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799화 (796/1,021)

#799.

“그런데 ARN이란 회사에 대해서 최근 알았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큰 덩치도 아니었으니까요. 다만 제가 권 실장을 통해서 들은 바로는 이전과 조금 다르더군요. 저도 이런저런 말이 많이 나와서 하는 말입니다.”

“……?”

최용욱 회장은 여전히 듣기만 했다. 그는 안건민 회장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지간한 기업 회장이라면 욕설을 내뱉었을 것이다.

그런데 안건민 회장을 상대로는 그러지 못했다.

안건민 회장은 씁쓸하게 웃고 말았다.

“그런데 최근 안 사실인데, 그 ARN 지분 60%를 매입한 사람이 최민혁 실장이더군요. 심지어 그 ARN 코어의 한계까지 극복했다고 합니다. 덕분에 ARN 가치가 이전과는 아주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지분을 노리는 세력이 제법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모건 스탠리라고 보고받았습니다.”

“…하.”

최용욱 회장은 그제야 안건민 회장이 갑툭튀로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알고는 이마를 짚고 말았다. 또 손자 최민혁 실장 때문이었다.

그도 알음알음 듣기는 했다. 다만 그 ARN 지분을 노리는 승냥이가 모건 스탠리라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아니, 손자 최민혁 실장이 모건 스탠리를 상대로 수작을 부렸다는 것까지 말이다.

거기에 덤으로 오성 전자까지 끼워 넣어서 말이다.

안건민 회장은 최용욱 회장의 태도에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모르셨습니까?”

최용욱 회장은 안건민 회장의 눈치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솔직히 간헐적으로 듣기는 했습니다. 다만 자세한 것까지는 몰랐습니다. 안 회장님이 이렇게 직접 찾아와서 하는 얘기말입니다. 민혁이 그 녀석이 다 알아서 한 일이니까.”

안건민 회장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최, 최 회장님은 전혀 관련이 없다는 말입니까?”

그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솔직하게 인정했다.

“우리 KM 산업은 일찍 필리핀에 진출했고, 계속해서 필리핀 공장을 증설했습니다. 필리핀을 중심 거점으로 삼은 거죠.”

KM 산업의 필리핀 집중은 꽤 성공적이었다. 필리핀 정부 역시 이런 KM 산업의 손을 들어주었다.

최문경 부회장이 굳이 필리핀 정부에 집중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 쪽에 굳이 에너지를 낭비하지는 않았다.

덕분에 KM 그룹은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미국이나 유럽 시장 공략을 적극적으로 할 수가 없었다.

콜린스 판매 전략 역시 이런 KM 그룹 정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KM 그룹 내에서도 말이 많이 나왔다.

콜린스 판매를 이용해서 전 세계 공략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용욱 회장은 그 제안을 계속 보류했다.

이유는 최민혁 실장이 굳이 시간을 달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존버한 것이었다.

무슨 말을 해도 손자 최민혁 실장은 자기 말을 씹어 버렸다.

“…잘 이해가 되지 않을 겁니다. 민혁이 그놈의 고집이 얼마나 지독한지, 자기 뜻이 아니라면 일단 무조건 무시해 버립니다.”

“…….”

안건민 회장은 최용욱 회장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기만 했다.

최용욱 회장 역시 안건민 회장을 상대로 허튼수작을 부리지 않았다.

안건민 회장이 이렇게 자신을 찾아온 것은 의사 결정을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었다.

안건민 회장은 묵묵히 최용욱 회장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아니, 그러다 갑자기 최용욱 회장의 말이 끝나자 불쑥 한 가지를 확인했다.

“최민혁 실장이 한 일 말입니다. 초창기에는 최용욱 회장님이 도와준 것 같은데, 지금도 계속 도와주고 있는 겁니까?”

최용욱 회장은 잠깐 머뭇거렸다. 그는 안건민 회장이 굳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최민혁 실장의 배후에 자신이 있다고 확신하는 눈치였다.

최용욱 회장으로선 이번 기회에 잘못된 선입견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었다.

“전 처음부터 민혁이 그놈이 하는 일을 도와준 적이 없습니다.”

안건민 회장은 정말 매우 놀랐다. 그도 이 일을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ARN 지분 인수나 콜린스 사업부를 인수하려면 이에 앞서서 이 일을 확인해야 했다.

“저, 정말입니까?!”

최용욱 회장은 쓰게 웃고 말았다. 최민혁 회장 배후설은 이미 수십 번도 언급된 상황이었다. 분명히 아니라고 해도 아무도 믿지 않았다.

심지어 안건민 회장에게도 여러 경로를 통해서 몇 번이나 말했다.

그럼에도 안건민 회장이 이렇게 나서는 것은 계약에 앞서서 이 사안을 확실히 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정말입니다. 이제까지 민혁이 그 녀석의 성장에 전 단 한 푼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KM 전자 지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정당한 거래였습니다.”

“…….”

안건민 회장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역시 최용욱 회장의 입을 통해서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도 이러고 싶어서 이런 것이 아니었다. 최민혁 실장과 관련된 내용이 너무 허황해서 그랬다. 그런데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그는 한편으로 당황했다. 전략 기획실을 통해서 얻은 최민혁 실장의 프로필은 황당 그 자체였다. 지금만 해도 그랬다.

ARN 지분 매각은 그로서는 불가사의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한편으로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봐야 했다.

“…알겠습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오늘의 무례는 꼭 갚겠습니다.”

안건민 회장은 바람처럼 나타났다가 바람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

최용욱 회장은 한동안 어이가 없어서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그는 자존심이 상하긴 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너무 황당한 일이라서 그렇게 생각하기도 힘들었다.

다만 그는 이 상황을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수가 없어서 장승일 실장에게 연락해서 한 가지를 지시했다.

[민혁이 그놈을 만나야겠어. 당장 필요한 조처를 하게나.]

* * *

샌프란시스코에서 남쪽으로 40㎞ 떨어진 곳에 있는 실리콘 밸리는 7개의 작은 도시로 이루어져 있다.

반도체 산업의 메카로 꼽히면서 이곳에는 수많은 인재가 몰려들었다.

그로 인해 건물값은 급등했다.

팔로알토 네트웍스 건물 역시 다르지 않았다.

이 건물을 매입한 최민혁 실장은 단순한 부동산 수익만으로 벌써 대박을 쳤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끝내지 않았다. 팔로알토 네트웍스 건물 주변 땅을 죄다 매입했다.

그 건물 모두를 하나로 이어서 다양한 연구를 할 수 있는 종합 연구소로 만들었다.

아직은 완성된 건물도 있고, 이제 막 올라가는 건물도 있어서 시끄러웠다.

건설업자 수백 명이 바쁘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팔로알토 네트웍스 건물을 오가는 이들도 있어서 주변에 사람은 많았다.

최용욱 회장은 잠깐 팔로알토 네트웍스 주변을 둘러보면서 혀를 찼다. 그도 손자 최민혁 실장이 미국에서 뭔가 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심지어 이곳만이 아니라 뉴욕을 비롯한 미국 곳곳에서 초호화 펜트하우스와 저택을 사들인다는 것까지 보고받았다.

그런데 막상 와서 본 광경은 그가 생각하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이 건물의 원주인이 민혁이에게 이걸 쉽게 넘길 것 같지 않을 텐데?”

장승일 실장은 최용욱 회장의 눈치를 봤다.

“원래는 팔로알토 네트웍스 측에서 급한 자금 사정 때문에 넘기기는 했지만, 다시 인수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부동산 가격이 벌써 50% 가까이 급등하면서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저기 주변 땅은?”

“샌프란시스코주에 KM DVR 기부와 같은 활동을 하면서 이야기된 것으로 들었습니다. 주지사가 부동산 거래에 적극 손을 썼다고 합니다.”

당연히 공짜로 땅을 팔로알토 네트웍스 4배에 해당하는 땅을 넘긴 건 아니었다. 시가를 기준으로 해서 땅을 넘겼다.

그렇다고 이 일이 간단히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이 땅들을 매입하는 데는 최민혁 실장의 명성도 한몫했다.

그가 이 땅을 전부 매입해서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소를 만들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땅 주인은 샌프란시스코 주지사 보좌관이 중재한 것을 보자 최민혁 실장의 제안에 순순히 수락하고 말았다.

“…기가 막히는군.”

* * *

최용욱 회장은 자신을 마중 나와 있는 한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조성돈 팀장이었다. 그도 최용욱 회장의 방문에 크게 당황한 얼굴이었다.

“회, 회장님?!”

“조 팀장, 오랜만이군.”

“아, 아닙니다.”

“자네도 고생이 많아. 얼굴에 다 나와 있어.”

실제로 조성돈 팀장의 표정뿐만 아니라 살도 무려 10㎏나 빠졌다.

미국에 와서 고생을 많이 한 것이었다.

조성돈 팀장은 최용욱 회장의 얼굴을 보자 크게 놀랐다. 그 역시 최용욱 회장이 직접 미국을 이렇게 방문할 줄은 몰랐다.

최용욱 회장 역시 그런 점을 인정했다.

“민혁이 그놈이 안 찾아오는데, 어쩔 수가 없잖아. 나라도 직접 찾아와야지. 이번엔 최소한 돌아가는 사정을 좀 들어야겠어!”

“…아, 안내하겠습니다.”

* * *

“어, 할아버지.”

최민혁은 갑작스러운 최용욱 회장의 방문에 깜짝 놀랐다.

그 역시 최용욱 회장이 이렇게 소식도 없이 자신을 찾아올지는 몰랐다.

최용욱 회장은 잠깐 손자 최민혁을 째려보다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할 말이 있다.”

“아, 따라오시죠.”

최민혁은 얼떨떨한 얼굴을 한 채 이지수 박사와 헬렌을 데리고 자기 사무실로 향했다.

최용욱 회장은 사무실로 들어가는 중에 힐끗 이지수 박사와 헬렌을 쳐다보았다. 그 역시 사전에 보고를 받았기에 두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다.

‘허허허.’

다만 그도 보고를 받은 것과 직접 본 것과 차이를 느꼈다.

미인이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이렇게 깜짝 놀랄 수준인지는 몰랐다.

최민혁이 왜 여자 보기를 돌같이 한 것인지 이제야 알았다.

‘미스코리아 진 수준이 되어야 그나마 이야기가 되겠구나.’

두 사람은 다행히 최민혁 실장에게 소개를 받고 난 후에 최용욱 회장이 부담스러워서 슬쩍 사무실에서 도망치고 말았다.

“…둘 중에 동양인이 이지수 박사냐?”

“네.”

“네가 마음에 둔 처자냐?”

최민혁은 직접 차를 내와서 따라주면서 피식 웃고 말았다.

“아닙니다. 직원일 뿐입니다.”

“그렇게 보이지 않아.”

그는 조금 전에 최민혁과 이지수 박사가 서로 이야기하는 것을 떠올렸다. 꽤 서로 친한 분위기였다. 평범한 사이로 보이지 않았다.

최민혁은 다시 한번 말해주었다.

“지금은 고용주와 직원 사이입니다.”

“도와주랴?”

“…아니, 그러지 마세요. 두 사람 다 자존심이 보통이 아니니까. 안재운 전무조차 경찰을 불러 고소한 친구들입니다.”

“호오, 그래? 성깔이 보통 아니구나.”

최민혁도 순순히 인정했다.

“말도 마십시오. 어지간한 남자는 옆에 가면, 피 빨려서 죽습니다.”

“흠. 보통 처자가 아니라는 소리구나. 거참, 네놈도 눈이 참 특이해. 아, 좋아. 뭐 그런 일 때문에 온 건 아니니까.”

최용욱 회장은 진지한 얼굴로 안건민 회장이 직접 찾아온 것을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이전처럼 어수룩하게 일 처리 하려는 것이 아닌 것 같더라. ARN 지분 인수뿐만 아니라 이번 기회에 콜린스 사업부 인수도 진지하게 생각하는 눈치였어.”

최민혁은 커피를 홀짝이면서 피식 웃었다. 그 역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개 사업부를 같이 인수한다면 할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기적으로 봤을 때 콜린스 사업부를 매각해도 KM 전자에게 큰 타격은 아니었다.

‘KM 센서를 생각하는 것 같아.’

“아마 그럴 겁니다. 콜린스 사업부는 사실 오성 전자 품 안에 있을 때야 시너지가 더 생길 겁니다. 아이컴 역시 그 하나고요.”

“네 생각이 틀리지는 않아. 하지만 콜린스 사업부만 해도 KM 전자가 이제까지 전통적으로 추구했던 사업이야.”

“압니다. 그렇다고 시대의 변화를 거슬러 갈 수는 없습니다.”

“ARN을 말하는 거냐?”

최민혁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으음, 내 생각은 좀 달라. 난 네 녀석이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서 이제까지 네 사업에 간섭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볼 수가 없어. 콜린스를 이용하면 우리 KM 그룹은 미국과 유럽 시장 파이 자체를 키울 수가 있다. 그건 단순히 돈으로 환산할 일은 아니야. 지금은 자본도 넉넉해서 해볼 만한 일이잖아?”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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