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762화 (762/1,021)

#762.

[그게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생각해 둔 바가 있습니다. 그냥 제가 부탁한 대로만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장승일 실장은 굳이 구질구질하게 질문 따위는 하지 않았다. 최민혁 실장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그는 곧 상의를 챙겨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지.”

옆에서 전화를 듣고 있던 구길모 차장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 회장님에게 가실 생각입니까?”

“최 실장님 지시잖아. 그냥 한 말이 아닐 거야.”

“아무리 그래도 앞뒤 맥락이 있습니다. 어떻게 설득하시려고요?”

“걱정하지 마. 최민혁 실장님이 지시한 일이라고만 하면 되니까.”

“하지만…….”

“회장님도 최민혁 실장님 투자 조언을 받아서 에플에 투자했지. 그렇게 해서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렸어. 그런 일을 경험했는데, 대충 넘어가겠어?!”

“…알겠습니다.”

구길모 차장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꾹 다물고 말았다. 그 역시 최용욱 회장의 주식 초대박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게 정말 사실이었어?’

정말 그렇다면 최민혁 실장의 조언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다만 갑자기 일어난 일이 궁금할 따름이었다.

‘도대체 미국에서 무슨 일이 터진 걸까?’

* * *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은 지난달에 일어난 미국 정부 채무불이행 사태에 학을 뗐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은 보이는 것과는 달리 막상 까보니 빚더미에 깔린 국가에 불과했다.

그는 가까스로 채무 상한을 인상한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 임기 중에는 더 문제가 될 것이 없겠지.’

클린턴 정부 딴에는 나름 경제가 중요하다고 우겼다.

실제로 클린턴 임기 내내 계속 이런 기조를 이루었다.

여론도 나쁘지 않았다.

덕분에 클린턴의 재선 역시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다만 이런 문제에 불똥이 튄 사건이 있었다.

다름 아닌 최민혁 실장.

그가 MP3 산업을 이끌어냈을 때까지는 좋았다.

이거 하나 정도면 미국 시민도 쿨하게 받아줄 것이었다.

그런데 CDMA 이야기는 결이 좀 달랐다.

퀄컴 지분 40%를 껍질도 벗기지 않은 상태에서 꿀꺽한 이가 최민혁 실장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큰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CDMA가 정말 상용화가 가능할 정도로 완성도를 올리고, 심지어 GSM보다 강점을 드러낼지는 몰랐다.

이 사업에 기름칠해서 사업 일정을 당긴 사람이 바로 최민혁 실장이었다.

이런 차에 로비스트 제임스 워커의 지적은 큰 문제가 되었다.

모건 스탠리의 주장이라서가 아니다.

마이크 라이언이 뒤에서 수작 부려서도 아니었다.

상무부를 통해서 확인한 결과 때문이었다.

‘MPEG-2 특허가 430건이라니.’

하지만 이 숫자가 중요한 건 아니었다.

미국 정부 내의 전문가를 통해서 확인한 바로는 그 특허의 질이 더 문제였다.

하나하나가 핵심 특허였다. 더욱이 이 특허를 보완하기 위한 특허는 추가로 계속 출원되고 있었다. 지금도 말이다.

MP3, CDMA, MPEG-2에 이르는 특허 하나하나가 다 문제였다.

하지만 미국 정부에 있어 더 심각한 문제는 미국 국방성이 경고한 부분이었다.

[이지수 박사가 한 프로젝트 성과를 덮은 것은 프로젝트 결과가 나빠서가 아니다. 이지수 박사가 한국인 피를 이었기 때문이다.]

이지수 박사는 분명히 미국인이었다.

하지만 미국 국방성에서는 그 점을 믿지 않았다.

물론 이 사안에는 뭔가 끼어든 세력이 있지만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최민혁 실장과 이지수 박사 조합에 손을 써야 했다.

레이 피트슨 IRS 국세청장 생각은 좀 다른 것 같았다.

“이상하군요. 굳이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사찰해도 됩니까?”

“이미 사전에 언급했지만, 국가 보안과 관련된 일입니다.”

“도대체 벨린 투자 오너인 최민혁 실장과 국가 보안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입니까?”

“당신이 지금 그런 말을 할 처지입니까?”

레이 피트슨 IRS 국세청장은 단호했다. 그는 자신의 수염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면서 냉정하게 말했다.

“차후 이번 일은 문제가 될 겁니다.”

“하,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최민혁 실장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당신이 1차로 검토한 결과를 믿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을 너무 믿지 마세요. 절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IRS 내에도 이번 일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의 한 명이라도 제보를 한다면 상황이 심각해질 겁니다!”

그가 이런 말을 한 데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었다.

차후 문제가 되었을 때 내세울 수 있는 보험이 필요했다.

IRS는 이미 최민혁 실장 내사를 시작했다. 결과는 예상과는 달랐다. 최민혁 실장은 놀랍게도 미국 IRS 규정을 철저히 지켰다.

물론 미국 국내에서만 말이다.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서 거래했는데, 단 1센트의 탈세가 없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당신이 지금 미국 정부 상태를 알면, 그러지 못합니다. 저라고 해서 최민혁 실장을 미워해서 이러겠습니까.”

“그렇다고 없는 죄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진짜 답답하군요. 철저하게 조사를 하란 뜻에서 하는 말입니다. 그래야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것 아닙니까. 최민혁 실장에게 미국 정부를 내세워서 강박하면, 말을 들을 것 같습니까?!”

“…무슨 뜻입니까?”

“최민혁 실장은 자신의 둘째 큰아버지 최훈열을 감방에 보내서 매장하게 시킨 냉혈한입니다. 그는 자기 목표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뭔가 좀 엇나간 최민혁 실장 이미지만 그 또한 사실이었다.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은 한숨을 내쉬다가 결국 FBI, CIA 통해서 얻은 정보를 내밀었다. 사실 이 사실이 미국 언론에 알려지면 스캔들로 난리가 날 일이었다.

레이 피트슨 IRS 국세청장 역시 그 의미를 모를 수가 없었다.

“언론이라…….”

“안 그래도 워싱턴 포스트에서 날 세우는 것은 잘 알 것 아닙니까. 지난 채무불이행 사태에서 미국 정부를 매 비난 한 놈들입니다. 하필이면 그쪽에 정보를 흘린 것도 노림수가 있어요. 그런데 그냥 이대로 당하기만 하란 말입니까?!”

“…….”

레이 피트슨 IRS 국세청장은 힐끗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을 쳐다보았다. 자신이 아는 그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이 아니었다.

연초에 미국 정부가 채무불이행으로 멈출 뻔한 일 때문에 그도 꽤 바뀐 것 같았다.

하지만 그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게 우리 국익에 그렇게 큰 도움이 된다는 말입니까?”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은 쓰게 웃었다.

“이게 전초전이니까. 아마 두 번째 만남 때는 CDMA 서비스가 미국에서 진행된 후일 겁니다. 그때는 상황이 또 달라질 겁니다.”

“견제입니까?”

“겸사겸사라고 해둡시다.”

“…알겠습니다.”

레이 피트슨 IRS 국세청장도 이 일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벨린 투자를 비롯한 최민혁 실장 소유 기업에 대한 검토를 다시 해봐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나올 것이 별로 없어. 미국과의 사업에서 난 매출이 그렇게 없으니까.’

있다고 해봐야 대부분 미국 회사다. 에플을 비롯한 나머지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그나마 있다고 하면 KM 전자였다. 그런데 이 회사는 콜린스 협상을 벌이고 월마트와도 아직 힘겨루기를 하는 중이었다.

검토한 자신이 오히려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장사하겠다는 생각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 도대체 최민혁 실장이 뭘 원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하지만 황당한 점은 최민혁의 자산은 실시간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2조 6천억 투자 수익이 그 증거였다.

그리고 이 투자 수익과 관련한 세금은 깔끔하게 미국 IRS에 냈다.

‘하지만 언론사를 이용하는 점을 봐서는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의 말을 무시하기는 힘들어. 한국 CDMA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면, 미국 CDMA 서비스 역시 바로 이어질 테니까’

* * *

최민혁 실장 역시 미국 재무부 사태 이후에 언론 정보를 흘리면서 미국 재무부를 유심히 살폈다. 필요하다면 로비스트를 고용하기도 했다.

“제임스 워커 말로는 미국 재무부가 IRS를 동원했다는 말입니까?”

“네.”

조성돈 팀장 역시 살짝 굳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 최민혁 실장 눈치를 봤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필요하다면 로비스트의 손을 쓰라고 했다.

다행이라면 워싱턴 포스트의 톰 피트가 미국 재무부에 인맥이 제법 있었다.

그중에는 제임스 워커 역시 있었고 말이다.

그 자신이 나서기보다는 톰 피트 기자에게 부탁했는데, 미국 재무부 움직임에 관한 정보를 얻어 온 것이었다.

“골 때리는 나라군요.”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괜찮지 않으면, 안 됩니까? 우리가 언제 탈세를 한 적이 있습니까. 주식 투자를 통해서 이익을 봤을 뿐인데 말이죠. 심지어 파생 상품에는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IRS라면…….”

조성돈 팀장은 역시 걱정이 되는 눈치였다.

최민혁 역시 그 점을 깨달았다.

“정 걱정이 되면, 일단 우리 할아버지를 통해서 계획 중인 일부터 진행하게 하세요. 그다음 계획은 그때 가서 진행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질문할 것이 많았지만, 그 이상 묻지 않았다.

지금은 최용욱 회장 일이 우선이었다.

‘일단 장 실장에게 전화해서 확인을 해봐야겠어.’

* * *

한국 이동통신 사업에 대한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특히 CDMA 통신 서비스가 살아나면서 성공만 한다면 한몫 단단히 쥘 수 있다는 기대심리가 넘쳐났다.

즉 막차에 대한 기업들의 기대심리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TRS 사업 역시 예외는 아니다.

KM 그룹에서 TRS 지오텍을 인수한 HY 전자가 중심이 된 사업자는 TRS 실험국을 개설해서 기술 수준을 과시했다.

그들은 각개 인사를 초대해서 지금까지 자신이 연구한 성과를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어떻게 보면 이 사업 역시 이동통신사업자 선정의 막차일 수도 있었다.

최용욱 회장은 갑작스러운 장승일 실장의 독촉에 혀를 내둘렀다.

평소에는 한 번 보고하고 나면 수동적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뭐가 그리 급한지 계속 자신을 독촉했다.

놀라운 것은 조성돈 팀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서 압박까지 넣었단 점이다.

그로서는 장승일 실장의 말을 거절할 수가 없어서 일단 시키는 대로 했다.

지금의 행사장 참석도 그 일환이었다.

그는 장승일 실장에게 들은 내용대로 자신을 자극하는 DL 그룹 김상구 회장을 보자 혀를 찼다. 장승일 실장 이야기로는 오늘 모임에 그가 참석한다고 했다.

이게 잘하는 짓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민혁이 이놈이 도대체 무슨 수작인지 모르겠어.’

푸념을 하면서도 싫다는 내색은 하지 않았다.

일단 다른 것을 다 떠나서 에플 주식 관련 정보를 준 것에 대한 빚을 털어낼 수 있다.

더욱이 그는 이런 기회를 꼭 얻고 싶었으니까.

치사하기는 하지만 그만큼 김상구 회장에게 쌓인 것이 많다.

아니나 다를까 김상구 회장은 시작부터 최용욱 회장의 성미를 건드렸다.

“사돈이 TRS 사업을 접은 것은 최악의 한 수입니다.”

“글쎄요. 제 생각은 다릅니다.”

“너무 그렇게 속내와는 다른 말을 할 필요가 없어요!”

은근히 비꼬는 김상구 회장.

최용욱 회장은 참지 않았다. 그는 이미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사돈은 에플 투자한다고 난리던데, 새가슴이라서 아직 못 했다면서요?”

김상구 회장은 이를 듣고 표정 관리를 한다고 고생했다. 에플 투자를 하려다가 만 것 때문에 자다가도 일어나는 일이 많았다.

당시 에플 투자만 했다면 최소한 3~4억 달러 이익을 봤을 것이기 때문이다. 많이 본다면 무려 6~7억 달러 수익까지도 불가능하지 않았다.

어젯밤에도 무려 7억 달러 뭉칫돈이 달아나는 악몽을 꿨다.

김상구 회장의 얼굴에 바위와 같은 균열이 쩍쩍 생겨났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제가 근거도 없이 그런 말을 하겠습니까?”

“도대체 어디서 가짜 뉴스를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정말 실망입니다.”

최용욱 회장은 가소로운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훈열이 말은 다르던데, 정말입니까?”

최훈열 전무가 이 사실을 안 것은 김여정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김여정이 김용만 전무가 분노해서 화풀이하던 것을 최훈열 전무에게 그대로 이야기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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