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759화 (759/1,021)

#759.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최민혁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CDMA 기술 말인가요? 제가 알 턱이 없죠. 우리 특허 팀이 알아서 다 하는 것이니까.”

“MP3 원천특허 역시 우리 특허 팀장님의 안목에 따른 겁니다. 저야 당시 유럽 구경이나 즐겼으니까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는 다 가짜 뉴스입니다.”

“MPEG-2라뇨? 전혀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입니다. 아마 이지수 박사님의 팀이 하는 일 같은데, 저는 잘 모릅니다.”

최민혁 실장 대답은 ‘모른다’, ‘관련이 없다’, ‘밑의 유능한 인재가 알아서 다 한다’, ‘미안하지만 샐로먼 브러더스와 거래하기 싫다’와 같은 대답의 반복이었다.

“…알겠습니다.”

데릭 모건 이사는 자신이 시간 낭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그래도 몇 가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이를 테면 유들유들한 최민혁 실장의 태도 말이다.

자기 자랑은 아니지만, 월가에서도 자신의 명성은 제법 있다.

우영민 부장이 열성 팬처럼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은 이웃집 아저씨처럼 자신을 대우했다.

‘이거, 날 제대로 알고 있어. 아무리 봐도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알아봐야겠어. 설마 워렌 회장님이 이런 사실을 몰랐던 것일까?’

우영민 부장은 데릭 모건 이사가 떠나자 최민혁 눈치를 봤다.

“솔직히 샐로먼 브러더스와 손을 잡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한다면 샐로먼 브러더스 내에서 최 부회장님을 압박할 수 있지 않습니까?”

최민혁은 샐로먼 브러더스가 몇 년 안에 망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심지어 후일 시티그룹에 넘어간다는 것도 말이다.

“샐로먼의 경영 상황이 최근 좀 좋아지기는 했지만, 상황이 그렇게 계속 좋아지지 만은 않을 겁니다.”

“네?”

최민혁은 피식 웃으면서 한 가지 사실을 더 말해주었다.

“샐로먼 브러더스의 총자산이 927억 달러가 넘고, 전 세계에 걸쳐서 13개의 해외 지점이 있으며, 12개 현지 법인까지 가지고 있어요. 막강한 글로벌 투자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죠.”

“하면…….”

“문제는 이들이 주식, 채권만이 아니라 파생 상품 거래에 특히 관심을 많이 둔다는 점입니다. 선물 옵션 거래에도 강점이 있어서인지 리스크를 안은 투자를 많이 해요. 이게 잘되면 괜찮은데, 만약 크게 실패하면 쫄딱 망합니다.”

그로서는 황당한 일이었다. 샐로먼 브러더스가 망한다니.

“하지만 지금까지 성과는 나쁘지 않습니다. 기관 상대로 큰 규모의 투자를 한 터라 투자가들 사이에서도 영향력이 큽니다.”

최민혁은 매사 부정적인 사람처럼 툴툴거렸다.

“과연 그럴까요? 지금 에플 공매도에 무리하는 것을 보세요. 타이거 펀드만 해도 아니나 싶으니, 손절매하고 정리했잖습니까. 이런 모습과는 차이가 크죠. 아마 우리 최 부회장님이 아직 손을 떼지 못한 데는 샐로먼 브러더스의 이런 투자 성향과 관련이 있어요.”

“하면 앞으로 샐로먼 브러더스가 어려워진다는 말씀입니까?”

“전 그렇게 봅니다!”

실로 단호한 최민혁 태도.

“…네.”

우영민 부장은 최민혁의 지적에 입을 쿡 다물고 말았다. 반박하고 싶어도 실제로 샐로먼 브러더스는 불난 집에 기름통을 든 채로 뛰어들 준비를 하는 중이다.

다른 소방관들은 아니다 싶어서 슬쩍 발을 빼는 중에도 말이다.

더욱이 이제까지 최민혁 실장의 지적은 틀린 적이 없었다.

거의 예언자 수준이었으니.

최민혁은 씩 웃었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지금은 우리 계획대로 되면 좋지만 안 되어도 또 다른 대안은 있으니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죠. 오히려 샐로먼 브러더스와 우리 부회장님 동선을 잘 살펴보세요.”

“…알겠습니다.”

우영민 부장은 신중한 최민혁의 판단에 혀를 내둘렀다. 가끔은 최민혁 실장의 나이를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 때가 많았다.

지금도 말이다.

‘정말 대학교 1학년 맞는 걸까?’

최민혁은 두 사람의 태도에 잠깐 고민했다. 그리고 생각해 봤다. 데릭 모건 이사가 자신을 찾아온 것은 예상을 벗어난 일이다.

지금부터라도 샐로먼 브러더스가 적극적으로 움직일 확률이 높았다.

‘재무부 내의 자기 인맥을 동원할 수도 있어.’

상황이 최악이 된다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는 알 수가 없다.

최민혁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는 두 사람을 손짓으로 잡았다. 두 사람은 최민혁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했다. 최민혁으로서는 오히려 이런 두 사람이 믿음직했다.

두 사람이 귀찮을 정도로 지적하지 않았다면, 최악의 상황을 그냥 넘겼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보험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인데…….’

최민혁은 굳이 뒤통수를 맞고 싶지 않았다. 그날 가서 상대의 압력에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결국,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그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계획을 진행하면 되는 일이다.

“이렇게 하죠. 미국 재무부가 신경을 쓸 정도라면 확실한 결과를 보여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니 사전에 확인 작업 정도는 해 줄 필요가 있어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아주 간단해요. 아직 CDMA 서비스가 실제로 상용 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아니니까. 그에 대한 것을 점검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아, 관련자를 다 부를 필요는 없습니다.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이들을 호출해 보세요. ETRI 측에 요청하면 말해줄 겁니다.”

“CDMA 개발 업체 말입니까?”

그는 물론 자신이 그 업체를 직접 찾아갈 생각이 없었다.

그럴 이유가 없었다.

“네. 시간이 많지 않으니, 서둘러야 할 겁니다. 당장 미국으로 호출해야 하니까.”

“…네.”

조성돈 팀장은 이쪽의 제안을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서 주춤하기는 했지만 일단 최민혁 실장의 지시를 반박하지 않았다.

* * *

조성돈 팀장은 CDMA 관련 사업체 명단을 하나씩 확인했다.

여기에는 ETRI를 비롯한 LC 전자, 오성 전자, HY 전자를 비롯한 한국 대기업이 다 관련되어 있었다. 특히 LC 전자는 국산전자교환기를 개발했다.

LC 전자는 생각보다는 이동 통신 사업에 투자를 많이 했다.

이 기획을 주도한 LC 전자 기획실의 한병수 실장은 김현탁 사장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KD-LCD 문제에 신경을 많이 썼다.

그는 애초에 최민혁 실장 전담 팀을 만들어서 그의 행적을 추적했다.

그로서는 최근 최민혁의 초호화 펜트하우스 취미 활동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최민혁 실장 측에서 연락이 온 것이었다.

“미국으로 오라고?”

“네. 그렇게 연락받았습니다. 제가 다시 재확인을 해봤는데, 싫으면 오성 전자 측을 부르겠다고 반박했습니다.”

“…오성 전자라.”

한병수 실장은 ‘오성 전자’ 이야기만으로도 짜증스러웠다.

안 그래도 KD-LCD 문제로 오성 전자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특히 KMP-02A, B에 들어가는 LCD 관련 부품으로 말이다.

에플 역시 최민혁 실장의 지시를 받아서인지 LC 전자와 오성 전자 두 곳에서 부품을 받았다. 아이컴 조립 역시 마찬가지다.

어느 한쪽이 헛짓하면 다른 한쪽에 밀어줄 생각이었다.

덕분에 재미를 자주 보지 못했다.

물론 이 일의 배후에는 최민혁 실장이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임명진 부장이 최민혁 실장의 일방적인 지시를 반박하지 못한 것이었다.

‘사람 환장하게 하네.’

임명진 부장은 한병수 실장의 눈치를 봤다. 최민혁 실장 요구는 불과 몇 개월 전이라면 말도 안 되는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고작 KM 전자 기획 실장이 LC 전자 기획실장 한병수를 오라 가라 하다니.

그것도 서울 내가 아니었다.

무려 미국이었다.

하지만 한병수 실장은 겉으로는 자기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이보다 최민혁 실장의 갑작스러운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늘 저녁 항공편으로 바로 오라니, 그렇게 급한 일이 있습니까?”

“만날 시간이 없어서 어쩔 수가 없다고 합니다. CDMA 관련 사업과 관련해서 할 이야기가 제법 있다고 합니다. 필요하다면 연구 팀도 동행하라고 했습니다.”

“CDMA라…….”

한병수 실장은 최민혁 실장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화내지 않았다.

CDMA 자체가 아날로그 전화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 사업이 새로운 미래가 될 것이라 LC 전자, 아니, 자신이 판단했다.

그는 이번 일에 최선을 다했다.

성공만 한다면 후계 경쟁에 끼어들 수 있었다.

그 덕분에 CDMA가 독특한 암호 시스템이 가능해서 효율이 높다는 것도 잘 안다.

‘기술 방식 자체가 기존 아날로그 시스템보다는 훨씬 앞서니까.’

다만 아직 제대로 된 상용 기술이 없다는 점이 걸렸다.

초창기에도 이동 전화와 관련된 부분은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 논란을 해결한 이가 다름 아닌 최민혁 실장이었다.

“…그런데 이미 시스템 운용 전문가가 한 이야기가 있잖아. 원래 올해 안으로는 상용화가 불가능하다고 했었지?”

“맞습니다. 다만 최민혁 실장이 끼어든 덕분에 상황이 좀 달라졌습니다. 최민혁 실장이 이 부분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지. 맞아. 가만, 그러면 최민혁 실장이 보자고 한 것은 그것 때문이야?”

“네. 이왕이면 CDMA 관련 태스크포스 팀과 같이 오라고 했습니다. 시스템과 단말기 관련해서도 협의할 내용이 있다고 하더군요.”

“…거절하기 곤란하겠지?”

“후일 생기는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고 협박했습니다.”

“하.”

임명진 부장은 한병수 실장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갑작스러운 최민혁 실장의 제안에도 이를 거절할 수는 없었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최민혁 실장을 만나서 CDMA 상용화와 관련된 정보를 얻는 것이 훨씬 나았기 때문이었다.

“휴우, 그러면 어쩔 수 없지.”

한병수 실장 역시 최근 최민혁 실장을 둘러싼 이런저런 정보를 들었다. 하지만 굳이 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지금은 CDMA에 집중할 때야. 필요하다면 어린아이 손발이라도 빌려야 해. 그런데 최민혁 실장이 도와준다는데, 싫어할 수는 없지.’

그렇다고 기분이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자신은 LC 전자 기획실장이다.

LC 그룹 내에서도 자신을 함부로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자신을 최민혁 실장은 마치 동네 꼬마처럼 취급한 것이었다.

* * *

LCD 전자 중앙 연구소의 차세대 이동 통신 연구 팀 김인환 수석 부장은 갑자기 기획실에서 걸려온 전화에 황당하기만 했다.

당장 짐을 챙겨서 오늘 저녁에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야 하니, 준비하라니.

그는 연구실 실장에게 항의를 해봤지만, 욕만 잔뜩 듣고 말았다.

부랴부랴 명단에 오른 인물에게 전화해서 일일이 챙겼다. 그들을 다 집에 보내서 당장 미국 출국 준비부터 서둘러야 했다.

때문에 인천공항에 도착해서도 짜증스럽기만 했다.

그는 한병수 실장에게는 짬이 딸려서 항의를 못 했지만 임명진 부장에게는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임 부장님, 이거 정말 너무한 것 아닙니까. 우리 팀이 얼마나 바쁜 줄 알면서도 이런 황당한 지시를 내린 겁니까?”

“최민혁 실장이 직접 요청한 일입니다.”

“네? 거기에 최민혁 실장이 왜 나옵니까?”

임명진 부장은 불과 오늘 받은 최민혁 실장의 요구 사안을 말해주었다.

“일전에 지적한 통화 블로킹 현상 말입니다. 그것도 최민혁 실장이 도움을 줘서 어느 정도 해결은 했지만 실제로 서비스가 진행되면 어떻게 될지 확신하지 못한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사용자가 한자리에 있는 것도 아니고, 계속 이동을 하니까요. 실제 서비스에서는 문제가 될 겁니다.”

통화 블로킹 현상은 사용자 통화가 원인인데, 숫자가 많아질수록 통화 잡음이 커진다. 최민혁 실장이 제안한 방식 덕분에 일부 해결하기는 했지만 완전한 모범 답안은 아니었다.

해당 기지국 전력은 일정한데, 사용자 숫자는 셀마다 다 달랐다.

부하 운영 차이 역시 문제다. 이런 국소적인 문제까지 다 해결한 것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해결하기는 했지만, 사용자 숫자 일정 한계를 넘어서면 문제가 다시 나타난다.

실제로 시뮬레이션 과정에서는 이게 문제였고, 제한된 환경 아래에서는 계속 문제가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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