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768화 (765/1,021)

#768.

장승일 실장은 천연덕스럽게 최문경 부회장에게 대답했다. 지켜보는 기획 조정실 직원들이 다들 경탄할 정도로 여유로운 태도였다.

“그냥 증여받은 것이 아니라 1억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사전에 이미 조율 중인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벨린 투자가 가진 특허와 ARN 기술이 있어야 KM 센서 존립이 가능했다. 그래서 최민혁 실장 지분 이야기는 늘 나왔다.

몇 번의 논의가 있었고, 실제로 끝난 것 같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 가치는 조금씩 바뀌었다.

결국 최민혁 실장의 지분은 조금씩 올라갔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은 KM 센서에 대해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결국 KM 센서를 내버려 둔 것이었다.

그런 상황을 계속 이어가다가 이번에 갑자기 상황이 바뀐 것이었다.

다만 최민혁이나 장승일 실장 역시 당시에는 그 가치를 몰랐다.

최민혁조차 KM 센서 계열사는 망해도 상관이 없는 처지였다.

그러다 이번 디지털 CCTV 이후에 상황이 달라진 것이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최문경 부회장이 목이 찢어지라 외쳤다.

“이 새끼야,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내가 명색이 부회장이잖아. 그런데 어째서 KM 그룹 산하 KM 센서 사업부에 대한 것을 공장장을 통해서 들어야 하는 거야?!!!”

“…….”

장승일 실장은 최근 KM 그룹이 최문경 부회장에게 부정적인 것을 잘 알았다. 그 때문에 요즘은 일이 생겨도 비서실에 정보가 전달되지 않았다.

그런데 공장 쪽은 분위기가 좀 달랐던 같았다.

그들 역시 뜬금없는 사태에 당황했다.

공장 한 부분을 따로 떼 내서 뜬금없이 새로운 아이템 양산에 들어갔으니까.

‘하긴 그쪽에는 부회장 측근이 아직 제법 있으니.’

장승일 실장은 눈알만 도르르 굴렸다.

최문경 부회장은 그 꼴을 보다 못해서 멱살을 잡은 채 좌우로 크게 흔들었다. 장승일 실장 목이 허공에서 앞뒤로 흔들렸다.

하지만 이번 일에도 기획 조정실 직원들은 차마 나서지 않았다.

다들 이번 일이 무리하게 진행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최민혁 실장의 행동도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시제품 수준의 디지털 CCTV로 영업해서 도대체 뭘 얻을 수 있는지 몰랐다.

이거 자체가 다 손실이니까.

결국 장승일 실장이 소리쳤다.

“최 실장님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KM 센서에 암묵적으로 허락한 특허를 허락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그는 슬쩍 이전에 나온 이야기로 둘러댔다. 특히 원천기술과 관련된 복잡한 계약 사안에 대해서 말이다. 이 계약 역시 시즈벨이 써먹는 전매특허 기법이 적용된 것이었다.

“이번에 진행하는 모바일 카메라 CMOS 컨트롤러 특허 저작권자는 벨린 투자입니다. 따라서 벨린 투자에서 막아버리면, 우리는 사업을 접어야 합니다.”

최문경 부회장도 복잡한 특허 계약 관계 때문에 힐끗 옆에서 자신을 말리는 권재홍 비서실장을 쳐다보았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아니, 나한테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야? 민혁이 그놈이 아버지 눈치를 볼 텐데, 그렇게 독단적으로 행동했다고?”

장승일 실장이 버럭 소리쳤다.

“회장님을 만나서 허락을 구한 사실입니다!”

“…정말이야?”

“아니, 직접 연락해 보면 알 사실 아닙니까!”

최문경 부회장 역시 그걸 잘 안다. 다만 최용욱 회장하고는 요즘 거리가 있어서 이전처럼 쉽게 연락하질 못했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망설이다가 최용욱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맞다. 이번 일은 민혁이 녀석의 지분이 워낙 강해서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으면, 민혁이 그 녀석이 따로 계열사를 설립하려고 했다.]

“…하.”

최문경 부회장은 한동안 넋을 잃고 말았다. 갑자기 일어난 일에 도대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최민혁이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결국 장승일 실장 멱살을 내려놓은 채 사무실을 나가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보며 장승일 실장은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최민혁 실장님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네.’

* * *

최문경 부회장은 자기 사무실로 돌아와서 분노를 쉽게 추스르지 못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최민혁을 강하게 압박하는 방법뿐이었다.

이건 DL 그룹 김상구 회장과도 합의를 본 주제였다.

결국 한 일은 KD 통신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리는 것이었다.

KD 통신을 더 빠르게 진행하게 해서 수익을 내는 일이 급하다고 생각해서 손실을 고려하고도 투자를 대폭 더 늘렸다.

이 자금은 샐로먼 브러더스에 있는 다른 자본에서 가져왔다.

권재홍 비서실장은 말렸지만, 최문경 부회장은 아예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최민혁으로서는 쾌재를 부를 일이었다. 그가 의도한 대로 일이 제대로 풀려가서다. 그러니 이제 그다음 순서에 들어가야 했다.

그는 우선 재무부 측에 연락해서 미팅 일정을 5주 후로 연기했다.

다행이라면 재무부 역시 최민혁 실장을 조사할 시간이 부족했던 터라 최민혁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주었다.

‘다행이네. 그래도 걱정이다. CES 전시회도 이제 진짜 얼마 안 남았는데, 시간이 빡빡하네. 그놈의 에플 공매도 때문에 이게 무슨 일인지.’

최민혁은 쾌재를 부르면서도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이번 일의 성격 때문에 공장 밥을 먹으면서 폐인처럼 지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제 겨우 시간을 더 확보했으니, 다음 일로 넘어가야 했다.

그다음 일은 아주 간단했다.

계약 체결을 진행 중에 인수합병한 아날로그 CCTV 장비 회사인 동인 시스템을 동원해서 일을 더 마구잡이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애초에 동인 시스템은 사전에 KM 센서 측과 손발을 맞추던 회사였다.

덕분에 추가로 손이 가는 일은 많지 않았다.

최민혁 역시 당장 그럴듯한 디지털 CCTV를 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로서는 기능만 동작하는 KM CCTV 장비면 충분했다.

다행히 이 일은 어렵지 않게 진행되었다.

문제는 전혀 엉뚱한 곳에 있었다.

최영란 본부장은 이제까지 최민혁을 믿고 있다가 기절할 듯이 놀랐다.

“민혁아, 너 지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제품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시제품을 이렇게 막 만들어서 어쩌자는 거야?!”

제대로 된 기구도 없이 넝마처럼 조립된 KM CCTV 장비는 도저히 팔 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심지어 시제품 일부는 문제가 너무 많아서 제대로 동작도 하지 않았다.

최민혁 역시 그걸 모르지 않았다. 그는 이 짧은 시간 안에 그럴듯한 KM CCTV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상관없어. 결과만 잘 나오면 되니까.”

“결과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이건 미국 내에서 내 이미지를 개선할 용도로 쓸 생각이야. 따라서 돈 주고 팔 생각이 없어. 기부 형식으로 처리할 테니까.”

“너, 미친 거 아냐? 네가 요구한 물량이 무려 1,000대잖아!”

KM CCTV 보안 장비는 일반적인 가전제품과는 달라서 가격이 아주 비싸다. 대략 한 대당 400~500만 원에 팔아도 무리가 없다.

500만 원 기준으로 본다면 무려 50억이었다.

결코 작은 금액은 아니었다.

최민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나에게는 50억은 푼 돈이니까. 누나가 걱정할 필요는 없어.”

“아무리…….”

불만을 토로하려던 최영란 본부장은 입을 쿡 다물고 말았다.

최민혁에게 50억은 진짜 하루 용돈 수준에 불과했다.

뭐, 최민혁이 진짜 그렇게 돈을 쓴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1,000대 물량이야. 추가로 4,000대를 더 제작해서 미국으로 보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다 할 테니까.”

최영란 본부장은 도저히 영문을 알 수가 없어서 질문했다.

“도대체 저걸로 무엇을 하려는 거야?”

“미국 샌프란시스코 경찰에 기부할 생각이야.”

“…샌프란시스코 경찰이라니.”

최영란 본부장은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그런데 이런 반응은 딱히 그녀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었다. 독재자 최민혁 실장이 밀어붙여서 일을 막 하자 KM 센서 실무진들도 역시 경악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최민혁은 씩 웃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모든 일은 잘 풀려갈 테니까. 어차피 누나 역시 내가 왜 이러는지 곧 알게 될 거야.”

“…5,000대면 무려 250억이나 되는데, 정말 괜찮겠어?”

“어, 꼭 필요한 일이야.”

최영란 본부장은 한동안 실실 쪼개는 최민혁 실장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최민혁의 얼굴을 봐서는 정말로 그냥 하는 일이 아니었다.

뭔가 노림수가 있었다.

이제까지 최민혁 실장을 둘러싸고 일어난 많은 일과 비교해 보면 이번 것도 그다지 이상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최민혁 실장은 자신의 역량을 업그레이드하면서 우뚝 섰다.

“…그래, 알겠다. 네가 알아서 한다고 하니, 일단 믿고 기다릴게. 미국에 선적하는 물건은 문제없도록 할게.”

“그래.”

* * *

최민혁은 미국행 비행기 내에서 스티븐에게 전화를 걸어서 도움을 청했다. 정확히는 샌프란시스코 주지사, 지역 경찰에 말이다.

샌프란시스코 주지사에게는 앞으로 벨린 소프트가 3억 달러 규모로 투자를 늘리겠다는 약속을 함과 동시에 지역 경찰에는 CCTV를 후원하겠다고 전했다.

스티븐이 중재한 덕분인지 이야기는 순탄하게 잘 풀렸다.

공짜로 준다는데, 거절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애초에 샌프란시스코 주지사 역시 에플 지분을 꽤 많이 가진 인물이었다.

더욱이 재무부 미팅 건 때문에라도 주지사는 최민혁 실장의 제안을 무시하기 힘들었다.

재무부장과 만난 자리에서 최민혁이 주지사와 관련해서 부정적인 이야기를 꺼내서는 곤란했다.

지역 경찰 또한 당연히 주지사의 부탁을 거절하기는 어려웠다.

더욱이 그 조건이 새로운 CCTV 설치였으니 말이다.

다만 지역 경찰서 내의 자레드 설린 경위로서는 아주 성가신 일이었다.

벨린 CCTV 설치라는 명목으로 진행된 일이 너무 갑자기 벌어진 탓이다.

심지어 이 설비를 설치하는 엔지니어 역시 당황하기는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루빈 센티에고 서장은 입장이 좀 달랐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주지사 보좌관에게서 이번 일에 대한 당부를 받았다.

“정신 좀 차려, 이번 일이 앞으로 우리 지역 경찰 업무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 줄 몰라?!!”

자레드 설린 경위가 반발했다.

“서장님은 현실을 모르기에 하는 말입니다. 도대체 이걸로 누구를 잡는다는 말입니까?!”

버럭 화를 내는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중앙 제어 컴퓨터 마감이 거지 같아서 누르면 삐걱삐걱 소리가 났기 때문이다.

그나마 전선이 연결되어서 실시간으로 카메라 정보가 올라오는 것이 신기했다.

하지만 화질이 장난 아니었다.

기존의 누리끼리한 아날로그 CCTV와는 격이 달랐다.

외형만 좋았다면 혁신적인 제품이라고 난리가 났을 일이었다.

이번 일에 외주를 받아서 작업한 엔지니어 역시 혀를 내둘렀다.

그들은 KM 센서 측의 실무진들에게 도움을 청해서 작업하기는 했지만, 문제가 생각보다 너무 많았다.

“좋은 일을 하고도 욕먹는 경우라니.”

“좀 더 일정을 가지고 차분하게 진행했다면 평판도 달랐을 텐데, 왜 이렇게 무리수를 둔 걸까?”

“높은 분들 생각은 좀 다른가 보지.”

그들 역시 정치적인 일 때문에 뭔가 사연이 있다고만 생각했다.

다만 이게 납품을 받는 일이라면 횡령으로 문제가 되겠지만, 기부를 한 것이다.

그러니 더 왈가왈부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일은 착착 굴러갔다.

다만 여전히 큰 문제는 존재했다.

샌프란시스코 땅덩어리가 너무 넓어서 어디부터 설치해야 하는지부터가 문제였다.

이 일에 나선 사람은 다름 아닌 최민혁 실장 본인이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지도를 보면서 손가락으로 콕콕 찍어서 구체적인 위치를 정했다.

“여기서부터, 여기, 여기, 여기 딱 이 순서대로 합시다.”

“꼭 거기를 해야 합니까? 정작 CCTV가 필요한 곳은 따로 있습니다.”

“안 됩니다. 저희 역시 그냥 막 퍼부으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순서를 지켜주세요. 그러지 않으면 그냥 장비를 철수할 겁니다!”

자레드 설린 경위가 다시 반박했다.

“여긴 샌프란시스코 외곽이라서 사람이 거의 안 지나다닙니다. 심지어 지나가는 차량조차 그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최민혁은 상대를 봐주지 않았다. 그는 냉정하게 자신의 주장을 밝혔다. 또한 무조건 자기 말에 따르라는 엄포를 놓았다.

“그러니까 이런 지역부터 해야죠. 엄밀히 말해서 범죄 사각 지역 아닙니까?!!!”

“…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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