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751화 (751/1,021)

#751.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이건 바트화 문제와는 아예 별개의 건이었다.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은 한동안 침묵했다. 최민혁 실장은 마치 양파와도 같았다. 까도 까도 그 속이 드러나질 않았다.

그는 최민혁 실장을 만난 기억을 떠올렸다.

다른 사람과는 달리 자신을 부담스러워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자신이 가진 역량을 생각한다면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런 건가?’

진짜 문제는 에플 공매도였다.

타이거 펀드 역시 에플 공매도에 슬쩍 한자리를 차지했다.

“…그 말은 설마 에플에도 적용이 되는 건가?”

“그건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이 이렇게 무리수를 둔 것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잠깐 침묵했다. 이번 일은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공매도는 최악의 경우 이론적으로 손실이 무한대에 가깝다.

만약 최민혁 실장이 대안이 있다면 바로 반격할 것이다.

결국 그렇게 되면 가장 먼저 선봉에 선 이들은 천문학적인 손실을 볼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에플이나 스티븐을 다시 확인해 봐야 했다.

“콜린, 자네 생각은 어때?”

콜린 사이먼은 굳은 얼굴을 한 채 일축했다.

“이번 에플 공매도는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합니다!”

“하지만 모건 스탠리의 마이크 라이언 이사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게다가 이건 말할 수도 없는 내용이잖아.”

이유는 간단했다.

이건 돈이 되는 정보기 때문이다.

때문에 지금 당장은 모건 스탠리에게 알리기보다는 MPEG-2 특허나 관련 회사를 인수해야 했다.

“그렇다면 차선은 적당한 선에서 치고 빠지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에플 공매도 들어갈 때 우리가 가진 지분은 다 매각하고, 빠지자는 소리야?”

“네.”

“그건 약속 위반이야.”

“명분은 있습니다. 태국 정부에 이번 바트화 인수 정보를 슬쩍 흘리는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바트화 매입이 쉽지 않을 겁니다. 무리수를 두는 척하면서 에플 공매도에서 빠지면 됩니다. 애초에 이번 태국 바트화도 무리수를 둬서 한 일입니다. 그냥 뒀다간 손실이 난다는 것은 마이크 라이언 이사가 잘 알 겁니다.”

“…그리고 에플 주가가 폭락하면 지분을 다시 사들이자는 소리야?”

“티가 나지 않게 작업할 수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상황을 봐서 에플 공매도 물량을 정리하겠습니다. 다소 손실이 있겠지만 이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아, 그 작업을 한번 검토해 봐. 아니, 당장 단계적으로 시작해 봐. 일단 손실을 일부로 내면서 넌지시 그 이야기를 해.”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은 차후 내막을 알게 된 마이크 라이언 이사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생각해 보고는 피식 웃고 말았다. ‘배신자’라고 길길이 날뛰는 표정이 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태국에서 손해를 좀 보면, 딱히 문제가 될 일은 아니었다.

‘변수는 늘 있으니까. 이 일도 그 연장선일 뿐이잖아.’

“아무래도 MPEG-2 특허에 관해서도 확인해 봐. 일본 대기업만 특허를 가진 것은 아니잖아.”

“…알겠습니다.”

* * *

“공매도 물량이 갑자기 주춤한다고요?”

조성돈 팀장의 표정이 평소와는 달랐다. 그는 이번 일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얼굴이었다. 에플 공매도 물량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었다.

누군가 계속 에플 공매도를 친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세력이 한둘이 아니었다.

돌아가면서 튀어나오는 투자자 중에는 듣도 보도 못한 이도 있었다.

애초에 미국 증시는 한국과는 규모 자체가 달랐다. 세력의 숫자가 너무 많아서 그들이 누구인지 정확히 다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해외 페이퍼컴퍼니를 통해서인데, 중동 오일 자금을 비롯해 출처를 알 수 없는 곳이 꽤 있습니다. 그 덕분에 에플 공매도 물량이 계속 늘어나던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물량이 줄어들었습니다.”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서 늘어나고 있던 에플 공매도 물량이 주춤한 것이었다.

더 황당한 것은 에플 주가였는데, 주가가 계속 올라서 결국 30달러를 돌파했다.

이 에플 주가 때문에 난리가 났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고작 3달러에서 맴돌던 주가가 무려 30달러를 돌파했기 때문이다.

물론 월가에서는 최민혁 실장의 8% 지분 매각을 최악의 한 수라고 비웃었다. 헐값에 매각했다는 거다. 아직 32% 에플 주식을 가진 대주주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최민혁 자신이 8% 지분을 매각했기에 에플 주가가 30달러를 넘었다는 소리도 있었다.

다만 우려의 목소리도 컸다.

에플 공매도 물량 때문이다.

에플 주가가 폭락할 것이라는 소리가 계속 나왔다.

그럼에도 에플 주가는 이상할 정도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

에플 공매도 물량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러던 에플 공매도 물량이 갑자기 정체되었다는 이야기는 누군가 에플 공매도 물량을 청산 중이라는 뜻이다.

“그거 손해 아닙니까?”

“손해 맞습니다. 누군가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공매도를 상환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물론 지금 들어온 공매도 세력이 아니라 초창기에 들어온 세력이었다.

최민혁은 아차 싶었다.

“어떻게 된 거죠? 설마 우리 부회장님이 손절매한 겁니까?!”

조성돈 팀장은 타이거 펀드에 대해서는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모건 스탠리 내부를 조사했고, 몇 가지 특이점을 찾았다.

“최문경 부회장이나 샐로먼 브러더스 측은 아닙니다. 아무래도 모건 스탠리 측에서 MPEG-2를 다시 재검토하는 것 같습니다.”

그는 모건 스탠리가 한 일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그걸 다 들은 최민혁은 혀를 찼다.

“MPEG-2를 따로 조사했다라. 한국에 있는 세한정보까지 직접 찾아가서 2,000만 달러를 투자한 것이 시발점이 된 것 같다는 소리군요.”

조성돈 팀장 역시 당혹스러웠다. 그도 모건 스탠리가 이런 식으로 일 처리를 할 줄은 몰랐다.

“네, 확실합니다.”

최민혁도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고작 당일치기로 얻은 정보로 이 정도까지 생각했을지는 몰랐다.

“…아니, 거기서 얻은 정보로는 한계가 있을 텐데, 이상하군요?”

“아무래도 MP3 특허료를 이용해서 가치를 산출한 것 같습니다. 그 정보를 토대로 MPEG-2 원천기술을 이용할 방법까지 검토한 것 같습니다.”

“쯧.”

최민혁도 혀를 찼다. 모건 스탠리의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CPU 성능을 끌어올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건 자신이 만든 덫을 상대가 눈치챈 것 같다는 점이다.

최민혁은 물론 상대가 애니 때문이 아니라 MPEG-2 때문이라는 것까지는 몰랐다.

‘하긴 지금까지는 정말 쉽게 왔지.’

최문경 부회장이 특히 그랬다. 그는 자신이 만든 함정에 족족 다 걸려들었다. 그런데 모건 스탠리나 미국 헤지펀드 세력은 달랐다.

이들 때문에 샐로먼 브러더스 역시 태도를 바꿀 것이었다.

그건 곧 겁 많은 최문경 부회장도 손을 뗄 확률이 높아진다는 소리였다.

‘그래, 일이 쉽게 가면 재미없지. 뭐 쪼는 맛도 있어야지.’

상황이 이렇다면 계획은 변화가 필요했다.

그런데 조성돈 팀장도 최민혁 실장 눈치를 보았다.

“이번 일 말입니다. MPEG-2를 MP3처럼 이용할 생각입니까?”

“조 팀장님 생각은 어때요?”

“네? 그게 좀…….”

그가 조사한 바로는 당장 MPEG-2 모바일 기기를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있다고 한다면 지금 최영란 본부장이 진행하고 있는 CMOS 타입 기기 정도다.

이 기기는 당장 CCTV와 같은 영역에 쓸 수 있었다.

모바일 기기 시장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은 그 역시 의문을 가졌던 점이다.

“당장은 CMOS 센서가 적용된 핸드폰에 적용하기가 어렵지 않을까요? 실무진에서 검토한 바로는 문제가 제법 있는 것으로 압니다.”

최민혁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당장은 기술적으로 힘들 겁니다. 저도 단기 계획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니까. 물론 CCTV는 좀 이야기가 달라요. 그런 쪽에는 바로 적용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정확히는 이번 기회에 MPEG-2 원천기술을 확보하자는 의도에서 움직인 것이었다. 응용 결과물은 솔직히 실패해도 상관이 없었다.

최영란 본부장은 물론 입장이 달랐다. 그녀는 어떻게 해서라도 결과를 내야 했다. CCD에서 CMOS로 노선을 갈아탄 이유였다.

“하면 모건 스탠리가 착각한 겁니까?”

그도 피식 웃었다. 지금 당장은 어려워도 4~5년 후라면 상황이 다르니까.

“뭐, 꼭 그렇게 볼 수는 없죠. 제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다른 사람은 좀 다르니까. 더욱이 MPEG-2 특허 문제도 여전히 존재하고요.”

비록 핵심 특허는 미쓰비시를 비롯한 다른 기업이 여전히 소유하고는 있지만 파고들 틈은 있었다.

지금 MPEG-2는 스트리밍적으로 보면 흠이 너무 많았다.

다르게 보면 이걸 수정해서 새로운 특허를 낼 빌미도 많다.

실제로 MPEG-4 핵심 특허는 7년 후에도 고작 336건에 불과했다.

따라서 지금은 그 숫자가 더 적다.

지금 MPEG-2 특허의 취약점을 파고들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나 혼자라면 힘들겠지만 이지수 박사라면 상황이 다르지.’

조성돈 팀장도 이젠 바보가 아니었다.

“…혹시 이지수 박사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최민혁은 그제야 씩 웃었다. 그는 이제 이전에 지시했던 일을 마무리 짓을 필요성을 느꼈다. 모건 스탠리의 행보가 영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일을 일단 이상한 이상 마무리해야 했다. 매입한 특허 외에 후일 문제가 될 MPEG-2 나머지 원천특허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이지수 박사를 호출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갑작스러운 최민혁 실장의 지시에도 매우 놀라지 않았다.

이런 일은 이미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가 궁금한 것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정말 MPEG-2 모바일 기기를 개발하겠다는 걸까? CMOS 이미지 센서를 응용한 기술을 말하는 건가?’

* * *

최민혁 자신이 MPEG-4 코덱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돈이 되는 Decoders, Encoders, Video 관련 특허 아이디어는 제법 알았다.

특히 로열티 구조 위주로 말이다.

이 부분은 따로 정리해 놓았다.

그는 비디오 해독, 암호화를 포함해서 스트리밍의 약점을 극복할 다양한 모델을 이지수 박사, 헬렌, 그리고 동행한 엔지니어에게 설명했다.

시간 모델에 따른 광범위한 설명이었다.

[각각의 노드는 기본적으로 스트리밍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일종의 수단입니다. 각 노드 속성에 따른 지연 시간과 경과 시간은 그 매개체입니다.]

노드 생성 모델에 대한 기본적인 변수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히 설명하고도 남았다.

MPEG-2 특허의 취약점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문제는 생각보다 많았다.

아니, 정확히는 스마트폰 시장이 열린 후에 생기는 문제 말이다.

이런 부분은 지금 나와 있는 MPEG-2 특허로 해결되지 않았다.

MPEG-2 원천기술이 좀 더 범위를 넓혀가면서 나오는 기술이었다.

최민혁은 이런 부분은 가정1, 가정2과 같은 방식은 둔 채 묵묵히 KMBOOK 대강의실 화이트 보드에 설명을 적어나갔다.

“…….”

이지수 박사와 헬렌은 뜬금없는 최민혁 태도에 어이가 없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은 풋내기처럼 쓸데없는 질문을 걸어서 최민혁 실장의 설명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녀는 조성돈 팀장이 최근 사들인 MPEG-2 원천특허를 살피면서 입을 살짝 벌렸다. 다행이라면 MP3 특허 때 이미 반복한 일이었다. 그게 MPEG-2로 바뀐 것뿐이다.

따라서 그렇게 다를 것은 없었다.

그건 뒤늦게 나타난 그녀의 연구 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알음알음 연락을 통해서 이지수 박사와 같이 일했던 이들이었다.

그 숫자는 벌써 50명이 넘었다.

MIT, 코넬, 스탠포드 대학에서 이지수 박사가 어느 정도 능력을 인정한 인재들이었다.

그들 역시 이지수 박사와 손발이 착착 맞았다.

그들은 멍하니 최민혁 실장의 브레인스토밍에 가까운 설명을 들었다.

심지어 탄식하는 이도 있었다.

[가만, 저거 MPEG-2 표준에서 스트리밍 한계에 대한 아니야?]

물론 옆의 동료는 팔꿈치로 쿡 쥐어박아서 입을 다물게 했다.

묵묵히 최민혁의 설명을 듣기만 하는 이들 표정이 점점 변해갔다.

그들은 최민혁 실장의 설명에서 뭔가 한 가지씩을 느꼈다.

그들은 어느 사이에 노트를 꺼내서 최민혁 실장의 설명을 적기 시작했다.

물론 각자 적는 구간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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