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801화 (798/1,021)

#801.

권태성 실장은 참담한 표정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최민혁 실장이 뭐가 좋아서 자신에게 MPEG-2 관련 기술을 공개했겠나.

다 모건 스탠리와의 협상 때문이었다.

자신들이 ARN 지분 인수를 하지 않는다고?

그건 그것대로 최민혁 실장에게 나쁘지 않았다.

‘다만 그건 모건 스탠리와의 계약이 끝난 후의 일이겠지.’

불행히도 오성 전자는 그걸 그냥 지켜만 볼 수는 없었다.

ARN 지분 가치는 지금이 가장 최저가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아무리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도 최민혁 실장은 이리저리 몇 번 옮겨 다닌 것만으로 무려 3억 달러 이익을 챙길 입장이었다.

‘하, 돈은 이렇게 버는 건가?’

오성 전자 임직원 수십만 명이 뼈 빠지게 일해서 돈을 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은 그저 거래 몇 번으로 벌써 3억 달러, 아니, 그 이상의 이익을 챙길 것이 뻔했다.

“…….”

권태성 실장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케네스 최를 통해서 확인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최민혁 실장 말처럼 모건 스탠리는 최민혁 실장의 제안을 심각하게 고민 중이었다.

하지만 그는 모건 스탠리를 절대 비웃지 않았다.

이유는 인공지능 기술 때문이다.

고성능 ARN을 만약 오성 전자 가전제품에 적용한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이지수 박사에게 확인을 해봐야 하겠지만.’

이미 몇 차례에 걸쳐서 오성 전자 연구소 쪽과 이지수 박사가 서로 검토를 했었다. 그리고 지금 기술 수준으로는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그건 고성능 CPU가 없을 때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좀 달랐다.

다른 누구보다 이 상황에 있어 조연급 주연 인물이 다름 아닌 오성 전자였다.

그렇다고 최민혁 실장이 말한 4억 달러에 ARN 지분 10%를 매입할 수는 없다.

자신이 그러고 싶어도 오성 그룹 윗선에서 다르게 생각할 것이다.

임권수 부장은 그런 권태성 실장의 마음을 몰랐다.

“권 실장님, 어쩔 생각입니까?”

“말도 안 되는 제안이지만 거절하기 힘들어. 문제는 몇 년 후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룹 윗선을 설득하기도 쉽지 않아.”

실제로 이미 오성 그룹 전략 기획실 김진석 이사를 통해서 넌지시 확인해 봤다.

김진석 이사는 알아보겠다고 한 후에 권태성 실장을 내심 비웃었다.

권태성 실장이 물론 안건민 회장에게 직보할 수는 있었다. 그런데 안건민 회장도 어차피 밑의 실무진에게 확인할 것이다.

결국 자신이 먼저 실무진을 설득하지 않는 이상 좋은 소리를 듣기는 어려울 터였다.

아니, 정확히는 그걸 조율하는 것이 자기 일이었다.

“…일단 모건 스탠리의 반응을 보고 나서 결정하지.”

“아니, 모건 스탠리가 결정하고 나면 최민혁 실장이 ARN 지분을 추가로 매각하겠습니까?”

“…좀 더 가격을 올리겠지.”

“…괜찮을까요?”

권태성 실장은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나도 모르겠어.”

‘솔직히 그냥 모건 스탠리가 지분을 다 사들였으면 좋겠어. 우리로서는 대안이 없다고 말만 하면 간단히 해결될 테니까.’

* * *

모건 스탠리 역시 ARN의 가치를 조사하면서 이런저런 정보를 얻었다.

그중에는 LC 전자와 오성 전자에 대한 것 역시 빠지지 않았다.

두 회사는 IPS LCD 특허를 확보한 터라 더 많은 공을 들였다.

덕분에 오성 전자가 최민혁 실장과 꽤 긴밀한 관계라는 것도 알아챘다.

심지어 ARN 지분과 관련해서 말이다.

최민혁 실장과 권태성 실장이 만난 이상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가짜 ARN 지분 매각 정보를 슬쩍 흘리고 말이다.

그런데 이게 또 순수한 가짜 정보는 아니었다.

더 황당한 것은 오성 전자 내부의 반응이었다.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심지어 오성 그룹 전략 기획실에서 직접 움직였다는 소리도 있었다.

이 말은 안건민 회장이 이번 계약에 직접 나섰다는 의미였다.

스탠리 로버트 이사로서는 골치가 아팠다.

“…정말 오성 전자에서 ARN 지분 매입에 관심을 보였습니까?”

폴 고슬링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오성 그룹 황태자인 안재운 전무까지 끼고도는 것을 봐서는 장난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번 성과는 안재운 전무 쪽으로 밀어주려는 것 같습니다.”

정확했다.

안건민 회장이 굳이 ARN 지분 인수를 무리하게 수긍하려는 이유였다.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오성 전자 근황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네요. 한국 제조 기업이 왜 ARN에 관심을 기울이는 거죠? 최민혁 실장이 내놓은 ARN 매각 대금을 그쪽에서 수긍할 리가 없을 텐데요?”

“그게, 오성 그룹의 상황이 좀 달라졌습니다. 당장 애니와 같은 인공지능이 대표적입니다. 이 기술을 오성 전자 가전제품에 적용한다면 그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합니까?”

인공지능 이야기는 늘 나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기술을 현실에서 적용한 제품은 거의 없다. 그저 잠깐 나왔다가 사라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니 오성 전자 같은 기업이 이런 현실성 없는 기술을 적용할 리가 없었다.

폴 고슬링 역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지수 박사가 지금 진행하는 인공지능 기술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가전제품에 진짜 적용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설마 거기에도 고성능 ARN이 적용되는 겁니까?”

“…아마 그럴 거라고 봅니다. 최근 지역 경찰에서 다시 테스트 중인 KM DVR에도 고성능 ARN이 적용되었다고 확인했습니다.”

지역 경찰에서 KM DVR 문제를 걸고넘어진 후에 다시 업그레이드된 샘플로 교체되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아니, 환호했다.

허접한 아날로그 CCTV와는 아예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폴 고슬링도 주춤했다. 그런데 뒤늦게야 MPEG-2를 떠올렸다. 고속 동영상 압축 기술 말이다. 하면 ARN은 다른 곳에도 적용 가능했다.

‘설마 인공지능이 다른 형태로 응용이 가능한 건가?’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최민혁 실장에 대한 편견이 딱히 없었다. 그는 기존에 최민혁 실장이 한 성과만을 떠올렸다.

“그 인공지능 기술도 성능이 문제가 되잖아. 결국, 고성능 ARN 기술이 적용되면 달라질 수도 있지. 심지어 MP3, MPEG-2 칩과 같이 적용할 수도 있고, 막말로 인공지능 칩까지 불가능하지는 않잖아. 그래야 최민혁 실장이 제안한 ARN 지분 가격이 말이 되니까.”

폴 고슬링은 힐끗 스탠리 로버트 이사를 쳐다보았다. 썩어도 준치라고 완전히 그가 감을 완전히 잃지는 않아 보였다.

“…그건 검토를 해봐야 할 듯합니다.”

“하아, 빨리 좀 해. 아무래도 서둘러야 할 것 같으니까.”

“…알겠습니다.”

폴 고슬링은 그제야 후다닥 사무실을 뛰어나갔다.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이마를 잡고야 말았다.

그도 처음에는 최민혁 실장이 미친놈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아. 정말 우리 쪽에 좋은 제안을 한 것일 수도 있어. 아무래도 최민혁 실장 이 인간을 직접 만나봐야겠어.’

* * *

월가의 사무실 임대료는 평당 1,500만 원 선이다. 허드슨강 다리 하나만 건너도 300, 400만 원이나 저렴해질 정도로 비싸다.

하지만 월가 임대료가 비싼 만큼 유명 맛집을 비롯해서 많은 곳이 모여 있다.

볼 것도 많고, 먹을거리도 많다.

이런 월가의 삶은 미국 샐러리맨에게도 꿈이나 마찬가지다.

케네스 최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가슴속에서는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 인종차별을 경험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그는 모건 스탠리에 입사한 후에 다른 지인에게서도 높은 관심을 받았다.

그들은 자신을 마치 아메리칸드림을 이룩한 사람처럼 본다.

오성 전자에게서 막대한 지원을 받은 것도 이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을 오늘 확실히 깨달았다.

바로 최민혁 실장의 방문.

그 때문에 모건 스탠리 본사 입구에 나와 있어야 했다.

그것도 제일 뒤쪽에.

폴 고슬링이 굳이 이런 식으로 최민혁 실장을 기다린 것은 한국 기업 오너가 이런 식으로 예우받는다고 잘못 알았기 때문이다.

모건 스탠리 본사 앞에 선 차량 안에서 내린 최민혁 실장은 조성돈 팀장과 경호원 여섯 명을 거느린 채 이 황당한 예우를 받았다.

“…이게 다 뭡니까?”

모건 스탠리 본사를 오가는 수많은 외국인이 최민혁 실장을 쳐다보았다.

폴 고슬링 역시 그걸 잘 알았다. 하지만 그로서는 이게 한국 기업인에 대한 접대라고 생각했다.

“최민혁 실장님에 대한 예우입니다.”

“하, 지금 저랑 장난하자는 겁니까?”

“네?”

“한국 재벌이 이러기는 하지만 그건 한국에서만 그런 겁니다. 그것도 좀 꼰대 기질이 다분한 재벌이 그렇고요. 제가 그런 사람으로 보입니까?”

“그건 아니지만…….”

폴 고슬링은 크게 당황했다. 자신이 재벌은 아니지만 이런 환대를 싫어할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

최민혁은 기가 차서 한마디 하려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말았다. 그는 폴 고슬링이 한국 기업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굳이 잘못된 선입견을 바꿔줄 필요성까진 느끼지 못했다.

“그쪽에서 만나자고 해서 이렇게 직접 찾아왔습니다. 그러니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하고, 안내를 부탁합니다. 이제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하니까.”

“…아, 알겠습니다.”

그는 일단 모건 스탠리 안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오히려 더 많았다.

모건 스탠리 본사에는 임직원뿐만 아니라 고객들 역시 많았다.

그들 역시 모건 스탠리의 이런 대접은 처음 봤다.

그들은 대통령이라도 방문하나 싶었다.

최민혁 실장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알아본 이가 있었다.

[어? 최민혁 실장이잖아?!]

[그게 누군데?]

[그거 몰라? 샌프란시스코 납치범을 구한 기업가라고 요즘 뉴스에서 뜨겁잖아.]

[아, 그 최민혁 실장…….]

그제야 분위기가 달라졌다. 다들 최민혁 실장을 왜 모건 스탠리 임직원이 대우하는지 이제야 이해했다. 충분히 그럴 수가 있다.

최민혁 실장은 기업가이거나 투자자이기에 앞서서 영웅이었기 때문이었다.

최민혁 실장은 기존의 기업과는 다른 행보를 보였으니 말이다.

사실 외국인 기업 중에 최민혁 실장처럼 미국을 위해서 공격적으로 나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그 대상이 샌프란시스코 경찰이었으니 말이다.

설사 이 부분이 언론을 통해서 과장되었다고 해도 말이다.

모건 스탠리 본사 입구를 오가던 수많은 임직원들이 우레와도 같은 박수를 보냈다.

박수 물결은 마치 쓰나미처럼 모건 스탠리 본사 입구로 퍼져 나갔다.

최민혁 실장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언론에서 연일 최민혁 실장을 영웅시한 덕분에 최민혁에 대한 평가가 극단적으로 말해서 미국 히어로 영화의 주인공처럼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이어지는 격한 갈채 물결에 최민혁은 어이가 없었다. 그들이 마치 자신을 영웅처럼 환대해 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가 의도한 바이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효과가 좋을 줄은 몰랐다.

‘하긴, 소녀를 구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지.’

“…….”

폴 고슬링은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그가 딱히 원한 그림은 아니었다.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이 정도로 했는데, 억지를 부리지는 않겠지.’

그로서는 한 가지면 충분했다. 협상이 잘 진행되는 것 말이다.

“…….”

케네스 최는 이 광경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로서는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그 역시 미국 명문 대학을 졸업해서 나름 모건 스탠리에서 잘나가기는 한다.

하지만 인종차별적인 태도는 모건 스탠리 내에도 여전했다.

이건 어딜 가도 마찬가지다.

마치 계급 차별과 같은 날카로운 시선은 여전히 견디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은 자신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그 어떤 인종차별적인 요소도 없었다.

오히려 존경과 흠모만 가득할 뿐이었다.

‘하, 이럴 수도 있구나.’

* * *

회의실 역시 시작부터 박수갈채로 가득했다. 스탠리 로버트 이사조차 혀를 내두른 채 박수를 쳐주었다. 그 역시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다른 이들이 다 손뼉을 치는데, 혼자 조용히 구경만 할 수는 없었다.

[환영합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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