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754화 (754/1,021)

#754.

그는 그제야 최민혁 실장이 가진 자산 가치를 떠올렸다.

당장 다른 것을 다 떠나서 자신이 부추긴 에플 주가가 무려 30달러를 넘겼다. 그 자산 가치만 해도 조 단위를 가볍게 넘어갔다.

“가만, 일단 총알은 제법 마련했지?”

“물량이 생각보다 적습니다. 그래도 쓸 만한 정도는 될 겁니다.”

지금까지 모건 스탠리가 확보한 에플 주식은 기존 지분을 포함해서 대략 8% 남짓했다. 문제는 이 지분이 선 마이크로시스템을 통해서 확보한 지분이라는 점이다. 이들이 지분 일부를 요구하면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좀 적네.”

“이것도 그나마 많이 확보한 겁니다. 에플 주가가 너무 가파르게 올라서 더 손을 쓰기 어렵습니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에플 주식에 대한 욕망을 쉽게 떨치지 못했다. 그는 일단 에플 공매도는 배제한 채 에플 주식만 생각했다. 도저히 합리적인 방법으로 확보가 쉽지 않았다.

“…강제로는 어렵겠지?”

폴 고슬링은 힐끗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최민혁 실장이 벨린 시큐리티란 법인을 설립했는데, 미국 법인에 소속된 직원만 수백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대부분은 정보기관이나 특수 부대 출신입니다.”

“쯧.”

마이크 라이언 이사도 기대는 하지 않았다. 제정신이 박힌 갑부라면 자기 몸을 보호할 수단은 마련할 테니 말이다.

그는 골치가 아팠다. 에플 공매도도 이제는 해야 할지 망설였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질문했다.

“하지만 에플은 상황이 다르잖아. 최민혁 실장이 경영에 간섭한 것도 아니고.”

폴 고슬링은 한숨을 내쉬었다.

“최민혁 실장이 소유한 계열사는 관련 기술이 다 연결됩니다. 에플은 어떻게 보면 이런 회사의 원천기술을 합친 제품을 만드는 곳입니다. 관련이 없는 게 더 이상합니다.”

오해였다. 하지만 불행히도 마이크 라이언 이사가 그런 것을 알 수는 없었다.

“끙.”

그도 정당한 방법으로는 도저히 최민혁 실장을 어떻게 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 에플 공매도를 여기서 접어야 했다.

그런데 이것도 문제다.

이번 에플 공매도는 모건 스탠리 혼자만 한 것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에게 이 정보를 알린다고?

모르기는 몰라도 서로 손해를 안 보려고 할 것이다.

그때는 정말 재앙이었다.

‘시간이 없어. 젠장, 아니,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야.’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새삼 타이거 펀드의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이 미웠다. 그가 사전에 알렸다면 뭐라도 했을 테니 말이다.

‘아니, 그래서 태국으로 잠적하였겠지. 지금쯤이면 손절매를 할 거야. 아니면 에플 지분을 늘려서 손실을 메꾸려고 하겠지.’

폴 고슬링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마이크 라이언 이사의 눈치를 봤다. 그가 보기에 에플 공매도는 이제 물 건너갔다.

“에플 공매도는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알아. 그 이야기는 그만해. 으음, 이번 일은 내가 알아서 해 볼 테니, 그만 가 봐.”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정공법이 안 되면 다른 편법을 써봐야지.”

“…알겠습니다.”

폴 고슬링도 굳이 그 방법을 묻지는 않았다. 마이크 라이언이라면 방법이 제법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역시 한 가지 사실을 잘 알았다.

‘하긴, 최민혁 실장은 미국인이 아니니까. 더욱이 CDMA 통신 기술은 문제가 될 거야. 지금이야 아직 그 가치가 크지 않지만 그 파이 자체가 커지면,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니지.’

* * *

한동안 늘어나기만 하던 에플 공매도는 의외로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에플 주가가 무려 30달러를 돌파했는데도 말이다.

이 특이한 현상에 대해선 월가에서도 한동안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도대체 에플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당연히 CES에 대한 에플 전시회 역시 주목을 받았다.

이번 전시회에서 에플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연출한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더 이상한 점은 시간이 갈수록 공매도 만기가 된 물량이 정리되었다.

에플 공매도가 시작된 시점이 대략 15달러 남짓한 가격이었으니, 에플 공매도 세력은 어마어마한 손실을 본 것이었다.

[이거 왜 이래?]

[에플 주가 폭락하는 것 아니었어?]

[아니, 공매도 세력이 미친 거 아냐. 에플 공매도를 걸어놓고, 왜 아무런 행보를 하지 않는 거야?]

월가의 많은 투자자는 에플 공매도와 관련해서 이런저런 욕설을 퍼부었다.

남자가 칼을 뺐으면 칼자루라도 휘둘러야 하는데, 그것도 없었다.

그냥 칼만 덩그러니 보여준 후에 도망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말이 없었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으니, 내막을 아는 이는 잘 없었다.

최민혁 역시 황당했다. 그는 눈이 빠져라 공매도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 딱 그 타이밍에 가지고 있던 물량을 정리할 생각이었다.

‘아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그래서 벨린 투자의 우영민 부장에게 지시해서 상황을 알아보라고 했다.

우영민 부장조차 고개를 갸웃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전혀 모른다는 말인가요? 최소한 도는 찌라시도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공매도에 발을 담근 쪽도 아는 바가 없어서 크게 당황한 눈치였습니다. 그들도 분위기를 보다가 결국 손절매하는 상황입니다.”

“거의 -100% 손실인데도 그런다는 말입니까?”

우영민 부장은 쓰게 웃고 말았다.

“지금 에플 주가는 벌써 35달러를 한 번 찍었습니다. 그런데도 주가가 내려가지 않고 있습니다. 이미 조정장을 거친 상황이라서 수급도 나쁘지 않습니다. 더욱이 에플과 관련된 소문이 하도 무성한 것도 있습니다.”

스티븐이 곧 잘하는 것이 과장이다. 그런데 그 기반이 있으니, 그냥 말로만 하는 선동과는 좀 차이가 있었다.

그런 스티븐을 본 이들은 다들 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이런 복잡한 상황 덕분에 겁을 집어먹은 이들은 손해를 보면서까지 에플 공매도에서 손을 떼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건 최민혁 자신이 원한 바와는 달랐다. 최문경 부회장이 만약 이런 분위기에 손을 뗀다면 고작 반 토막 손실만 입힌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나랑 장난하냐?’

* * *

다행히 최민혁의 고민을 풀어준 사람이 있었다.

두 사람이 그를 찾아왔다.

놀랍게도 원래 SEC에 있다가 미국 국무부 아태 부차관보로 승진한 조시 로버트였다. 늘 부드러운 남자다운 모습은 이전과 바뀌지 않았다.

“최 실장님, 오랜만입니다.”

최민혁은 악수하면서도 의아한 얼굴이었다. 그가 갑자기 자신을 찾아올 이유가 없었다.

“조시 차관님이 이렇게 갑자기 연락도 없이 찾아오다니, 좀 놀랐습니다. 미리 연락을 주셨으면 좋았을 겁니다.”

동행한 파르빈 라미네즈가 툴툴거렸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 생겨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최민혁은 안 그래도 에플 공매도 때문에 짜증스러웠다.

“무슨 일이라도…….”

조시 로버트 아태 부차관보는 조성돈 팀장의 눈치를 봤다.

“조용히 이야기했으면 합니다.”

최민혁은 의아했지만, 굳이 의심을 하지 않았다. 무려 국무부 아태 부차관보였다. 그냥 자신을 찾아왔을 리가 없었다.

세 사람만 남자 조시 아태 부차관보는 잠깐 최민혁 눈치를 보면서 망설였다.

“혹시 모건 스탠리와 트러블이 있습니까?”

“…모건 스탠리와 트러블이라.”

최민혁은 ‘모건 스탠리’라는 이름을 듣자 머릿속의 퍼즐이 풀린 것을 깨닫고는 피식 웃고 말았다. 안 그래도 모건 스탠리 때문에 짜증스러웠다. 그런데 정작 그들을 대리해서 나타난 이는 조시 로버트 미국 국무부 아태 부차관보였다.

조시 아태 부차관보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모건 스탠리 측에서 제임스 워커를 만난 것 같습니다. 제임스 워커는 로비스트로 재무장관인 로버트 루빈과 안면이 있습니다.”

“재무부입니까?”

“네.”

최민혁은 의아한 얼굴로 그를 잠깐 쳐다보았다.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재무부 산하 조직을 떠올렸다. 여러 조직이 있지만 딱 떠오른 조직은 IRS였다.

“혹시 탈세 때문입니까? 하지만 제가 알기로 딱히 불법이 될 만한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조시 아태 부차관보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아닙니다. 정확히는 퀄컴의 CDMA가 문제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통신 사업은 미국 정부에서도 많이 신경을 씁니다.”

“아아.”

최민혁 실장은 곧 걱정을 떨쳐 버렸다. 그도 사전에 걱정한 부분이었다. 지금까지 괜찮았던 것은 당연히 이유가 있었다.

‘아직 결과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좀 달랐다.

퀄컴과 ETRI와 손을 잡고 진행하는 CDMA 쪽에서 어느 정도 과실이 나왔다.

한국 정부가 당연히 관심을 보일 정도였다.

최민혁이 손을 쓴 덕분이 일이 생각보다는 빠르게 진행된 것이었다.

‘가만, 한국 정부에서 일을 방해하지 않았나?’

그는 솔직히 한국 정부가 복잡하게 엮인 부분을 알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이 얻고자 한 핵심 기술은 다 챙겼으니 말이다.

“가만, 설마 미국 정부가 손을 쓴 겁니까?”

조시 로버트 아태 차관보는 최민혁의 추측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애초에 CDMA 기술은 퀄컴 소유였으니까요. 다만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장벽에 막혔고, 그걸 ETRI 측에서 풀어줬으니까요.”

“정확히는 최민혁 실장님이 한 업적이겠죠.”

최민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글쎄요. 다른 사람들은 생각이 좀 달랐습니다. 사실 최민혁 실장님이 반응을 보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냥 입을 다물어 버리더군요. 다들 최민혁 실장님의 행보에 크게 당황했습니다.”

“그런가요?”

최민혁은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어쩐지 분위기가 싸해서 일단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다들 자신이 반응을 보일 것으로 생각한 것이었다.

‘내가 움직였다면, 한국 정부를 움직여서 찍어 누르려고 했던 건가?’

그럴 수 있었다.

아니, 당연히 그래야 했다.

미국 정부에서 하려는 통신 기술이 CDMA였을 테니 말이다.

“그러면 더 이상하군요. 전 CDMA 쪽에 별다른 손을 쓰지 않았습니다.”

조시 아태 부차관보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지금까지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마이크 라이언 이사가 나서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그는 최민혁 실장님이 보유한 MPEG-2 특허 전체를 잘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흠.”

최민혁은 굳이 더 자세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가 MPEG-2 특허에 대해서 알아도 전체는 파악하고 있는 건 아니니 말이다.

‘어느 정도 눈치는 챘다고 해도 모든 것까지는 알 수는 없지. 하지만 미국 정부라면…….’

“…설마 CIA까지 동원해서 절 감시한 겁니까?”

조시 아태 부차관보는 피식 웃었다.

“굳이 CIA가 아니더라도 관련 조직을 동원하면 다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더 큰 문제는 실무진이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아뇨. 재무부는 난리였습니다.”

재무부가 난리가 난 것은 로버트 루빈 장관 때문이었다. 그는 클린턴 행정부에서 정보 통신 벤처 붐을 일으킨 인물이었다.

클린턴 정부가 원하는 미국 경제 호황기를 이끈 인물이기도 하다.

따라서 클린턴 행정부 내에서 로버트 루빈 재무부 장관의 영향력은 실로 엄청났다.

그런 로버트 루빈 장관이 호들갑을 떨 정도였으니.

최민혁으로서는 전혀 생각도 못 한 일이었다.

“그런가요?”

최민혁도 순순히 인정했다. 미국에서 특허를 출원한 이상 미국 정부 기관이 모를 수가 없는 일이다. 하물며 미국 고위층이라면 말이다.

조지 아태 부차관보는 그제야 목소리를 더 낮추었다. 그는 누군가 도청을 듣지 못하도록 하려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

“아무래도 한 분을 만나셔야 할 듯합니다.”

“…국무부의 조시 로버트 아태 차관보가 한 분이라고 말할 정도면 국무부 장관입니까? 아, 재무부 장관일 수도 있겠군요.”

“맞습니다. 로버트 루빈 재무부 장관님이 최 실장님을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거절하고 싶은데, 안 되겠죠?”

“아뇨, 미국 통신 사업을 하고 싶다면 반드시 만나셔야 합니다. 협상을 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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