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758화 (758/1,021)

#758.

“네. 한국 투자자 중에는 더 없습니다. 다른 자잘한 금액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

자잘하다고 해도 투자 금액이 전부 천만 달러에서부터 이억 달러를 훌쩍 넘는 금액이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역시나 미국 국채 입찰 과정에서 고객 이름을 무단 차용한 샐로먼 브러더스 임직원다운 말이었다. 실제로 그 일에 관련된 이들 중에 한 사람이 제임스 러너 이사였으니까.

데릭 모건 이사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제임스 러너 이사를 쳐다보았다.

“정말이야?”

“네, 사실입니다!”

당당한 제임스 러너 이사는 눈을 부릅떴다.

데릭 모건 이사도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이번 일은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지금 당장 난 손실만 해도 30억 달러는 넘었다.

문제는 이 손실이 여기서 끝이 아니란 점이다.

에플 주가도 주가지만 문제는 다른 투자자다.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이 손을 뗐다고?”

“…태국 바트화 손실이 커서 어쩔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태국 바트화 손실이 얼마나 된다고?!”

“그게, 태국 정부의 반응이 좀 이상했습니다. 그들이 마치 태국 바트화 사정을 아는 것처럼 대응했기 때문에 손실이 더 커졌습니다.”

정확히는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이 태국 정부에 정보를 슬쩍 흘린 결과였다. 아무리 헤지펀드 군단이 능력이 좋아도 움직임을 뻔히 아는 이상, 이기지 못할 리가 없었다.

두 사람도 설마 줄리엇 로버트슨이 의도적으로 정보를 흘려서 손해를 봤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거 정말이야? 그 영감이 그냥 일방적으로 손해만 봤다고?”

“그게 좀 이상한 일이기는 하지만 에플 주식을 더 사들였다고 합니다.”

“아니, 왜?!”

데릭 모건으로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시아 내에 샐로먼 브러더스가 투자한 증권 회사를 책임진 이다.

때문에 미국 본사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자세한 것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나마 이 일의 배후로 지목된 최민혁 실장이 있는 곳이 한국이기에 이곳을 찾은 것뿐이었다.

“에플 공매도를 위한 총알이라고 하는데, 석연치 않습니다. 덕분에 에플 주가가 35달러를 돌파해서 벌써 40달러에 이르렀습니다.”

사실이었다.

에플 주가에 대한 높은 관심 때문에 이제 미국인이 아니라 한국 증권 회사들조차 지켜볼 지경이었다. 다른 나라 투자자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석유 자본이 갑툭튀로 튀어나온 덕분에 에플 주식을 둘러싼 향방은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게 됐다.

다만 이 일은 문제의 소지가 다분했다.

특히 미국 SEC라면 말이다.

SEC 측에서 정보를 받은 재무부 IRS라면 충분히 움직일 일이다.

“…재무부에서 최민혁 실장을 호출한 이유가 이것 때문이라고 생각해?”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SEC나 IRS가 우리를 범죄자 취급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 벌써 5년 전 일이잖아. 그걸 아직도 걸고넘어지는 거야?!”

“…….”

제임스 러너 이사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 정부의 반응은 확실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들이 범죄자도 아닌데 말이다.

“본사에서 뭐래? 이번 에플 공매도 계획은 중단한다고 그래?”

“그게 쉽지가 않다고 합니다. 타이거 펀드가 빠지면서 손실을 어느 정도 손절매할 세력이 일거에 다 손을 털었기 때문입니다.”

이 단계에서 샐로먼 브러더스가 빠지면, 모든 손실을 자신이 떠안아야 했다.

눈치만 보던 다른 세력들 역시 손실을 보고도 손을 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뱅크런 때처럼 서로 다들 도망치기 바빠서 안 그래도 에플 주가를 누르고 있는 에플 공매도 계약이 사라진 덕분에 에플 주가는 오히려 급등할 확률이 높았다.

결국 에플 주가가 50달러, 아니, 60달러를 돌파해 버리면 파산하는 헤지펀드도 급증할 것이다.

“차라리 에플 주식을 더 공격적으로 매입하는 방법 외에는 없겠어.”

“…네.”

“휴우, 알겠어.”

데릭 모건 이사는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워렌 버핏 지시를 받아서 한국에 들어온 터라 미국 본사로 가봐야 했다.

‘손실이 너무 커.’

지금 이 단계에서는 서둘러서 에플 공매도를 철회할 상황이 아니었다.

황당한 일이지만 모건 스탠리조차 벌써 어느 정도 손절매를 한 상태였다.

‘마이크 그 새끼를 절대로 믿지 말라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 사람 말을 씹더니. 이제 와서 날 보고 어쩌란 거야?’

졸지에 설거지를 하게 된 데릭 모건 이사. 그의 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이 일은 어떻게 할 대안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이제까지 승승장구하던 그의 이력이 결딴나게 생긴 셈이었다.

그는 이 일의 목적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결국 날 노린 건가?’

어금니를 뽀드득 갈던 데릭 모건 이사는 깊은 고심을 거듭했다.

‘안 되겠어. 차라리 최민혁 실장을 직접 만나 봐야겠어. 도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이런 일이 가능한지 확인해 봐야겠어!’

* * *

데릭 모건 이사는 실리콘 밸리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최민혁 실장이 지금 있는 벨린 소프트 건물을 직접 찾아갔다.

이번 일의 성격상 다른 사람 시선을 의식해서 홀로 말이다.

최민혁은 자신의 만남 요청을 당연히 들어주었다. 그도 처음에는 샐로먼 브러더스의 데릭 모건 이사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그가 누구인지 기억이 난 것이었다.

이 년 전에 바닥을 모르고 무너지던 샐로먼 브러더스에 변화를 준 사람이니까.

특히 동아시아 증권 시장을 주도해서 샐로먼 브러더스의 입지를 끌어올린 인물이었다.

‘실제로 후일 요 몇 년 안에 샐로먼 브러더스를 부활시켜서 최고 책임자 자리에 오른 인물이니까.’

하지만 그의 외형은 전형적인 월가의 투자자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최민혁은 신기한 눈으로 이 인물을 요리조리 살폈다.

영국 태생으로, 미국 스탠포드 대학 MBA를 받아, 영국 재무부, 골드만 삭스를 거쳐서 샐로먼 브러더스에 합류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 이런 인물이 직접 날 찾아오다니.’

풀을 베어 뱀을 놀라게 하는 타초경사(打草驚蛇)인 셈이다.

‘뭐, 계획한 것은 아니지만 타초경사가 아니라고는 말 못 하지.’

최민혁은 지금 상황이 실로 신기했다.

자신이 한 거라고는 언론사 몇 곳에 정보를 흘린 것에 불과하니까.

“명성 많이 들었습니다.”

“천만에요.”

자기 아버지뻘 나이임에도 데릭 모건은 딱히 꼰대질을 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적장을 살피는 시선으로 최민혁을 살필 뿐이었다.

오히려 조성돈 팀장이나 우영민 부장이 눈치를 볼 뿐이었다.

특히 우영민 부장은 월가에서 나름 이름을 날리는 데릭 모건 이사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무너져 가는 샐로먼 브러더스의 기반을 일단 일으켜 세운 인물이다.

그가 이번에도 샐로먼 브러더스 본사로 돌아간 후에 무너져 가는 회사를 살리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서로 침묵했다.

최민혁 실장이야 데릭 모건 이사와 샐로먼 브러더스의 상황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는 데릭 모건 이사가 그냥 자신을 찾아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역시 에플 공매도 때문이겠지. 거기에 미국 재무부가 관심을 뒀으니.’

그러면 IRS가 움직인다. 그게 꼭 최민혁 실장 자신만을 노린다고 보기는 힘들다. 에플 공매도에 관련된 세력을 전부 확인할 테니.

그중에 가장 문제가 되는 이는 다름 아닌 샐로먼 브러더스였다.

최민혁도 피식 웃고 말았다. 그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재수가 좋은 건가? 아니, 꼭 그렇게 보기도 힘들어. 괜히 샐로먼 브러더스를 자극한 셈이니.’

최민혁은 때문에 표정 관리를 한다고 여념이 없었다. 자신은 평범한 투자자가 되어야 했다. 초호화 펜트하우스에 미쳐 있는 재벌 3세면 더 좋고 말이다.

하지만 데릭 모건 이사는 내심 크게 당황했다. 그는 최민혁 이사가 이렇게 나이가 어린지도 몰랐고, 겉으로 봐서는 특이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보고받은 내용의 반만 맞아도 최민혁 실장은 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거인 중의 하나였다.

“정말 나이가 20살 맞습니까?”

“그게 중요합니까?”

“아, 그건 아닙니다.”

‘미치겠군.’

데릭 모건 이사는 도저히 최민혁 실장이란 인물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선입견으로 최민혁 실장이 30대 후반이거나 아니면 40대 초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전혀 아니었다.

너무 심한 괴리감 때문에 자신이 원래 계획한 일을 제대로 떠올릴 수가 없었다.

“잘 아시겠지만, 최문경 부회장님은 VVIP 중의 한 사람입니다. 10억 달러에 가까운 차입금 지원도 그래서 가능했습니다. 비록 계약이 무산되기는 했지만 KM 그룹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최민혁은 가소로운 표정이었다. 그놈의 차입금 때문에 KM 그룹이 워크아웃 되면서 공중 분해되었기 때문이다.

‘가만, 그러고 보면, KM 그룹 파산은 우리 부회장님 때문이잖아.’

처음에는 그도 샐로먼 브러더스의 음모가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데릭 모건 이사를 보고서야 자신이 선입견을 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샐로먼 브러더스는 엄연히 투자 은행이었다. 그들은 KM 그룹의 가치를 알아봤다. 특히 보수적인 운영 때문에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점을 말이다.

최민혁 실장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가 곧 털어버렸다.

“우리 부회장님에게 직접 말씀하시면 될 듯합니다.”

“아닙니다. 최민혁 실장도 우리 샐로먼 브러더스 측과 같이 손을 잡을 생각은 없습니까?”

‘웃기지 좀 마!’

“굳이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그는 일방적인 거절에 잠깐 머뭇거리다가 한 가지 사실을 말해주었다.

“잘 아실지 모르겠지만, 우리 샐로먼 그룹은 유태인 3형제에 의해서 설립되었습니다. 지금은 명성이 자자한 워렌 버핏이 대주주입니다. 즉 미국 내에서도 영향력이 제법 있습니다.”

최민혁도 ‘유대인 이야기’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뒤늦게야 전생 1회 차에서 샐로먼 브러더스의 대주주였던 워렌 버핏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후일 워렌 퍼핏이 버크셔 해서웨이로 유명해지기는 하지만 그 과거를 잘 아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심지어 몇 년 후에 결국 망해 버린 샐로먼 브러더스 대주주였지.’

최민혁은 곰곰이 머리를 굴려 보았다. 아쉬운 점은 그 이상 더 정보가 생각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샐로먼 브러더스의 몰락과 워렌 버핏의 관계 말이다.

그는 비밀스러운 정보까지는 알지 못한 자신의 능력에 입맛을 다셨다.

‘그래, 날로 먹는 것은 안 된다는 뜻이지? 나도 인정하지.’

데릭 모건 이사는 깊은 생각에 잠긴 최민혁 실장의 모습에 쾌재를 불렀다.

“벨린 투자가 요즘 외부 투자를 받는다고 들어서 하는 말입니다.”

최민혁은 물론 샐로먼 브러더스와 손을 잡을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그건 740번지 펜트하우스가 있는 사람만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하면 일반적인 투자 협상은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제가 굳이 그래야 합니까?”

데릭 모건 몸은 달았다. 그는 솔직히 이 겉으로 평범해 보이는 재벌 3세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 호기심을 떨치지 못했다.

“…그래도 외부 투자를 받으면 자금 규모를 키워서 수익을…….”

“전 그런 수익엔 관심이 없습니다. 애초에 제 자금을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피곤합니다. 굳이 귀찮게 왜 남의 돈을 굴려서 이익을 챙겨줍니까? 전 조용히 살고 싶은 재벌 3세일 뿐입니다!”

‘조용히 살고 싶은 재벌 3세라니’라고 홀로 중얼거린 데릭 모건은 최민혁 실장을 잠깐 째려봤다. 최근 최민혁 실장이 벌인 일은 한국, 일본, 미국이 떠들썩할 정도의 일이었다.

“그래도 지금 740 펀드를…….”

“다시 말하지만, 그 펀드는 펜트하우스 매입이 우선입니다. 언론에 나올 텐데요. 제 유일한 취미가 초호화 펜트하우스 매입이라고?”

“…그렇습니까.”

그 당당하기만 한 데릭 모건 이사는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그가 마주한 최민혁 실장은 꼭 자신의 막내아들과 성향이 비슷했다.

고집이 있다는 점 말이다.

아 물론 차이가 있다.

막내아들의 취미는 최고급 오토바이를 모으는 것이지만 최민혁 실장은 천만 달러 이상의 초호화 펜트하우스를 모으는 것이니까.

데릭 모건 이사는 그래도 최민혁 실장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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