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772화 (769/1,021)

#772.

재무부 서머스 부장관은 안드로이드 같은 얼굴로 보고했다.

“지적재산권 관련해서 추가로 늘어난 안건이 모두 2,311건입니다.”

그리고 2,311개 안건 모두가 최민혁 실장과 직간접적인 관련이 있었다.

“…MPEG-2와 CDMA만 합치면 그렇게 많지는 않을 텐데?”

“그것 외에 MP3, 배터리, 칩 설계를 포함하면, 그 숫자가 나옵니다.”

실제로 관련된 모든 특허를 다 합치면 3만 건이 넘었다.

그중에 가장 핵심 특허만을 추린 것이 모두 2,311건이었다.

이 특허 하나하나가 없다면 아예 그 사업 자체를 할 수가 없다.

즉, 도용했다간 무조건 소송에 걸려서 사업을 접어야 할 수준이었다.

“하.”

로버트 루빈 장관도 보고서 내용을 확인하면서 입을 딱 벌렸다.

사실 최민혁 실장 이야기가 나왔을 때 재무부 내의 실무진 반응이 과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미국 행정부는 의외로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 반감을 꽤 가지고 있었다.

그가 굳이 최민혁 실장을 대놓고 옹호하지 않은 것은 분위기 파악을 위해서다.

자세한 내막을 모른 채 헛소리해 봐야 좋은 이야기를 들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드러난 최민혁 실장의 성과는 도저히 그냥 간과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최민혁 실장이 미팅 요청을 연기해 달라고 했을 때, 순순히 들어준 것은 최민혁 실장에 대한 정확한 정보 파악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추가로 진행된 최민혁 실장에 대한 조사 결과는 사뭇 충격적이다 못해서 두렵기까지 했다.

‘…이 정도였어?’

서머스 부장관은 그런 로버트 루빈 장관의 표정에 개의치 않았다.

“최민혁 실장을 조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자세한 정보까지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이번에 임시 재조사를 진행했고, 이 일은 모두 1년 남짓한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서 이제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재무부 측에서 임시 조사를 해서 지금 알아챘다는 소리다.

아마 원칙적으로 일을 진행했다면 몇 개월이 지난 후에야 알려질 사실이었다.

그만큼 최근 최민혁 실장이 보유한 기업의 행보가 심상치 않았다.

그 원천특허도 모자라서 이번에는 일본 대기업 특허까지 다 먹었으니.

그러니 당연히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최민혁 실장 자신도 그걸 알았지만, 이번 기회를 놓치면 MPEG-2 특허를 먹기 어렵다고 봤다.

실제로 CES에서 출시한 MP3가 나오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팔리는 수량 자체가 천만 대 이상을 가볍게 넘어갈 테니까.

“일본 대기업이 MPEG-2 특허를 가진 것보다 더 문제가 되는 건가?”

“그렇다고 봐야 합니다. 실상 일본 대기업들은 이 MPEG-2 특허를 이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은 좀 다릅니다. 그는 이를 최대한 이용할 줄 압니다. MP3 플레이어가 그 증거입니다.”

사실 MP3 플레이어도 미국 재무부가 조사하기 전까지는 그 가치를 몰랐다.

그런데 이번에 조사하고 나서야 MP3 원천특허를 사들인 한국 기업이 이 기술을 무기로 삼아 일본 공략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KM 전자의 MP3가 기술적으로 앞서기는 했지만, 매출 자체는 그렇게 큰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MP3 특허를 사들인 한국 기업들의 분위기는 아주 달랐다.

일단 물량 스케일 자체가 달랐다.

“사실 냅스트 소송 때문에 상황이 달라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냅스트에 대한 조사도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냅스트 설립자인 숀 페닝을 통해서 흥미로운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가 냅스트를 직접 설계한 것이 아니라 학교 게시판에 올라온 소스를 가지고 변형한 것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문제라도 되나?”

“혹시나 싶어서 그 냅스트를 개발한 프로그래머의 정체에 대해 조사해 봤지만 정체를 알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계속해 보게.”

서머스 부장관은 여전히 감정이 없는 얼굴을 한 채 입을 열었다.

“FBI를 통해서 확인해 본 바로는 IP 쪽이 국내가 아니라 국외라는 것까지는 알아냈습니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그 위치가 어디인지는 특정하지 못했습니다.”

“그건 좀 이상하네. 아니, 굳이 그렇게까지 숨길 일은 아니잖아?”

“네. 하지만 지금 냅스트 사정은 잘 아시지 않습니까? 소송 때문에 유명해졌고, 그 덕분에 사용자가 급증했습니다.”

냅스트 소송 자체는 계속 진행 중이었지만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이들이 급증했다. 이런 사용자들을 일일이 다 규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냅스트를 고안한 프로그래머가 노린 것은 MP3 음원 자체가 인터넷에 빠르게 퍼지는 쪽이었다는 건가? 그걸 통해서 MP3 플레이어 산업이 더욱 빨리 발전되는 걸 노렸다고?”

“네, 그리고 실상 냅스트 소송 과정에서 가장 큰 이익을 본 사람은 다름 아닌 KM 전자의 최민혁 실장입니다.”

“…설마 최민혁 실장이 냅스트 소스를 흘린 장본인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건 모릅니다. 다만 지금까지 재무부 내에서 실무진을 통해 확인한 바로는 최민혁 실장이 어떤 형태로든지 관련이 있다고 결론이 났습니다.”

“운이 좋아서가 아니고?”

“최민혁 실장은 그렇게 본다면 참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그가 한 모든 사업은 다 이런 식으로 잘 풀려 나갔습니다. 그걸 전부 운이라고는 하기 힘듭니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로버트 루빈 장관은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고 말았다.

“아니, 이게 무슨 음모론도 아니고,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건가?”

“굳이 일을 그렇게 번거롭게 한 것은 MP3 음원 저작권 때문일 겁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냅스트 대신에 최민혁 실장이 소송에 휘말렸을 테니까요.”

“설마 냅스트를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건가?”

“…네!”

“…….”

로버트 루빈 장관은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그런데 서머스 부장관의 지적이 마냥 억지라고 생각할 수만은 없었다.

하지만 MP3 관련된 부분은 이미 다 지난 일이었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이게 아니었다.

“에플에서 곧 있을 CES에서 공개할 MP3 역시 문제입니다. 지금 봐서는 최소로 시장에 팔릴 수량만 500~600만 대가 넘을 겁니다. 특허 수수료로 빠져나가는 금액 규모 자체는 작아도 이게 매년 빠져나간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는 외국 기업 규제 보고서의 내용에 따른 의견이지 서머스 부장관 본인의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었다.

재무부 내에서 최민혁 실장을 조사한 실무진들 역시 동일한 결론을 내렸다.

로버트 로빈 장관은 여기에 과장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 그가 그렇다고 주장해 봐야 먹히지 않기 때문이다.

보좌관이 회의실 안으로 끼어든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장관님, 아무래도 이걸 보셔야겠습니다.”

“뭐지?”

“최민혁 실장의 기자회견입니다.”

“최민혁 실장?”

그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굳이 보좌관의 행동을 막지 않았다.

* * *

보좌관이 틀어준 TV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것은 Breaking News였다.

화면 속에서는 최민혁 실장이 열심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 중이었다.

[저는 투자자로서 이제까지 명성을 쌓았습니다. 덕분에 많은 돈도 벌었습니다. 하지만 이 돈은 미국 사회 덕분에 번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제가 번 수익을 미국 사회를 위해서 쓸 생각이었습니다. 이 DVR CCTV는 바로 그런 일환에서 시작한 일입니다. 이곳 지역 경찰에서 검증을 끝낸 후에 미국 경찰, 소방서, 주 정부, 연방 정부 쪽에 공급해서 미국 사회 안정에 이바지할 생각입니다!]

사실 논란의 소지가 다분한 말이었다. 개인 사생활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아홉 명의 소녀를 구한 시점에서 그 말을 꺼낼 이는 거의 없었다.

곧이어서 쏟아진 기자들의 질문은 이런 사업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아홉 명의 소녀를 어떻게 구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만 줄기차게 질문했다.

뒤이어 TV 화면에 나온 것은 막 구출된 아홉 명의 앳된 소녀들이었다.

6살 나이부터 시작해서 많게는 17살까지 연령층이 다양했다.

이를 지켜본 미국 시민들의 반응은 격렬했다. 기자회견장에 모인 수백 명, 아니, 천여 명의 미국 시민들은 최민혁 실장에 대한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그 모습은 마치 미국 주지사 선거를 방불케 하는 광경이었다.

로버트 루빈 장관은 보좌관에게 지시해서 TV 채널을 돌려보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바뀌는 채널 모두 한결같이 최민혁 실장의 기자회견을 담고 있었다.

특히 그들이 관심을 둔 것은 KM CCTV의 원리였다.

기존의 아날로그 CCTV와는 비교하기 힘든 강점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내용 중에 결국 나온 것은 MPEG-2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 과정에서 다루어진 것은 무능한 지역 경찰과 FBI에 대한 호소였다.

그 과정에서 KM DVR에 대한 광고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아날로그 CCTV와 DVR의 차이점에 대한 자세한 설명까지 곁들여서 말이다.

로버트 루빈 장관은 오른손으로 이마를 잡고 말았다. 딱 봐도 이번 일은 하루 이틀 오르내리고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인터뷰하는 최민혁 실장의 눈빛이 유독 반짝이는 것이 그 증거였다.

그는 TV 화면을 통해서 마치 미국 재무부의 꼼수를 알고 있었다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서머스 부장관, 자네 생각은 어때? 저걸 보고도 계획대로 진행할 생각이야?”

“…….”

서머스 부장관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최민혁 실장과의 미팅은 미국 재무장관을 포함한 11인 위원회에서 논의될 예정이었다.

다만 논의 결과에 대해서는 이미 사전 조율을 다 마친 상황이었다.

최민혁 실장을 굳이 재무부로 호출한 것은 결정에 앞서서 그에게 기회를 주기 위함이었다. 지금까지 논의된 바로는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되기 때문에 최민혁 실장에 대해 다양한 제재가 가해질 예정이었다.

물론 최민혁 실장이 스스로 MPEG-2, CDMA 관련 이권을 내려놓는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퀄컴 지분 일부를 매각하는 것도 한 대안이고 말이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이게 전부 미국 안보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최민혁 실장의 행보는 이제 미국 정부에서도 그냥 둘 수 없을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최민혁 실장 본인이 나서서 납치된 소녀를 구할 수 있는 기술을 제공했다. 그 덕분에 미국 시민들의 지지도 얻었고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계획대로 최민혁 실장을 압박하다가는 뒤통수를 제대로 맞을 수 있었다.

미국 정부라고 해도 국민들의 여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로버트 루빈 장관은 왜 이 시기에 최민혁 실장이 저런 쇼를 벌이는지 어림짐작했다.

“괜찮겠나? 분명히 미국 언론을 이용해서 말을 할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하지만 이건 국가 안보와 관련이 있습니다.”

“자네 생각은 그렇지. 재무부 내의 실무진들 역시 다르지 않을 거야. 그런데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하잖아. 잘못하면 우리 재무부를 싫어하는 쪽에서는 돈을 주고서라도 사고 싶은 정보를 그냥 내주는 꼴이 돼.”

“하지만…….”

“아니, 이번 일은 자칫하면 대통령께서도 심각하게 생각할 사안이야. 지금 이대로만 가면, 올 하반기 재선이 확실해. 그런데 그 와중에 재무부가 열심히 일하는 기업인을 상대로 갑질했다고 해봐. 그게 국가 보안 핑계를 댄다고 해결될 것 같아? 최민혁 실장이 작정하고 미국 정부 기관이 갑질한다고 호들갑을 떨면, 재선에도 문제가 되지 않을까?”

로버트 루빈 장관은 서머스 부장관이 알아듣도록 친절하게 설명했다. 그건 그도 서머스 부장관을 무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서머스 부장관을 미는 세력도 있었다. 미국 정부 기관이라고 해서 모두가 한편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했던 것이었다.

아무리 윗선의 지시를 맹종하는 서머스 부장관이라고 해도 이번 일만큼은 계획대로 밀어붙일 수가 없었다.

“…다시 재검토를 해보겠습니다.”

“다른 기관 쪽에도 이야기해서 최악의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하게. 괜한 수작 부려서 스캔들을 만들지 마. 갑자기 최민혁 실장이 저런 일을 벌인 것은 아무래도 우리를 염두에 둔 것 같으니까.”

“…무슨 말씀입니까?”

“저기 기자회견을 봐. 최민혁 실장이 신이 나서 날뛰고 있잖아. 내가 기억하기로 최민혁 실장은 언론에 자기 얼굴을 노출시킨 적이 거의 없어. 근데 그것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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