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779화 (776/1,021)

#779.

구명진 부장은 이 소식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는 권재홍 비서실장에게 보고하면서 이야기를 하다가 우연히 이 정보를 듣게 되었다.

“…섭섭합니다.”

권재홍 비서실장도 평소라면 쓸데없는 의문이라고, 구명진 부장이 쓸데없는 데 신경 쓴다고 타박했겠지만 지금 상황은 그렇지가 못했다.

DVR 사태 이후로 미국 언론에서 연일 최민혁 실장을 우상화하는 사태에 KM 그룹 내의 직원 동요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뭐, 그래서 최문경 부회장이 은밀하게 결과를 말해 준 것이었다.

“아, 미안. 워낙에 중요한 일이라서 자네에게 미처 말 못 했어.”

“그게 다입니까?”

“하, 요즘 자네도 회사 분위기를 잘 알면서 그래? 요즘 부회장님은 평소에도 단단히 열받아 있어. 그러니 조금의 꼬투리도 잡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구명진 부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군요. 샐로먼 브러더스와 모건 스탠리 간에 갈등이 있는데, 우리가 이익을 보다니,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권재홍 비서실장도 쓰게 웃고 말았다.

“이게 모두 에플 공매도 때문이야. 자네도 이야기 들었겠지만, 부회장님이 이번 일에 투자를 제법 했어. 그런데 정작 에플 주가는 50달러를 결코 돌파했어. 그것 때문에 상황이 복잡해.”

“에플 주가가 너무 많이 올라서 문제가 된다는 말씀입니까?”

“그래. 대처하기가 모호했으니까. 다행이라면 에플 주식도 꽤 사들였거든. 그 이익과 손실을 서로 다 합치면 아직은 샐로먼 브러더스도 견딜 만하다는 소리가 있어.”

“그게 또 그렇게 되는군요.”

구명진 부장은 한층 저자세인 권재홍 비서실장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하면 에플 공매도 플랜은 계획대로 진행하는 겁니까?”

“글쎄, 가만, 그런데 자네가 그런 질문을 다 하다니, 좀 이상한데?”

초보 배신자 구명진 부장은 깜짝 놀랐지만 겉으로는 크게 드러내지 않았다.

권재홍 비서실장도 어색한 그 모습에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이봐 구 부장, 자네 왜 그래?”

“아, 아닙니다. 그냥 비서실 내에 도는 이야기가 있어서요.”

“쯧.”

권재홍 비서실장도 혀를 찼다. 최문경 부회장을 둘러싸고 도는 이야기를 모르지 않았다. 온갖 소문만 무성했기 때문이다.

그 자신도 계획대로 진행한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에플 주가 급등세는 예상 밖의 일이었다.

구명진 부장도 바보는 아니었다.

“혹시 최민혁 실장이 만든 DVR 사태 때문입니까?”

“…맞아. 그런데 그게 또 판단하기가 모호한 상황이라서 말이야.”

“아니, 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내가 다시 KM 센서 측에 확인한 바로는 DVR 양산에 문제가 많다고 들었어. 그러면 에플에서 당장 응용하기는 힘들어. 그런 걸 보면 최민혁 실장이 의도적으로 일을 부풀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단 말이야.”

“…그렇군요.”

구명진 부장은 권재홍 비서실장을 통해서 이런저런 정보를 들었다.

그로서는 깜짝 놀랄만한 변화였다.

“…그런데 신기하네요. 우리 그룹에서 샐로먼 브러더스의 내부 정보를 이렇게 알 수 있다니, 특히 모건 스탠리 측과 거래한 내용까지 알다니요.”

“자네가 그런 것까지 알 필요는 없잖아?”

“아, 죄송합니다.”

권재홍 비서실장은 구명진 부장 행동에 의심하지는 않았다. 그는 구명진 부장이 소심한 성격이긴 해도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른 것보다 KM DVR 쪽을 한 번 파봐. 문제가 많아서 우리가 끼어들 여지가 있으니까. 필요하다면 핵심 인력과 자리를 한번 만들어 봐.”

“…알겠습니다.”

구명진 부장은 그제야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그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가는 것을 잘 알았다. 다만 지금까지는 최민혁 실장에게 작업을 걸면서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KM 센서를 더 조사한 것 같았다.

‘이거 최 실장님이 좋아할 정보 같은데…….’

* * *

최민혁은 재무부 만남에 앞서서 재무부 분위기와 미국 정부 상황을 살핀다고 정신이 없었다. 미국 정부가 화가 난 상태라면 일정을 좀 더 미룰 필요가 있었다.

최민혁이 원한 것은 자신에게 유리한 환경을 갖춘 전장이었다.

그건 미국 재무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 역시 최민혁 실장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캐낸다고 FBI, CIA를 다 동원했다.

심지어 IRS까지 말이다.

임광준 국세청 차장은 오히려 이런 IRS의 요청에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이미 최민혁 실장에 대한 정보를 다 넘겼지 않습니까?”

“그보다 더 자세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

임광준 국세청 차장은 황당해서 한동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IRS쪽 인물은 국세 협약 때문에 간혹 만난 적이 있어서 알고 지낸 인물이었다.

그런 이가 뜬금없이 최민혁 실장 때문에 자신을 방문할 줄은 몰랐다.

심지어 유선상이 아니라 직접 찾아온 것은 혹시라도 있을 도청을 염려한 것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IRS 쪽과 나눈 은밀한 이야기를 최민혁 실장에게 흘릴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만큼 IRS는 한국 국세청을 믿지 않았다.

“…설마 절 의심하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다만 기존에 준 보고서를 봤을 때, 다소 논란의 소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게 또 그 말이었다.

하지만 임광준 국세청 차장은 IRS 인사를 의심하지 않았다.

솔직히 한국 국세청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이 그랬으니 말이다.

특히 그런 상황을 주도하는 사람이 다름 아닌 최민혁 실장이 박아놓은 이동빈 조사국장이었다.

임광준 국세청 차장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는 시간이 갈수록 최민혁 실장의 영향력에 굴복해서 최민혁 실장과 무관한 국세청 임직원조차 다들 최민혁의 눈치만 본다는 것도 알았다.

“휴우, 그렇다면 해줄 말이 많습니다.”

그는 역시 국세청 차장답게 최민혁 실장과 관련된 카더라 내용을 꽤 알았다.

이번 DVR 수출 건 역시 마찬가지다.

수출입 과정에서 DVR 관련된 정보도 제법 얻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IRS 임직원이 더 관심을 기울인 것은 최민혁 실장의 과거였다.

“그건 한 치의 과장이 없는 사실입니다. 최민혁 실장은 국세청에 대한 일 처리만큼은 철저했습니다. 아무래도 정치적인 압박을 염려한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이런 상황이었으니.

최민혁 실장 역시 자신에 관한 정보를 소홀히 할 수가 없었다.

그는 DVR 소동을 계속 키우는 와중에도 이런 정보를 그냥 넘기지 않았다.

최문경 부회장의 은밀한 행보와 관련된 정보는 당연히 더 무시할 수가 없었다.

“…이건 놀랍네요.”

조성돈 팀장 역시 구명진 부장이 보내 온 보고서를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샐로먼 브러더스와 모건 스탠리가 서로 타협을 봤다니.”

“장승일 실장님도 몰랐다고 하던가요?”

“아무래도 최문경 부회장이 따로 관리하는 쪽이라서 그쪽 정보를 얻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런가요?”

‘아쉽네. 하여간에 이놈들의 잔머리는 정말 놀랍다니까. 설마 이런 식으로 빠져나갈 줄은 몰랐어.’

최민혁은 이번 에플 공매도 과정에서 샐로먼 브러더스와 모건 스탠리 사이의 원한이 깊어지기를 원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 일은 실패였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특히 중국 시장에 대한 무상 티켓을 얻어 샐로먼 브러더스 측에 넘기면서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봤다.

그건 최민혁 실장이 전혀 예상을 못 한 일이었다.

‘전생 1회 차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하긴 지금은 나비효과라고 말할 단계는 지났지.’

최민혁 자신이 미국에 와서 한 짓을 생각하면 그의 전생 1회 차처럼 모든 일이 흘러간다고 볼 수는 없었다.

애초에 KD 통신이라는 회사는 전생에서 없는 회사였다.

하지만 그는 KD 통신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건 애초에 자신이 만든 함정이니까.

지금은 굳이 손을 쓸 필요가 없다.

구명진 부장은 한 가지를 더 걱정했다.

[권재홍 비서실장이 KM 센서 측에 손을 쓴다고 하는데, 그건 한번 살펴보셔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죠.]

그로서도 간과한 내용이었다.

지금 KM 센서 쪽은 크게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

물론 지금 KM 센서 쪽이 얼마나 정신이 없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쪽은 그가 굳이 관여할 일이 아니라서 간과했다.

엔지니어가 갈려 나가는 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니까.

그런데 이 틈을 노려서 엔지니어 포섭에 나선다면 이들이 회유될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심지어 권재홍 비서실장이 직접 손을 쓴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가 내민 유혹에 넘어갈 수도 있다.

‘KM 센서가 완전히 자리를 잡는다면 상황이 다르겠지만 아직은 아니니까.’

KM 센서에 대한 주변의 관심은 컸지만 내부 임직원들 입장은 좀 다를 수 있다.

당장 지역 경찰에 넘긴 KM DVR부터 꽤 문제가 많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건 확인할 필요가 있어요.”

“…최영란 본부장님에게 전화해서 일정을 잡아보겠습니다.”

“그래요.”

* * *

KM 그룹 본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식당은 오늘따라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바로 KM 센서 DVR 사업 팀인 이기수 부장 팀이 회식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최태훈 차장 역시 말없이 술을 퍼마셨다. 그는 아직도 지금 상황이 잘 믿기지 않았다.

최민혁 실장의 무리한 요구에 일단 호응해서 목표를 달성하기는 했다.

그런데 그 성과를 미국 언론을 통해서 들은 줄은 몰랐다.

미국 언론에서는 연일 KM DVR 개발 에피소드를 다루면서 그들을 언급했다.

덕분에 국내 언론사와 인터뷰까지 했다.

개발자들 처지에서는 잘 믿기지 않는 결과였다.

실제로 DVR 개발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영상 압축을 위한 칩을 제작하는 거였다.

하지만 ARN 엔지니어가 도와준 덕분에 일이 그나마 일이 쉽게 풀렸다.

이 DVR 시장은 또한 기존에 없던 틈새시장이었다.

회사 매출에 압도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면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DVR 시장을 누가 생각이라도 했겠습니까?”

이기수 부장 역시 순순히 수긍했다.

“확실히 시장이 작기는 해. 아무나 시작할 수도 없으니까.”

“가장 큰 문제는 역시 핵심기술이었죠. 이건 최민혁 실장님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우리 힘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렇지.”

회식 자리에 모인 이들은 다들 수긍했다.

이번 일은 정말 최민혁 실장이 없었다면 이루어질 수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그런데 버그가 너무 많지 않습니까? 품질 관리 팀에서 난리입니다!”

“저도 공감입니다. 버그 검토하려니, 암담해서 답이 안 나옵니다.”

“다 비슷하네요. 솔직히 이런 회식은 마음이 불편합니다. 아직 프로젝트는 제대로 시작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술 한잔이 들어가자 다들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토로했다.

지금 상황은 쉽게 해결될 사안이 아니었다.

사실 시제품 DVR은 도저히 제대로 된 제품이라고 보기가 힘들었다.

최태훈 차장이 이 문제를 걸고넘어졌다.

“아무래도 품질 관리 팀의 테스트를 통과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당장 칩 버그가 너무 많습니다. ARN 측에서 적극적으로 나서기는 해도 그들 역시 답을 찾지 못한 문제가 많습니다.”

사실 이건 ARN 내부를 모르면 알 수가 없는 문제였다.

애초에 최민혁 실장은 ARN 경영권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그 덕분에 ARN 내부에서는 최민혁 실장을 지지하는 세력이 많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최민혁 실장이 제공한 아이디어 자체를 무시하지는 않았다.

일단 최민혁 실장의 지시에 따라서 ARN 엔지니어를 파견하기는 했다.

그런데 이 엔지니어는 ARN 내에서도 B급 수준 실력을 갖춘 이들이었다.

이들은 최민혁 실장의 지시대로 움직이기는 했지만, 결과마저 잘 뽑아내는 것은 아니었다.

ARN도 뒤늦게 DVR 사건 이후에 DVR 가치에 대해서 알았다.

그래서 부랴부랴 S급 엔지니어를 포함한 A급 엔지니어를 파견하기는 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터졌다.

기존 ARN 파견 엔지니어가 해놓은 작업이 너무 주먹구구식이었다는 거다.

S급 엔지니어들은 부랴부랴 원점에서 재검토에 들어갔다.

그러면서 최태훈 차장에게 도움을 청했고 말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ARN 엔지니어들의 실력이 드러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