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794화 (791/1,021)

#794.

스티븐은 정말 최민혁 실장을 고맙게 생각했다. 그는 에플로 복귀하기가 무섭게 에플 이사회 의원들을 찾아다니면서 도움을 청했다.

물론 그 대가로 사업적인 이익을 내세웠다. 이번 기회에 최민혁 실장에게 빚을 지워둔다면 앞으로 이익이 더 커질 것이라고 달콤하게 속삭였다.

[좋습니다.]

반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에플 이사회는 굳이 최민혁 실장을 적대하지 않았다. 그들 역시 지금은 최민혁 실장과 같은 에플호를 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에플 주가 폭등으로 재미를 단단히 봤고 말이다.

이들이 움직인 곳은 역시나 모건 스탠리였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한 다리 건너 자신의 지인에게 최민혁 실장에 관한 이야기를 듣자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아, 물론입니다. 그럼요. 제가 독단적으로 결정한 일이 아닙니다. 약간의 사업적인 갈등이 있었을 뿐입니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가 찍소리도 못 한 것은 에플 이사회 배후에 있는 자본 때문이었다.

그가 아무리 모건 스탠리 내에서 힘이 있어도 미국 내의 다른 자본 세력을 건드릴 수는 없었다.

모건 스탠리 내에 투자된 그들의 자본 때문이었다.

[아닙니다. 최민혁 실장을 협박할 리가 있습니까? 스티븐이 한 이야기는 내막을 잘 몰라서 과장된 이야기입니다. 그럼요. 제가 감히 그럴 수가 있습니까?!]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일단 전화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로서는 욕설이 나올 일이었다.

‘최 실장 이 새끼가.’

그는 일단 폴 고슬링을 호출했다.

“최민혁 실장 이 새끼가 무슨 짓을 한 거야?”

폴 고슬링은 다행히 에플 이사회가 움직인 것을 확인했다.

“아무래도 스티븐 쪽에 도움을 청한 것 같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스티븐이 에플로 다시 귀환한 것도, 다시 도약할 기회를 잡은 것도 최민혁 실장 덕분입니다.”

“최민혁 실장이 고작 그 일만을 했다고? 그 친구가 그런 정치적 수작만 부리지는 않았을 텐데.”

그가 의심한 것은 최민혁 실장이 이제까지 말로만 뭔가를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항상 최민혁 실장이 움직일 때는 물리적인 뭔가가 나왔다.

다행히 폴 고슬링은 최민혁 실장과 오성 전자가 만난 사실을 확인했다.

“KMBOOK을 내세워서 MOU를 체결하기는 했지만, 실상은 최민혁 실장과 오성 전자가 손을 잡은 것 같습니다.”

“오성 전자? 설마 오성 가전에 KMBOOK 기술을 적용한 건가? 가만, 그러면 고성능 ARN은 또 뭐지?”

“둘 다 같이 적용됩니다. 기존의 임베디드 CPU로는 KMBOOK의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하기에 한계가 존재합니다.”

그가 내놓은 보고서는 다름 아닌 MIT를 비롯한 미국 유수의 대학에 줬던 용역 결과물이었다. 인공지능, 고성능 ARN, MPEG-2, MP3가 융합될 때 일어날 수 있는 산업 말이다.

그 분야는 생각보다 광범위했다.

그런데 마이크 라이언 이사가 도저히 그냥 넘기지 못할 영역이 있었다.

바로 인터넷과 이들 기술 분야의 융합이었다.

“이건 또 뭐야?”

“최근 일어난 인터넷의 급속한 확산에 한 역할을 한 것이 바로 냅스트입니다. 스티븐은 이 소송을 이용해서 이미 4대 메이저 음반사 중에 두 곳과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냅스트의 확산은 MP3 대중화를 낳았다.

인터넷이 있는 곳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MP3 파일을 공짜로 받을 수가 있었다.

심지어 이제는 MP3 플레이어가 있다면 얼마든지 모바일로 이를 즐길 수가 있었다.

냅스트 소송 여파가 너무 많은 사람에게 퍼지면서 인터넷 혁명이 일어난 것이었다.

정확히는 인터넷 관련 소프트웨어와 접속 서비스 업체가 그 배후다.

다만 겉으로 드러난 냅스터가 가장 주목을 받은 것뿐이었다.

폴 고스링은 마이크 라이언 이사가 폭발할까 염려스러워서 눈치만 봤다.

“카더라 이야기이기는 한데, 냅스트 원저작권자가 최민혁 실장이란 소리가 거의 확실한 것 같습니다. 아 물론 확인된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그놈의 음모론.

그런데 이 내막을 무시하기는 힘들었다.

냅스트 소송이 진행되기가 무섭게 인터넷 혁명이라는 폭탄이 터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래는 딱 여기서 끝나야 했다.

그런데 바로 최민혁 실장이 최근에 내놓은 기술이 불을 붙인 것이었다.

이제 인터넷 콘텐츠가 단순히 컴퓨터 속에서만 머무는 게 아니라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채널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고성능 ARN은 여기서 핵심 역할을 하는 셈이다.

따라서 ARN의 지분 가치는 폭등할 것이 분명했다.

이제는 최민혁 실장 제안을 대충 넘길 수만은 없었다.

“스티븐이라면…….”

폴 고슬링은 고개를 끄덕였다.

“스티븐이라면 당연히 ARN의 가치를 알아봤을 겁니다. ARN 지분 담당자를 다 잘라냈습니다.”

“쯧.”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멍하니 보고서를 살피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그도 최민혁 실장이 ARN 지분 10%를 4억 달러라고 부를 때 내심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ARN 기술의 발전 미래를 보자 그럴 수가 없었다.

“…이걸 DEC에서도 알고 있었던 거야? DEC에 우리 쪽 담당자가 있을 텐데, 설마 그쪽하고는 업무 협조가 안 된 거야?!”

“잠시만요.”

폴 고슬링은 그제야 시계를 힐끗 살폈다. 그는 일단 전화부터 걸었다. 몇 마디 통화를 한 후에 마이크 라이언 이사에게는 아무런 말도 없이 사무실을 나가 버렸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어이가 없는 눈으로 사무실 문을 쳐다보았다.

‘저 새끼가.’

* * *

시간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폴 고슬링이 다시 세 사람을 안으로 데려왔다. 그는 마이크 라이언 이사의 따가운 눈총을 피한 채 슬쩍 뒤로 빠졌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그제야 사무실로 들어온 사람을 알아봤다.

“한스 부사장님?”

그랬다.

다름 아닌 DEC의 리처드 한스 부사장이었다. 동행한 이들은 한스 부사장의 수행 비서였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한스 부사장은 마이크 라이언 이사의 맞은편에 풀썩 앉았다. 그는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크게 당황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내뱉은 한마디.

“…몰랐습니다.”

“…설마 고성능 ARN의 가치에 대해서 몰랐다는 소리를 하려는 겁니까?”

“죄송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인 리처드 한스 부사장이었다. 뭐,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DEC의 상황은 알려진 것보다 더 절박했다.

최민혁 실장 제안이 아니라 다른 이라도 투자를 하겠다면 그들의 요구 조건을 들어줘야 했다.

다만 그가 이 자리에 온 것은 모건 스탠리가 DEC의 대주주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다른 대주주와는 달리 모건 스탠리는 리더 격의 역할을 했다.

그 책임자가 바로 마이크 라이언 이사였다.

“자세히 말 좀 해보세요!”

“제가 어제까지는 유럽 일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DEC 계열사 정리는 이미 이사회에서 결정이 난 일이라서 그 일을 처리한다고 바빴습니다. 이번 매각은 다른 이들이 결정한 겁니다.”

사실 한스 부사장이 DEC 본사에 있었다고 해도 반대하기는 힘들었다.

DEC의 상황은 그만큼 절박했다.

“하.”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그제야 DEC에서 일어난 일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진행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최민혁 실장과 DEC과의 거래는 전광석화처럼 진행된 일이었다.

애초에 DEC 본사에서는 굳이 불확실한 사업부를 계속 끌어안고 갈 수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 최민혁 실장이 불쑥 1억 달러 제안을 하자 덥석 그 제안을 받은 것이다.

정확히는 최민혁 실장이 대리인으로 내세운 이의 솜씨였다.

“솔직히 당사자가 최민혁 실장인 줄 몰랐습니다. 대리인으로 내세운 사람이 DEC에서 거래하는 로펌 직원 중의 한 사람이었으니까요.”

당사자들로부터 몇 단계는 더 걸쳐서 이루어진 거래였다.

최민혁도 미국 재무부 사태 이후에 몸을 사린 결과였다.

폴 고슬링이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원래 이 일의 담당자는 스탠리 로버트 이사였습니다.”

그리고 스탠리 로버트 이사 일을 슬쩍 가로채서 자기 일로 처리한 사람이 마이크 라이언 이사였다.

이건 최민혁 실장 때문이었다.

최민혁 실장은 스탠리 로버트 이사가 아니라 마이크 라이언 이사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꽤 보수적이고, 철저한 인물이라서 틈이 보이지 않아서였다.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감정 대립은 생각보다 심했다.

스탠리 로버트 이사도 중간에 정보를 알려줘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묵인한 셈이다.

“…….”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혀끝까지 치솟아 오른 욕설을 차마 DEC의 한스 부사장 앞에서 할 수는 없었다.

한스 부사장 역시 고성능 ARN를 이제 막 알아서 DEC 이사회를 뒤집어엎었다.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겁니까? 최민혁 실장은 뭐고? 고성능 ARN 기술은 또 뭡니까? 이게 인터넷 산업의 바탕이 된다는 소리는 뭡니까?!”

미친 듯이 쏟아져 나오는 말은 최민혁 실장에 대한 욕이었다.

그런데 이런 말은 변명일 뿐이다.

자신이 책임지기 싫어서 오리발을 내미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이를 묵묵히 듣기만 했다. 그는 한스 부사장이 이번 일은 DEC의 잘못이 아니라는 소리만 하고 난 후에 떠나는 모습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는 그제야 이번 일이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민혁 실장이 깔아둔 포석을 볼 때, ARN 지분은 제2의 에플 대박 주식이 될 확률이 높았다.

‘아니, 최민혁 실장이 그렇게 만들겠지.’

ARN 지분 10% 4억 달러 요구는 무리한 게 아니었다.

다만 자신이 미적거리자 오성 전자를 끌어들인 것이 분명했다.

“…오성 전자에 ARN 지분 10% 매각을 제안한 건가?”

폴 고슬링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당연한 순서 아니겠습니다. 애초에 ARN은 칩이 아니라 IP를 파는 회사입니다. 나쁘지 않은 사업입니다. 기존에 뜨지 못한 것은 ARN CPU 성능 때문이었는데, 고성능 ARN 기술을 확보한 덕분에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결국 오성 가전과의 합작이라는 결과가 나오네.”

“네.”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골치가 아팠다. 최민혁 실장이 한 일을 잘 봐서는 자신을 노린 한 수였다. 특히 미국 재무부에 바람을 넣은 일 말이다.

‘ARN 지분 매각은 그에 대한 보복이고, 헐값에 팔지 않기 위해서 오성 전자를 끌어들였나?’

결국 ARN 지분의 가치는 KM DVR로 스타트를 시작할 것이고, 오성 전자가 그 물량을 이어받을 것이다. 프리미엄 제품은 에플이 맡을 테고 말이다.

“그러면 에플 주가는…….”

공매도는 파멸의 지름길이었다.

“…공매도 물량은 어느 정도 정리한 거야?”

폴 고슬링은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겉으로 드러난 물량이 대략 30% 정도이고, 나머지 70%는 다 정리했습니다. 에플 주식 매입으로 어느 정도 손실을 막았습니다.”

“손실이 대략 얼마야?”

“…10억 달러가 좀 넘습니다.”

“…다행이네.”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샐로먼 쪽은 어때?”

폴 고슬링은 이상야릇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쪽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이럴 때는 모르는 것이 약이지. 다만 나중에 문제의 소지가 없도록 준비를 잘 해둬.”

“차라리 조금 더 손실을 볼 생각입니다. 하지만 우리 쪽에서 손을 뗀 이상 에플 주가 폭등을 막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렇지.”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고민에 들어갔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정말 미웠다. 하지만 지금은 개인감정을 앞세울 때가 아니었다.

다만 그는 솔직히 최민혁 실장을 만나서 협상하고 싶지는 않았다.

‘10% 지분이 4억 달러가 아닐 거야. 그러려고 오성 전자를 끼워서 이간질 작업을 할 테니까. 기술 보안 때문에 몰래 지분 매입을 하던 인간이 ARN 내부 정보를 이곳저곳에 다 뿌린 것도 그걸 위한 작업이었을 거야.’

이쪽에서 일단 미국 재무부 쪽에 한 일이 있으니, 그걸 무마할 대안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미국 하원에서도 최민혁 실장을 ‘잠정 위험인물’로 보기 때문이었다.

이 상황에 최민혁 실장이 자신을 앞에 두고 할 말은 뻔했다.

‘노골적으로 괴롭히겠지.’

폴 고슬링이 눈치 빠르게 입을 열었다.

“스탠리 로버트 이사가 미국 재무부 쪽에 인맥이 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