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9.
그는 힐끗 이양구 수석 부장을 다시 쳐다보았다.
이양구 수석 부장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당장 비디오 관련 원천기술도 문제고…….”
폴 고슬링은 바로 그의 말을 막았다.
“MPEG-2에 대해서 들어봤습니까?”
“MPEG-2라면, 그 동영상 압축 코덱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 원천기술이 있다면 비디오 모바일 기기 프로젝트 진행이 가능합니까?”
“글쎄요. 으음, 솔직히 이 자리에서 대답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양구 수석 부장은 힐끗 강민철 차장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 역시 딱히 대답할 수는 없었다. 두 사람에게도 정말 생뚱맞은 이야기였다.
두 사람도 MPEG-2 플레이어를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넘어야 할 부분이 있었다. 그건 바로 CPU의 성능 한계다.
CPU 성능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이상 대안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최민혁은 당연히 이 CPU 성능을 끌어올릴 방법을 알았다.
두 사람이 그런 최민혁 의도를 알 리가 없었다.
하지만 폴 고슬링은 오히려 두 사람의 대답에 만족했다. 그는 생각을 달리 먹었다. 이들의 가치를 믿고 싶었다.
“좋습니다. 일단 1차적으로 천만 달러, 아니, 이천만 달러를 귀사에 투자하겠습니다. 다만 결과가 나오면 추가 투자를 이야기하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안문원 본부장은 호들갑을 떨었다. 모건 스탠리로부터 투자를 받은 것은 엄청난 일이기 때문이다. 이 일을 이용하면, 세한 그룹 내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키울 수도 있었다. 그런데 폴 고슬링은 이 계약과 관련된 문제로 실무진 한 사람을 남겨두고는 횅하니 떠나 버렸다.
“어, 자, 잠깐만…….”
그는 황당한 얼굴을 한 채 넋을 잃고 말았다. 그의 머릿속은 너무 복잡했다. 모건 스탠리 실무진이 나타난 것도 황당한 일이지만 반응은 더 극적이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그리고 모건 스탠리 실무진이 최민혁 실장 이름은 어떻게 안 거야? 젠장, 이거 완전히 도깨비에 홀린 기분이군.’
* * *
안문원 본부장은 일단 모건 스탠리에서 이천만 달러를 투자받았다는 점만 생각했다. 비록 작은 자금이라고 해도 명색이 모건 스탠리였다.
그는 세한정보 그룹 윗선에 보고해서 꽤 칭찬을 받았다.
할아버지 안창희 회장이 직접 전화까지 걸어서 격려까지 해주었다.
이런 적은 이전에는 없었다.
안문원 본부장은 때문에 이 MP3 사업을 쉽게 생각하지 않았다.
일단 그는 이양구 수석 부장을 호출해서 한번 이야기를 나눠봤다.
하지만 이양구 수석부장은 난감한 얼굴이었다.
“무슨 의도인지는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MPEG-2에 대해서는 당장에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없습니다. 대신 MP3를 기준으로 해서 추측은 가능합니다.”
“빨리 그 추론을 해보세요.”
“어려울 것은 없습니다. KM 전자가 이 사업을 시작할 때 기준을 20만 대 정도로 잡으면, 그다음 해에는 120만 대, 2년 후에는 대략 250만 대 수준입니다.”
“하면 KM 전자의 KMP-01 판매 수량을 기준으로 한다면, 2년 후에는 대략 1,000만 대 정도입니까?”
“꼭 그렇게 보기는 힘듭니다. KMP-01은 어디까지나 한국 내의 내수 시장만을 목표로 했으니, 성장 수치는 더 가팔라질 겁니다. 당장 에플에서 올해 출시할 예정인 MP3 플레이어도 있으니까요.”
“아, 에플이 CES에서 내놓을 예정이라는 그 차세대 제품 말인가요?”
“네.”
안문원 본부장의 안색이 좋을 수가 없었다. 막상 일본에 50만 대를 수출해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MP3 시장의 성장 속도는 무시무시했기 때문이다.
“…미국 시장 공략은 어떻게 되어 갑니까?”
“그게 일단 미국 유통 쪽과 이야기를 하고는 있는데, 아무래도 에플 눈치를 봐서 이야기가 잘되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세한정보는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회사가 아니었다.
하물며 미국 유통 회사가 알 리가 없다. 결국 세한정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어필해야 하는데, 상황이 그렇게 녹록하게 될 리가 없다.
아니면 세한정보에서 출혈을 감수해야 한다.
“아니, 그러면 이상하잖아요. KM 전자 측에서는 이미 이런 일을 했을 텐데…….”
“아닙니다. KM 전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유통 업체인 월마트 측과 갈등하다가 결국 수출을 포기했습니다. 유통 팀장이 직접 한 이야기입니다.”
“아니, 최민혁 그 새끼는 미친 것 아닙니까.”
“월마트 쪽에 끌려다녀 봐야 이익이 적을 것으로 생각해서 극단적인 포지션을 취한 것 같습니다. 그때 이후로 에플 주식을 사들여서 대주주가 되었고요.”
최민혁과 월마트 간의 대립은 꽤 오래된 이야기였다.
국내 업체도 이제는 어지간해서는 알 정도였다.
그들은 한결같이 최민혁의 쇠고집에 다들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이양구 수석부장은 안문원 본부장의 눈치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면, 애초에 MP3 플레이어 수출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당장 우리 회사만 특허료로 50억을 지급했지 않습니까? 다른 중견 기업도 다들 푸념을 털어놓습니다. 오성 전자를 비롯한 20대 대기업은 출혈이 더 클 겁니다.”
“…대단하네요.”
안문원 본부장도 그제야 탄식하고 말았다. 막상 일본 수출길이 열려서 매출이 늘어났기는 했지만, 순이익 측면에서는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일본 수출길을 뚫기 위해서 계약에 무리수를 뒀기 때문이다.
그가 곧이 폴 고슬링에 저 자세를 취한 것도 영업 효율을 더 올리기 위함이었다.
‘가만, 막상 생각해 보면, 결국 앉아서 돈을 버는 것은 최민혁 실장 이 새끼잖아.’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양구 수석부장에게 MP3 시장과 관련된 보고서를 받아서 확인해 봤다. 가파르게 성장하는 MP3 시장. MP3 시장 규모는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경쟁은 격화될 것이고, 돈을 버는 놈은 MP3 특허를 가진 놈이잖아!’
그런 내심을 이양구 수석부장이 알아보고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이제 기술 등장 단계 수준이니, 이제부터 최고 기대 단계로 올라갈 겁니다. 그다음에는 실망 단계로 접어들기는 하겠지만, 기술적인 안정 덕분에 MP3 시장이 급격히 늘어날 겁니다. 차라리 MP3 특허를 가진 KM 전자와 거래하는 것이 다른 리스크 요소를 줄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안문원 본부장은 입맛을 다셨다. 영 내키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는 그래서 최민혁 실장 행적이 궁금했다.
“아니, 그런데 최민혁 그놈은 이렇게 바쁜 시기에 왜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는 거야?!”
이양구 수석부장도 어깨를 으쓱했다. 그 역시 최근 최민혁 실장이 미국에서 초호화 펜트하우스 취미에 빠졌다는 찌라시성 기사를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설마 모건 스탠리가 이 일 때문에 우리를 찾아온 것일까?’
그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굳이 안문원 본부장을 자극하지는 않았다.
* * *
최민혁 실장 역시 에플 공매도 현황을 유심히 지켜보는 중이었다. 에플 주가가 결국 30달러를 돌파했기 때문이다.
그로서는 모건 스탠리가 왜 이렇게 조용한지 알 수가 없었다.
조성돈 팀장이 그 이유를 확인했다.
“아무래도 모건 스탠리의 폴 고슬링이 한국을 방문한 것 같습니다.”
“네? 아니, 왜요?”
“세한정보를 찾았고, 그쪽에 이천만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이천만 달러요?”
최민혁은 의아했다. 그는 당연히 전생에서 MP3 플레이어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세한정보를 모르지 않았다. 그에 따른 보상도 해줬다.
그런데 모건 스탠리가 그런 정보를 알 리가 없었다.
다행히 조성돈 팀장은 그 원인마저 파악했다.
“아무래도 MP3 산업에 관해서 확인한 것 같습니다.”
“MP3 산업이라…….”
그는 턱을 쓰다듬으면서 전생의 MP3 산업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MP3 플레이어가 최초로 나오는 시점이 바로 작년이었다. 당시 이 시점에서는 MP3 판매 수량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다음 해부터 대략 20만 대 수준, 그리고 그 다음에 대략 100만 대 수준이니까. 2년 후에는 250만 대 수준으로 확 늘어났지.’
실제로 MP3 시장이 급격히 팽창하는 3년이 지난 시점에는 460만 대 정도로 성장했다.
MP3 산업이 급격히 팽창하기 시작하는 시점이 바로 그 타이밍이었다.
그때 이후는 글로벌 규모로 매출이 팽창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가 생긴 데에는 냅스트를 비롯한 다양한 환경적인 요인 역시 무시하기 어렵다.
최민혁이 굳이 MP3 생산에 무리수를 두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었고, 굳이 MP3 특허풀을 만들어서 다른 한국 기업을 부추긴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 노력은 꽤 성공적이었다.
한국의 MP3 기업의 성장은 눈부시다는 말로 부족했다.
MP3 특허료 수익만 벌써 3억 달러를 넘긴 것도 이것과 관련이 있다.
‘아니, 가만, 벌써 3억 달러를 넘겼어?’
최민혁은 그제야 깜짝 놀랐다. 그도 주식 가지고 돈을 쉽게 보다 보니, 3억 달러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조성돈 팀장은 최민혁 실장의 사색을 방해하지 않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모건 스탠리가 MP3 시장 수요를 통해서 우리 회사의 매출을 파악하고, 이를 기반으로 에플 가치를 재평가한 것 같습니다.”
“….안 좋은 소식이군요.”
“하지만 그렇다고 이번 공매도를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뭐, 모건 스탠리 자존심이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죠.”
“아니, 제 생각은 다릅니다. 당장 MP3 특허료를 많이 받기는 했지만, 오성 전자를 비롯한 대기업은 아직 개발 단계 중입니다. 이보다는 오히려 에플이 더 빠를 겁니다. 그러니 아직은 기회가 있습니다.”
“흠.”
최민혁도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뒤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아직 MP3 시장 기대치가 한창 커지기 직전이었다.
따라서 미국 언론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입맛대로 각색할 수도 있었다.
그는 먼저 공격적으로 모건 스탠리에 손을 쓸까 하다가 관뒀다.
“지금은 모건 스탠리 쪽 동향에 집중하죠. 에플 공매도 신호가 나올 때까지 조심스럽게 살펴보죠. 만약 그래도 질질 끌면, 다른 대안을 생각해 봅시다.”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최민혁 실장 반응에 피식 웃고 말았다. 그는 자신들이 에플 공매도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이 일이 역설적이기만 했다.
* * *
“이번 일은 절대로 그냥 끝낼 일이 아닙니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최민혁 실장이 함정을 파 놓은 것 같습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세한정보에서 지금 일본에 수출하려는…….”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갑자기 한국으로 간 폴 고슬링이 단 이틀 만에 돌아와서 세한정보의 MP3 이야기를 꺼내자 황당한 얼굴로 듣기만 했다.
이천만 달러를 투자한 덕분에 세한정보에서 만든 MP3 플레이어 샘플과 관련 정보를 가져왔다. 심지어 MP3 플레이어 미래 시장에 대한 다양한 정보도 같이 말이다.
그는 엔지니어가 아니라서 확답하지는 못했지만 한 가지를 추론해 냈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최민혁 실장이 모은 MPEG-2 특허를 이용하면 비디오 관련 모바일 기기 개발이 가능합니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폴 고슬링의 말을 전적으로 믿고 싶지 않았다.
“…그게 당장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야?”
“전 충분히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폴 고슬링은 어느새 실무진을 이용해서 한국 MP3 시장 규모와 앞으로 미래 가치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실 한국 시장만 생각한다면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니었다.
“그런데 여기에 일본 시장까지 포함하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정확히는 동남아 시장을 시작으로 해서 유럽 시장까지 고려하면 말입니다!!”
물론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에플에서 차세대 제품으로 꼽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MP3 플레이어였다.
“이건 한국의 MP3 플레이어와는 수준이 다르다고 합니다.”
그렇게 내놓은 것은 KMP-01이었다.
“흠.”