룹의 안건민 회장이 ARN 지분 5%를 무려 5억 달러에 매입한 것에는 혀를 내둘렀다.

‘민혁이 이놈은…….’

자신 역시 안건민 회장에게서 내막을 들어도 선뜻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결과였다.

* * *

최문경 부회장은 식사 분위기를 보면서 힐끗 최용욱 회장을 쳐다보았다.

최용욱 회장은 냉랭했다.

“밥이나 먹어!”

“…아, 네.”

최문경 부회장은 최용욱 회장의 태도를 보고 뭔가 느꼈지만 입을 열지 못했다. 그는 최용욱 회장에게 찍힌 것이 많아서 눈치만 봤다.

다른 사람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덕분에 거실 안에는 밥 먹는 소리만 났다.

가족끼리 오붓한 정담 따위는 없었다.

최문경 부회장은 불만을 토로할까 고민 중이었고, 최훈열의 아내 김여정은 눈치만 봤으며, 최동영 상무는 아예 모른 척 밥만 먹었다.

차라리 따로 밥을 먹는 것보다 못한 상황이었다.

최훈열 전무의 장남 최민수 역시 이미 기가 죽어서 좀비처럼 밥만 먹었다. 그건 다른 가족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최용욱 회장은 숟가락을 몇 번 들었지만 아무래도 식사 분위기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다른 사람은 싹 무시한 채 최민수를 쳐다보았다.

“민수야.”

최민수는 경기 들린 환자처럼 화들짝 놀라서 소리쳤다.

“네? 네!”

최용욱 회장은 그 태도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새삼 미국에서 본 손자 최민혁과 최민수를 비교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았다.

‘격이 달라, 이건 뭐 비교가 안 되는구나.’

“요즘 뭐 하는 거 있냐?”

“아, 그게…….”

“특별한 일이 없으면, 다음 주부터 KM 센서 본사에 출근해라. 인사 팀에는 내가 이야기해 두마.”

최민수 역시 KM 센서가 어떤 분위기인지 잘 알았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답은 역시 최민수 어머니 김여정이 나섰다.

“아, 아버님, 가, 감사합니다.”

“실없는 소리 마. 기회를 주는 것뿐이니까. 다만 이번에도 헛짓해서 사고 치면 끝이다. 그걸 명심해라. 넌 재벌 3세 신분 따위가 아니야. 그냥 일반 평사원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해라.”

“가, 감사합니다.”

최민수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비록 시작은 평사원이라고 해도 자신이 하기에 따라서 기회는 달라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최문경 부회장은 마땅찮은 얼굴이었지만 굳이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도 평소라면 몇 마디 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곧 인상을 찡그리고 말았다. 거실에 익숙한 한 사람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조카 최민혁이었다.

“이런, 벌써 식사 중이었네요.”

모든 이의 시선은 최민혁 실장을 향했다.

* * *

최민혁은 평창동에 도착해서 느긋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시중인의 태도가 이전과는 사뭇 달라진 것에 혀를 내둘렀다.

한편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식당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다.

과거였다면 이렇게 늦은 시간에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다.

최용욱 회장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용욱 회장은 자신을 보고도 별다른 질책 따위는 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온 거냐?”

“네. 잠깐 왔다가 다시 나가야 합니다.”

그는 힐끗 어머니 정미선을 쳐다보면서 그녀 옆자리에 앉았다.

정미선은 주변 눈치를 보면서 슬그머니 숟가락과 젓가락을 챙겨 주었다. 심지어 최민혁이 좋아하는 반찬을 당겨주었다.

최민혁은 대수롭지 않은 얼굴을 한 채 밥을 한입 먹었고, 소고깃국을 음미했다. 딱 자신이 좋아하는 그 맛이었다.

“맛있네요.”

“…….”

하지만 옆에서 챙겨주는 정미선을 제외하고는 다들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최영란 본부장은 꽤 반기는 얼굴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최영란 본부장의 동생 최지연이었다.

“자주 좀 와라. 정말 얼굴 잊겠다.”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일이 좀 바빴어.”

“ARN 지분 팔아치운다고?”

“어라? 누나도 알아?”

“정말 그 일도 네가 한 거야?”

최지연의 눈빛이 완전히 달랐다. 그녀도 꽤 최민혁에게 호감을 느낀 얼굴이었다. 이전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었다.

최민혁은 딱히 최지연을 싫어하지 않았다. 깍쟁이 같은 면이 있어도 선을 지키는 사람이 바로 최지연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뭐 아는 것이 있나. 일이야 밑에 전문가들이 다 알아서 하지.”

“뭘 알아야 전문가에게 일을 시키잖아.”

“다 알 필요는 없어. 핵심만 알면 간단한 일이니까.”

“…그걸로 15억 달러 이익을 얻을 수 있어? 계약 내용 보면, 세금을 비롯한 나머지 비용은 모건 스탠리와 오성 전자에서 낸다고 하던데?”

“그게 말을 잘하기 나름이야. 그쪽이 그렇게 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지.”

두런두런하는 이야기는 그리 어려운 내용이 아니었다.

하지만 식사를 하던 모든 이들은 다들 최민혁의 입에 집중했다.

그 대상에는 놀랍게도 최용욱 회장과 최문경 부회장도 있었다.

최문경 부회장의 처지에서는 그렇게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정보를 이렇게 얻게 되자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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