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2.
자신이 연구한 분야와 관련이 있는 영역만 적고 있으니 말이다.
[어, 저거 마쓰시타의 마츠무라 타로 박사가 고안한 특허 같은데?]
[US 7,305,526, US 7,327,788, US 7,542,510이잖아. 아무래도 특허를 사들인 것 같아. 여기 명시가 되어 있어.]
[진짜네. 아니, 이게 말이 돼? 마쓰시타가 이 특허의 의미를 모르지 않을 텐데, 이걸 벨린 투자 측에 매각했다고?]
[…확실히 좀 이상하네.]
모인 이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지금 상황을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최민혁 실장이 간단하게 이 특허를 사들였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마쓰시타가 이렇게 중요한 특허를 매각할 리가 없었다.
아니, 심지어 특허의 원주인은 이들만이 아니었다.
미쓰비시와 도시바 역시 빠지지 않았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다들 학술회의에서 일본 측 엔지니어와 의견을 교환한 적이 있었다. 원천특허의 본래 주인을 알기에 특허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그 의미를 안 것이었다.
그들로서는 이 상황이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설마 도시바가 망한 건가?]
[도시바는 모르겠지만, 미쓰비시는 좀 어렵다는 소리가 있어. 어쩌면 사업부를 매각할 때, 원천특허까지 넘겼을 수도 있지.]
[아니, 그게 그 이야기 아냐? 미쓰비시가 부도 정도는 나야 이 중요한 특허를 매각하지? 아직 그 정도는 아냐.]
[글쎄…….]
서로 수군거리는 엔지니어들은 영문을 잘 몰라서 최민혁 실장만 쳐다보았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 이들은 최민혁 실장이 하는 원천특허의 가치를 너무 잘 알았다.
최민혁이 한 설명은 자신들이 막상 하려고 했던 분야와 절묘하게 걸치고 있었다.
최민혁 실장의 아이디어는 자신들에게 있어 포기했던 돌파구나 마찬가지였다.
“…….”
이지수 박사는 힐끗, 회의실 분위기를 확인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헬렌 역시 살짝 놀란 얼굴이었다. 아니, 경악했다. 그녀 역시 과거 이 영역을 따로 연구해서 의미를 바로 알아봤다. 그녀 자신이 연구할 때만 해도 저렇게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다.
그리고 최민혁 실장의 마지막 마침표.
그는 뒤로 물러나 회의실 제일 앞 책상에 엉덩이를 걸치고는 화이트보드에 적은 ‘MPEG-2' 아이디어를 의미심장하게 쳐다보았다.
부족했다.
그의 입에서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역시 내 능력의 한계도 있구나.’
지금까지 인생 1회 차 지식을 이용해서 쉽게 상황을 풀어왔다.
그런데 벌써 한 영역에서 벽을 마주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빈 구간을 메꿔줄 인재는 차고 넘치니까 말이다.
바로 눈앞에.
특히 자신에게 인생 1회 차에서 주입식 교육을 선사한 이지수 박사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니, 원주인인가?’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몸을 돌렸다.
50명의 KMBOOK 연구원들은 다들 입을 살짝 벌린 채 멍하니 화이트보드를 보기에 바빴다.
감정이 극도로 예민한 헬렌조차 이번에는 최민혁을 다른 눈으로 쳐다보았다.
최민혁은 힐끗 이지수 박사를 쳐다보았다.
이지수 박사 역시 살짝 놀란 얼굴로 화이트보드를 쳐다보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혹시 박사 학위라도 받았어요?”
“전 학부 1학년입니다. 뭐, 휴학하기는 했지만.”
“한국대 전자 공학과인가요?”
“아뇨. 문과 쪽입니다.”
“…잘 이해가 안 돼요.”
이지수 박사도 크게 당황했다. 그녀는 힐끗 화이트보드를 살핀 후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눈으로 최민혁 실장을 쳐다보았다.
화이트보드에 적혀 있는 전문적인 지식은 학부생의 수준을 가볍게 넘어갔다. 최소가 석사, 굳이 따지면 적어도 박사 학위 수준이다.
그것도 그냥 단순한 박사 학위 수준이 아니라 전문가 단계였다.
그녀도 이런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을 그렇게 많이 아는 것은 아니었다.
최민혁은 그런 이지수 박사의 모습에 뿌듯한 얼굴이었다.
잘난 척한다고 해야 할까.
전생에서는 이지수 박사의 흠모에 가득한 눈빛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최민혁은 반발 심리로 이지수 박사를 괴롭혔고 말이다.
구질구질한 전생의 모습을 떠올린 최민혁은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이지수 박사의 모습은 전혀 달랐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화이트보드에 적힌 내용을 세세하게 확인했다.
“이건 정말 놀랍네요.”
헬렌 역시 지지 않았다.
“단순히 그렇게 말할 만한 내용이 아니야. 도대체 이런 실험을 어떻게 한 것인지, 이 이론은 어떻게 나온 것인지 알 수가 없어.”
당연했다.
각 이론을 뒷받침할 내용이 없었다. 중간에 끊긴 것도 있고 말이다. 그리고 이건 최민혁 자신도 잘 모르는 내용이었다.
이지수 박사는 그런 점을 느꼈다.
“아무리 봐도 이게 다가 아닌 것 같은데…….”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저도 사람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이지수 박사는 그제야 최민혁 말을 알아들었다.
“…뭐, 제가 부족한 부분을 채우길 원하는 겁니까?”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이게 비디오 압축 코덱이라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죠. 드론 기술에서 이미 적용되었을 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아마 이지수 박사님이 연구한 것보다는 한 단계 앞선 기술일 겁니다. 다만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그 부분을 메꿔야 합니다. 할 수 없습니까?”
늘 표정이 없던 그녀 얼굴에 감정이 생겨났다. 그녀도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녀는 힐끗 화이트보드에 적혀 있는 MPEG-2 기술을 살폈다.
“아뇨. 할 수 있어요. 이 정도 자료 기반이 있다면 못하는 게 이상하죠. 하지만 저건 MPEG-2 관련 기술 같은데, 태반이 처음 보는 이론이군요.”
“아마 그럴 겁니다. 저도 이지수 박사님이 보내준 센서 자료를 태도로 한 번 아이디어를 구상해 본 것이니까요.”
어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가.
이지수 박사가 만든 자료에는 저런 내용과 관련이 있는 것이 있긴 했었다.
그것도 그저 방향성이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은 그 뼈대와 답안까지 어느 정도 정리해 놓았다.
“…그 자료에는 저런 내용은 없었습니다.”
“뭐 어차피 본질은 이미지 압축과 관련이 있지 않습니까? MP3의 연장선이나 마찬가지죠. 다만 제 능력 부족으로 구체적인 부분을 채우지는 못했습니다.”
“그렇습니까.”
이지수 박사는 대답하고서도 당혹스러운 얼굴로 최민혁 실장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동영상 표준화 작업에 참여했기 때문에 지금 최민혁 실장이 고안한 아이디어 가치를 금방 알아봤다.
그녀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은 일이었다.
얼핏 봐서는 지금의 MPEG-2에서 시작된 것 같기 때문이다.
도대체 최민혁 실장은 저런 기술을 어떻게 생각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저런 특허는 비디오 표준 협회에서 적어도 6개월, 아니 1년은 협의를 해야 할 결과물이었다. 그것도 일부만 따져도 말이다.
그런데 최민혁은 딱 그 핵심 부분을 직접 구현해 놓았다.
이게 말이 안 된다는 말이다.
MPEG-2 표준화 작업에는 전 세계에서 수천 명의 전문가가 참여했다. 그들은 각국에서 내로라하는 천재였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하려면 실제적인 경험치와도 관련이 있어야 한다.
그건 곧 관련 연구소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에게는 그게 없었다.
‘이건 마치 마른하늘에서 뚝 떨어진 기술이잖아?’
비록 그녀 자신이 유니크한 천재라고 해도 그럴 수는 없었다.
그들이 모여서 만든 동영상 압축 코덱.
최민혁 실장은 놀랍게도 이 코덱의 틈을 파고들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지금의 자신이라면 최민혁 실장의 부족한 부분을 메꿀 수 있었다. 거기에 지금 이 KMBOOK에는 자신이 인정한 인재들이 무려 50명이나 합류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곰곰이 고민하다가 한 가지 사실을 더 깨닫고 말았다.
“혹시 MP3 원천특허처럼 MPEG-2 원천특허를 모두 확보할 생각인가요?”
“모든 특허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미쓰비시, 마츠시다, 도시바 역시 핵심 특허는 내놓지 않았습니다. 일부만을 확보했죠.”
“…일부는 아닌 것 같아요.”
최민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일부 맞습니다.”
“그렇다고 하죠. 하면 아직 다른 이들은 모를 거란 말씀이군요.”
“지금은 그렇습니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한국 대기업이 소유한 특허 역시 얻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금쯤이면 소식을 들었을 테니 말이죠. 특히 오성 그룹, LC 전자, HY 전자는 아예 대화조차 하지 않으려고 할 겁니다. 하지만 이지수 박사님과 관련이 있는 연구소는 다르죠. 더욱이 제가 확보한 기술과 지금 여기에 기록한 아이디어라면 그 수량을 대폭 늘릴 수 있습니다.”
그는 오른팔을 쭉 펼쳐서 화이트보드를 가리켰다. 이미 설명을 들은 연구원은 최민혁의 눈치를 보다가 화이트보드 앞에서 그를 살피고 있었다.
이지수 박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그들도 바보가 아닐 테니, 그들도 저게 돈이 된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겁니다. Encoders 하나만으로도 대당 0.25달러 로열티를 받을 수가 있어요.”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그 정도면 더 설명이 필요 없겠죠?”
“…후.”
이지수 박사는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그녀는 신기한 눈으로 최민혁 실장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KMBOOK 협상 자리에서 꽤 놀라기는 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그녀는 최민혁 실장이 뭘 하려고 하는지 모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도와주실 거죠?”
“…알겠어요.”
* * *
이지수 박사는 원래 최민혁 실장의 제안을 받고서 꽤 많이 고민했다. 최민혁 실장이 일방적으로 잘해주기는 했지만 그래서 오히려 의심하기도 했다.
그녀는 최민혁 실장이 다른 꿍꿍이가 있나 생각을 많이 했다.
헬렌은 더했다. 그녀는 최민혁 실장을 이상한 남자로 취급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이 내놓은 MPEG-2 특허를 보자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들이 최민혁 실장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도움을 받아야 할 상대였다.
최민혁 실장의 전문적인 지식과 능력은 이지수 박사조차 쉽게 볼 수가 없었다.
착각이었다.
최민혁은 물론 이런 오해를 굳이 바로잡지는 않았다. 그는 오히려 오해가 더 심해지도록 내버려 두었다. 마치 힘숨찐처럼 말이다.
헬렌조차 최민혁의 능력을 과하게 평가하면서 모든 의심을 내려놓았다.
이지수는 박사는 차마 최민혁 실장의 제안을 거절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그냥 말로만 할 생각은 없었다. 이미 몇 차례 협상하면서 서로 밀고 당기던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
“KMBOOK 지분 25%를 드릴 겁니다. 헬렌에게는 3%, 나머지 임직원에게 2%로 하죠. KMBOOK 자본금을 2억 달러까지 증자할 생각입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꽤 과한 조건일 수가 있다. 하지만 이지수 박사의 능력을 고려하면 딱히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다만 그녀는 몸만 왔다는 것이 문제였다.
최민혁은 그래서 한 가지 조건을 더 걸었다.
“대신 이지수 박사님이 가진 특허를 전부 KMBOOK에 넘겨주세요. 만약 그렇게만 해준다면 추가 투자를 하더라도 이 박사님 지분은 희석되지 않을 겁니다.”
바로 인공지능과 관련된 특허.
그 가치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MPEG-2 특허 기술을 검토하던 그녀의 동료는 최민혁 실장을 단순한 기업인 수준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동등한 자격의 동료.
아니, 오히려 그 이상이었다.
그들은 최민혁 실장을 이제 함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딱히 최민혁을 반대하지 않았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최민혁 실장의 능력을 지금 눈앞에서 봤기 때문이었다.
그들 눈앞에 있는 이 동영상 특허만 채울 수 있다면 MPEG-2 산업 분야 등에 초대형 빨대를 꼽은 채 수십 년은 훌훌 마실 수가 있기 때문이다.
특허 연금이라고 해야 할까.
거기서 나오는 인센티브만 제대로 받아도 한평생 돈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일단 이거 하나만으로도 최민혁 실장의 제안은 그렇게 무리한 요구는 아니었다.
더욱이 이들은 이곳에 있으면서 이미지 압축 특허의 가치에 대해서 조금은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