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3.
메신저 서비스 개발을 하면서 이미지와 동영상 크기가 근본적인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잘만 저 기술을 적용하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제까지 AOL과 해오던 협업에서 나온 기술적인 문제 역시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 이상이었다.
기존 기술보다 몇 단계 더 진보된 기술이니 말이다.
이지수 박사 역시 다르지 않았다.
“…제안을 받아들일게요.”
최민혁은 바로 이지수 박사에게 악수를 청했다.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물론 악수를 가로챈 사람은 헬렌이었다.
“…….”
최민혁은 이지수 박사를 가로막은 후에 새하얀 이를 드러내면서 웃는 헬렌을 보면서 입을 다물고 말았다.
이지수 박사는 물론 손을 쓱 내리면서 머쓱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일단 급한 일은 끝낸 것 같은데…….’
* * *
이지수 박사 팀의 능력은 확실히 보통이 아니었다.
최민혁이 내놓은 과제를 쉽게 해결했다.
최민혁조차 그 결과를 보고는 탄식하고 말았다.
그러면서 흐릿한 기억을 떠올렸다.
물론 그 과정에서 좀 더 보완할 방법을 추가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덕분에 최민혁 실장은 이지수 박사와 자주 대화 시간을 가졌다.
둘이 하는 대화 내용은 물론 평범한 남녀가 할 만한 대화는 아니었다.
노드가 어떻고, 타이밍이 어쩌고, 알고리즘이 어떻고 하는 내용이 태반이었다.
일반적인 남녀의 대화와는 많이 달랐다.
이것도 사실 이지수 박사가 전생에 최민혁 실장의 스승이기에 가능한 대화다.
아마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최민혁은 제대로 대화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헬렌이 꼭 끼어들어서 두 사람만의 시간을 방해했다.
최민혁 실장은 이것은 이것대로 좋았다. 겉으로 봐서는 초미인 두 사람과 같이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으니까.
“…….”
조성돈 팀장조차 겉으로 보이는 이 삭막한 데이트 현장에 혀를 내둘렀다. 영화 속에서도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다만 그로서는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여자들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일단 대화가 잘되지 않았다.
이지수 박사와 헬렌이 하는 말은 무슨 외계어 같았기 때문이다.
‘저렇게 대화를 할 수 있는 게 신기해.’
그 이유 중의 하나는 헬렌의 복장에 있었다.
그녀는 늘 평범한 옷을 입고 왔는데, 그럼에도 몸매가 적나라하게 다 드러났다.
더욱이 가슴이 제법 커서인지 조성돈 팀장은 도저히 그대로 쳐다보기 힘들었다.
* * *
겉으로 봐서는 최민혁이 꽃밭에서 놀고 있다고 생각될 장면은 외부에서 봤을 때는 그 내막을 알기는 어려웠다.
폴 고슬링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KMBOOK 임직원 몇 사람에게 접근해서 내막을 알아보려고 했는데,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여자 2명이랑 노닥거린다고?’
정확히는 그 상대가 이지수 박사와 헬렌이었다. 정보원을 통해서 어렵게 구한 사진을 통해서 상대가 이지수 박사와 헬렌이라는 것을 알았다.
폴 고슬링은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는 최민혁 실장의 행보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많지 않았다. 빨리 이번 일에 대한 정황을 파악해야 했다.
문제는 최민혁 실장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자 이지수 박사와의 오붓한 시간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겉으로 봐서는 직장 상사가 직장 동료와 서로 사귀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도 2:1로 말이다.
폴 고슬링은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느냐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시간이 갈수록 짜증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그는 인내했다. 다행이라면 KMBOOK 직원 중에 내부 정보를 알려 온 이가 있었다.
배신 같았지만, 정확히는 그렇지가 않았다.
“…이미 특허 출원이 끝났다라.”
그랬다.
이미 특허 출원은 끝나 있었다.
특허를 출원했다는 것이 보안 정보가 되지는 않았다.
그것도 상대가 돈을 두둑이 준다고 하니 말이다.
고작 이 정도 정보를 아는 데 들어간 돈이 무려 30만 달러였다.
절대 후회하지는 않았다.
최민혁 실장과 이지수 박사가 뭘 하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MPEG-2 특허라…….”
이건 아는 사실이었다.
최민혁 실장이 이미 뭔가 수작을 부린다는 것을 알았기에 이전과는 달리 철저하게 교차 검사해서 검토에 검토를 거듭했다.
폴 고슬링에게 따로 지시받아서 얻은 자료를 분석한 케네스 최가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 해서 나온 최종 결과가 상당히 쇼킹했다.
“…모두 186건이라니, 이거 정말일까요?”
폴 고슬링은 사무실 중앙에 서류를 일일이 펼쳐서 늘어놓은 채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는 사무실 중앙에 앉아서 멍하니 서류를 확인할 뿐이었다.
그는 케네스 최의 질문에 짜증을 냈다.
“그걸 나에게 물으면 어떻게 해?!”
“특허 전문가 쪽에 확인해 봤는데, 잘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비디오 관련 표준화가 진행되기는 하지만 이런 특허는 없었습니다.”
한쪽 화이트보드에 적혀 있는 특허 숫자는 모두 186건이었다.
이 특허는 종류별로 다 나누어져 있었다.
그 하나하나가 대충 만들어진 C급 특허가 아니었다.
적어도 A급, 대다수는 S급 이상으로 중요한 특허였다.
정확히는 일부만이 표준화 작업 과정과 관련이 있었다.
그런데 나머지 특허는 표준화에서 아직 제대로 언급되지 않은 것이었다.
일부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비디오 표준 워킹 그룹에서 여전히 검토 중이었다.
믿기 어려운 점은 바로 그런 기술조차 특허 출원이 된 것이었다.
폴 고슬링은 그 때문에 소위 말하는 특허 전문가조차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케네스 최는 피로에 지쳐서 짙은 눈 그늘을 눈 밑에 단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 검토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상황을 알면서 그런 소리가 나와?!”
케네스 최는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특허 한 목록을 손가락을 가리켰다.
“당장 스트림 관련 특허만 해도 여러 업체가 관련돼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 쪽에 확인을 해 봐도 막상 잘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그러면 큰 의미가 없다는 거야?”
“그건 아닙니다. 매우 놀란 업체도 있었습니다.”
사실 디지털 방송수신기 업체 중에는 큰 충격을 받은 이도 있었다.
이들은 앞으로 4~5년을 내다보고 연구 중이었다. 그들이 본 것은 바로 자신의 연구 결과물이었다. 앞으로 5년을 죽어라 연구해도 나올까 말까 한 특허가 떡하니 놓여 있었으니.
차마 내심을 말하지는 못한 것이었다.
문제는 이 특허가 아직 구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상 이 특허의 본질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도대체 최민혁 실장이 이런 특허를 어떻게 구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케네스 최도 어렴풋하게 짐작만 할 뿐이었다.
폴 고슬링은 딱 그것만으로도 이 기술이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MP3 특허료를 옆에 놓고, MPEG-2 기술을 대충 병행해서 비교하는 것만으로 특허료를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었다.
뭐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문제가 되겠지?”
케네스 최 역시 최민혁 실장과 그가 소유한 계열사를 조사했다.
“KM 전자만으로 문제의 소지는 충분합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이 보유한 회사는 ARN을 비롯해서 다양한 IT 기업입니다. 그중에는 퀄컴도 빼놓기 어렵습니다.”
“아, 퀄컴이 있었지. 가만, 그쪽은 CDMA 관련 회사잖아. 설마 모바일에 이 MPEG-2를 적용한다는 소리는 아니겠지?”
“지금 당대 기술로는 다들 어렵다고 했습니다. 당장 모바일 CPU 성능이 안 나옵니다.”
하지만 폴 고슬링도 제법 이 특허를 분석하면서 전문 기술을 익혔다.
“그거야 소프트웨어로 돌려서 그렇잖아. 만약 ARN에서 개발한 MPEG-2 칩을 사용하면 상황이 다르지 않을까?”
“그거야…….”
케네스 최의 표정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도 최민혁 실장이 계열사 기술들을 서로 합쳐서 뭔가 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그게 또 연결점이 있었다.
그는 철봉으로 머리를 한 대 맞은 사람처럼 KM 전자 계열사 서류를 하나씩 살폈다.
‘설마 우연은 아니겠지?’
그건 더 말이 안 되는 일이다.
한 계열사 인수는 그렇다고 해도, 여러 개의 계열사가 마치 톱니바퀴처럼 딱딱 맞아 들어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덩치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계열사 하나가 가진 전문 기술도 간단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계열사 전체를 하나로 뭉쳐서 연결하게 한다라.
‘마, 말도 안 돼!’
폴 고슬링 역시 바보는 아니었다. 그는 케네스 최의 표정을 보고서 비슷한 생각을 했다. 이번 일은 진짜 심각한 일이었다.
“백만 달러든, 천만 달러든 상관이 없으니, 일단 전문가를 다 호출해서 합리적인 분석을 통해서 이 기술 가치를 검토해 봐!!”
“…알겠습니다.”
케네스 최 역시 시간이 없다는 것을 잘 아는지 후다닥 사무실 밖으로 나섰다.
폴 고슬링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최근 최민혁 실장의 행보가 너무 이상했다. 지금 이 자료를 토대로 볼 때 에플의 스티븐도 뭔가 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건 이 MPEG-2 기술과도 관련이 있었다.
‘젠장, 최악이잖아.’
오해였지만 딱히 틀린 추론은 아니었다.
그 기술이 실상 애니와 같은 인공지능 기술이기 때문이다.
* * *
“멀티미디어 폰이라니.”
보수적인 마이크 라이언은 삼십 분 가까이 폴 고슬링을 욕하다가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그는 마치 공상과학소설 속의 조연이 된 것 같아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폴 고슬링의 생각은 좀 달랐다.
“단순히 공상과학소설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디테일합니다.”
케네스 최가 무려 이백만 달러를 퍼부어서 가져온 기술 자료는 황당한 내용과는 거리가 있었다.
충분히 상업적으로 가능한 제품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란 것이다.
핸드폰이 아니라면, 당장 구현 가능한 영역이 몇 가지가 나왔다.
문제는 이들 업체는 최민혁 실장이 지금 확보한 MPEG-2 칩을 무조건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황당한 사실은 이런 사업 영역 자체가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게 더 심각한 문제였다.
MP3보다 더 무시무시한 파급력. 모건 스탠리가 사실을 진작 알았다면 최민혁 실장을 상대로 온갖 협박을 해서라도 뺏어야 할 기술이었다.
에플의 스티븐이 이런 기술을 확보했다면, 지금까지 이해하기 힘들었던 그의 행동도 다 설명이 된다. 에플 주가 폭등도 어느 정도 말이 되고 말이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치를 떨었다. 누군가 이 정보를 안 놈이 있다. 일테면 타이거 펀드의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 말이다.
그러면 갑자기 태국으로 잠적한 그의 행동도 설명된다.
에플 공매도 수량이 갑자기 정체된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 영감탱이가!’
하지만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오히려 탐욕이라는 감정을 떠올렸다. 그는 새삼 첫사랑을 만난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건 무조건 해야 할 일이었다.
자신이 어떻게 해서라도 숟가락을 올려야 하는 일이었다. 일본 특허 매입 과정을 볼 때 시일이 아직 얼마 되지 않았으니, 파고들 틈이 있을 것이다.
“…가만, 특허 출원을 이미 했다고?”
“네. 벨린 투자가 이미 미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유럽 쪽에 출원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하.”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입맛을 다셨다. 그는 정말 최민혁 실장이 만만한 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틈은 없어?”
폴 고슬링은 고개를 내저었다.
“일단 특허를 1차적으로 분석했는데, 우리 쪽에서 당장 손을 쓸 방법이 없습니다. 일단 다른 대안을 찾고 있습니다.”
“가만, MP3 특허를 볼 때 최민혁 실장이 방어 특허를 연구할 거야.”
“네. 그 틈을 노릴 생각입니다.”
“좋네. 역시 자네야. 폴, 최고야!”
폴 고슬링은 자신을 칭찬하는 마이크 라이언 이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장 잘리지 않은 것으로 만족합니다.”
“미안하다고 하잖아.”
“…그렇다고 해두죠.”
폴 고슬링은 나름 불만스럽기는 하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그는 욕심을 버리지 않았다. 이건 상황이 좀 달랐다. 아쉬운 점은 역시 상대가 상대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