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3.
최용욱 회장의 둘째인 최훈열 전무는 여전히 감방에 있었다.
작년에 사면 이야기가 나왔지만, 그것도 흐지부지된 셈이다.
그러다 올해 다시 사면 이야기가 나왔다. 어느 정도 형량을 살았기 때문이다.
최용욱 회장은 최훈열 전무 면회를 갔다가 이 이야기를 들었다.
최근 김용만 전무를 비롯해 가족 모두를 불러서 이 안건을 협의했던 김상구 회장의 안색이 좋을 리가 없었다.
‘용만이 이 촉새 같은 놈이!’
“그럴 일은 없습니다!!”
최용욱 회장은 통쾌하기만 했다. 과거 차입금 때문에 김상구 회장에게 빌다시피 했다. 하지만 그랬음에도 그는 도움을 받지 못했다.
당시 받은 모멸감은 아직 잊지 않았다.
“쯧, 사돈이 거짓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남자라면 당당해야지요. 제가 에플 투자로 번 돈이 얼마인지나 압니까?”
다행이라면 최용욱 회장이 그 수익금을 정확히 말하지는 않았다.
굳이 이 정보가 한국 30대 대기업 회장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괜히 국세청 귀에 들어가면 난감해질 수도 있었다.
에플 투자를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최민혁 수작에 놀아나서 결국 투자할 기회를 놓친 김상욱 회장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
그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내심 질투심에 미칠 것만 같았다.
다른 어떤 일과도 달랐다.
투자만 했다면 천문학적인 이익을 봤을 테니 말이었다.
실제로 지금 에플 주가는 무려 40달러였다. 결국, 40달러 고지를 돌파한 것이었다.
당시 그가 에플 주식 매입을 고민할 때가 3~4달러 남짓한 가격이었다. 당시 주식을 사들였다면 무려 1,000% 대박이 났을 것이다. 당시 투자하려 했던 금액 규모가 2천억이 넘었으니, 실제로 투자에 성공했다면 무려 2조를 벌었을 것이다.
이론적으로 말이다.
현실적으로는 좀 틀리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금쪽같은 기회를 놓친 것은 순전히 자신의 판단 때문이었다.
김현탁 사장을 비롯한 몇몇 자식들은 차라리 마음을 바꾸어서 결국 투자를 하자고 했다. 최민혁 실장 때문이었다.
‘차라리 그냥 묵인했어야 했어.’
최용욱 회장은 신이 났다. 비록 사돈 사이라고 해도 둘 사이는 이제 원수지간이나 진배없었다.
“우리 김 회장님도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판단력이 떨어지십니다.”
“최 회장, 당신이 그런 말을 할 처지는 아냐!”
“치매가 왔을까 걱정해서 하는 말입니다.”
“닥쳐!!!”
김상욱 회장은 진짜 분노해서 길길이 날뛰었다. 옆에 눈치만 보던 비서가 바로 끼어들어서 주먹다짐을 막아버렸다.
최용욱 회장은 드라마 속에서나 볼 법한 분노한 악당 같은 상대 반응에 피식 웃었다. 그는 주변의 시선을 느꼈다. 달달하기만 했다. 그들 중에는 소위 말하면, 30대 대기업에 속한 인물도 있었다.
다들 에플 주가를 이야기하자 탄식이 터져 나왔다.
에플 주가는 거품이라는 둥.
에플 주가는 곧 폭락할 것이라는 둥.
에플 주식에 사상 최대의 공매도가 걸려 있다는 둥.
카더라 이야기는 많았다.
실제로 에플 주가 40달러는 수급에 의한 거품인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에플 주가 40달러 돌파는 국내에서 꽤 쇼킹한 일이었다.
최용욱 회장은 내심 즐거웠다. 그는 비록 이전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에플 주식을 꽤 사들였으니 말이다. 욕심만 내지 않는다면 그 정도 수익도 나쁘지 않았다.
“김 회장님, 장사 한두 번 하는 사이도 아닌데, 결과가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이번 에플 주식 수익을 보여 드릴까요?”
“됐습니다!”
반박한 김상구 회장은 이 일 때문에 DL 일가를 모아놓고 잔소리를 늘어놓은 기억을 떠올렸다. 그 탓에 김여정은 안 그래도 자기 남편이 감옥에 가 있는 상황에서 복장이 터져서 감방에 있는 최훈열 전무에게 토로한 것이었다.
최용욱 회장이 저렇게 뻗대는 것도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용욱 회장은 작정한 채 김상구 회장을 괴롭히고 또 갈구었다. 그는 최민혁 실장의 부탁을 받아서 하는 일이지만 이 일에 폭 빠졌다.
“그만해!!!”
“워워워.”
최용욱 회장은 격한 김상구 회장의 반응에 두 손을 들고 물러났다.
김상구 회장은 뺀질거리는 최용욱 회장 앞에서 한동안 씩씩거렸다. 말만 하면 심장 박동수가 치솟아 올랐다.
심근경색으로 죽을 것만 같아서 심호흡까지 해야 했다.
그는 결국 도망치듯이 돌아서 버렸다.
최용욱 회장은 두고두고 이 일을 떠올리며 폭발할 김상구 회장이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씩 웃고 말았다.
자잘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었다.
장승일 실장이 슬그머니 최용욱 회장 옆에 다가와서 말했다.
“너무 지나쳤습니다.”
“아, 걱정하지 마. 이건 민혁이 그놈 부탁 때문이 아니니까.”
“하지만 최민혁 실장님이 원한 것은 굳이 일을 극단적으로 만드는 게 아니었습니다.”
최용욱 회장이 피식 웃었다.
“글쎄, 내 생각은 달라. 김 회장 얼굴을 보고서야 난 깨달았어. 민혁이 그놈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말이야. 이 정도로 안 하면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저 인물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거야.”
“…네.”
장승일 실장도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하지만 최용욱 회장의 얼굴에 떠오른 냉정한 표정을 보자 금방 수긍했다. 최용욱 회장은 결코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김상구 회장을 자극하지 않았다.
‘정말일까?’
* * *
최민혁 실장은 장승일 실장의 연락을 받고 나서는 한동안 계속 웃고 말았다. 할아버지 최용욱 회장한테 그런 면이 있는지는 몰랐다.
김상구 회장을 자극하는 일은 꼭 필요한 절차였다.
“최문경 부회장이 김상구 회장에게 정말 영향을 받을까요?”
“네, 영향받습니다. 우리 최문경 부회장님은 혼자라면 언제라도 마음을 바꿉니다만 다른 타인의 도움이 있으면 또 달라요.”
“하지만 샐로먼 브러더스가 있지 않습니까?”
“그 작자들이 어떤 조처를 취할지 몰라요. 모건 스탠리의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믿을 수가 없는 인물이니까. 아마 마음을 바꿀지도 모르죠.”
“그 때문에 DL 그룹 김상구 회장을 자극했다는 말씀이군요.”
“네. 김상구 회장은 애초에 DL 화재와 같은 금융업을 벗어나서 중화학 공업에 관심이 많은 인물입니다. 반도체 사업은 최종 목표죠. 그 욕망을 결코 포기할 인물이 아닙니다.”
사실이었다.
DL 그룹이 꾸준히 그리는 그림은 제조였다.
최훈열 전무를 내세워서 KM 전자를 인수 합병하려 한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지금이야 최민혁도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하지만 인생 1회 차 때는 조금 달랐다.
최훈열 전무를 앞세워서 최민혁 자신을 괴롭혔기 때문이다.
결국 최민혁은 KM 전자를 포기해야 했다. 지분도 헐값에 내놓고 말이다.
그게 DL 그룹이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었다.
‘그 욕망은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있지.’
그 증거는 멀리 갈 것이 없었다.
KD 통신이나 KD LCD가 그 증거이니까.
두 사람 다 최민혁 자신이 깔아놓은 고도의 덫이었다.
실제로 DL 그룹은 이 두 계열사에 막대한 자금을 퍼붓는 중이었다. KD 통신에 퍼붓는 자금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만큼 IP 시티폰을 믿는 것이겠지.’
실제로 CDMA 서비스가 없는 상황에서 IP 시티폰은 그럴듯했다.
최민혁은 일단 자신이 그린 큰 그림 속에 사건이 계획대로 흘러가는 것에 만족했다. 미국 내에서 벌이는 일은 계획한 것과는 좀 달랐지만 말이다.
“미국 재무부 일은 한국 내의 일처럼 무리하게 진행할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국내 일은 좀 달라요. 그쪽 일은 철저하게 확인이 필요합니다. 필요하다면 KM 시큘리티 인원을 추가해서 더 공을 들이세요.”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미국에 와서 최민혁이 중구난방으로 벌이는 일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솔직히 한 가지 일도 제대로 못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중심이 국내 일이라면 상황이 좀 달랐다.
‘하긴 최 실장님의 목표는 언제나 최문경 부회장님과 DL 그룹이었으니. 그런데 이상하네. DL 그룹에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 건가? 아, 설마 최훈열 전무 때문일까?’
벌써 잊고 있는 일이었다.
감방에 가 있는 최훈열 전무는 그다지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최훈열 전무에게 피해를 본 사람은 다름 아닌 최민혁 실장이었다.
그렇다면 DL 그룹을 그냥 손 놓고 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물론 당시에는 힘이 없어서 DL 그룹을 건드릴 깜냥이 되지 않았다.
지금은 어떨까.
이젠 DL 그룹과 일대일로 붙어서 전쟁을 치를 역량은 된다.
“…….”
조성돈 팀장은 그제야 집요한 최민혁 실장의 태도에 혀를 내둘렀다. 얼핏 생각해 보면 별것 아닌 일 같은데, 그게 아니었다.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은 초점은 딱 정해져 있던 셈이었다.
하지만 그는 곧 한 가지를 떠올리고는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다만 그 범위가 너무 넓다는 거야. 아, 샐로먼 브러더스가 있었구나. 생각해 보니, 이게 간단한 일이 아니구나. 최문경 부회장을 어설프게 손을 댔다가는 오히려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었어.’
최민혁은 깊은 번민에 가득한 조성돈 팀장 표정을 보고는 피식 웃고 말았다.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은 DL 그룹에만 집중하세요.”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고는 사무실을 나섰다.
최민혁은 그 모습이 싫지는 않았다. 그 역시 사람인지라 조금 지쳤기 때문이다.
‘마무리는 확실히 해야지. 잘만 하면 이번 기회에 미국 재무부를 이용해서 샐로먼 브러더스를 우선 때려잡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 역시 걱정이 되기는 매한가지였다. 전장이 샐로먼 브러더스 정도 선에서 확장되지 않기만을 원했기 때문이다.
‘잘될 거야.’
* * *
“야, 이게 도대체 뭐야?!!!”
쩌렁쩌렁한 울림.
DL 그룹 사장단 회의에서 나온 외침이었다.
주인공은 다름 아닌 김상구 회장이었다.
다들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썩어도 준치라고 DL 화재 김희찬 부사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회장님, 우리도 이미 KD 통신에 충분한 투자를 진행했습니다. 비록 이동통신 사업은 아니지만, IP 시티폰은 그 대안으로 충분합니다.”
“결과가 없잖아!”
실제로 결과가 없었다.
아니, 한 가지 있기는 있다.
막대한 자금이 소진 중이었다.
DL 그룹 자금이 아무리 넘쳐흘러도 지금은 휘청할 지경이었다. 거기에 일본 단기 자금이 들어와 있는 것도 문제였다.
지금이야 괜찮아도 외부 충격에 DL 그룹이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최용욱 회장의 주장이 틀리지는 않지만, 이동통신 사업에 우리가 끼어들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심지어 최용욱 회장조차 CDMA 사업에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최용욱 회장의 에플 투자가 초대박을 치기는 했지만 딱 그것뿐입니다. 사업적인 부분에서는 별다른 결과가 없었습니다.”
차분한 김희찬 부사장의 어조는 변함이 없었다.
김상구 회장도 그제야 이성을 차렸다. 최용욱 회장 때문에 자존심이 상해서 분노하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화를 낼 일은 아니었다.
그가 타깃으로 삼은 사람은 DL 전자 김용만 전무였다.
“김 전무, 설마 에플 투자 관련 내용을 KM 일가에게 흘렸나?!”
김용만 전무는 움찔 놀라서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그가 이야기를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친동생인 김여정이었다.
지금 감방에 가 있는 최훈열 전무의 처인 김여정이었다.
그녀가 KM 일가 쪽에 정보를 흘렸다고 추론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다만 그로서는 억울한 일이었다. 무슨 특별한 의도로 한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병신 새끼!”
“…….”
김용만 전무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그는 DL 그룹 사장단의 시선에 모멸감마저 느꼈다.
김현탁 사장은 슬쩍 그의 시선을 피했다. 심지어 김상구 회장의 시선도 말이다. 하지만 그는 김상구 회장의 따가운 눈총에 머리를 들었다.
“IP 시티폰 중국 사업 진행은 어때?”
“…특별한 변동은 없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중국이란 나라는 미국과 같은 나라와는 달라서 손이 많이 갑니다. 그래서 저희가 직접 나서기보다는 샐로먼 브러더스 측을 통해서 영업을 확장 중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