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756화 (756/1,021)

#756.

미국 입장에선 최민혁이란 놈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그 이익을 가로채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최민혁은 혀를 찼다.

‘이게 모두 나 때문이었다니.’

그 자신이 던진 변화가 나비효과를 가져온 셈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무슨 호구도 아닌데 이 일을 그냥 둘 리가 없다.

최민혁 실장과의 협상은 반드시 필요했다.

‘주식 강탈인가?’

최민혁은 오히려 겁먹거나 짜증스러워하기보다는 이 상황을 즐겼다. 그는 이미 큼직한 꽃놀이패 두 가지를 들고 있었다.

MPEG-2와 CDMA 말이다.

‘뭐, 다른 것은 다 빼고니.’

다만 재무부를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었다.

그는 고민한 끝에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대안을 선택했다.

“미국 언론사 말입니까?”

조성돈 팀장은 난감한 얼굴이었다. 그는 주로 국내 쪽 전문가이니까. 미국 쪽은 인맥이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다.

다행이라면 벨린 투자의 우영민 부장은 제법 아는 기자가 있었다.

“객관적인 시선이라면 워싱턴 포스트 쪽이 나을 겁니다. 그쪽에 아는 지인이 있습니다.”

“믿을 만합니까?”

“톰 피트 기자라고, 어떤 상황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는 기자입니다. 아마 재무부의 압박이 있다고 해도 진실을 숨기지 않을 겁니다.”

최민혁도 처음에는 톰 피트 기자를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얘기를 듣고 나서 뒤늦게야 ‘톰 피트’란 인물을 떠올렸다.

지금은 워싱턴 포스트에 있지만, 후일 NBC 방송으로 자리를 옮긴다.

후일 이라크 전쟁을 취재하면서 부시 대통령 재선에 재를 뿌린 인물이었다.

게다가 종군 기자로 이라크 전역을 누비면서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인 인물이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비판으로 명성이 자자한 인물이기도 했다.

“…나쁘지 않네요.”

우영민 부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는 인물입니까?”

“아, 그냥 이름은 들어본 것 같아서요.”

그는 슬쩍 자신이 떠올린 기억을 털어냈다. 확실히 믿을 만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한 사람만으로는 곤란합니다.”

“그렇다면 미국 메이저 언론사 몇 곳에도 연락하겠습니다.”

최민혁은 미국 언론사를 전적으로 믿지 않았다.

“보험으로 다른 곳도 필요합니다.”

“혹시 국내 언론 말입니까?”

“그래도 같은 동양인이니까요. 그쪽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는 힐끗 조성돈 팀장을 쳐다보았다.

조성돈 팀장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최민혁은 두 사람에게 다시 한번 충고했다.

“아마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이 이 사실을 알면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문제가 없도록 조율을 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최민혁 얼굴을 보자 결국 수긍하고 말았다.

최민혁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는 자신이 가진 CDMA이나 MPEG-2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원칙적으로 상무부가 날 찾아야 하는데, 재무부라면 좋은 뜻으로 부르는 건 아닐 거야.’

미국 상무부는 경제 성장이나 기술과 관련된 인프라에 대한 업무를 주로 한다.

고용 창출이나 생활 향상이 목적이다.

따라서 과학 기술부 역할도 한다.

상무부 산하 전기통신정보국이 바로 미국 대통령에게 통신 정책을 보고하는 곳이다.

결국 CDMA 관련 문제에 대한 안건은 상무부에서 먼저 다루어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재무부에서 최민혁 자신에게 연락한 것은 견제의 성격이 강했다.

‘솔직히 별일이 없으면 좋겠어. 하지만 사람 일은 모르니까. 아무리 한국에 호감이 있는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이라고 해도 전적으로 믿기는 힘들지. CDMA와 MPEG-2 덩치가 워낙 크니까. 어쩌면 CDMA에 집중할 수도 있고.’

로버트 루빈 장관은 클린턴 행정부의 다른 인물과는 달리 한국에 꽤 호감을 가진 인물이었다. 심지어 한국의 IMF를 막아야 한다고 클린턴 행정부를 설득하려 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뭐가 되었든 상관이 없었다.

지금껏 거래하지 못한 대상은 없으니 말이다.

* * *

미국 FRB는 최근 경기 활성화를 위해서 재할인 금리를 5.25%에서 5%로 인하했다.

근 10년 만의 금리 인하였다.

이것은 클린턴 행정부가 경기 활성화를 위한 포석이었다.

그만큼 클린턴 행정부 미국 경제 상황을 크게 주목하는 중이었다.

최민혁은 이런 클린턴 행정부의 바람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클린턴 행정부는 미국 경기 활성화를 위한 모든 일을 다 했다.

반대로 말해서 미국 경기를 침체시키는 수단에 대해서는 몸을 사렸다는 얘기다.

그런 태도의 단적인 예가 바로 클린턴 행정부는 경제 활동에 직접 끼어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클린턴 행정부는 최민혁 실장 자신에게 그 어떤 압력을 행사하기 어려웠다.

단, 이 일을 외부에서도 다 안다는 전제가 필요했다.

따라서 최민혁 실장이 한 일은 아주 간단했다. 클린턴 행정부를 주시하는 미국 언론 몇 곳에 자신의 재무부 방문 일정을 알렸다.

다만 그는 보험으로 미국 언론사만을 전적으로 믿지 않았다.

한국 언론 몇 곳에 이 정보를 슬쩍 흘렸다.

최민혁 실장의 재무부 요청 방문.

이 기사는 한국 언론 입장에서는 특종이었다.

안 그래도 최민혁 미국 방문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일이 벌어지는 상황이니 말이다.

그건 한영 일보 역시 다르지 않았다.

최경진 편집장은 처음에 이 제보를 듣고는 누가 장난한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미국까지 가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정보를 확인해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미국 쪽에 정보통이 있는 최광수 기자가 이 사실을 확인했다.

“워싱턴 포스트에 있는 제 지인 이야기로는 사실 맞다고 합니다. 도대체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오히려 묻는 눈치였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미국 재무부가 최민혁 실장을 초청했다면 최민혁 실장만이 아는 사실인데, 그 제보가 어떻게 우리 쪽으로 넘어와?”

최광수 기자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그쪽도 잘 모르는 눈치입니다.”

하지만 옆에서 조용히 듣고만 있던 범용구 기자가 툴툴거렸다.

“뻔하지 않을까요? 이런 일의 배후에는 늘 있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그게 누군데?”

“최민혁 실장이죠. 갑작스러운 재무부 초청을 최민혁 실장이 좋아할 것 같지는 않아요.”

최경진 편집장은 그제야 최광수 기자를 쳐다보았다.

최광수 기자는 역시 나이가 있어서인지 범용구 기자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수긍하고 말았다.

“확실히 그럴듯합니다. 재무부와 최민혁 실장만이 아는 사실을 재무부에서 흘렸을 리가 있습니까? 더욱이 우리 한영 일보에 말이죠. 최민혁 실장이 의도적으로 흘리지 않았다면 말이 안 됩니다.”

“흠.”

최경진 편집장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하지만 그도 최민혁 실장이 이제까지 한 짓을 보면 그 동기로는 충분하고도 넘쳤다.

범용구 기자가 버럭 소리쳤다.

“이거 뻔하죠. 최민혁 실장도 미국 재무부가 부담스러운 겁니다. 그러니 만약을 대비해서 우리 쪽을 보험으로 걸고넘어지려는 것이 분명해요!”

“무슨 보험 말이야?”

“그걸 지금부터 알아봐야죠.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어요. 재무부의 초청이 꼭 좋은 일이 아닐 수도 있죠. 일테면 압박을 넣으려고 부른 걸 수도 있으니까.”

최경진 편집장은 최근 미국 월가에서 뜨거운 한 가지 이야기를 떠올렸다.

“혹시 에플 공매도와 관련이 있는 걸까?”

“그것도 충분한 동기가 되지 않을까요? 최민혁 실장은 역시 에플 지분 32%를 소유한 대주주이니까요.”

최광수 기자도 순순히 수긍했다.

“에플 주가가 벌써 35달러를 돌파했죠. 퀄컴이 아직 8달러에서 멈춘 것과는 상황이 다르죠. 거기에 국내 CDMA 사업자 허가 때문에 말도 많고요.”

“아, 그것도 있구나.”

국내 이동통신사업은 최민혁 실장이 중간에 빠진 후에 난리였다.

사업자 선정과 관련해서 30대 재벌 그룹이 총력전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말이 나온 것은 다름 아닌 일본 정부의 대응이다.

일본이 한국에 있어서 CDMA 서비스 방식 도입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결국 한국은 TDMA 방식에서 고립되는 상황을 피하게 된 셈이다.

CDMA 방식 채택 국가가 한국, 일본, 미국까지 확대된 거나 마찬가지니 말이다.

최광수 기자 역시 이 점을 걸고 넘어갔다.

“사실 CDMA 방식의 적용 범위가 넓어지면서 가장 큰 혜택을 보는 사람은 다름 아닌 최민혁 실장 아닙니까. 정부에서도 이 때문에 말이 많았습니다. 특혜이니, 뭐니 그런 이야기가 돌았으니까요.”

문제는 최민혁 실장이 이 일에 아무런 관련을 하지 않으면서 발생했다.

최민혁 실장이 나서서 뭔가 했다면 정부가 이를 빌미로 조치했을 것이다.

최소한 이동 통신 관련된 정부 기관이 움직여야 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은 전혀 그런 행보를 보이지 않았다.

그런 차에 이동 통신에 관심이 많은 한국 30대 대기업은 최민혁의 눈치만 봤다. MP3 특허료를 낸 덕분에 최민혁 실장을 건드리기 힘들어진 것이었다.

최경진 편집장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하면 CDMA 특허료가 문제가 되겠어. 다르게 보면 퀄컴이군. 그렇다면 퀄컴 대주주인 최민혁 실장이 좀 문제가 되겠어.”

최광수 기자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 일이 분명합니다. 재무부가 최민혁 실장을 찾은 것도 그 때문일 겁니다. 재무부 산하에 IRS가 있지 않습니까. IRS를 통해 압력 넣기 전에 사전 조율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닐까요. 최민혁 실장이 굳이 정보를 흘린 것도 재무부의 압력 때문이고요.”

아주 그럴듯했다.

“…알겠네. 으음, 이렇게 하지. 두 사람이 당장 미국으로 가봐. 잘만 하면 특종이 될 테니까!”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최민혁 실장 이야기는 이제 뜨거운 특종이나 마찬가지였다. 초호화 펜트하우스 매입 취미 때문이었다.

결국 범용구 기자와 최광수 기자의 미국행은 결정이 난 셈이었다.

* * *

최민혁은 한영 일보를 비롯한 기자의 소식을 듣고는 꽤 만족했다. 그가 딱 원하는 그림 그대로였다. 다만 이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조성돈 팀장에게 흘리라고 말한 언론사 정보가 결국 최문경 부회장 귀에도 들어갈 것이라 확신했다.

이에 최문경 부회장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확인이 필요했다.

그는 최문경 부회장이 절대 에플 공매도에서 손을 떼지 않기만을 바랐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로서는 자신이 만든 덫이 소용없어지기 때문이다.

‘일단은 지켜볼 수밖에 없어.’

한영 일보가 최민혁 실장의 찌라시 소식을 듣는 동안에 다른 메이저 언론사 역시 최민혁 실장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그들 중에 일부는 이 정보를 의심했지만 그렇지 않은 이가 더 많았다.

이 소식은 자연히 최문경 부회장에게도 전해졌다.

최문경 부회장은 한동안 최용욱 회장에게 찬밥 대우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생각처럼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장녀 최영란에게 밀리는 상황에서 나름 최선을 다했다.

그가 한 일은 아주 간단했다. 필리핀 공장에 이어서 대만, 러시아, 이스라엘에도 반도체 공장 설립을 추진한 것이었다.

특히 그가 노린 것은 바로 이스라엘 반도체 기술 도입이었다.

이 기술이 기반이 된 셈이다.

그는 KM 산업 미국 법인을 통해서 러시아 쪽에도 반도체 공장 증설을 밀어붙였다.

이런 노력은 단순히 그냥 끝나지 않았다.

샐로먼 브러더스의 도움을 받아서 일을 빠르게 진행하게 했다.

여기에 대만 친풍 그룹의 도움을 받아서 리드 프레임 기술 일부를 얻었다.

이런 노력은 지금 당장 KM 산업 매출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중장기적으로는 KM 산업 매출과 기술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이는 KM 산업 주가에도 반영되어서 단기적으로 대략 30% 이상 끌어올렸다.

이런 노력은 KM 그룹 사장단 회의에서도 큰 영향을 끼쳤다.

최용욱 회장조차 손뼉을 치면서 최문경 부회장을 치하해 주었다.

“봐, 하면 되잖아.”

“…죄송합니다.”

최문경 부회장은 사장단 회의에서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하지만 KM 그룹 사장단 회의에서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좀 달랐다.

다들 최문경 부회장의 부활을 꽤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최문경 부회장 입장에서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한 가지 일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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