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761화 (761/1,021)

#761.

워렌 버핏은 그제야 진지한 얼굴로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도 최민혁 실장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는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우려한 것은 스티븐이었다.

다른 사람과는 달리 그는 애니에 대한 정보를 따로 얻었기 때문이다.

그 정보의 반만 진실이어도 가볍게 볼 일은 아니었다.

데릭 모건 이사는 워렌 버핏이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 제대로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긴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관심을 두지 않으면 알기 어렵지.’

그는 다행히 KM 그룹, 최문경 부회장을 유심히 지켜봤기에 그와 관련이 있는 최민혁 실장에 대한 상세한 자료를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일본에서 한 일도 말이다.

“…이, 이게 사실인가?!”

워렌 버핏조차 데릭 모건 이사가 내놓은 보고서를 보고는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그 어떤 일에도 감정 변화를 잘 보이지 않는 인물이었으나, 이번에는 꽤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데릭 모건 이사 역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자신의 텃밭인 일본에서 일어나는 일을 상황이 다 끝나고 나서 알았다는 측면에서 자괴감마저 느꼈다.

‘CDMA 관련 일은 더하니까.’

생각해 보면 최민혁 실장에게 신경을 쓴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그러지 못했다.

최민혁을 만난 후에 불과 이틀 사이에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

“미쓰비시의 코다 도시히로 이사를 이용해서 일을 진행했고, 그 중간에 브로커 역할을 한 것은 시즈벨이었습니다. 저로서는 이 일에 최민혁 실장이 엮여 있다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 그러면 정말 이 MPEG-2 특허가 다 최민혁 실장에게 넘어갔다는 소리야?”

“정확히는 벨린 투자입니다. 그런데 제가 재무부 측을 통해서 확인한 바로는 그게 다가 아닙니다. 추가로 MPEG-2 특허를 만들었는데, 그것 역시 무시하기 힘듭니다. 전체 수량은 모두 400건이 채 안 된다고 합니다.”

“으음.”

워렌 버핏은 입을 딱 벌린 채 데릭 모건 이사가 내민 보고서를 살폈다. 모두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었다. 놀랍게도 최민혁 실장이 한국에서 한 행적이 일일이 다 기록되어 있었다.

데릭 모건 이사는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솔직히 저도 최민혁 실장을 얕잡아 본 것 같습니다. 밑의 실무진이 계속 주의하라는 보고를 했는데, 무시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최민혁 실장의 능력이 떨어져서가 아니었다.

샐로먼 브러더스가 동아시아에 투자하는 금액이 워낙에 크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태국 바트화 투자 같은 경우는 그저 한 부분일 뿐이었다.

다만 그렇다고 에플 공매도 투자 손실이 적다는 것은 아니었다.

불법 채권 거래를 해결하기 위해서 죽어라 뛰어다녔던 워렌 버핏으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샐로먼 브러더스 전체 기준으로 본다면 별것 없는 투자인데, 이제는 무시할 수가 없었다.

워렌 버핏은 깍지를 낀 채 물끄러미 보고서를 천천히 살폈다. 그는 그제야 굳어 있는 데릭 모건 이사 얼굴을 살폈다.

“자네 생각은 어때?”

“지금 당장은 재무부 쪽에 한번 접촉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쪽에서 우리를 좋게 보지 않아. 아직 해묵은 앙금이 남아 있으니까.”

“하, 그놈의 불법 채권 거래를 가지고 아직도 시비를 거는 겁니까?!”

워렌 버핏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로서는 불법 채권 거래를 기회 삼아서 지금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런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희생양을 찾는 것 같아. 다른 투자 은행과는 달리 우리 샐로먼 브러더스는 문제가 많잖아.”

“지금은 아닙니다!”

“그렇지. 그래도 한번 정해진 이미지는 바꾸기 어렵잖아.”

워렌 버핏 역시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일은 어쩌면 그에게 또 다른 기회일 수도 있었다.

그는 물론 데릭 모건 이사가 말없이 내놓은 CDMA 관련 안건을 살폈다. 그저 감탄이 나올 만한 일이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들은 것과는 상황이 달랐다.

“불과 이틀 사이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네. 최민혁 실장과 만나서 이야기할 때는 이런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워렌 버핏은 CDMA 관해서 몇 가지 더 질문하고서야 혀를 내둘렀다.

“…지금 봐서는 재무부가 CDMA와 MPEG-2에 관심을 둘 수 있어. 어쩌면 벨린 투자 지분을 내놓으라고 할 수도 있고. 그러니 한번 잘 확인해 봐.”

“자금 규모는 어느 정도로 할까요?”

“가능한 한 많이!”

“…알겠습니다.”

데릭 모건 이사는 그제야 걱정을 떨쳐 버렸다. 워렌 버핏 역시 최민혁 실장이 가진 자산 가치를 제대로 알아봤기 때문이다.

‘하긴 MP3 특허 로열티 성장 속도를 본다면, MPEG-2 가치를 모를 수가 없지.’

* * *

‘기대한 것보다 잘되기는 했는데…….’

갑자기 찾아온 데릭 모건 이사의 시선을 끌었다는 것은 썩 좋은 신호만은 아니었다.

그가 원한 것은 최문경 부회장이었으니까.

‘이 일은 좀 더 지켜봐야겠어.’

최민혁은 데릭 모건 때문에 안테나를 국내 쪽으로 좀 돌렸다.

그가 예상한 것보다 더 격한 반응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그 역시 보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보를 한국 언론사에 흘리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최문경 부회장의 반응이 궁금했다.

어차피 최문경 부회장 역시 정보를 얻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염려한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긴 손실이 너무 클 테니까.’

도박 좀 해본 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조금만, 조금만, 조금만 더를 반복하다가 결국 재산을 다 탕진하는 거 말이다.

최문경 부회장 역시 도박 중독자의 몰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때를 기다리는 것처럼 최문경 부회장은 아무런 행보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미련을 못 버렸군.’

최민혁은 결국 고민을 한 끝에 이 일에 한 걸음 나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CDMA 정보가 한국 대기업 귀에 들어갔다면, 일을 좀 더 키울 필요는 있어.’

일테면 KD 통신이 좋은 경우였다.

샐로먼 브러더스가 이 사업에 투자한 이상 미국 헤지 펀드나 투자 은행 역시 관심을 기울였을 것이다. 결국, 재무부 역시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 일을 좀 더 자극한다면 미국 재무부는 골치가 아플 것이다.

최민혁으로서는 협상 카드 하나를 더 만들 수가 있었다.

‘좀 아쉽네. 시간만 넉넉했다면 아주 제대로 덫을 만들 수 있을 텐데…….’

“KD 통신 분위기는 어때요?”

조성돈 팀장은 다행히 KD 통신 관련해서 이미 기획 팀에서 정리한 기획서를 보여주었다.

“IP 시티폰에 대한 기대가 생각보다는 좋습니다. 한국 현실에 맞다는 이야기가 파다합니다. 아무래도 CDMA 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꿈의 이동통신에 대한 기대는 생각보다 한국에서 뜨거웠다.

무선 통신 기술이 가지는 부가가치는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이동통신이 황금알을 낳는 사업이라는 것은 대기업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었다.

때문에 그 경쟁 열기는 실로 뜨거웠다.

‘KM 그룹이 굳이 이동통신 서비스 사업에 끼어들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이니까.’

경쟁사가 오성 전자를 비롯해 한국 30대 대기업은 다 있었다.

작년 KM 그룹 매출로는 이들과는 도저히 경쟁하기가 힘들었다.

IP 시티폰은 어떻게 보면 대안책이었다. DL 그룹, 샐로먼 브러더스를 비롯한 이익집단을 끌어들인 것이 경쟁이 가능한 이유였다.

지금은 중국에서 열심히 영업 중이었고, 실제로 결과또한 좋았다.

샐로먼 브러더스가 영업에 한 손을 거들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 모건 스탠리 쪽도 투자했다고 했죠?”

“네. 대략 4억 달러까지 투자 규모를 늘렸습니다.”

“좀 적네요.”

“결코 적은 액수는 아닙니다.”

최민혁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는 마이크 라이언 이사 얼굴을 떠올렸다. 제대로 함정을 판다면 엿을 먹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조성돈 팀장은 조금 걱정되는 얼굴이었다.

“정말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에서 최종 테스트를 다 마친 상황입니다. 기업, 경찰을 비롯한 사업장에서 요청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중국 쪽에서는 자신이 먼저 하고 싶다는 제안을 보냈다고 합니다.”

중국만이 아니었다.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 쪽에서도 이 IP 시티폰에 꽤 흥미를 드러냈다.

CDMA 덕분에 꿈의 통신망에 대한 기대치를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이동통신 사업에 투자를 못 한 기업이 대안을 찾는 것은 당연했다.

그 답이 바로 KD 통신이었다.

최민혁으로서는 썩 바람직한 결과는 아니었다.

‘뭐 투자는 자신이 책임져야지. 내가 딱히 무슨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잖아.’

이른바 오리발 전략.

조성돈 팀장은 IP 시티폰 열기를 보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저기 실장님, 지금이라도…….”

최민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 팀장님, 다시 말하지만 IP시티폰은 무조건 망합니다. 그러니 너무 그런 식으로 욕심을 낼 필요는 없습니다.”

“…네.”

“이보다는 할아버지에게 연락해서 이동통신 서비스 쪽에 관심을 두라고 해두세요. 이왕이면 KD 통신 쪽과 관련이 있는 모임에 참석해서 분위기를 좀 띄우도록 해보라고 하세요. 이왕이면 DL 그룹을 타깃으로 해서 말이죠. 그러면 KD 통신이 지금 하는 일에 더 필사적으로 매달릴 겁니다.”

최민혁 실장의 말은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최용욱 회장이 그렇게 할지가 관건이었다.

“네? 회장님에게 말입니까?”

“아, 할아버지에게 얘기하는 게 부담되면, 장승일 실장에게 말해도 됩니다. 장 실장이라면 알아서 우리 회장님에게 알아듣도록 말을 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최민혁이 한 말뜻을 잘 알아들었다. 그는 문득 KD 통신의 대주주에 해당하는 인물을 하나둘씩 떠올렸다.

‘정말 IP 시티폰이 망할까. 그러면 결국 KD 통신은 큰 타격을 받는다는 말인데…….’

솔직히 그로서는 도저히 최민혁이 그리는 미래를 예측하기 힘들었다.

* * *

장승일 실장 역시 최근 뜨거운 이동통신 서비스 분위기 때문에 여러 가지 사안을 검토했다. 필요하다면 후발 주자로 이동통신 사업에 끼어들 생각이었다.

이전과는 달리 KM 그룹 역시 계열사를 매각해서 자금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쟁이 너무 과열되었다.

정부에서도 더 이상의 이동통신 서비스 경쟁 과열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대안으로 여러 이동통신 서비스를 조사했다.

그중에는 TRS도 있었다.

TRS지오텍을 결국 HY 전자에게 넘기기는 했지만, 미련은 남아 있었다.

구길모 차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남산 타워 TRS 실험국 테스트가 무사히 끝났다고 합니다. 특히 실험국 개설 덕분에 이 분야 기술이 앞서 있다는 것도 피력했습니다.”

“하지만 상업적인 면이 확인된 것은 아니잖아.”

“글쎄요. 그건 시간이 해결하지 않을까요?”

“그거 역시 추정이잖아. 실제는 아무도 몰라. 지금 CDMA 서비스 관련 업체 반응을 보면서도 그런 소리가 나와?”

구길모 차장 역시 CDMA 관련 업체가 미친 듯이 일만 한다는 것을 익히 들었다.

그렇게 보면 TRS 기술 역시 변수가 많았다.

TRS 기술력이 앞선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 분야 역시 이동통신 서비스 열기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장승일 실장도 TRS 사업의 미래를 도저히 예측할 수가 없었다.

‘정말 최민혁 실장님의 의견이 맞을까?’

구길모 차장 생각은 좀 달랐다.

“최 실장님도 틀릴 수가 있지 않을까요?”

장승일 실장은 피식 웃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난 초호화 펜트하우스 매입도 그냥 한 일이 아닌 것 같아. 지금 봐서는 미국 부동산 폭등을 예상한 것이니까.”

“실제로 오르기는 했습니다만…….”

구길모 차장도 혀를 찼다. 최민혁 실장이 펜트하우스를 사들인 이후에 그 가격이 무려 30% 이상씩 폭등했기 때문이다.

이게 단순한 수급 때문인지는 확실치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최민혁 실장이 한 일이 결코 실패로 끝날 것 같지는 않았다.

장승일 실장은 때마침 미국에서 걸려온 조성돈 팀장 전화를 받았다. 그는 이메일로 같이 온 보고서도 역시 말이다.

내용을 확인하고는 어이가 없었다.

왜 최용욱 회장에게 이런 사실을 알려야 하는지 말이다.

아니, 최용욱 회장이 자기 뜻을 따를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중간에 끼어든 최민혁의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모든 것은 제가 다 책임집니다. 어차피 DL 그룹을 약 올리는 일입니다. 할아버지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