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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797화 (794/1,021)

#797.

권태성 실장은 실무 협의를 통해서 ARN 지분의 가치를 어느 정도 계산했다.

그는 안재운 전무와 이야기를 한 후에 이 안건을 전략 기획실에 보고했다.

최민혁은 오성 그룹 내부 행보를 지켜봤기에 중간에 이 정보를 얻고 나서는 한동안 고민했다. 오성 그룹이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본격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오성 그룹이 ARN 지분 매입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는 이야기인데.’

이전과는 사뭇 다른 상황이었다.

오성 그룹 역시 이제는 뭔가 행동으로 보여줄 생각이었다.

그만큼 KM DVR은 가볍게 볼 아이템이 아니었다.

최민혁은 그제야 진지하게 오성 그룹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앞으로 일 말이다.

‘오성 그룹에 개 목줄을 걸어두면, 최문경 부회장에게 붙지는 않을 거야. 아니, 그렇게 될 수 있게 만들어놓을 필요가 있어.’

그는 딱히 오성 그룹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성 그룹의 역량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다른 10대 그룹과는 달리 오성 그룹은 자신의 손발이 되어줄 역량이 있었다.

고민한 끝에 그는 오성 그룹에 대해서 이전과는 다르게 손을 쓰기로 마음먹고는 조성돈 팀장을 호출했다.

“그 X 리포트 말입니다. 최근 현황까지 업데이트했을 텐데, 결과는 어때요?”

조성돈 팀장은 조금 당혹스러운 얼굴이었다.

“예측과는 좀 달라졌습니다. 특히 바트화 사태가 많이 다릅니다.”

태국 바트화 사태를 의외로 태국 정부가 잘 막아냈다.

최민혁의 인생 1회 차와는 비슷하면서도 좀 다른 결과였다.

최민혁 실장의 전생에서 태국은 초반에는 바트화를 잘 막아냈지만 뒤로 가서는 많이 휘청거렸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좀 달랐다. 지금의 태국은 생각보다 안정적으로 헤지펀드의 바트화 공격을 아주 잘 막아냈다.

‘…나 때문인가?’

최민혁은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을 떠올렸다.

“혹시 타이거 펀드는 어때요? 설마 얘들이 바트화 사태에서 손을 뗀 건가요?”

“…그게 이상합니다. 손을 뗀 것도 아닙니다. 일부 투자는 하니까요. 다만 다시 들어갈 때는 투자 금액을 줄였습니다. 헤지펀드 내부 사이에 갈등이 있다는 설이 파다합니다.”

“그런가요?”

최민혁은 혀를 내둘렀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이 말이 되었다. 다만 그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에플 주식 때문인가요?”

“네, 그쪽으로 자금을 더 퍼부으면서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에플 주식 때문에 상황이 생각보다 꼬인 것을 깨달았다.

조성돈 팀장도 혀를 내둘렀다.

“이것 때문에 말이 많습니다. 장승일 실장도 연일 저에게 전화로 이 사안을 확인하는 중입니다. 최민혁 실장님의 예측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의혹을 가진 것 같습니다.”

최민혁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는 굳이 장승일 실장에게 조심하라고 지시를 내리지는 않았다.

“오성 그룹 측에서 그 X 리포트를 따로 조사하는 것 같습니까?”

조성돈 팀장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리스크를 관리하는 일이니, 조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처럼 철저하게 검토하지는 않겠죠?”

“그건 그렇습니다. 우리 기획 팀에서는 최민혁 실장님이 따로 인원을 할당했기 때문에 대학 연구소 여러 곳에 나누어서 사안을 확인 중입니다.”

실제로 올라온 보고서는 한두 사람이 확인한 것이 아니었다.

무려 50억을 퍼부어서 따로 조사한 결과였다.

여러 대학 연구소를 통해서 교차 검증을 거친 결과물이었다.

사실 이 조사 결과는 최민혁 실장이 아는 전생 기억보다 더 상세한 것이었다.

최민혁 실장은 보고서 내용에 꽤 만족했다. 복잡한 첨부 파일까지 읽어보지는 않았다. 그는 굳이 그럴 생각이 없는 인물이었다.

‘부족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뭐, 판단은 각자 알아서 해야지.’

“…이 보고서를 오성 전략 기획실의 손에 들어가도록 조치를 하세요.”

“오, 오성 전략 기획실에 말입니까?”

최민혁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 일하기 좋으니까요. 이 보고서를 이해한다면 ARN 지분이나 콜린스 인수는 나쁜 선택이 아닙니다. 둘 다 해외 시장이 목적이니까.”

그랬다.

ARN만 해도 여러 분야에 적용된다. 그리고 그 아이템 태반은 외국 시장 매출이 기반이었다.

콜린스는 더했다. 유럽 한 나라 시장만 해도 국내 시장보다 더 컸다.

만약 유럽 시장에 대한 영업력이 있는 오성 전자가 이를 인수한다면 KM 전자가 이룩한 매출의 10배, 아니, 20배 이상 끌어올릴 수 있다.

IPS-LCD 기술은 아직 안정화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 제품이 콜린스와 경쟁하려면 적어도 5~6년은 지나야 했다.

아니, 설사 그 시점이 되어도 콜린스 자체가 가지는 강점을 IPS-LCD가 넘지는 못한다.

만약 IPS-LCD 기술이 더 올라간다면 상황이 다르겠지만 말이다.

조성돈 팀장은 ARN 지분 이야기보다는 콜린스에 더 신경 썼다.

“…결국 콜린스 사업부를 매각하실 생각이군요. 하지만 콜린스를 이은 다른 사업을 먼저 선정해야 하지 않습니까?”

최민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누이 말했지만, 콜린스 사업은 제 사업 철학과는 많이 다릅니다.”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이전과는 달리 반발하지 않았다. 그 역시 IPS-LCD 기술을 봤다. 오성이나 LC 전자에서 소형 3.5인치, 10인치 IPS-LCD 시제품은 큰 강점을 가지고 있었다.

최민혁은 넌지시 자신이 구상한 한 가지를 말해주었다.

“주로 인공지능 기반 제품을 고를 겁니다.”

당장 자동차의 자율 주행을 떠올렸다. 그런데 지금 이 시기에는 무리수가 따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다른 대안을 선택하면 될 뿐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제품인지 알 수가 있을까요?”

최민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천천히 선정해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오성 전자의 움직임을 본 후에 판단하죠.”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이제 최민혁 실장의 지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콜린스 사업부 매각에 대한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차세대 제품은 무엇일까? 이미 스마트폰이 있지 않은가. 가만, 결국 다른 제품이라는 말인데, 그런 게 뭐가 있지?’

그로서는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 * *

최민혁 실장의 예측처럼 오성 그룹 전략 기획실 내에는 리스크 관리를 전담하는 팀이 있다.

박재형 팀장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X 리포트같이 황당한 내용도 따로 조사해서 계속해서 확인 작업을 한다.

이 일 자체는 그룹 차원에서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최근 업데이트된 내용은 좀 달랐다.

특히 지방 저축 은행과 지방 건축 회사들의 줄도산이 문제였다.

그런데 이 일은 단순히 국내 문제만은 아니었다.

동아시아 쪽과도 관련이 있다.

특히 태국이나 필리핀 말이다.

따라서 태국 바트화를 노리는 헤지펀드 정보는 무시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태국 정부는 의외로 헤지펀드의 공격을 잘 막아 냈다.

사실 그도 딱 여기까지만 알았다.

그런데 최근 추가된 내용에는 사실 헤지펀드 사이에 일어난 갈등 때문에 태국 정보가 바트화 사태를 잘 막아냈다는 정보가 들어 있었다.

‘이게 뭐지?’

박재형 팀장은 오성 그룹 전략 기획실 소속답게 이 기묘한 사태를 그냥 넘기지 않았다. 그는 인원을 더 할당해서 이 부분을 조사시켰다.

그 답을 금방 찾아냈다.

헤지펀드 간의 갈등의 중심에는 타이거 펀드가 있었다.

그는 다시 타이거 펀드를 조사했다. 그런데 이 헤지펀드는 뜻밖에도 바트화에 들어갈 자금 일부를 에플 주식에 투자했다.

이 정보는 국내가 아니라 해외 팀을 통해서 얻은 것이었다.

그는 그제야 뭔가 더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시점에 다시 얻은 정보는 바로 ARN 지분과 관련된 것이었다.

역시 주인공은 최민혁 실장.

그런데 최민혁 실장은 뜻밖에도 에플 지분 32%를 소유한 대주주였다.

‘이건 좀…….’

박재형 팀장은 그제야 긴장했다. 그 역시 최민혁 실장을 모를 수가 없다. 최민혁 실장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다.

‘콜린스 사업부 인수도 걸려 있으니까.’

오성 그룹 내에서도 콜린스 사업부 인수에는 말이 많이 나왔다.

하지만 아직도 겉돌아서 다들 관심을 끊었다.

물론 박재형 팀장은 좀 달랐다. 그는 전략 기획실에서는 콜린스 사업부 인수를 위한 팀이 따로 있다는 것까지 알았다.

이 과정에서 다시 얻은 정보는 바로 업데이트된 X 리포트였다.

이 역시 최민혁 실장과 관련이 있는 정보였다.

그는 일단 이 자료를 취합해서 전략 기획실 최학준 실장에게 보고했다.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잘 모르겠네. 에이, 모르겠다. 그냥 윗선에서 알아서 하겠지.’

* * *

미래 전략 기획실 최학준 실장은 전략 기획실 내의 박재형 팀장에게서 최민혁 실장에 대한 보고를 받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박재형 팀장에게 그 어떤 질책도 하지 않았다.

그저 올라온 보고서 내용만을 꼼꼼하게 읽었다. ‘최민혁 실장’을 중심으로 한 보고서 내용은 이상할 정도로 거미줄처럼 엮여 있었다.

오성 그룹 전략 기획실은 최민혁 실장만을 아예 따로 감시하는 조직이 있기에 이런 정보를 그냥 넘기지 않았다.

그는 이런 와중에 다시 권태성 실장에게 보고를 받았다.

이미 안건민 회장을 통해서 권태성 실장이 따로 움직인다고 들었기에 가볍게 넘기지 않았다.

크로스 해서 올라온 정보의 공통점은 역시 최민혁 실장이었다.

최민혁 실장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들은 무시하기 곤란한 정보여서 안건민 회장에게 이 안건을 보고했다.

“흠.”

안건민 회장은 특이하게도 별다른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를 음모론으로 치부해서 질책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최학준 실장 역시 자신이 보고하고서도 단단히 각오했다.

‘최민혁 실장’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이 일은 연관성이 있긴 했지만 실제로 그렇다고 장담하기에는 좀 그랬다.

“최 실장, 자네 생각은 어때?”

“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여기 보면 타이거 펀드도 관련이 있다고 되어 있잖아. 최민혁 실장이 이런 점까지 노려서 이렇게 일을 진행하게 한 것 같아?”

약간의 오해가 있었다. 최민혁 실장이 바트화를 건드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딱히 이걸로 뭔가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모건 스탠리를 상대로 시비를 건 것이었다.

최학준 실장으로서는 최민혁이 그런 의도로 일을 저질렀다고 생각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자네 생각을 말해봐.”

“…그게.”

최학준 실장은 머리를 긁적였다. 솔직히 그 역시 전략 기획실 팀을 호출해서 자유 토론까지 펼쳐보았지만 얻은 것은 전혀 없었다.

“전혀 없어?”

“으음, 확실하지는 않지만, X 리포트 말입니다. 큰 그림에서 본다면 이 시나리오대로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자잘한 차이가 있는데, 그건 최민혁 실장이 손을 대서 생긴 일이라고 봅니다.”

“최민혁 실장이 이 사태를 막으려고 한 것 같아?”

“사실 그걸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 사태대로 흘러가도 한 가지는 명확합니다. 최민혁 실장은 손해를 보지 않습니다.”

“ARN 지분 매입은?”

“그것 역시 우리 오성 그룹에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손해 볼 일은 아닙니다. 다른 것을 떠나서 최민혁 실장이 ARN 지분 60% 실소유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단 말이지.”

안건민 회장은 지그시 보고서를 다시 몇 차례 꼼꼼히 읽었다. 업그레이드된 X 리포트는 무시할 정도로 가벼운 내용이 아니었다.

‘정부가 급하게 손을 쓰지 않았다면 문제가 크게 비화하였을 거야.’

고민을 한 안건민 회장은 결국 입을 열었다.

“사장단 회의를 열어서 한번 의견을 들어보기로 하지.”

“…알겠습니다.”

그는 단순히 여기서 끝내지 않았다.

“굳이 자세하게 말해서 사장단을 자극할 필요는 없네. 그저 그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은 거니까. 국내에서 이상한 일이 생기는 것은 사실이니, 어느 정도는 알 거야.”

“…네.”

최학준 실장은 골치가 아팠다. 이 문제는 자칫하면 후일 구조조정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사장이라고 해서 계속 그 자리를 유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설마 대대적인 구조조정이라도 할 생각인 건가?’

하지만 그는 X 리포트를 떠올리고는 자신의 우려가 단순한 걱정만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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