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755화 (755/1,021)

#755.

최민혁은 머리를 제법 굴렸다. 하지만 그는 이 상황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미국 통신 사업에 손을 댄 이상 미국 권력층과 반드시 만나야 했다.

정확히는 CDMA 서비스를 통한 미국 통신 사업이었다.

여러 가지 제안이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역시 지분 정리였기 때문이다.

거절한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턱이 없었다.

‘심장마비로 암살일까?’

최민혁은 설마 그럴 일이 생길까 싶었다. 하지만 그도 이 일을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 역시 미국 정부와 지금 싸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럴 이유도 없고 말이다.

오히려 이런 기회를 기다렸다. 그의 주적인 최문경 부회장과 샐로먼 브러더스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빠르네.’

최민혁 실장을 이 점을 확인하고 싶었다.

“결국 CDMA 쪽을 주시했었는데, 동기는 MPEG-2 원천특허 때문이겠군요?”

“…네.”

조시 로버트 아태 부차관보는 미안한 얼굴이었지만 더 언급하지는 않았다.

최민혁은 그저 헛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왜 에플 공매도 수량이 줄어들었는지 이유를 알았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가 로비스트인 제임스 워커를 통해서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에게 손을 썼을 것이다. 아무래도 그게 동기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미 이전부터 재무장관은 고민했을 테고, 이번 기회에 매듭을 짓을 생각인 셈이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 그 작자 때문에 일이 좀 꼬였어.’

하지만 크게 상관을 쓸 문제는 아니었다.

아니,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미국 정부가 나를 협박해서 일방적으로 권리를 강탈하지는 않겠지. 아직 그 단계는 아니니까. MPEG-2 특허 때문에 오히려 더 잘되었어. 협상만 잘하면 얻을 것이 많아. 뭐로 받아야 하나?’

최민혁은 굳이 CDMA 원천기술이나 퀄컴 지분에 집착하지 않았다. 어차피 미국 정부가 그 가치를 모르는 기술은 너무도 많았다. 그중에 몇 개만 챙겨도 충분했다.

이왕이면 미국 정부를 이용해서 샐로먼 브러더스의 뒤통수를 후려칠 수도 있었다.

‘아니, 최소한 내 일에 미국 정부가 끼어드는 것을 막을 수도 있어. 그 정도만 되어도 충분해. 이왕이면 배후까지 밝혀내면 좋겠지만 그건 어렵겠지. 아니면 힌트라도 얻을 수 있을지 몰라.’

최민혁이 걱정하는 것은 최문경 부회장이 아니었다. 그를 바지사장으로 앉혀놓고 뒤에서 칼자루를 휘두르는 세력이었다.

샐로먼 브러더스는 드러나 있는 상징적인 심볼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 배후를 모르는 상태였다. 없다면 좋겠지만, 최악의 상황도 대비해야 했다.

“좋습니다. 만나죠. 다만 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당장 급한 일이 좀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일정은 다시 조율하겠습니다.”

그는 악수를 청하면서 내심 히죽 웃었다.

‘우선 마이크 라이언 이사의 동선부터 확인해 봐야겠어.’

* * *

전 세계 이동 통신은 GSM이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럽 지역은 이미 이 GSM을 표준으로 정했다.

100여 개국 이상이 이 GSM 방식을 표준으로 접한 셈이다.

미국 정부 처지에서는 난감한 일이었다. 그들은 결코 유럽의 GSM 방식을 따를 생각이 없었다. 미국 통신 보안 문제 때문이다.

하지만 GSM 진영의 미국 정부를 향한 로비는 뜨겁기만 했다.

덕분에 압박을 꽤 많이 받는 이가 바로 미국 재무장관 로버트 루빈이었다.

그는 로비스트인 제임스 워커에게 주기적으로 시달렸는데, 이 제안을 무시하기는 힘들었다.

그는 때문에 대안으로 퀄컴을 계속해서 밀어주었다.

퀄컴 역시 상황이 좋지는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한국 정부 쪽에서 도움을 준 덕분에 어려운 고비를 잘 넘겼다.

한국 정부가 밀어준 ETRI 덕분에 힘든 고비를 넘길 수 있게 된 셈이다.

정확히는 최민혁 실장이 끼어든 것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최민혁 실장은 퀄컴 지분 40%를 꿀꺽 삼켰다.

사실 당시만 해도 퀄컴 상황이 좋은 편이 아니어서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CDMA 서비스가 진행되면서 문제가 터졌다.

미국 정부가 이 CDMA 서비스를 받아들이려고 할 때 퀄컴 지분 40%를 최민혁 실장이 꿀꺽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이 문제는 미국 재무부 내에서도 논쟁의 여지가 많았다.

사실 힘이 없는 상대였다면 그냥 협박해서 강탈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민혁은 그저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에플 대주주로 이미 미국 언론에서도 주목을 받는 사람이었다.

어설프게 최민혁을 건드렸다가는 오히려 스캔들에 휩쓸려서 재무부가 날아갈 상황이었다.

최민혁 실장의 과거 이력을 보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이였다.

미국 재무부에서는 최민혁 실장을 아랍 테러리스트보다 더 무서운 인물로 봤던 것이다.

그러니 그들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최민혁과 어설프게 협상하다가는 내장까지 탈탈 털릴 위험성도 존재했던 것이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가 로비스트 제임스 워커를 찾은 시점이 딱 이 무렵이었다.

하지만 제임스 워커 역시 GSM 문제 때문에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다. 그런 차에 MPEG-2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일단은 무시했다.

그런데 그런 중에 나온 MPEG-2 소유자가 문제였다.

“최민혁 실장? 아니 이 사람이 여기 왜 나와?”

“…그러니까 하는 말입니다. 지금 MPEG-2처럼 중요한 원천기술을 이 동양인 놈이 다 먹는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서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 셈이다.

제임스 워커는 ‘동양인 꼬마’ 이야기 따위는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그는 마이크 라이언 이사가 가져온 자료를 살펴보고서는 입을 딱 벌렸다.

도대체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할지 판단을 내리지 못한 인물인 ‘최민혁 실장’이 떡 하니 있었다.

그는 마이크 라이언 이사의 말을 더 듣지 않았다.

일단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을 만나서 자초지종을 말했다.

이후 약속은 일사천리로 잡혔다.

그런데 이놈의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집요하게 자신에게 달라붙었다.

“시간이 좀 필요하다고 했지 않습니까?”

“저희 쪽이 시간이 없습니다!”

“도대체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겁니까. 투자 은행이 왜 성급하게 밀어붙이는 겁니까. 이번 일은 신중할 필요가 있어요!”

정확히는 CDMA 원천기술 소유주인 최민혁 실장 때문이다.

지금까지 조사한 바로는 협박한다고 해서 쉽게 말을 들을 것 같지가 않았다.

사실 미국 재무부가 고민하는 것은 최민혁 실장이 이 일을 빌미로 미국 정부에게서 얼마나 뜯어내려고 할지 그게 더 부담스러웠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빽 소리쳤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겁니까. 모건 스탠리가 우리 미국을 위해서 이바지한 일이 얼마나 많은지나 압니까?!”

“아, 알았으니, 그만하세요.”

제임스 워커 처지에서는 짜증스러웠다. 이놈의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정말 이럴 겁니까? 뻔히 우리 사정을 알면서 이럴 겁니까?”

“그놈의 에플 공매도 말하는 겁니까. 사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SEC에서 당신네 유심히 지켜본다는 것을 아세요!”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주가 조작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요. 거기에 IRS도 당신네들 지켜보고 있고. 괜히 문제를 크게 키워서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지 마세요!”

사실 모건 스탠리를 향한 미국 정부의 시선이 마냥 곱지는 않았다.

정확히는 샐로먼 브러더스 때문이다.

특히 SEC는 요즘 샐로먼 브러더스를 계속 깊이 파는 중이었다.

그 덕분에 모건 스탠리 역시 SEC 레이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제임스 워커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은 가능하면 샐로먼 브러더스와 거리를 두라는 것밖에 없습니다. 굳이 자세한 설명은 필요 없겠죠?”

“그건…….”

“당신네가 에플 공매도를 하든 말든 신경을 쓰지 않겠지만, 문제를 크게 만들지는 마세요. 그리고 MPEG-2에 대한 것은 재무부에서도 신경을 쓰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요.”

“하지만 손실이…….”

에플 공매도 계약은 이미 진행된 사안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손실이 커져만 갔다. 에플 주가가 계속 올랐기 때문이다.

“그거야 당신이 알아서 해야지. 설마 미국 재무부가 에플 주가를 끌어내리란 말입니까?!!!”

“그건 아니지만…….”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이를 악물었다. 사실 그가 제임스 워커를 하버드 대학 경영학 교수에 임용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제임스 워커가 어느 사이엔가 컸다고 자기 뒤통수를 친 셈이다.

하지만 내막은 그렇지가 않았다.

제임스 워커 역시 GSM과 CDMA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GSM을 들이 밀어봐도 로버트 루빈 장관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의 상황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 것이었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CDMA 쪽으로 밀어야 하게 된 셈이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문제가 된 인물이 바로 최민혁 실장이었다.

그런 차에 MPEG-2 원천기술 이야기까지 들었으니.

그는 마이크 라이언 이사에게 차마 진실을 말하지는 못했다.

“기다려 보란 이야기 외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이를 뿌드득 갈았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개새끼가.’

제임스 워커 역시 내심 비웃고 말았다.

‘멍청한 영감이. 세상 일이 모두 자기 뜻대로 된다고 생각하나.’

* * *

최민혁은 애초에 보험 정도로 생각해서 일단 마이크 라이언 이사의 동선부터 확인했다. 그는 우선 에플 공매도 현황부터 살폈다.

역시 모건 스탠리의 반응이 이전과는 달랐다. 에플 주식을 모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에플 공매도 계약을 진행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구경만 하는 중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외부 투자자들이 계속 모건 스탠리를 괴롭힌다는 거다. 얼마나 시끄러우면 굳이 모건 스탠리를 감시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문제가 있나 보군.’

굳이 더 묻지는 않았다.

단순한 조사만으로 알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괜히 자신이 끼어들어서 문제를 더 복잡하게 할 필요는 없었다.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이 나선 이상 여기에 손을 댔을 테니까.

오히려 자신을 자책했다.

‘내가 너무 나댔나?’

역시 MPEG-2에 대한 탐욕 때문에 자신이 무리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다.

하지만 그 상황을 다시 직면해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

그 시점이 아니었다면 MPEG-2를 쉽게 얻기 어려웠다.

‘CDMA 상황이 달라졌어.’

국내 CDMA 관련 현황부터 다시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제법 많은 상황이 변해 있었다.

그 자신이 MPEG-2에 정신이 나가 있는 동안에 CDMA 사업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한국 정부는 TDMA 진영에 압력을 받으면서도 CDMA를 쉽게 포기하지 않은 결과였다.

정확히는 최민혁 실장이 깔아놓은 포석 때문이었다.

ETRI 통해서 일을 진행한 결과물은 그 자신이 손을 떼도 무럭무럭 자라서 이미 스스로 자생력을 가진 것이었다.

이것 역시 자신이 끼어들면서 주변 상황에 큰 변화가 있었다.

황당한 것은 최민혁 자신이 자리를 비운 덕분에 이해 집단끼리 처절하게 싸웠다.

거기에 30대 대기업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놀라운 것은 그런 과정 중에도 CDMA 사업은 순탄하게 잘 흘러간 점이다.

‘어쩐지 이상하더라.’

최민혁은 미국 정부 반응이 전혀 특이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CDMA 원천기술을 보유한 퀄컴의 가치는 수직으로 치솟는다.

그런데 미국 정부가 통신 사업에 대한 사전 정지 작업을 하는 동안에 그 이익의 태반을 쪽쪽 빨아먹는 이가 있었다.

다름 아닌 최민혁 자신이었다.

이것 역시 사람들이 정신을 차린 이유가 MP3 로열티 수익 때문이었다.

이미 작년 MP3 로열티 수익이 대박이 났는데, 올해는 몇 개월 되지 않아서 3억 달러를 넘어선 것이었다.

물론 올해는 이전과는 달리 MP3 뛰어든 업체가 많아서 생긴 일이었다.

그런데 옆에서 지켜보는 이들은 또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원천기술 특허료에 대해서 눈을 뜬 것이었다.

탐욕.

그것도 한둘이 아니었다.

특히 미국 정부는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상황이었다.

미국 정부가 경제 활성화를 외치는 것은 자국의 이익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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