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795화 (792/1,021)

#795.

그는 고심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이번 일은 리스크가 너무 컸다.

“좋아, 내가 바쁜 것은 자네도 알잖아. 스탠리 로버트 이사에게 이 일을 넘기는 것으로 하지. 어차피 기업 인수합병이나 현물 투자 거래는 그 친구가 전문이니까.”

“…네.”

폴 고슬링도 순순히 수긍했다. 그도 이번 일은 스탠리 로버트 이사가 처리해 주는 것이 편했기 때문이다. 다만 기름 장어 같은 마이크 라이언 이사 행동에 혀를 찰 뿐이었다.

‘이 인간은 바뀌지를 않는다니까.’

* * *

인터넷의 최근 폭발적인 성장에 대해서는 여러 음모론이 존재했다.

느닷없이 촉발된 이 사태의 원점에 대해서는 말이 많았다.

다만 이런저런 이야기만 가득할 뿐이지, 확실히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인터넷 산업 활성화와 더블어서 여러 업체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검색 소프트웨어인 넷스케이프가 그 하나였고, 자바를 등에 업은 선마이크로시스템 역시 빼놓기 어려웠다.

이들은 기존의 소프트웨어 강자인 MS, 오라클조차 압박할 정도였다.

AOL 역시 빼놓기 어려웠다. 이들은 KMBOOK과 손을 잡고 차세대 인공지능 타입 메신저 개발에 열을 올리는 중이었다.

이에 반해서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업체가 바로 리더인터내셔널사였다.

대학과 도서관에 인터넷 사용자가 급증한 후에 출판사가 휘청한 것이었다.

이런 급격한 변화에 인터넷 혁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모건 스탠리 내의 그 누구보다 이런 변화를 잘 알았다. 그가 인수합병과 지분 확보를 하는 방향 자체가 이에 기반을 뒀기 때문이다.

다만 그도 아쉬운 점은 있었다.

바로 최민혁 실장과의 거래 말이다.

그 역시 최근 마이크 라이언 이사가 최민혁 실장과 연락을 주고받는 얘기를 들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한 일었으니,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굳이 마이크 라이언 이사와 적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폴 고슬링이 뜬금없이 나타나서 최민혁 실장 문제를 자신에게 넘겼다.

심지어 그 내용도 황당했다.

“저도 어지간해서는 이런 말 잘 안 하지만, 마이크 라이언 이사의 행동이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압니다.”

“아뇨.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제 업무를 가로챈 것도 참았습니다. 굳이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문제가 그렇게 심각한 상황에서 절 보고 어떻게 해결하란 말입니까?”

“…죄송합니다.”

고개를 결국 숙이고 마는 폴 고슬링이었다.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가 받은 자료를 봐서는 최민혁 실장과 협상을 해야 하는데, 그게 녹록하지 않았다.

‘재무부가 엮이지 않았다면, 그나마 쉽게 풀어 갈 수 있어. 하지만 지금은…….’

미국 재무부란 단체는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이용은 해먹을 수 있어도 뜻대로 다룰 수만은 없는 곳이었다.

그는 물론 폴 고슬링을 이해했다. 최민혁 실장이 어떤 사람인지 그 역시 꽤 깊이 알았다. 최민혁 실장에 관한 조사를 지금까지 꾸준히 진행했기 때문이다.

그는 일단 재무부의 스티븐 키렌 차관보를 직접 찾아가서 만났다.

다행히 대학 동창인 스티븐 키렌 차관보는 만남을 거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야기는 길지 않았다.

아니, 아예 시작부터 거리를 뒀다.

“최민혁 실장 이야기는 하지 마.”

“…어떻게 알았나?”

“뻔한 거 아냐? 로비스트까지 동원해서 일을 꾸민 곳에서 네가 나올 때는 일이 잘 안 풀려서지.”

“하지만 국익을 위한 일이야!”

“국익 같은 개소리 마!”

“최민혁 실장 일은 일방적으로 견제하고 압력 넣는다고 해결할 수는 없어.”

“…….”

스티븐 키렌 차관보는 굳은 안색을 한 채 스탠리 로버트 이사를 째려봤다. 하지만 그 시선은 오래가지 않았다.

월슨 부부의 소녀 납치 사건은 아직도 미국 언론에서 메인 테마로 다루는 중이었다.

이유는 윌슨 부부 마당에서 죽은 소녀 시체 10여 구가 추가로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즉 최민혁 실장이 아니었다면 이 사건의 희생자는 계속해서 늘어났을 것이다.

결국 도마에 오른 것은 FBI를 비롯한 미국 사법 기관의 무능이었다.

그다음 주제는 이와 비슷한 사건을 막으려는 조치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 대안으로 나온 것은 역시나 KM DVR이었다.

KM DVR를 선택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게 세계 최초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원천기술은 최민혁 실장이 죄다 쥐고 있었다.

결국 미국 연방 기관은 전부 다 이 KM DVR을 사들여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최민혁 실장 사태가 점점 덩치를 키우는 이유였다.

이런 상황에 자칫 최민혁 실장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역풍에 나가떨어질 수도 있다.

그게 곧 클린턴의 재선에도 악영향을 줄 테니.

스티븐 키렌 차관보 자신 정도의 목은 언제라도 댕강 날아갈 일이었다.

비록 시작은 모건 스탠리에서 했지만, 미국 하원에서도 이미 독자적으로 최민혁 실장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었다.

이번 사건은 발을 빼는 게 좋았다.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스티븐 키렌 차관보에게 적당한 협상 조건에 대해서 언급했다.

이번 일과 관련된 미국 하원뿐만 아니라 미국 재무부, 필요하다면 백악관 측의 배후 쪽에도 조율을 부탁한 것이었다.

“…….”

스티븐 키렌 차관보는 명확한 답변을 주지 않고 일단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그가 이 사안에 대하여 긍정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결국 돈 때문이니까.’

이번 일에는 당장 모건 스탠리 자신의 이해관계도 관련이 있다.

최민혁 실장 역시 앞뒤가 콱 막힌 사람은 아니었다.

에플 지분 8%를 매각한 것이 그 증거였다.

‘문제는 협상인데…….’

다만 최민혁 실장이 굳이 오성 전자 측과 만나서 지분 매각 제안을 한 것을 봐서는 순탄하게 풀릴 것 같지가 않았다.

‘일단 최민혁 실장을 만나 봐야겠어.’

* * *

최민혁은 물론 뜬금없이 나타난 스탠리 로버트 이사를 마주하고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는 마이크 라이언 이사가 이 자리에 나타날 것이라 예상했던 것이다.

“…어떻게 된 겁니까?”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어깨를 으쓱했다.

“최민혁 실장을 다들 부담스러워해서 제가 결국 대리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살살 좀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살살이라…….”

그는 피식 웃고 말았다.

“누가 보면 제가 모건 스탠리를 협박하는 줄 알겠습니다. 이미 바트화 문제에 대해서도 양보를 하기로 했습니다. 절보고 어쩌란 말입니까?”

“바트화 문제는 고맙게 생각합니다.”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말을 하면서도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대신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

“오성 전자를 이용해서 시선을 끌었는데, 그게 협박이 아닐까요?”

“아직 오성 전자의 포지션을 확정한 것은 아닙니다.”

오성 전자의 권태성 실장은 최민혁 실장을 누구보다 잘 안다.

순진하게 의사 결정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

사실 그는 이번에 끼고 싶지 않았지만, 최민혁 실장이 내놓은 미끼를 도저히 거부할 수가 없었다.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이미 폴 고슬링을 통해서 오성 전자의 내부 변화를 파악했다.

“미국에 와 있는 권태성 실장 생각은 좀 다른가 봅니다. 그쪽에서는 최민혁 실장님이 한 말을 정말 진지하게 받아들이니까.”

“그건 모건 스탠리도 비슷한 것 같네요. 스탠리 이사님이 직접 나선 것을 봐서는 말이죠.”

“그러면 이야기하기가 편하겠습니다.”

“글쎄요. 당장 미국 재무부 일을 봐서는 저도 쉽게 수긍하기 힘듭니다.”

“그건 제가 중재하겠습니다.”

“그래요? 하지만 윌 스미스 하원의원이 문제라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분은 의외로 애국심과 신념이 강한 분이더군요. 로비하면 오히려 뒤통수를 맞을 것 같아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쪽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스탠리 로버트 이사 역시 ‘윌 스미스’ 하원의원이 어떤 인물인지 잘 알았다. 때문에 내심 욕설을 했다. 하지만 협상으로 처리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윌 스미스 동생이 하버드 대학 조교수로 있습니다. 그녀가 교수로 임명된다면 좋아할 일입니다. 그의 동생 사랑은 지긋하니까요.”

윌 스미스는 부모를 일찍 여의고, 여동생과 어렵게 살았다.

그는 미국 하원의원에 당선되어서도 로비 자체를 받지 않을 정도로 강직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여동생은 이야기가 좀 달랐다. 여동생의 꿈이 하버드 대학교수 임용이었으니까.

최민혁은 예상 밖의 이야기에 깜짝 놀랐다.

“그게 가능합니까?”

“뭐, 저 혼자 힘이라면 어렵지만 제 지인 쪽을 통하면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윌 스미스 여동생이 실적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자격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최민혁은 턱을 쓰다듬으면서 대꾸하지 않았다. 하버드 대학이 세계 최고의 명문 대학이기는 하지만 미국 정치 역학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자꾸 일을 키우는 것 같지만.’

“좋습니다. 미국 하원 쪽은 그렇다고 하고, 재무부 이은 어떻게 할 겁니까? 그 11위원회 문제도 있고요. 저도 좀 알아봤는데, 절 완전히 테러리스트로 취급하더군요.”

“…그건.”

최민혁 실장은 생각보다 이 상황에 만족했다. 그리고 스탠리 로버트 이사도 의외로 솔직했다.

“시간만 더 있다면 중간에 로비할 수 있겠습니까?”

“…그게 쉽지 않습니다.”

“ARN 지분 10%를 더 넘길 생각도 있습니다. 그걸 각자 나눠 가지면 되지 않을까요?”

“그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아뇨. 전 쉽게 생각해요. 이번에 벨린 투자가 만든 740 펀드라고 있어요. 거기에 투자하면, 그 자금으로 ARN 지분을 매입하는 걸로 하죠.”

“…혹시 ARN 지분 매각 가격을 알 수 있을까요?”

“10%에 6억 달러 생각 중입니다.”

4억 달러도 최민혁 실장이 ARN 지분을 매입한 가격을 감안하면 황당한 가격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다시 2억 달러가 뛰었다.

아니, ARN 매출이라도 탄탄하면 그나마 수긍할 제안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ARN 미래 가치만 가지고 지분 매각 가격을 매겼으니.

“…….”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욕설이 나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하지만 그는 최민혁 실장이 꽤 양보했다는 것도 깨달았다.

‘남은 것은 40% 지분인데, 그 정도라면 어느 정도 협상이 될 것도 같아.’

최민혁이 가진 ARN 지분을 다 뺏을 수는 없다.

하지만 40% 정도라면 어느 정도 수긍할 수치였다.

‘어차피 ARN 주가가 폭등하고 나면 다시 지분 매각을 요구할 거고, 그때는 최민혁 실장 역시 거절하지는 않을 거야.’

결국 목표는 대략 30% 지분 정도.

이 수치라면 최민혁 실장이 한 성과를 감안할 때 감수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최민혁 실장은 한마디 했다.

“저 정말 많이 손해를 본 겁니다. 20% 지분을 고작 12억 달러에 매각하는 것이니까. 아, 대신 세금은 그쪽에서 부담해야 합니다.”

“네? 하면 세후 금액이 12억 달러라는 말씀입니까?”

“세금은 그쪽에서 알아서 하셔야죠. 재무부가 끼어 있는데, 적당히 손을 쓸 방법이 많지 않습니까. 제가 그런 것까지는 하지 못해요.”

“…네.”

그는 최민혁 실장의 어이없는 요구에도 반박하지 못했다.

그래도 최소한 ARN 지분이 오성 전자에 넘어가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

최민혁 실장은 물론 스탠리 로버트 이사에게 강요하지는 않았다.

저 일 뒤처리가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뭐, 알아서 하겠지.’

사실 이게 꼭 손해 같아도 그렇지는 않았다. 20% ARN 지분을 매입한 세력이 알아서 ARN이 성장할 길을 열어줄 테니 말이다.

더욱이 스탠리 로버트 이사가 알아서 미국 정치권에도 자신에 대해서 알릴 것이다.

오히려 그쪽이 노림수였다.

‘일종의 정치 후원금인가? 더욱이 이건 미국 FBI 쪽을 신경 안 써도 되잖아. 그쪽에서 알아서 잘 정리를 해줄 테니까. 이보다는 오성 전자가 문제야.’

* * *

미국은 클린턴 대통령의 뉴햄프셔주 예비선거 유세로 뜨거웠다.

안재운 전무라면 오히려 클린턴 행정부 쪽에 로비해야 하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권태성 실장의 강요 때문에 다시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야 했다.

이유는 딱 한 가지.

바로 KM DVR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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